H.P. 러브크래프트의 크툴루 신화는 게임업계에서 꾸준히 사랑받는 소재입니다. 비디오 게임은 물론 보드게임에서도 이 같은 경향은 한동안 지속됐죠. 1900년대를 배경으로 한 어두운 아트워크, 자극적이고 때로는 고어하게 느껴지는 테마, 긴장감이 높아지는 도전적인 난이도 설정까지, 크툴루 신화 기반의 다양한 게임은 이 같은 독특한 매력으로 마니아층을 형성해 왔습니다. 이번에 소개할 광기의 저택은 2019년 국내에 출시되어 벌써 7년이 된 게임입니다
게임메카는 한 달에 한 번 보드게임 개발사 포푸리의 우치 대표와 함께 좋은 보드게임을 소개하는 코너 [보드게임]을 연재합니다.
▲ 크툴루 신화를 기반으로 한 보드게임 '광기의 저택' 본판 패키지 (사진: 게임메카 촬영)
H.P. 러브크래프트의 크툴루 신화는 게임업계에서 꾸준히 사랑받는 소재입니다. 비디오 게임은 물론 보드게임에서도 이 같은 경향은 한동안 지속됐죠. 1900년대를 배경으로 한 어두운 아트워크, 자극적이고 때로는 고어하게 느껴지는 테마, 긴장감이 높아지는 도전적인 난이도 설정까지, 크툴루 신화 기반의 다양한 게임은 이 같은 독특한 매력으로 마니아층을 형성해 왔습니다.
이번에 소개할 광기의 저택은 2019년 국내에 출시되어 벌써 7년이 된 게임입니다. 하지만 지금 봐도 여러 가지 독특한 시스템이 눈길을 끕니다. 특히 PC를 비롯한 다양한 기기에서 지원되는 앱을 통해 시나리오가 진행되는 특이한 구조를 갖추고 있습니다. 앱에서 제시하는 시나리오에 따라 모듈형으로 구축한 맵이 조립되는 방식은 지금 보더라도 굉장히 혁신적입니다.
현재까지 국내에 출시된 확장판은 끔찍한 여정, 뱀이 서린 길, 문턱 너머에, 황혼의 성소, 아컴의 거리까지 5종입니다. 확장판을 소유하면 본판 시나리오에서도 확장 캐릭터와 아이템을 사용할 수 있어 플레이의 폭이 넓어집니다.
▲ 스팀에서 '광기의 저택' 앱을 다운로드할 수 있다 (사진: 게임메카 촬영)
▲ 국내에 출시된 광기의 저택 확장은 한국어를 지원한다, 게임 목록에서 설정하면 확장에 있는 조사자와 아이템을 활용할 수 있다 (사진: 게임메카 촬영)
러브크래프트 느낌 물씬 풍기는 아트워크가 압권
광기의 저택을 처음 구매했을 때 가장 눈에 들어왔던 건 다양한 몬스터 피규어와 캐릭터 피규어, 모듈형 맵이었습니다. 지금은 더 화려한 피규어 게임이 많이 나와 상대적으로 심심해 보일 수 있지만, 게임에 몰입하기에는 충분한 완성도를 갖추고 있습니다.
▲ 플레이 캐릭터 피규어 8종 중 4종 (사진: 게임메카 촬영)
▲ 몬스터 피규어 중 하나인 '별의 자손' (사진: 게임메카 촬영)
특히 게임 내 아트워크가 인상적입니다. 아컴호러 카드게임에서 보던 아트워크도 있지만, H.P. 러브크래프트의 여러 작품 속에서 볼 수 있었던 느낌이 잘 구현되어 있어 흥미진진합니다. 호러 분위기가 물씬 풍기는 일러스트는 플레이어를 크툴루 신화의 세계로 자연스럽게 끌어들이죠.
