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란투리스모 6, 스티브 잡스 떠난 애플 제품
2013.12.13 19:30게임메카 심충학 기자
▲ 3년 만에 돌아온 신작 '그란투리스모 6'
매 시리즈마다 레이싱 장르에 혁신을 불러온 ‘그란투리스모’ 시리즈 최신작 ‘그란투리스모 6’가 PS3로 12월 5일(목) 국내에 출시됐다.
첫 작품부터 ‘게임’이 아닌 ‘시뮬레이터’를 지향한 ‘그란투리스모’는 현실감 넘치는 조작성과 압도적인 차량 수, 그리고 PS1, PS2, PS3, 그리고 휴대용 기기인 PSP에 이르기까지 플랫폼의 성능을 극한까지 활용한 그래픽으로 자신의 존재감을 강하게 어필한 게임이다. 전작 ‘그란투리스모 5’ 이후 상당히 오랜 공백기를 거치고 나온 신작인 만큼, ‘그란투리스모 6’에서 어떠한 혁신을 보여줄 지에 대한 기대감이 컸다.
그러나 막상 등장한 ‘그란투리스모 6’는 마치 스티브 잡스가 떠난 애플 같았다. 혁신은 없고 개선에만 힘을 실었기 때문이었다. ‘그란투리스모’가 추구했던 혁신은 다 어디로 간 것일까?
차량의 품질은 유지하고 라인업만 증가하다
‘그란투리스모’ 시리즈는 매번 작품이 나올 때마다 해당 구동기기의 한계를 시험하는 그래픽을 추구하기로 유명하다. 특히 차량의 구현도는 세계 최고 수준으로 게임 속에만 존재했던 차량을 실제 모델로 제작, 상용화에 들어가는 경우도 있었을 정도다. 다만, 7년차 콘솔기기인 PS3로 전작보다 더 좋은 그래픽을 구현하는 것은 아무래도 힘든 것이었을까. 이번 작품에서는 크게 차량의 모습이 좋아진 점이 느껴지지 않는다.
‘그란투리스모 6’에서 운전해 볼 수 있는 차량은 전작에서 약 300대가 늘어난 1,200여 대 정도다. 하지만 대부분의 스탠다드 카(일반 차량)는 소수의 프리미엄 카(유명 차량)와 달리 차내 모습이 미구현 상태다. 전통적으로 ‘그란투리스모’ 시리즈는 스탠다드 카와 프리미엄 카의 차이가 컸지만, ‘그란투리스모 6’에 와서도 크게 달라진 것이 없다는 것은 아쉬운 부분이다. 특히 15주년 특집으로 추가된 콘셉트카 프로젝트 ‘비전 GT’에 나오는 차량조차 스탠다드 차량처럼 운전대가 보이지 않아 향후 개선이 필요할 것으로 보인다.
▲ 수많은 브랜드가 당신을 기다린다
▲ 유명 브랜드들이 제작한 최강의 콘셉트카도 등장!
▲ 이렇게 잘 빠진 콘셉트카지만...
▲ 내부는 암흑천지다
향상된 게임 환경은 합격점
차량 주행 시 프레임 드롭 현상이 줄어든 것은 전작보다 확실히 좋아진 부분이다. 이전에는 고속 주행을 하다보면 조금씩 뭉개지는 현상이 발생할 때가 있었으나, ‘그란투리스모 6’의 경우 고속 레이스 중에도 배경에 이상이 생기는 일이 거의 없을 정도로 깔끔한 그래픽을 보여준다. 더불어 프레임도 거의 줄지 않는 모습이다.
외부 풍경 묘사의 변화도 향상됐다. 야간 주행 레이스의 경우 일몰의 모습이나 자동차의 헤드라이트가 조금씩 선명해지는 과정 등이 잘 묘사되었으며, 천체 또한 실제 움직임에 맞춰 이동하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특정 맵에서만 이러한 현상을 관찰할 수 있는 것이 아쉽지만, 이런 사소한 것까지 고려했다는 것은 칭찬할 만하다.
