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미있는 개발자의 솔직담백 토크, 게임개발자랩소디
2012.10.19 18:10게임메카 정지혜 기자
지난 9일 코엑스에서 열린 2012 한국국제게임컨퍼런스(이하 KGC2012)에서 아주 독특한 강연이 펼쳐졌다. “솔직히 말할게요. 준비된 발표 자료? 그런 거 없어요. 그냥 우리끼리 수다나 떨어요”라는 이른바 수다 강연은 바로 게임개발자 랩소디(이하 게개랩)였다.
게개랩은 실제 게임 개발자인 ‘알콜코더’ 박민근 개발자가 진행하는 게임개발자 팟캐스트다. ‘게임 개발자들의, 게임 개발자들에 의한, 게임 개발자들을 위한 팟캐스트’라는 설명에 걸맞게 진행자는 물론 출연자들도 모두 현업 종사자들이 출연하여 개발 직무와 개발자로서의 진솔한 이야기를 풀어나가는 지극히 ‘재미’ 위주의 방송이다.
마이크 앞에 술, 치킨, 각종 안주를 갖춰놓고 시시껄렁한 농담을 일삼는 이 팟캐스트의 다운로드 수 총 17만 건(2012년 10월 6일 기준). 그리고 마치 라디오 채널의 공개방송을 보기 위해 몰려든 사람이 수십 명. 모든 직장인 중 가장 바쁘다는 IT 종사자, 그리고 그중 으뜸인 게임 개발자들을 모이게 만든 이 팟캐스트의 힘은 무엇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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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까지 공개된 게개랩 시리즈는 총 12화
“지인들과 술자리에서 술을 마시다가 나온 단순한 생각이었죠. 왜 우리 삶은 이렇게 X같은지에 대한 한풀이를 하다가 ‘그래, 게임 개발자들의 이야기를 해보자’는 정말 단순한 취지에서 시작했습니다. 당시에 나꼼수로 팟캐스트라는 게 굉장히 인기있던 시기여서 팟캐스트를 생각하게 됐죠. 그때가 1월이었는데요. 1화가 5월에 나왔으니 3개월 정도 걸렸네요.”
처음 아이디어가 나온 출처부터가 술자리다 보니 초반엔 뭐 회사 욕도 좀 하면서 스트레스도 풀고 재밌게 노는 방식으로 가려고 했단다. 하지만 나꼼수야 정치인, 정부 즉 공인들을 이야기하는 방송이라지만, 게임사들이 그들처럼 ‘공공의 적’도 아닌데 어느 누가 회사 이름을 실제로 거론하면서 이야기를 하겠는가.
“그래서 컨셉을 바꿔버렸죠. 재미있고 긍정적으로 나가자. 내가 뭐 돈을 받고 하는 것도 아니니까 내 마음대로 해도 돼잖아요. 어둡고 우울한 이야기 말고 긍정적인 이야기를 풀어 보자고 결론을 짓게 됐죠. 그렇게 녹음한 것이 바로 1화 게임 개발자는 정말로 불쌍한가?였는데, 반응이 상당히 폭발적이었죠.”
게개랩은 재미있는 개발자의 방송이지, 게임업계를 대변하는 방송이 아니다
진행은 무조건 재미 위주, 도움이 된다면 다행인 거고 반응이 없으면 안 해도 그만. 그러다 보니 의외의 청취자 집단이 생기기도 했다. 바로 게임 꿈나무들이었다. 게임 개발을 꿈꾸며, 게임 회사에선 어떤 일이 일어나는지, 개발자들은 무슨 생각을 하고 사는지 궁금해 하는 개발 꿈나무들에겐 농담 따먹기가 반 이상인 팟캐스트가 무엇보다 재미있는 이야기 꾸러미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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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임개발자랩소디 대표 이미지 (사진 출처: 게개랩 페이스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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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GC 2012에는 게개랩 박민근 개발자의 강연을 듣기 위해 많은 학생들도 참석했다
(사진
출처: 게개랩 페이스북)
하지만 모두가 즐겁게 들었을 리도 만무. 분명 누군가는 조마조마하게 듣는 사람도 있었을 것이다. 기자 역시 처음 게개랩을 들었을 때 박민근 개발자가 소속된 회사 사업 부서나 홍보 부서 직원들이 이를 말리지 않았던 게 가장 신기했으니 말이다. 게다가 당시 박민근 개발자가 속해 있던 집단이 게임업계 4대 N사 중 하나인 네오위즈게임즈라는 대기업이고, 개발 중인 신작 ‘야구의신’ 개발팀장의 신분이었으니 말이다.
