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14년 최고 기대작으로 손꼽힌 '타이탄폴' 포스터 (사진제공: EA)
2009년, 게임업계에 사상 초유의 쓰나미가 몰려왔다. 인피니티 워드가 제작한 ‘콜 오브 듀티: 모던 워페어 2’ 가, 발매 후 무려 1,200만 장 이상의 판매량을 기록하며 FPS의 판도를 바꿔 놓은 것이다. 그러나 개발사인 인피니티 워드와 유통사인 액티비전이 로열티 문제로 불화를 빚었고, 마침내 인피니티 워드의 창립자를 비롯한 핵심 멤버들이 퇴사하는 지경에 이른다. 이들은 새로운 개발사인 리스폰 엔터테인먼트를 설립하고 EA와 계약했으며, ‘콜 오브 듀티’ 시리즈는 차츰 내리막길을 걷고 있다.
이 리스폰 엔터테인먼트의 첫 작품인 '타이탄폴' 이 지난 11일, PC로 전 세계에 발매되었다. ‘타이탄폴’ 은 발매 전부터 세계 3대 게임쇼에서 각종 상을 휩쓸었고, 지난 2월 진행된 베타테스트에서도 엄청난 인원이 몰리며 그 존재감을 과시했다. 사람들은 ‘타이탄폴’ 을 단순한 기대작으로만 바라보지 않았다. ‘콜 오브 듀티’ 를 통해 FPS를 한 단계 진화시킨 이들이, 이번에는 과연 어떤 혁명을 불러올지에 대해 지대한 관심을 보였다.
그렇다면 과연 ‘타이탄폴’ 은 FPS의 혁명비적인 게임일까? 이를 직접 눈으로 확인하기 위해 파일럿과 타이탄의 전투가 끊이지 않는 먼 우주의 식민지 행성으로 직접 뛰어들어 봤다.
▲ '타이탄폴' 의 세계로!!
6대 6 전투임에도 30대 30처럼 꽉 찬 느낌
“게임을 시작하니 저기 멀리 적들이 많이 보였어. 막 벽 밟고 공중 날아서 침투한 다음에 다 해치웠거든? 그 와중에 죽기도 많이 죽고. 그래도 킬 두세 번에 데스 한 번이었으니까 꽤 잘했던 것 같아. 좀 우쭐했지. 근데 나중에 알고 보니 내가 해치운 게 다 AI 봇이었어.” |
‘타이탄폴’ 은 기본적으로 6대 6의 ‘런 앤 슈터’ 스타일 FPS다. 풀어 설명하자면 캐릭터의 이동 속도가 빠르고 활동 반경이 넓어 적극적인 이동 조작이 요구되는 게임이다. 실제로 게임 내에서의 ‘킬-데스는’ 빠른 속도로 이동하다가 근거리에서 순간적으로 적과 마주친 후 순간적으로 판가름나는 경우가 많다. 이는 ‘콜 오브 듀티: 모던 워페어 2’ 에서 보여준 멀티플레이 모드와도 일맥상통하는 면이 있다.
여기에 ‘타이탄폴’ 은 ‘높이’ 개념을 더했다. 즉, 건물 복도나 전장을 평면적으로 오가며 적을 마주치는 것이 아니라, 벽면을 타고 달리고 이중 점프를 통해 건물 옥상으로 점프해 올라가는 등 입체적인 전투가 가능해졌다. 따라서 ‘타이탄폴’ 에서는 단순히 2D 미니맵만 보고서는 상대방의 위치를 파악하기 어렵고, 덕분에 게임 내내 어떤 상황에서도 적과 조우할 수 있다는 긴장감이 맴돈다.