▲ 상태이상을 보여주는 카드 (사진: 게임메카 촬영)
▲ 개인 세팅이 완료된 모습 (사진: 게임메카 촬영)
모듈식 맵 구성은 이 게임의 핵심 메커니즘입니다. 앱에 있는 시나리오에 맞춰 모듈식 맵이 배치되고, 상황에 따라 앱상에서는 숨겨진 공간이 공개되며, 화면에 표시된 메시지에 따라 모듈 맵을 더 설치하는 방식으로 전개됩니다. 긴장감 가득한 탐사 행동은 광기의 저택이 주는 특별한 매력입니다.
▲ '영원한 순환' 시나리오 시작 맵 세팅 (사진: 게임메카 촬영)
▲ 조사를 진행하며 맵이 점점 넓어진다 (사진: 게임메카 촬영)
스토리에 따라 맵이 조립되며 점점 넓어진다
광기의 저택은 앱 내에서 원하는 시나리오를 선택해 플레이합니다. 각 스토리에 따라 조합되는 모듈 맵 타일, 몬스터, 처음 받는 아이템이 달라집니다.
게임은 크게 조사자 단계와 신화 단계로 나뉩니다. 조사자 단계에서는 맵의 다양한 지역을 탐험하고 조사하면서 숨겨진 비밀을 찾아야 합니다. 조사 상황에 따라 몬스터가 등장하면 싸워야 하는데, 여러 캐릭터가 플레이에 참여할수록 그 수에 비례해 몬스터도 강해집니다. 균형 잡힌 난이도를 유지하기 위한 장치이지만, 동시에 많은 인원이 플레이할 때 부담도 높아집니다.
▲ 종이 뭉치를 살펴보며 조사 중이다 (사진: 게임메카 촬영)
▲ 방 안에 들어온 몬스터를 공격해봤다 (사진: 게임메카 촬영)
이어지는 신화 단계에서는 캐릭터에게 무작위 이벤트가 발생하며, 이를 판정하기 위한 주사위 굴림이 빈번하게 일어납니다. 몬스터는 주로 이 단계에서 등장하는데, 몬스터의 이동 거리가 3칸이나 되기 때문에 캐릭터 중 누군가는 몬스터와 만나 싸울 수밖에 없습니다.
판정은 대부분 8면체 주사위를 사용합니다. 이 주사위를 통해 성공과 실패를 판정하기 때문에 진행하다 보면 TRPG를 하는 느낌도 조금 납니다. RPG의 서사성과 보드게임의 전략성이 적절히 조화를 이루는 지점이죠.
▲ 신화 단계에서는 다양한 이벤트가 발생하거나 맵에 몬스터가 출현한다 (사진: 게임메카 촬영)
▲ 판정을 결정할 때는 8면체 주사위를 굴린다, 별 모양의 엘더 사인이 나와야 성공한다 (사진: 게임메카 촬영)
다만 캐릭터의 뚜렷한 성장은 드러나지 않습니다. 오히려 위기 속에서 생존하는 것이 최우선이 되곤 하며, 조사자 중 누구도 탈락하지 않도록 모두가 나서서 고민해야만 합니다. 강력한 마법이 있으나 예상하지 못한 불이익도 따르기에 항상 반길 수만은 없습니다. 이런 위험과 보상의 균형은 러브크래프트 소설 속 주인공이 겪는 딜레마를 잘 표현합니다. 금지된 지식을 얻으면 강해지지만, 그만큼 광기에 가까워지는 것처럼 말이죠.
▲ 마법의 일종인 '약화', 원거리 공격 중 하나지만 사용을 위해 뒤집으면 마법 행동과 함께 피해가 발생하기도 한다 (사진: 게임메카 촬영)
같이 스토리를 완성해가는 2인과 더 전략적인 1인 플레이
규칙에 익숙해지는 데는 꽤 시간이 걸렸습니다. 2인으로 플레이했을 때, 이틀에 걸쳐 약 4~5시간을 이어갔습니다. 분명히 앱에 표시된 시간은 90~120분이었는데 말이죠. 하지만 함께 힘을 합쳐 역할을 나누고 조사하는 재미는 쏠쏠했습니다.
