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원은 회사의 가장 소중한 재산` 엠게임 가족경영의 비결
2008.07.10 10:27 게임메카 나민우 기자
비정규직. 보통 정규적에 비해 대우가 열악하고 불안정한 파트타이머, 계약직, 임시직, 일용직, 파견직 등을 가리킨다. 비정규직 근로자와 고용회사 간의 갈등은 이미 우리사회의 뜨거운 감자 중 하나다. 얼마 전 한 대형유통 회사에서 비정규직 근로자들이 정규직 전환을 요구하며, 대규모 시위를 벌인 사건을 기억하고 있을 것이다.
그런데 비정규직에서 임원까지 승진을, 그것도 한 회사에서 해낸 인물들이 있다면 믿겠는가? 게다가 이직이 잦은 게임 개발분야에서 말이다.
엠게임 고배석 개발이사와 이동훈 개발실장이 바로 그 믿지 못할 일을 해낸 인물들이다. 이 둘은 엠게임에 정규직이 아닌 비정규직으로 입사, 현재의 자리까지 올랐다. 지금의 자리까지 오르게 된 이유 중에 엠게임 초창기 맴버이라는 배경도 영향을 미쳤다. 하지만 초창기 맴버이기 때문에 이 둘은 회사가 가장 힘들었던 시기를 함께 해쳐왔다.
엠게임이 가장 힘들었던 시기를, 사람들이 가장 힘들다고 이야기하는 위치인 비정규직에서 함께 해온 그들. 그들을 통해 엠게임의 저력이 무엇인지 알아보자.
엠게임 고배석 개발이사 & 이동훈 실장 - 지켜주고 싶은 개발사 엠게임
기자 일을 하면서 터득한 나름대로의 노하우를 한가지 밝히자면, 보통 그 회사의 대표 혹은 임원의 옷차림을 보면 어떤 분위기의 회사인지 쉬이 짐작할 수 있다. 기자 눈에 들어온 두 인물의 옷차림은 청바지에 티셔츠. 상당히 편안한 차림이었다.
고배석 이사는 싱글싱글 웃는듯한 인상이었고, 이동훈 실장은 수줍음 많은 청년 같은 인상이었다. 두 사람 모두 일반적인 회사에서 볼 수 있는 고위직의 중압감은 없었고 오히려 편안한 느낌을 풍기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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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엠게임 고배석 개발이사(좌)와 이동훈 개발실장(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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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임메카: 엠게임에 비정규직으로 입사하게 된 계기는 무엇입니까?
고배석 개발이사: 사실 저는 영문학과 출신이에요. 애초에는 게임 개발자가 되어야겠다는 확고한 의지가 있었던 것은 아니었죠. 엠게임과 인연을 맺은 계기는 대학생활을 하면서 학교친구 소개로 엠게임의 전신인 메닉스에서 파트타이머로 일하게 되면서였어요. 당시 메닉스는 게임 개발사는 아니었어요. 각 종 하드웨어에 쓰이는 소프트웨어를 개발하는 회사였죠. 메닉스에선 문서정리 등을 했었는데, 이 후에 메닉스가 게임을 개발하게 되면서 기획을 담당하게 됐습니다. 현재 ‘다크세이버’의 초창기 버전인 ‘어둠의 성전’ 개발에 참여하게 된 것이죠.
이동훈 개발실장: 저 역시 고 이사님과 비슷한 경우예요. 엠게임(메닉스)은 최초에 중앙대 동아리에서부터 시작됐습니다. 당시 저는 그 동아리에서 활동하던 신입생이었죠. 선배들이 사업계획을 세우고 착착 진행해 나가는 것을 보면서 저도 무언가 배워야 하겠다는 심정으로 ‘무슨 일이든 시켜주십시오.’라고 때를 썼더랬죠(웃음). 그 때가 98년 이었던 걸로 기억해요.
고 이사님 말씀처럼 당시 메닉스는 게임 개발사가 아니었고, 측정 장비나 레이저 장비 등에 사용되는 소프트웨어를 개발하는 회사였습니다. 이 후에 천리안에서 외주를 받아 보드게임을 개발을 했었는데, 이것을 계기로 본격적으로 게임 개발을 시작하게 됐습니다. 그러면서 저 역시 게임 개발을 시작하게 됐어요.