단, 아무리 캐릭터의 움직임이 빠르다 해도 맵이 비교적 넓기 때문에 6대 6 대전시에는 자칫 지루해질 수 있다. 적과의 조우가 적어 10분간 킬 수가 몇 나오지 않을 수도 있고, 열심히 해도 활약을 펼치지 못하는 경우도 생긴다. 또한, 캐릭터의 활동 영역이 넓어서 조작에 익숙치 못한 초보는 손조차 못 써보고 기존 유저들에게 농락당하기에 십상이다. 최악의 경우에는 넓은 맵을 돌아다니며 몇 분간 적을 찾기만 하다가 순식간에 습격당하는 장면만 반복하다 게임이 끝날 수도 있다. 이럴 경우엔 아무리 잘 만든 게임이더라도 하기 싫어지기 마련이다.
‘타이탄폴’ 은 이러한 문제를 AI 봇 캐릭터를 통해 해결했다. 게임 내에는 아군 6명 적군 6명의 파일럿 캐릭터 말고도 수많은 AI 봇 유닛이 돌아다닌다. 이들은 진영에 따라 분대 단위로 움직이며, 파일럿처럼 빠른 움직임을 보이진 않지만 충분히 FPS 캐릭터다운 모습을 보여준다. 따라서, 게임을 처음 하는 사람들은 기자처럼 봇과 파일럿의 구분을 잘 못 하기도 한다.
그렇다고 봇을 무시하고 적 파일럿만 찾아다니라는 얘기는 아니다. 봇 캐릭터를 쓰러뜨려도 점수를 얻을 수 있으며, 이 점수는 게임의 승패 및 경험치 등에도 영향을 미친다. 이러한 봇 캐릭터들은 아무래도 플레이어보다 훨씬 약하기 때문에, 누구든 십 단위의 봇 캐릭터를 사살할 수 있다. 덕분에 PvP에서는 재미를 못 보는 초보 유저들도 게임에서 재미를 찾을 수 있다.
봇 시스템은 ‘타이탄폴’ 이 꺼낸 신의 한 수다. 봇 시스템은 초보는 힘도 못 쓰고 고수들의 먹이가 되어야 했던 온라인 FPS의 고질적 문제를 깨끗이 해결했다. ‘배틀필드’ 시리즈의 경우 플레이어 간의 실력 차이로 인해 초보 유저는 진정한 재미를 채 느끼기도 전에 게임을 떠나는 일이 일상다반사였다. 반면 ‘타이탄폴’ 은 봇 캐릭터만 해치워도 누구나 손쉽게 레벨업을 하고, 모든 무기를 언락시킬 수 있다. 여기에 6대 6이라는 비교적 적은 유저 수에도 불구하고 게임을 꽉 차 보이게 하는 역할까지 담당하니, 이것이야말로 ‘타이탄폴’ 의 첫 번째 혁명이다.
▲ 게임 내에는 수많은 봇이 등장한다, 병사니 로봇이니....
▲ 봇만 처치해도 레벨 업이 가능할 정도
파일럿과 타이탄을 오가며 벌이는 초인 액션
“타이탄을 타고 있으니 바닥에서 움직이는 파일럿들이 마치 바퀴벌레처럼 느껴져. 총으로 살짝 쏴 보면 스쳐도 죽어. 그러다 보니 적 타이탄들이 날 합공하더라고. 일단 한 놈에게 다가가 자폭 공격으로 보내버리고, 잽싸게 공중으로 탈출해 다른 타이탄 머리 위에 올라타 총알을 퍼부었지. 거대한 타이탄을 기관총 하나로 폭파하는 기분이란!” |
‘타이탄폴’ 을 차별화 시키는 또 다른 요소는 바로 타이탄과 파일럿 을 오가며 벌이는 다이내믹한 전투다. 특히나 타이탄 의 경우 게임의 마스코트적 존재이기도 한데, 이는 ‘배틀필드’ 처럼 먼저 타는 사람이 주인인 것이 아니라 자신만의 탈 것이자 강력한 무기, 친구의 역할을 해내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아무래도 ‘배틀필드’ 의 탱크나 전투기에는 감정 이입이 어렵지 않은가.
