몬스터 헌터 4, 그래픽 포기하고 다른 모든 것을 얻었다
2013.12.23 14:37게임메카 엘타냥
‘인간과 자연의 대결(Man Vs Wild)’ 진행자인 영국 공수특전단 출신 베어 그릴스는 항상 극한의 상황에 자신의 몸을 내던진다. 그가 가진 것은 지혜와 몇몇 도구들, 그리고 몸뚱이가 전부. 그에 비해 그의 앞에 닥쳐오는 상황들은 시리즈를 더해갈수록 더욱 혹독하고 무자비해진다. 그러나 그는 망설이지 않고 “집으로 돌아가기 위해” 수많은 상황들을 이겨낸다.
‘몬스터 헌터’ 세계 속 ‘헌터’들의 일상은 베어 그릴스와 닮은 점이 많다. 장비를 통해 능력이 좋아질 수는 있으나 그건 일정 수준 까지일 뿐. 거대한 장애물(보스)들은 항상 플레이어보다 월등히 강하다. RPG처럼 캐릭터를 성장시켜 레벨 차로 압도하는 것도 불가능하다. 아무리 좋은 도구를 가지고 있더라도 이를 적절히 활용하지 못한다면 목숨을 보장받을 수 없다. 이는 시리즈 전통의 재미 요소이며, ‘몬스터 헌터 4’에서도 예외는 아니다.
▲ 잠들어 있던 사냥 본능을 깨워라!
'몬스터 헌터 4' 한글판 공식 오프닝 영상(출처: 공식 홈페이지)
단차 개념이 가져온 전투 시스템에서의 혁신
‘몬스터 헌터 3’에서 선보였던 ‘수중전’은 시점 및 조작의 난해함 때문에 유저들에게 좋은 평가를 받지는 못했다. 보스와 플레이어의 ‘높이차’가 전투에 영향을 미치는 최초의 시도이긴 했지만, 물 속이라 캐릭터의 움직임에 제약을 많이 받는데다 몇몇 보스에게만 해당되는 특수성 때문에 그렇잖아도 쉽지 않은 게임에 또 하나의 거대한 ‘장벽’을 만들어버린 일종의 흑역사라는게 개인적인 생각이다.
그랬기 때문에 ‘몬스터 헌터 4’에서 ‘수중전’을 삭제하고 ‘단차 액션’이 최초로 발표되었을 때에는 걱정보다 반가움이 더 컸다. 지상전에 등장하는 기존 인기 보스 몬스터들의 액션까지 모두 ‘재해석’된다는 것은 시리즈를 꾸준히 즐겨온 유저들에게도 충분히 매력적인 소식이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기대를 캡콤은 져버리지 않았다.
▲ 보스몬스터에 올라탄다는 로망을 실현시킨 ’단차 액션’.
'몬스터 헌터 4'의 알파요 오메가다
대부분 평평한 지형이었던 맵에 고저차가 생기면서 플레이어가 움직이는 캐릭터의 액션이 다양해졌다. 얕은 높이는 빠르게 움직일 수 있도록 별도의 이동 액션이 추가되었고, 벽에 매달려있는 상태를 유지하면서 아래쪽을 향해 공격하거나 뛰어내리고 다른 벽으로 점프하는 등 고저차가 생긴 지형에서 이동 시 불편하지 않도록 많은 부분을 배려한 것이 느껴졌다. 그리고 이번 시리즈의 핵심인 ‘단차 액션’이 가능한 포인트가 곳곳에 배치되어 있어, 지형에 대한 활용이 전투에 있어서 매우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게 되었다.