사운드와 UI, 조작감 등도 조금씩 발전했다. 먼저 명차 특유의 엔진음과 떨림까지 재현해 더욱 실감 나는 레이싱 환경을 구현해냈다. 전작에서도 엔진음은 구현 되어 있었지만, 이번 작품에서는 좀 더 많은 차량이 자신만의 소리를 가지게 되었다. 또한, 차량에 문제가 생길 경우 조작에 어려움을 겪는다든지, 튜닝에 따라 조작이 달라지는 것까지 신경 쓴 부분은 확실히 게임플레이의 발전을 느끼게 한 모습이었다.
초보자들에게 드라이브만큼 어려운 요소인 튜닝도 직관적으로 바뀌었다. 도색의 경우 실제 차가 가지고 있는 색상은 무료로 획득할 수 있기 때문에 차와 색을 따로 구매하는 수고가 줄어들었다. 또한, 마치 카센터에서 부품이나 수리를 하는 것처럼 UI가 구성되어 있고, 부품에 대한 자세한 설명도 있는 만큼 초보자도 쉽게 적응할 수 있다. 다만, 부품이나 튜닝 가격이 저렴한 편은 아니며, 교환이나 환불 등 편의 기능이 탑재되어 있지 않아 실수로 구매했더라도 되돌릴 수 없기 때문에 주의가 요구된다.
▲ 주행 중에도 깔끔한 영상을 보여주는 '그란투리스모 6'
▲ 원하는 곳을 간편하게 커스텀마이징할 수 있는 튜닝 코너
▲ 각 부품별 설명도 친절하게 나와있다
▲ 뭔가 차량이 손상된 것 같다면 피트 서비스도 받을 수 있다
▲ 자신만의 컬러로 차를 도색하는 것도 재미!
소심한 혁신을 꿈꿨던 새로운 모드
라이선스에 도전하다 보면 오른쪽 측면에 ‘스페셜 이벤트’가 차례대로 해금된다. 스페셜 이벤트는 현재 2가지로, 명차를 타고 타임어택에 도전하는 ‘굿우드 페스티벌 오브 스피드’와 ‘월면차’를 체험해 볼 수 있는 ‘월면탐사’가 있다.
‘굿우드 페스티벌’의 경우 고가의 차량을 체험해 볼 수 있는 레이스로, 타임어택에 성공 시 시간 대비 많은 상금을 얻을 수 있는 곳이다. 다만, 날씨나 밤낮의 변화가 없는 일정한 코스에서 계속 주행하기 때문에 조금 단조로운 느낌도 든다.
월면 체험은 ‘그란투리스모 6’의 하이라이트라고 생각될 정도로 매우 잘 만들어진 코스였다. 지구의 1/6 정도의 중력을 잘 구현했으며, 타이어의 움직임 또한 매우 훌륭했다. 다만, 이렇게 잘 만들어진 코스를 단지 체험 정도로 끝냈다는 것은 조금 아쉽다. 달 표면에서 트레이닝 콘(파일런)을 쓰러트리는 아케이드적 요소와 함께 달에서 경쟁자들과 레이싱을 하는 미션도 추가되었다면 인기 만점의 코스가 되지 않았을까 싶다.
▲ 초대장을 받아야만 들어갈 수 있는 '굿우드 페스티벌'
▲ 코스는 짧지만 그래픽은 예술이다
▲ 중력의 소중함을 느낄 수 있는 '월면탐사'
▲ 시속 30km 정도이지만 느낌은 롤러코스터다
무자비한 과금 시스템
‘그란투리스모 6’에서는 카트 레이싱부터 F1까지 다양한 레이스를 경험해 볼 수 있다. 일반 레이스는 일반 차량으로도 충분히 참가 가능하지만, 아닌 세계적으로 유명한 레이싱 경기에 참여하기 위해서는 그에 상응하는 차량에 탑승해야 한다. 문제는, 이 차들의 가격이 만만치 않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그란투리스모’ 제작팀과 유명 F1 팀인 ‘레드불’팀이 같이 제작한 차량의 경우 평균 가격이 6백만 크레딧에 이른다. 상급 단계에서 레이스를 할수록 더 많은 크레딧을 벌 수 있지만, 한 게임 당 평균 10만 정도를 얻는다고 하더라도 60번을 반복해야 구입할 수 있다.