타이탄 은 기본적으로 크고 강력한 존재다. 소환 시 하늘에서 쿵 떨어지는 장면부터 위압감을 주고, 강력한 내구도와 실드, 무자비한 폭격 및 빠른 이동속도 등 무엇 하나 빠지지 않는다. 심지어 인간형 적에게 가까이 다가가면 밟아 죽일 수도 있으니, 인간을 초월한 무엇인가로 보이기까지 한다. 막강한 화력과 강력한 맷집은 타이탄을 전장의 필수 요소로 만들어준다. 개인적으로 메카닉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데, 타이탄만은 예외였다.
그렇다고 타이탄이 만능은 아니다. 파일럿 역시 잘만 하면 거대 로봇 타이탄을 해치울 수 있다. 예를 들면 은신을 사용할 시 타이탄의 광학 센서에 걸려들지 않아 유유히 접근할 수 있으며, 건물 등을 활용해 몸을 숨기며 다양한 대 타이탄 무기를 사용해 적을 농락하는 것도 가능하다. 특히나 적 타이탄의 위에 올라타 기관 장치에 화력을 쏟아붓는 ‘로데오’ 전술을 사용하면 혼자서도 타이탄을 파괴하는 것이 가능해 극도의 희열을 느낄 수 있다.
개인적으로 감탄한 점은 파일럿과 타이탄이라는 서로 다른 두 유닛이 혼재함에도 불구하고 밸런스가 놀라울 정도로 잘 맞는다는 점이다. 예를 들면 파일럿의 로데오 공격은 타이탄의 전기 연막에 가로막히며, 타이탄의 강력한 화력은 파일럿의 은신 기능 앞에서 무용지물이다. 타이탄은 파일럿보다 빠르게 이동할 수 있지만, 파일럿만이 갈 수 있는 좁고 험난한 지형은 이동할 수 없다. 즉, 거대 로봇으로 조그마한 파일럿을 짓밟거나, 반대로 파일럿을 가지고 덩치 큰 로봇을 폭파하는 쾌감이 모두 살아있다.
파일럿 vs 타이탄 뿐 아니라, 둘 사이의 연계 협동 액션도 꽤 훌륭하다. 파일럿이 적군 타이탄에 올라타면 ‘로데오’ 가 되지만, 아군(혹은 자신의 AI) 타이탄에 올라탈 시에는 훌륭한 콤비가 된다. 파일럿은 타이탄의 실드 효과를 함께 적용받으며, 적 유저의 로데오를 막거나 타이탄이 미처 보지 못 한 부분의 전투를 커버해 줄 수 있다. 그 외에도 타이탄에서 내려서 파일럿으로 전환해 AI 모드의 타이탄을 방패 삼아 적진을 휘젓고 다니고, 타이탄을 엄폐물로 삼아 전투라인을 앞당기는 등 다양한 협동 전략이 게임의 멋을 더해준다.
▲ 거대 타이탄으로 파일럿을 개미처럼 짓밟거나
▲ 재빠른 파일럿으로 둔한 타이탄에 올라타 폭파시키는 쾌감!
▲ 우리 편끼리는 사이좋게
끝나도 끝난 게 아니다! 압축된 재미의 소모전
“내가 못해서 팀이 졌어. 다 끝난 줄 알았는데 패배 메시지가 뜬 후에도 아직 뭔가 남아 있더라고. 수송선에 타서 탈출하라는 거야. 우리 편 미끼 삼아가면서 열심히 탈출했지. 나 때문에 팀은 졌고 우리팀 전부 전멸했는데 나만 탈출에 성공했어. 내 ‘타이탄폴’ 인생 베스트 장면이었어” |
‘타이탄폴’ 의 가장 메인이 되는 게임 모드는 데스매치 방식의 소모전이다. 사망 시 계속해서 리스폰이 되고, 한 팀의 점수가 일정 수준에 도달할 시 승패가 갈리는 흔하면서도 대중적인 게임 방식이다. 보통 게임 시간은 한 판에 10분이 채 걸리지 않으며, 계속해서 뛰어다니고 공중을 넘나들며 싸우기 때문에 지루할 틈 없이 꽉꽉 들어찬 재미를 느낄 수 있다.