“별로 그런 부분으로 터치를 받지 않았어요. 제가 이런 방송을 한다는 말을 안 해서 그분들도 모르지 않았을까 싶지만 말이죠.(웃음) 하지만 이런 경우는 있었죠. 게개랩 2화 녹음을 하려고 게임기획자를 섭외했는데, 그분이 전날 갑자기 불참 통보를 보내셨더라고요. 이유는 회사에 게개랩 출연을 보고했더니 나가지 말라고 했다는 거예요. 저 같으면 절대 말 안 할텐데 말이죠. 하하. 뭐, 그때를 제외하곤, 지금까지 그런 경우는 없었습니다.”
게개랩의 게스트 초빙 기준은 간단하다. 90% 이상이 지인 위주. 개인이 임의로 하다 보니 ‘기준이 없는 것이 기준’이다. 지금까지 나온 게스트들도 술 마시다 친해진 사이, 트위터하다 알게 된 친구 등 ‘건너 건너’ 아는 친구들이 대부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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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화 녹음하던 모습, 앞에 검은 물체가 바로 마이크 (사진 출처: 게개랩 페이스북)
하지만 또 어쩌다 보니 출연진들이 또 걸출했던 것이 문제였다. 블리자드, 스퀘어에닉스, 그라비티, 엔도어즈 등 다들 이름있는 회사의 개발자들이 출연했던 것. 하지만 세상엔 이들보다 상황이 훨씬 열악한 곳에서 일하는 개발자들도 많다. 그렇다 보니 “자기네들끼리 떠든다”거나. “대기업 좋은 자리에서 일하는 사람들의 이야기만 치중됐다”며 악플을 다는 사람들도 있었다고 한다.
“뭐, 악플다시는 분도 이해는 합니다만. 생각해 보면 게개랩은 100% 제가 하고 싶어서 하는 방송이지 누가 시켜서 하는 방송이 아닙니다. 그렇다고 제가 직업 방송인도 그렇다고 게임업계 대변인도 아닌데 그분들이 하는 이야기처럼 뭐 전체 게임산업을 비평하고, 노동환경을 욕하고 그럴 필요가 없잖아요. 저는 반대로 그분들한테 이런 질문을 하고 싶죠. 내가 왜 업계를 대변해야 하느냐고. 저보다 훨씬 잘난 분들도 못하는데 말이예요. 나는 재미를 위해 방송을 하는 거고, 그게 충족되기 때문에 계속 녹음을 하는 겁니다. 부정적인 이야기요? 그런 건 이야기하자면 끝이 없어요. 그리고 정말 게임산업이 나쁘다고 생각하지도 않고요. 현업에서 보면 알겠지만 사실 정말 현실이 그렇게 안 좋은가? 그렇지도 않거든요. 그러니까 왜 부정적인 이야기를 해야 하는지 모르겠는 게 사실이죠.”
박민근 개발자는 게임업계 종사자들은 특유의 우울한 분위기가 문제라고 꼬집었다. 사실 자신들보다 훨씬 나은 환경에서 편하게 일하고 있는 사람들도 있겠지만, 게임업계만큼 실력만 있다면 좋은 환경으로 이직할 수 있는 곳도 없다는 것이 이유다. 증거를 대라고? 증거는 바로 박민근 개발자 본인이었다.
박민근 개발자는 부산에서 대학을 다니던 중 독학으로 프로그래밍 공부를 시작했다. 우연하게 액토즈소프트에 입사 지원을 넣었는데, 그게 합격했단 소식을 듣고 중퇴하고 바로 서울에 상경. 집이 부유하지도 않았던 게임개발자의 첫 정착지는 고시원일 수밖에 없었다. 액토즈소프트에서 온라인게임 ‘라제스카’을 개발하다 엔씨소프트에 둥지를 틀고 플레이엔씨의 빌링서버를 개발하고, ‘길드워’ 엔진 서버 개발했다. 이후, NTL로 옮겨서 5년 동안 ‘드래곤볼 온라인’을 만들었고, 얼마 전까지는 네오위즈에서 ‘야구의 신’을 개발했다.