2인 플레이의 가장 큰 장점은 함께 만들어가는 스토리가 생긴다는 점입니다. 다소 소란스러운 느낌이 있지만, 여럿이 만들어가는 서사가 게임에 생명력을 불어넣습니다. "여기를 조사할까?", "이 마법을 쓰면 위험하지 않을까?" 같은 대화가 자연스럽게 오가며, 단순한 게임 이상의 협동 경험을 만들어냅니다.
또한 실패에 대한 부담이 혼자일 때와는 다릅니다. 함께 하는 사람을 신경 써서 좀 더 잘하고자 노력하게 되죠. 이런 책임감이 긴장감을 높이고, 승리했을 때의 희열도 배가시킵니다.
▲ 각자 흩어져서 방을 조사하다가 (사진: 게임메카 촬영)
▲ 별의 자손을 막아 동료의 탈출을 도왔다 (사진: 게임메카 촬영)
규칙이 익숙해져서인지 1인 플레이는 훨씬 속도감이 있었습니다. PC 게임을 하는 듯한 느낌도 나고, 2인 플레이 때보다는 전략적인 느낌이 강했습니다. 캐릭터 운용도 더 자유롭습니다. 원하는 페이스대로 게임을 진행하며 모든 결정을 혼자 내릴 수 있죠. 다만 한편으로는 의외성이 발생할 여지가 적어서 조금은 심심했습니다.
1인으로 플레이했던 시나리오는 2인보다 난이도가 좀 더 높았고, 몬스터 등장이 훨씬 잦았습니다. 결국 실패 엔딩을 보았지만, 다른 사람과 함께한 것이 아니기에 재도전에 대한 부담감은 내려놓을 수 있었습니다.
▲ 1인 플레이에서는 '인스머스로부터의 탈출'이라는 시나리오를 플레이했다 (사진: 게임메카 촬영)
▲ 도입부는 성우의 연기와 함께 즐길 수 있다 (사진: 게임메카 촬영)
시나리오의 난이도에는 여러 가지 요소가 반영되는 듯합니다. 몬스터와의 조우 빈도, 맵의 크기, 퍼즐에 소모되는 라운드 정도가 다릅니다. 어떤 조사자를 선택하는지, 또 몇 명이 게임에 참여하는지에 따라 게임은 달라질 것입니다. 하지만 시나리오 속 중심 이야기는 그대로이기 때문에, 적당한 인원으로 참여하는 것이 게임의 재미를 위해 더 낫지 않나 싶습니다.
특히 몬스터 체력은 참여하는 플레이어 수만큼 많아지기 때문에 최대 3인이 적절할 것 같습니다. 사람이 많아진다면 팀을 나눠 의논하며 즐거울 수도 있겠지만, 플레이 시간이 길어지기에 4인 이상은 번거롭게 느껴질 수 있습니다. 각 플레이어의 차례가 길어질수록 대기 시간도 늘어나 긴장감이 떨어질 수 있습니다.
크툴루의 암울함과 무력감을 제대로 살렸다
광기의 저택의 가장 큰 장점은 높은 몰입도와 스토리텔링입니다. 시나리오에 따라서는 성우진이 참여한 도입부 이야기를 음성으로 들을 수 있어 더 쉽게 빠져들게 되죠. 미스터리한 분위기와 아트워크로 구성된 장소들을 돌아다니며 조사하고, 동료 플레이어와 사건에 대해 추리하며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점도 좋았습니다.
특히 쉽게 쓰러뜨릴 수 없는 몬스터가 등장한다는 점과 마법이나 강력한 도구마저 때로는 불이익을 줄 수 있다는 점 때문에 긴장감이 남다릅니다. 게임 자체는 아주 어렵지 않으나, 테마와 몬스터가 주는 압박감으로 게임 속 상황에 더 집중하게 됩니다.
크툴루 신화 팬이라면 본판 시나리오만으로도 러브크래프트 소설 속 다양한 세계와 이야기를 경험할 수 있다는 점에서 꼭 한번은 해봐야 하는 게임입니다. 크툴루 신화의 암울함과 무력감을 제대로 살린 몇 안 되는 작품이라 생각합니다.