게임을 시작하기 전에는 다양한 설정이 가능하다. 게임 전 설정에는 파일럿과 타이탄의 주무기와 보조무기, 스킬 등을 설정하는 커스터마이징과 함께, ‘번 카드’ 라는 특이한 시스템이 존재한다. ‘번 카드’ 는 게임 내에서 각종 버프 효과를 얻을 수 있는 일회용 아이템으로, 리스폰 직전, 혹은 직후에 사용하면 죽기 전까지 효과가 적용된다. 번 카드는 무기나 아머 등 신체능력 강화에서부터 시야나 은신 등의 시각적 버프 등 다양한 효과가 존재하며, 게임 때마다 최대 3장씩 들고 나갈 수 있다. 새로운 번 카드를 적용하려면 일단 한 번 죽어야 하므로, 때에 따라서는 리스폰도 전략 수단으로 활용할 수 있다. 참고로 맵핵이나 위장, 영구 은폐, 잔상 센서 등 재미있는 카드도 존재해 마치 TCG의 스펠 카드 선택과 같은 재미도 준다.
게임 자체는 위에서 설명한 대로 진행된다. 파일럿은 사방으로 바쁘게 뛰어다니고, 타이탄을 불러내 강력한 화력을 뽐낸다. 그렇게 적을 많이 사살하면 점수를 획득하고, 게임에서 승리할 수 있다. 특이한 점은 지금부터다. 소모전에서 승리했다고 하더라도 게임은 끝난 것이 아니다. 패배한 진영에서는 플레이어들을 구출하기 위해 특정 지역으로 수송선을 보낸다. 그때부터 패배 팀은 제한시간 내에 수송선에 탑승하기 위해, 승리 팀은 탈출을 막기 위해 또다시 치열한 혈투를 벌인다. 탈출 성공 혹은 저지 성공 시에는 그만큼의 경험치 보상이 따라오기 때문에 그때부터 전장에 있는 모든 병력이 탈출 포인트로 몰려 대혼전이 벌어진다. 혹자는 게임 말미의 탈출 시간이야말로 ‘타이탄폴’ 의 진정한 재미라고 표현하기까지 한다.
▲ 소모전이야 말로 멀티플레이의 꽃
▲ 탈출이 시작되면 리스폰이 불가능하므로 엄청나게 신중해진다
▲ 수송선 파괴로 탈출 실패!!
5종류의 멀티플레이 모드, 완성도는 높지만 뭔가 부족한 느낌
“그 맵이 그 맵 같고… 그 모드가 그 모드 같고… 게임 자체는 재밌는데 뭔가 신선함이 부족해. 맛있는 탕수육만 계속 나오는 코스요리 같아” |
‘타이탄폴’ 의 멀티플레이 모드는 총 5종이다. 위에서 소개한 소모전 외에도 깃발전, 점령전, 타이탄전, 파일럿전이 존재한다. (위 5종의 모드 중 하나를 랜덤으로 선택하는 버라이어티 팩 모드도 있긴 하다)
깃발전과 점령전의 경우 공격과 방어의 역할이 명확하게 나뉘어야만 승리할 수 있다. 즉, 무조건 뛰어다니며 적을 죽이는 것이 아니라, 팀원 간에 역할을 잘 분배해야 한다. 사실 데스매치 모드에서는 딱히 역할분담이 이루어지지 않은 채 각자가 따로 노는 경우가 많은데, 깃발/점령전에서는 유저들이 자발적으로 역할을 분담하는 모습을 볼 수 있다. 방어 유저의 경우 투시 등의 시야 확보 카드나 폭약, 소음기, 헤비 머신건 등을 통해 거점 및 깃발 방어에 집중해야 하며, 공격 시와는 또 다른 재미를 느낄 수 있다.
타이탄/파일럿전은 타이탄으로 시작하거나 타이탄 없이 시작하는 모드로, ‘타이탄폴’ 만의 독특한 모드다. 그러나 큰 틀에서 보면 그리 특별한 모드는 아니다. 타이탄을 처음부터 불러낼 수 있느냐, 혹은 아예 불러내지 않고 싸우느냐의 차이일 뿐이다. 이 모드에서는 라운드 별로 한 번 죽으면 리스폰이 불가능하다.