“절 보면 답이 나와요. 엔씨소프트나 네오위즈 같은 대기업이 게임회사가 아니라면 저 같은 대학 중퇴자를 써줄까요? 사람들은 엔씨소프트의 복지가 부럽다고, 잘난 사람들은 좋겠다. 뭐 이렇게 비꼬는 사람이 있어요. 그렇게 복지가 부럽다면 엔씨소프트에 가면 되요. 말이 안 된다고 이야기하면 전 이렇게 답을 하면 되죠. 난 중퇴잔데도 엔씨 갔고, 지금 그 엔씨에는 고졸자도 과장으로 일하고 있다고. 부정적인 이야기할 시간에 스터디라도 하면서 능력을 키우라고 말이죠.”
누가 뭐래도 난 이렇게 열심히 그리고 재미있게 녹음하고 있어
농담을 따먹든 말든, 싫다는 사람보다 도움됐다는 사람이 더 많은 걸 보아 게개랩이 좋은 방송인 것은 분명하다.
“정말 좋으니까 하죠. 아니면 못해요. 방송 시간은 보통 1시간이지만 편집하는데 거의 10시간 정도가 걸려요. 사람들은 자연스럽게 방송처럼 들리니까 ‘다들 말을 잘하네요’라고 칭찬하는데, 개발자들이 어디 말 잘하는 사람만 있나요. 전 제가 편집을 잘하는 거라고 말하고 싶네요.(웃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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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대 분위기 있는 까페에서 박민근 개발자를 만났다
게개랩 스튜디오의 장비는 2만원짜리 싸구려 마이크 두 대뿐. 마이크 두대로 녹음하다 보니 출연자의 말은 각각 녹음돼 두 개의 파일로 만들어진다. 결국 한 마디 한 마디 다시 따서 하나의 파일로 만드는 편집 작업을 거쳐야 한다. 그렇게 걸리는 시간은 거의 10시간. 박민근 개발자는 자신이 여자친구가 없는 이유가 바로 이 때문이라고 토로했다.
“평일엔 일하고 저녁엔 술 마시죠. 그리고 토요일엔 제가 회장으로 있는 개발자 스터디를 진행하고, 일요일에 녹음하면 하루 종일 편집을 해요. 왜 개발자는 여자친구가 없냐고 따질 때가 아니라, 다 게개랩하느라고 못 사귀는 거니까 그렇게 알아두세요.”
원대한 목표? 게개랩에 그런 목표 같은 건 없다. 앞으로 초대하고 싶은 사람? 그것도 없다. 게개랩이 업계를 대변할 사명감은 말 그대로 ‘하나도’ 없기 때문에 이번엔 운영팀을 모셔볼까, 사업팀을, 혹은 서버 관리자를 모신다든지 그런 꿈도 계획도 세워두지 않았다. 그저 개발자로서 함께 이야기해보고 싶으면 출연하는 거고, 그래서 허락하면 같이 박민근 개발자의 자취방에서 함께 술이나 마시고 치킨을 먹으며 이런저런 소탈한 삶을 이야기 하면 된다.
“좀 더 심각한 이슈를 다루어볼 계획도 없어요. 전 그냥 나중에 돈 벌면 우즈베키스탄 가서 미소녀들을 고용한 다음에 미소녀 게임 회사나 차리고 싶은 게 꿈이죠. 미소녀랑 미소녀 게임을 만들다니 얼마나 행복하겠습니까.”
단순 명료하다. 개발자의 마지막 꿈은 결국 또 게임이다. 원래 그런 ‘종특’이라고 할까. 그래도 청취자들이 그렇게 많은데 이런 자리에 섰으니 한 마디 정도는 해야 하지 않을까?
“우선 재미있다고 들어주시는 분들께 감사드립니다. 그런 분들 응원을 받았기에 더 재미있게 녹음도 하기도 했습니다. 초반엔 악플도 달리고 해서 상처를 받기도 했지만 말이죠. 솔직히 개발자인 제가 어디서 악플을 받을 기회가 있겠어요. 좋은 경험이었다 생각하죠. 지금은 뭐 마인드가 단단해져서 그럴 일은 없지만 말이죠. 앞으로도 뭐, 시간이 되면 녹음도 하고 편집도 하고 개발자분 모셔서 게개랩 업데이트하도록 하겠습니다. 재미있게 말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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