▲ 마침내 증거를 찾아냈고 (사진: 게임메카 촬영)
▲ 탈출을 시도했지만 심해인에게 쓰러지고 말았다 (사진: 게임메카 촬영)
예상보다 긴 플레이 타임과 높은 진입장벽의 아쉬움
하지만 단점도 명확합니다. 우선 플레이 시간이 앱에서 표시되는 것보다 훨씬 더 긴 편입니다. 특히 처음 한다면 2배, 적어도 1.5배 정도 걸린다고 생각해야 하죠. 아울러 맵이 펼쳐지며 점차 넓어지는 구조이기에 큰 탁자도 필요합니다.
스토리가 한 번 공개되면 다시 플레이하기 힘든 구조라는 점도 아쉽습니다. 맵 곳곳을 조사하고 증거를 모아야 하는 스토리 중심 구조라서 스포일러에 굉장히 취약합니다. 시나리오에 실패해서 다시 도전한다면 모르겠지만, 이미 성공한 상황이라면 재플레이 동기가 흐릿해지고 심심하게 느껴집니다.
규칙도 복잡한 편입니다. 아컴호러 카드게임이나 보드게임을 해보지 않았다면 시스템이 번거로우면서도 챙겨야 할 게 많다고 느낄 수 있습니다. 상처 카드, 정신 카드 역시 다양한 지문으로 이루어져 있어서 세세하게 설명하는 건 거의 불가능합니다.
플레이어가 무슨 행동을 하고 몬스터가 어떤 행동을 하는지와 같은 큰 규칙만 파악한 후, 첫 번째 시나리오를 진행하며 익히는 것을 추천합니다. 규칙이 어렵다기보다 챙겨야 할 내용이 많으므로 적어도 한 번 이상 플레이해 본 룰 마스터가 필요합니다. 그래야 훨씬 쾌적하고 플레이 시간이 과하게 길어지는 것을 방지할 수 있습니다. 특히 3인 이상이라면 처리할 일이 제법 많아 게임이 무척 늘어질 수 있다는 점이 아쉬웠습니다.
▲ 플레이하던 조사자가 몬스터에 의해 쓰러지며 게임에서 실패했다 (사진: 게임메카 촬영)
‘크툴루 신화 덕후’라면 반드시 해봐야 할 게임
광기의 저택은 크툴루 신화 팬, 공포 테마 협력 게임을 찾는 사람, 스토리 중심 보드게임 선호자에게 추천합니다. 보드게임과 비디오 게임 모두 크툴루 신화를 바탕으로 한 게임이 많지만, 이렇게나 막막하면서도 긴장감 넘치는 테마를 선보이는 작품은 흔하지 않습니다.
리플레이 가치는 낮지만 다양한 시나리오가 준비되어 있어 여러 번 즐길 수 있습니다. 다만 해피엔딩만 있는 게임이 아니기에 성공하더라도 기대했던 결말이 아닐 수 있다는 점은 염두에 둘 필요가 있습니다. 이런 불확실성과 암울함이야말로 러브크래프트 소설의 정수이기도 하죠.
▲ 성공을 앞두고 있는 가운데 (사진: 게임메카 촬영)
▲ 일정 이상의 공포를 받으며 정신이상 카드가 주어졌다, 이로 인해 엔딩 조건이 달라졌다 (사진: 게임메카 촬영)
보드게임 중 공포 테마 게임이 많지 않고, 그중에서도 잘 만든 협력 게임은 더 드뭅니다. 광기의 저택이 재판될 만큼 수작으로 평가되는 이유이기도 합니다. 최신 게임에 비해 피규어 완성도가 아쉬울 수 있으나, 앱을 기반으로 한 편의성과 다양한 시나리오는 큰 강점입니다.
플레이 인원은 3인 이하가 베스트라는 점과 규칙 습득의 어려움은 진입장벽이 될 수 있습니다. 하지만 미스터리한 추리극과 오컬트가 잘 섞인 흥미진진한 세계를 경험하고 싶다면 무조건 추천합니다. 크툴루 신화를 테이블 위에서 경험하고 싶다면, 광기의 저택만큼 완성도 높은 게임을 찾기는 어려울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