이처럼 ‘타이탄폴’ 은 총 5개의 멀티플레이 모드만을 가지고 있지만, 깃발/점령과 타이탄/파일럿전이 서로 비슷해 체감상 모드 수는 그보다 적다. 현대 FPS에는 거의 탑재되어 있는 폭탄 설치나 근접전, 북미 등지에서 인기를 끄는 좀비 모드 등 독특한 모드 하나 없어서 전체적인 인상이 꽤 약하다. 맵 역시 크기도 넓고 종류도 다양하지만, 대부분 비슷비슷한 SF 배경이 짜깁기 되어 있는 느낌이다 보니 구조가 달라도 느낌은 다 비슷하다.
▲ 게임 모드는 이게 전부(아래쪽은 베타테스트 중인 모드)
▲ 맵이 달라도 느낌은 다 비슷하다
맥 빠지는 싱글플레이 모드
“캠페인 모드를 클릭했는데 멀티플레이가 되더라고. 잘못 눌렀나 싶어서 그냥 게임을 했어. 근데 평소와는 다르게 게임 하기 전에 뭔가 주절대는 게 나와. 불길한 예감이 들었어. 설마 이게 스토린가? 에이 설마…… 그런데 왜! 불길한 예감은 언제나 맞는 걸까?” |
‘타이탄폴’ 에도 캠페인 모드는 있다. 그러나 싱글플레이는 아니다. ‘타이탄폴’ 의 캠페인는 6명씩 2팀의 플레이어가 모여 승패를 겨루는 멀티플레이 모드의 소모전 형식으로 진행된다. 다른 점이 하나 있다면, 게임 시작 전과 종료 후 간략한 인게임 캠페인 영상이 비춰진다는 것이다. 싱글플레이와 멀티플레이의 융합이라고 하는데, ‘하운즈’ 등 국내 온라인게임에서도 본 시스템이라 크게 새롭진 않다. 단, PvE가 아닌 PvP라는 점은 좀 신선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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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이탄폴’ 의 스토리는 프론티어 행성의 자원을 탈취하려는 IMC(김학규 대표의 게임회사 아님!)라는 기업과 이에 맞서는 저항군 간의 다툼을 그린다. 두 세력 다 유저이기 때문에, 스토리 상 어느 한쪽의 승리가 정해져 있는 것은 아니며 엔딩도 별 게 없다.
플레이 자체도 멀티플레이에 1분 내외의 영상이 추가된 셈이다 보니, 스토리텔링 자체도 약하고 내가 어떤 맵에서 뭘 위해 뛰는지도 명확하게 전달되지 않아 동기부여가 되지 않는다. 단 하나의 이유라면 캠페인 모드 클리어 시 제공되는 타이탄 몸체뿐이다.
◀ '타이탄폴' 때문에 어쩐지 억울해진 IMC게임즈 김학규 대표 |
결론적으로, ‘콜 오브 듀티: 모던 워페어 2’ 의 철저히 짜여진 동선과 레벨 디자인을 기대했다면 실망이 클 것이다. 캠페인을 전부 클리어 하더라도 인상에 남는 ‘타이탄폴’ 만의 캐릭터나 이야기, 연출은 전무하다. 멀티플레이와 캠페인을 결합한 시도 자체는 좋았지만, 스토리텔링의 완성도를 조금 더 높였다면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더군다나 리스폰 엔터테인먼트의 첫 작품이자 새로운 IP 아닌가. 모처럼 ‘타이탄’ 이라는 멋진 소재를 가져왔음에도 불구하고, 이를 통해 프랜차이즈의 가치를 부여하는 데는 실패한 느낌이 든다.