이런 것을 의식해서일까? 게임 내에는 현금으로 크레딧을 살 수 있는 기능이 존재한다. 그런데 가격이 상당히 비싸다. 최고 700만 크레딧을 61,300원에 구매 할 수 있는데, 이는 거의 게임 타이틀 가격에 육박하는 금액이다. 참고로 현재 가장 비싼 차량이 2천만 크레딧이니, 이 차량을 구매하려면 현금으로 약 17만 원이 넘는 금액을 투자해야 한다. ‘비전 GT’에 등장하는 차량의 경우도 처음에는 무료로 운전할 수 있지만, 두 번째 구매 시에는 100만 크레딧을 지출해야 한다.
다행히 일반 차량도 튜닝의 여부에 의해 슈퍼카 못지않은 성능을 낼 수 있기 때문에 몇몇 특수한 조건이 있는 레이싱을 제외하고는 레이싱에 큰 지장은 없다. 그러나 현실에서 그저 바라만 봤던 차량을 게임 속에서도 바라만 봐야 한다는 것은 상당히 슬픈 일일 것이다.
▲ 크레딧이 부족한 자여...질러라!
▲ 하지만, 한 대 가격이 2천만 크레딧
▲ 해당 브랜드의 차를 모두 구매하는데는 총 45,131,650 크레딧이 필요하다.
이른 시일 내에 진정한 ‘그란투리스모 6’를 만날 수 있길 기대하며
‘그란투리스모 6’는 PS4에 도전하기보다는 PS3에서 좀 더 완성도 높은 ‘그란투리스모’를 만들기 위해 노력했다는 것을 볼 수 있었던 작품이다. 전체적인 그래픽과 조작성의 향상, 깔끔해진 UI 등 게임을 하다 보면 전작보다 많이 개선되었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으며, 아케이드적 요소도 다수 추가해 다양한 체험을 할 수 있게 노력한 모습이었다.
그러나 이전처럼 화려한 혁신을 추구한 점이 보이지 않고, 급하게 만든 느낌이 나는 것 또한 사실이다. 홈페이지에 공개되어 있는 기본 콘텐츠 중에는 현재 미구현된 요소가 많으며, ‘그란투리스모’ 15주년 특집으로 기획한 ‘비전 GT’의 경우도 메르세데스 벤츠, 포드, 나이키 등 유명 자동차 브랜드와 메이커가 꿈꾸는 콘셉트카를 게임 속에서 구현한다는 원대한 계획과는 달리 현재 구현된 차량은 고작 1대에 지나지 않는다. 이러한 모습은 몇 년간 업데이트를 통해서야 비로소 완성된 전작의 악몽을 떠오르게 한다.
‘그란투리스모’ 시리즈는 지금까지 최고의 리얼 레이싱 게임이라고 불려왔다. 그러나 전작 ‘그란투리스모 5’에서 몇 년간 주춤거린 사이 경쟁자들은 무섭게 성장했다. 전통의 강호 ‘포르자 모토스포츠’ 시리즈를 비롯, 차세대 콘솔기기로 발매 예정인 ‘드라이브 클럽’, ‘프로젝트 카스’ 등의 루키들이 ‘최고의 리얼 레이싱’ 자리를 노리고 있다. 한 번 잃어버린 명성을 다시 되찾는 것은 매우 어렵다. 최고의 자리를 지키기 위한 빠른 조치가 필요하다.
▲ 차기작에는 우주 레이싱을 기대해 볼 수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