▲ 맵에 높이차가 생겼음에도 이동이 그다지 불편하지 않다는 것이 놀랍다
▲ 신규 보스들은 점프 공격을 활용해야 부위 파괴가 가능하도록 의도되어 있다
신규 무기 2종을 직접 사용해보니…
이번 시리즈에 새롭게 추가된 무기는 총 2종이다. 첫 번째로 ‘엽충’이라 불리는 벌레를 부려 액기스를 채취하고 그 조합으로 버프를 얻어가며 전투를 즐기는 ‘조충곤’은 앞서 소개한 ‘단차 액션’에 가장 특화된 무기다. 자체 커맨드 액션으로 지형을 무시하고 ‘단차 점프 공격’이 가능하기 때문에 ‘조충곤’을 사용하면 ‘몬스터 헌터 4’의 전체적 난이도가 낮아진 것처럼 느껴질 정도로 강력한 성능을 자랑한다. 기존 무기와 달리 ‘엽충’을 키우는 비용과 먹이(충육꿀)가 추가로 들어가고, 엽충을 잘못 키웠을 경우 되돌리기 힘들다는 패널티가 존재하긴 하지만, (컨트롤을 잘 해냈을 경우)판정 자체의 우월함 때문에 이런 불편함들이 그다지 거론되지 않을 정도다.
▲ ’오버 밸런스’라는 말이 나돌 정도로 발군의 성능을 자랑하는 조충곤
두 번째 신규무기인 ‘차지액스’는 전작의 ‘슬래시액스’에 이은 두 번째 변신무기다. ‘한손검+방패’와 ‘도끼’를 결합한 만큼 하나의 무기로 다양한 액션과 판정을 이용할 수 있다는 점이 좋다. 하지만 커맨드가 다소 복잡한 편이고 ‘도끼’ 모드일 때에는 속성해방을 적절히 활용해야 한다는 점에서 초보자가 사용하기에는 적합하지 않은 무기라는 인상이 강했다.
▲ 슬래시액스와 마찬가지로, 차지액스는 ‘잘’ 사용하기는 어려운 무기라는 느낌
신규 무기 2종이 공통적으로 가지고 있는 가장 큰 단점은 “만들 수 있는 무기의 종류가 다른 무기들에 비해 너무 적다”는 점이다. 보스들이 지닌 다양한 육질(단단함의 정도)과 속성에 대응해 유리한 무기를 선택해야 하는데, 현재 게임 내에서 지원되는 ‘조충곤’이나 ‘차지액스’ 라인업은 그 종류가 많지 않다. 이는 후속작이 나오지 않는 이상은 당장 해결되기 힘든 문제이기도 하므로, 이 두 종류의 무기를 사용하고자 한다면 위와 같은 ‘부족함’도 감수해야 할 것이다.
게임과 플랫폼의 상관관계
‘몬스터 헌터 4’가 출시되기 전부터 논란이 되었던 부분은 따로 있었다. 바로 “그래픽”의 퇴보에 대한 갑론을박 이었는데, 후속작이라는 포지션에도 불구하고 기존의 휴대용 타이틀인 ‘몬스터 헌터 2ndG(PSP)’, ‘몬스터 헌터 Tri(3DS)’, ‘몬스터 헌터 포터블 3rd(PSP)’, ‘몬스터 헌터 3 얼티메이트(3DS, 이하 몬헌3U)’들과 비교하여 더 좋다고 말할 수 없는 수준이기 때문이다. 일부 유저들은 ‘몬스터 헌터 4’의 노란색 바닥 텍스처를 “카레”라 칭하며 비하하기도 했을 정도다. 이에 대한 논쟁은 3DS 기기 성능에 대한 각 플랫폼 유저들의 설전으로 이어지기도 했다.
그러나 실제 ‘몬스터 헌터 4’가 출시되고 난 뒤에는 치열하게 논란이 되었던 ‘그래픽’에 대한 부분이 오히려 자연스럽게 받아들여지고 있는 분위기다. 물론 “같은 플랫폼으로 나왔던 몬헌3U보다도 퇴보했다”는 점에 있어서는 대부분 공감하는 바이지만, 그래픽 부분이 반감된 대신 3DS의 아이덴티티인 3D효과와 무선 인터넷을 통한 온라인 멀티플레이 지원 및 게임의 핵심이라 할 수 있는 몬스터와 헌터의 액션 부분은 기존보다 더욱 강화되었기 때문이다. 3DS라는 플랫폼 환경 내에서 게임의 90% 이상을 차지하고 있는 ‘전투’를 쾌적하게 만들기 위해서는 불가피한 선택이었으리라.