단, 빈약한 캠페인 모드와는 별개로 게임 초반부에 접하게 되는 튜토리얼은 베타 당시부터 매우 잘 만들어 놨다. 마치 ‘포탈’ 시리즈를 보는 것처럼 시설 내/외부에서 이루어지는 훈련을 꽤 쉽고 재미있게 배울 수 있다. 덕분에 이중 점프나 벽타기, 대쉬, 타이탄 조작 등 배울 것이 많은 게임임에도 진입 장벽이 높지 않은 편이다.
▲ 캠페인 플레이라고 해서 별 게 있는 건 아니다
▲ 튜토리얼 만드는 정성으로 캠페인을 만들었다면....
콘텐츠 부족과 부족한 온라인 지원이 아쉬워
“솔직히 말할게. 나 FPS 못 해. 그런데, 이 게임은 꽤 쉽게 배우고, 쉽게 플레이하고, 쉽게 적응했어. 1~2주 쯤 하다 보니까 금새 숙련자가 되더라구. 나도 이렇게 느꼈는데 잘하는 사람들은 꽤 빨리 질리지 않겠어? 그리고 온라인 매칭 시스템은 한국에서 좀 배워갔으면 싶어” |
‘타이탄폴’ 의 모든 모드는 멀티플레이. 즉 온라인게임으로 봐도 됨. 이 게임을 온라인게임으로 보면 밸런스나 몰입도, 그래픽과 사운드 효과 등은 이미 일반적인 온라인게임을 초월한 지 오래다. 그러나 심각한 문제점이 있다. 바로 콘텐츠 부족과 빈약한 온라인 매칭 시스템이다.
먼저, 총기의 종류가 매우 적다. 가장 종류가 많다고 하는 파일럿의 주무기는 고작 10종류밖에 되지 않으며, 대 타이탄 무기는 4종, 보조무기는 3종이 전부다. 마치 90년대 중반에 나온 ‘둠’ 이나 ‘언리얼’ 을 보는 느낌이다. 무기에 따로 장착할 수 있는 각종 부품을 합쳐도 여전히 수가 적으며, 레벨 50까지 도달하면 모든 무기가 언락되기 때문에 깊이 파고들 요소도 별로 없다. 참고로 레벨 50은 서비스 첫날에 달성한 유저들도 많다.
깊이 부분을 지적한 김에 조금만 더 짚고 넘어가자. 짧으면 하루, 길어야 일주일 내외로 만렙(50레벨)에 도달 가능한 ‘타이탄폴’ 의 빠른 레벨업은 초반부의 몰입도를 극대화 시켜준다. 경험치의 경우 단순히 킬/어시스트만으로 획득하는 것이 아니라, 내가 게임 내에서 하는 모든 행동이 업적 형태로 경험치에 반영된다. 이로 인해 10레벨 내외까지는 전투 한두 번만으로도 레벨업이 가능하며, 레벨 업 때마다 다양한 무기와 기능들이 언락되어 성장의 재미가 느껴진다.
그러나 일단 만렙을 달성하고 나면 동기 부여 요소가 급격히 사라진다. 50레벨이 되면 모든 파일럿과 타이탄의 무기 및 기능이 언락되는데, 이때가 되면 선택지가 주어진다. 바로 레벨을 처음으로 되돌리는 리젠이다. 리젠을 선택하면 다시 레벨 1부터 시작하고, 닉네임 옆에 리젠한 숫자가 붙는다. 일종의 명예 시스템과도 같다. 그러나 그 외에는 아무 이득이 없을뿐더러, 그때까지 얻은 모든 언락 아이템을 처음부터 다시 모아야 한다. 때문에 수십 번의 리젠을 한 유저도 있지만, 1~2번의 리젠만 하고 계속 50레벨에 머무르는 유저도 많다. 수십 회의 반복 플레이를 요구하는 것 치고 주어지는 보상이 턱없이 적기 때문이다.
진정한 하드코어 유저들을 위한 배려도 부족하다. ‘타이탄폴’ 은 근거리 무기의 위력이 특히 강하고 총기의 반동이 매우 적기 때문에 FPS 초보들에게 유리한 게임이다. 멀리 있는 적도 꽤 쉽게 맞출 수 있고, 스마트 권총의 경우 아예 일정 거리 내의 타겟을 자동으로 조준해 주기 때문에 방아쇠만 당기면 킬을 올릴 수 있다. 덕분에 ‘배틀필드’ 등 사실적인 FPS에서 하위권이었던 기자도 ‘타이탄폴’ 에서 중위권 성적을 유지했다.
