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덟 남자와의 연애 체험기 ‘구운몽’… 이런 게임 기다렸어요
2014.02.17 16:59게임메카 정지혜 기자
▲ '구운몽 어느 소녀의 사랑이야기'
넥슨이 ‘여성향 게임’을 만들었다. 김만중의 고전소설 구운몽을 원작으로 만든 ‘구운몽 어느 소녀의 사랑이야기’(이하 구운몽)다. ‘구운몽’은 넥슨의 자회사 네온 스튜디오가 준비한 신작으로, 3월 정식 출시를 목표로 지난 14일 체험판을 사전 공개했다.
여성향 게임은 산업 내에서도 특수 분야다. 사실 만드는 사람도 플레이하는 사람도 정해져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 보니 신흥 주자로 떠오른 넥슨에 대한 호기심이 이는 것은 당연했다. 넥슨이 만들면 뭔가 다르지 않을까 하는 기대심리다.
체험 버전을 통해 짧은 분량이었지만, 고전 소설을 여성을 위한 하렘물로 재해석한 위트나 여성들이 가지고 있는 순정만화 판타지를 채워주는 등장인물 등 ‘구운몽’만의 개성을 맛볼 수 있었다.
가벼운 솜털 같은 첫 인사
▲ 가볍게 내 품으로 다가온 '구운몽'
‘구운몽’은 지금까지 만난 여성향 게임 중 가장 불편함이 없는 게임이었다. 바꾸어 말하면, 지금까지 상업·비상업을 막론한 여성향 게임은 대부분 접근하기 불편했다는 뜻이다.
‘구운몽’은 정상 서버를 사용한 직접 다운로드, 그것도 1분 내 완료되는 가벼운 모습으로 눈을 반짝하게 만들었다. 1분 내 다운로드 완료, 30초 내 설치까지, 체험판 자체의 완성도와 진입도를 평가하자면 100점을 줄 수 있을 것 같다. 요즘 같은 100MB 광랜 시대에 무슨 말이냐 하겠지만, 이런 스피드는 여성향 바닥에서 극히 드문 사례다.
구시대적이니 뭐니 해도, 여성향 게임의 기본은 PC 패키지고 다운받거나 CD로 설치해서 사용한다. 스토리 자체가 세밀하고 방대하다 보니 클라이언트 크기도 커서 정식판의 경우 다운로드를 받는 데만 한세월이다. 사실 최적화를 논하기도 힘들다. 개발만 해도 감지덕지한 시장이다 보니 클라이언트 규모는 방해 요소가 못됐다.
그렇다 보니 당연하게 챙겨야 하는 기본 옵션을 이제야 부여받은 기분이다.
호불호가 갈린다니요
▲ 여자보다 예쁜 남자, 꽃보다 남자가 바로 이런 것일까
▲ 기녀들보다 예쁜 남자, 한량 캐릭터 '월'이다
솔직히 말하자면, 체험판을 맛본 기자들의 반응은 살짝 부정적에 가까웠다. 남자가 너무 예쁘다는 것이 이유다. “여자(자신)보다 예쁜 남자들이랑 어떻게 연애가 돼?”라는 평가였지만, 글쎄올시다. 원래 취향이란 천차만별인 법이다. 남성 유저들이 연애 게임을 할 때, 트윈테일, 포니테일, 긴 생머리 등으로 갈리듯이 여성들도 마찬가지다.
여성향 게임의 본질에는 순정만화가 있다. ‘구운몽’에 나오는 8명의 남성 캐릭터는 순정만화에 나올법한 비현실적 그림체로 그려졌다. 정석을 따르는 셈이다. 날카로운 턱선, 우수에 젖은 눈망울, 뾰족한 콧날 등 여자만큼 혹은 여자보다 아름다운 외모를 갖추고 있으면서도, 세부적으로 미남형, 호남형, 소년형, 의문형으로 나뉘기도 한다.
▲ 장미에는 가시가 있는 법, 미남자는 거칠다
▲ 배경 보는 재미가 있다
▲ 주인공의 표정과 폐허가 된 집의 모습이 잘 어울린다
캐릭터를 제외하고 보더라도 그래픽은 전체적으로 완성도가 높다. 무엇보다 여백이 없다. 아래위로 꽉꽉 차있지만 그렇다고 복잡해 보이지 않는다. 퓨전 사극에 맞게 새롭게 해석한 의상과 액세서리는 한 땀씩 정교하게 그린 장인의 면모가 보인다. 보면 눈이 호강할 정도다. 주인공이 장소를 이동할 때마다 볼 수 있는 동양적인 배경화면도 놓칠 수 없는 부분이다.