▲ 확실히 배경 그래픽(특히 텍스처)은 기존보다 퇴보하긴 했다
사실 문제는 다른 곳에서 발생하고 있다. ‘몬스터 헌터’ 특유의 조작방식 상 캐릭터 이동/카메라 시점 조작계가 따로 필요한데, 3DS라는 기기에서는 카메라 시점 컨트롤을 충분히 지원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특히 이번 작품에서는 맵에 높이차가 생기면서 카메라 시점을 조절해야 하는 상황이 더욱 자주 발생하는 편이다. 이 부분은 슬라이드 버튼이 하나 더 달리고 ZR/ZL 버튼이 추가되는 주변기기인 ‘확장 슬라이드 패드’를 구입하면 해결되긴 하지만, 장착하는 순간 휴대용 기기라고 부르기 힘든 수준의 크기가 되어버린다는 딜레마가 남게 된다.
※ 몬스터 헌터 4가 출시되기 무섭게, 한국닌텐도 홈페이지에서 판매중인 3DS XL용 ‘확장 슬라이드 패드’가 매진되었다. 추가 물량은 1월 내로 들어올 예정이라고. ‘조작 방식’에 대한 플레이어들의 고충이 느껴지는 대목이다.
▲ 타겟 카메라에 의한 L주목 기능이 있다 해도, 시점 조작은 여전히 불편하다
▲ '확장 슬라이드 패드'를 끼면 조작감은 해결되지만 크고 무거워진다는 단점도 존재한다
조작에 대한 딜레마를 제외하면 ‘몬스터 헌터 4’는 3DS의 성능을 닌텐도의 퍼스트파티 타이틀 못지 않게 잘 활용하고 있다. ‘엇갈림 통신’을 활용하여 스쳐간 플레이어들끼리 각자 멋지게 꾸며놓은 길드카드를 교환하고, 이를 통해 각종 길드 퀘스트나 동반자 아이루 등도 공유할 수 있다. 또한 이번 시리즈부터는 엇갈린 유저의 데이터를 기반으로 한 NPC를 집회소에서 ‘파견’을 보내는 방식으로 각종 소재 아이템들을 추가 획득하는 기회도 제공한다.
닌텐도 퍼스트파티 타이틀보다 나은 부분도 있다. 온라인 멀티플레이 방에서 만난 헌터들에게 직접 ‘친구코드 교환’이나 ‘길드카드 송신’ 으로 엇갈림이 잘 되지 않는 지역에 있는 플레이어도 차별 받지 않고 해당 콘텐츠를 이용할 수 있다는 점이 가장 대표적이다. 3DS의 보급량이 일본만큼 대중화 되지는 않은 국내 상황상 정말 반가운 기능이다.
▲ '몬스터 헌터 4' 출시 이후로 출근길에 엇갈림이 되는 일이 부쩍 늘었다
▲ '몬스터 헌터 3'의 길드카드 교환 기능도 더욱 업그레이드!
엇갈린 유저들의 데이터를 기반으로 한 NPC에게 퀘스트를 맡겨 소재를 채집해오게 할 수도 있다
친절해지긴 했지만 진정한 ‘헌터’로의 길은 역시 험난해
‘몬스터 헌터’ 시리즈는 사실 초심자에게 그다지 친절한 게임은 아니었다. 이전 시리즈에서도 튜토리얼 비슷한 내용의 퀘스트가 존재하긴 했지만 차근차근 가르쳐주는 수준에는 미치지 못했고, 국내에 다운로드판(영문)으로 출시된 ‘몬스터 헌터 3 얼티메이트’는 오히려 튜토리얼의 강제성과 난해함 때문에 사놓고도 플레이를 포기하는 유저들이 있었을 정도다.