그렇다면 이러한 단계를 일찌감치 돌파한 하드코어 유저들이 몰입할 만한 요소는? 스피디한 파일럿으로 적진을 휘젓거나 타이탄과 파일럿을 오가며 벌이는 1인 2캐릭터 플레이 등 현란한 조작, 그리고 비교적 사용이 난해한 스나이퍼 라이플을 죽어라 파고드는 것뿐이다. 그 이상의 하드코어 전투가 거의 없다. 파고들 만한 부분이 적다는 것은 헤비 유저들을 오랫동안 끌고 갈 만한 동력이 부족하다는 것을 의미한다. 추가로 총기 별 샷 감각이 비슷비슷해 밀리터리 마니아들에게는 다소 허무하게 느껴질 수도 있겠다.
마지막은 비교적 빈약한 온라인 매칭 시스템이다. 게임을 시작하려면 빠른 시작 버튼으로 방에 입장하는 수밖에 없는데, 실력이 비슷한 유저들끼리 매칭해주는 것이 아니어서 꽤 혼란스럽다. 특히나 캠페인 모드의 경우 자신이 플레이 하려고 하는 미션에 인원이 없으면 계속 기다리거나 이전 미션을 플레이해야 하는 불편함도 보인다. 여기에 클랜전 모드나 개인 서버 옵션도 없어, 서비스의 완성도가 떨어지는 느낌도 든다.
▲ 캠페인 모드의 경우 사람이 없으면 시작도 안 된다
▲ 레벨 차이를 무시한 채 매칭이 이루어진다. 오른쪽 팀은 몇 번씩 리젠한 유저들만 모여 있다
전설이 될 수 있었던 게임… 그러나
인피니티 워드의 첫 작품인 ‘타이탄폴’ 은 2014년 최고 기대작 중 하나였다. 단순히 재미있는 게임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차세대 게임으로 나아갈 길을 열어줄 작품이 될 것이라는 기대까지 걸려 있었다.
일단 ‘타이탄폴’ 이 FPS의 미래를 어느 정도 제시해 준 게임임은 확실하다. 게임플레이 자체의 완성도도 꽤 높고, 몰입도는 최상급이다. ‘콜 오브 듀티’ 의 멀티플레이 모드를 한 세대 발전시켜 놓은 것 같은 아케이드성은 현재 출시된 FPS중 가장 높은 수준이다. 여기에 초보들도 나름대로의 재미를 찾으며 즐길 수 있는 시스템을 마련해 놓았다는 것은 확실히 높이 평가할 만하다.
그러나 마무리가 아쉽다. 캠페인 모드는 구색맞추기 격이고, 콘텐츠의 넓이와 깊이도 부족한 느낌이 든다. 온라인 매칭 시스템은 구시대적이며, 커뮤니티 시스템도 부족하다. 게임플레이의 완성도가 특출나게 높았기에, 눈에 띄게 미흡한 점들이 있다는 점이 쉽게 이해가 가지 않는다. 외신 등지에서는 EA의 무리한 출시 일정 요구 때문에 ‘타이탄폴’ 이 미완성인 채로 출시되었다는 얘기까지 들려오고 있을 정도다.
이 같은 루머가 사실이든 아니든, ‘타이탄폴’ 은 전설의 반열에 올라서려다가 마지막에 발을 삐끗해 그냥 ‘재미있는 게임’ 에 머무르고 말았다. 앞으로 계절별로 확장팩이 출시된다는데, 이를 통해 부족한 2%를 메꾸고 전설의 반열에 들 수 있을지 기대해 봐야겠다. ‘스타크래프트: 브루드 워’ 처럼…
▲ 어쨌든 리스폰 엔터테인먼트의 개발력이 건재한 것은 확인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