다만 메뉴가 아이콘 없이 글자로 만들어진 것은 아쉬운 요소다. 대화가 많아 화면에 표시되는 지문이 빽빽한데 메뉴 구성도 글자로 표시되니 조금은 산만한 감이다. 또, 캐릭터 디자인이나 배경 등 표현적인 부분에 심혈을 기울인 데 반해 인터페이스는 너무 간결하다. 지저분해 보일 수 있는 부분을 축약한 것으로 보이지만 비주얼 노벨 같은 느낌이 들 정도다.
너무나 짧았던, 우리 시간
‘구운몽’은 등장인물들이 구사하는 화법이나 게임상 서술되는 지문이 평범한데도 로맨틱하게 들린다는 장점이 있다. 말투 자체도 시(詩)적인데다 남성 캐릭터 대부분이 양갓집 자제, 왕손, 용왕 등이라서 그런지 낯간지러울 정도로 살갑고 예의 바른 어투를 천연덕스럽게도 잘 사용한다. 로맨틱한 연애 게임에 딱 맞는 요소가 아닐까 싶다.
▲ 내 정인은 당신이오
▲ 등장인물에 대한 표현도 시(詩)적이다
▲ 시를 이어 맞추는 미니게임, 곡조가 느껴질 정도로 아름답다
다만 걱정되는 부분은 캐릭터성이다. 체험판이다 보니 어쩔 수 없었겠지만, 등장인물간의 차별성이 편집 및 축약되어 돋보이지 않았다. 게다가 다소 중복되는 캐릭터가 많아 보인다. 귀여운 개구장이 같은 백란은 경원과 닮았고, 올곧은 느낌의 해랑은 청운과 느낌이 비슷하다. 외로운 왕세자 콘셉인 소하는 여주인공과 첫 만남부터 작업을 거는 모습이 한량, 월같기도 하다.
▲ 유약한 매력이 넘치는 캐릭터 해랑, 너를 어떻게 미워할 수 있겠니
▲ 섬세한 남자로 변모한 경원
게다가 시나리오 전개도 급박하게 이루어지는 느낌이다. 로맨스의 시작은 주인공에 대한 감정적 이입에서 출발한다. 실제 주인공과 플레이어를 일치시키는 시작 단계에서 여유와 여운이 없으면 연애 시뮬레이션은 공감을 얻기 어렵다.
차라리 ‘구운몽’의 등장인물이 조금 적었더라면 스토리가 훨씬 제대로 살아나지 않았을까 하는 아쉬움이 앞선다. 그렇게 되면 ‘구운몽’이 아니겠지만.
정식 버전에서는 등장인물들의 이야기를 세밀하게 담았을 것으로 생각된다. 다만 8명이나 되는 남자들의 성격이나 숨겨진 스토리를 담으려면 상당히 긴 플레이타임이 요구되지 않을까 하는 걱정이 인다.
8명 미청년에 둘러싸여 보내는 춘삼월을 기대하며
‘구운몽’ 자체의 품질만 두고 보았을 때, 기존 여성향 게임들과 크게 다르지는 않았다. 최근에는 동인에서 제작한 게임도 수준이 상당히 높아, 화려한 성우진과 높은 품질의 그래픽은 기본 요소로 갖추고 있기 때문이다.
‘구운몽’이 가지고 있는 차별화되는 점은 단연 ‘넥슨’이라는 이름표다. 지금까지는 동인 개발팀이나 소규모 개발사가 활동하던 무대에 실력이 보증된 메이저 회사가 참가했다. 덕분에 우리가 얻은 것은 지금까지 ‘게임’적으로 간과해왔던 사소한 것들을 챙겼다는 느낌이다. 특히 세련된 UI를 보고 있노라면 게임 회사다운 눈썰미가 느껴진다.
정리하자면 ‘구운몽’은 정말 반가운 게임이다. 출시까지 잔존률이 희박한 시장에서 출시를 앞둔 게임이 나왔다는 것, 그리고 무엇보다 국산 여성향 게임이 손으로 꼽히는 가운데 나온 신작이라 더욱 반갑다. 맛을 봤더니 정식 버전이 더욱 궁금해졌다. 올 봄, 게임 내 무대처럼 벚꽃피는 계절 춘삼월에 ‘구운몽’을 즐길 수 있다면 또 다른 느낌이 일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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