그러나 ‘몬스터 헌터 4’는 기존 유저들도 놀라워할 정도로 초반 튜토리얼이 매우 친절해졌다. 입문 유저들이 가장 난해해하는 몬스터 헌터식 ‘퀘스트’ 개념부터 아이템의 ‘채집 및 조합’과 ‘몬스터 갈무리’, ‘생산’에 이르기까지 매끄럽게 각종 시스템을 학습시켜주기 때문에 “몬스터 헌터 시리즈를 입문하는 초보들을 위한 최상의 타이틀”이라는 평가가 들려올 정도다. 서브 퀘스트 시스템이 부활하면서 메인 목표를 달성하지는 못해도 중간에 마을로 돌아갈 수 있도록 안배한 부분과, 핵심 기능들에 대한 ‘도움말’을 몬헌3U 시절의 START버튼 메뉴가 아니라 터치인터페이스 하단에서 바로 볼 수 있도록 배치한 점도 개인적으로 꼽는 ‘신의 한 수’다.
▲ 닌텐도코리아가 준비한 ‘웹 매뉴얼’만 봐도 ‘입문 유저’에 정말 많이 신경 쓰고 있음이 보인다
물론 이는 어디까지나 시스템에 대한 입문만 친절해졌을 뿐, 게임 특유의 자비 없는 몬스터 AI는 여전하다. 개별 몬스터들의 대미지는 줄어들었을지 모르나 AI는 전작보다 더 똑똑해졌다. 또한 게임의 초반 콘텐츠라 할 수 있는 여단 퀘스트 하위 난이도에서 다수의(혹은 예측 불가능한) 보스 몬스터가 등장하는 시기 역시 꽤나 앞당겨졌다. 동반자 아이루 2마리의 서포트가 있다 하더라도, 초보 헌터에게는 여전히 녹록치 않은 환경인 셈이다.
▲ 신규 보스 게넬셀타스(암컷)는 아르셀타스(수컷)을 페로몬으로 소환하여 조종하기도
▲ 초보 헌터들의 초반 장벽으로 불리는 스파이더맨 뺨치는 신규 보스 ‘네르스큐라’
한 마리도 이렇게 짜증나는데 두 마리를 잡아달라니 이게 무슨 소리요
게다가 새롭게 등장한 ‘광룡 바이러스’라는 개념은 제한된 짧은 시간 내에(광룡화 게이지가 다 차오르기 전까지) 공격적인 플레이를 강제로 유도하는 독특한 상태이상이다. 문제는 몬스터 헌터 시리즈의 특성상 보스 몬스터들이 공격을 허용하는 빈틈을 쉽사리 보이지 않는다는 것인데, 전통적인 공식과도 같았던 치고 빠지는 플레이를 스스로 깨야 한다는 점에서 기존에 플레이 경험이 어느정도 있던 입장에서도 만만찮은 허들로 느껴졌다.
▲ 고어마가라를 통해 드러나는 미지의 ‘광룡 바이러스’
피하기 바쁜 초보 헌터에게는 보스보다 무서운 상태이상이다(출처: 공식 홈페이지)
완전 한글화. 그것만으로도 소장 가치는 충분하다
국내에서 ‘몬스터 헌터’가 정식으로 한글화된 것은 휴대용 콘솔기기로 발매된 시리즈 중에서는 최초다. 한글화가 발표되었던 초반에 ‘도스 재기’냐 ‘도스 쟈기’냐 등으로 보스 몬스터의 한글 명칭에 대한 논란이 없진 않았지만, 오히려 발매되고 나서는 그런 부분에 대한 이야기가 별로 이슈화 되지 않을 정도로 전반적인 번역이 매우 잘 되어있는 편이다. 이는 닌텐도코리아가 직접 ‘몬스터 헌터 4’의 한글화에 팔을 걷어붙이고 나섰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다고 생각한다.
▲ 메모광인 귀여운 ‘여단 마스코트 걸’의 캐릭터성도 잘 살아있을 뿐만 아니라
▲ 무엇보다 ‘폰트’에 대한 가독성이 정말 좋다!
한글화로 인해 ‘몬스터 헌터 4’는 지금까지 즐긴 헌팅 라이프 중 가장 특별하고 소중한 시간을 선사해주고 있다. 그만큼 이번 시리즈의 한글화는 팬들에게는 ‘기적’과도 같은 일이었다. 부디 이번 타이틀이 ‘몬스터 헌터’ 시리즈의 마지막 한글화가 되지 않기를 바란다. 진심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