게임메카: 두 분 모두 당시엔 게임 개발에 뜻이 있으셨던 건 아니군요. 당시(초창기) 게임 개발사들 대부분은 타 직종에 비해 좋지 못한 근무여건이었습니다. 엠게임의 어떤 점이 그 힘든 생활을 견디게 해주었나요?
고배석 개발이사 & 이동훈 개발실장: 하하. 이거 사실대로 말씀 드려야 하나(난감한 웃음).
이동훈 개발실장: 회사에 전용선이 있었기 때문이랄까요(웃음). 당시 머드게임(Multi User Dungeon, MUD. 게임 내 모든 행위가 글자로 이루어지는 게임)을 즐겨했는데, 전화선을 이용한 모뎀으로 게임을 플레이하면 사용료가 엄청나잖아요(당시 머드게임 요금은 분당 약 20원). 전용선은 정액요금이라 그런 걱정이 없거든요. 전용선 자체가 흔하지 않았고 PC방이란 것도 없었던 시기여서 전용선이 설치되어 있는 회사가 너무 좋았어요(고 개발이사는 옆에서 싱글벙글 웃음만 지을 뿐이었다. 아마도 고이사 역시 같은 목적이었던 듯하다).
향수를 일으키는 90년대 말 머드게임 이야기가 나오자 인터뷰가 진행되던 회의실은 금새 게임 이야기로 꽃을 피웠다. ‘단군의 땅’, ‘쥬라기 공원’처럼 그 동안 잊고 살았던 게임이름들과 추억들이 새록새록 떠 올랐다. 필자 역시 전용선이 설치되어 있는 친구가 너무나 부러웠던 기억이 있었기에 그들이 회사의 전용선에 끌렸다는 충분히 이해할 수 있었다. 하지만 분명 힘들었던 점도 있었을 법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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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국의 대표적인 머드게임 `단군의 땅(좌)`과 `쥬라기 공원(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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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임메카: 당시 게임을 좋아했던 사람들이라면 (매우) 공감할 수 있는 이야기이군요. 그래도 분명 파트타이머이기 때문에 힘드셨던 점도 있으셨을 것 같은데…
고배석 개발이사: 그런 점은 느끼지 못했어요. 일단 일 자체가 엄청 재미있었거든요. 물론 업무적인 부분은 힘들었죠. 일도 많고 게임 개발에 대한 체계가 잡혀있지도 않았어요. 특히 ‘어둠의 전설’ 개발 당시엔 많은 시행착오를 거쳤어요. 처음부터 게임을 개발하던 회사도 아니었으니, ‘맨땅에 헤딩’식으로 배워나가는 수밖에 없었죠.
당시 제 첫 월급이 30만원 정도였는데, 돈을 원했다면 다른 곳으로 갔겠죠. 하지만 회사에 출근하면 즐겁고, 일 자체가 재미있어서 도저히 그만두질 못하겠더라구요.
이동훈 개발실장: 저도 파트타이머이기 때문에 힘든 점은 딱히 없었어요. 단지 학교 생활을 병행하다 보니 힘든 점은 있었죠. 특히 다음 날 0교시에 수업이 있는 날이면 아주 죽을 맛이었어요. 물론 학점은 절망수준이었습니다(웃음). 딱히 힘들었던 점을 꼽는다면 파트타이머로 일한 것을 포함해 회사 입사 4년 동안 제가 제일 막내였다는 점 정도네요. 잡일은 제가 다 했죠(OTL).
고배석 개발이사: 당시엔 회사 인원이 20명 정도의 작은 규모였기 때문에 모두 가족 같고 친구 같았었죠. 지금도 그렇지만 ‘회사는 모두의 것’이란 공동체 의식이 강했어요. 이것이 힘든 시기를 이겨낼 수 있었던 원동력 역할을 해주었어요.
이동훈 개발실장: 지금은 회사가 커지고 각자 직책이 있기 때문에 못하지만, 그 당시엔 회장님(엠게임 손승철 회장)을 ‘승철이형~’이라고 불렀었죠(웃음). 다른 이사진분들도 마찬가지구요.
게임메카: 엠게임 초창기, 재미있었던 에피소드 한 가지만 이야기해주세요.
고배석 개발이사: 회사 컴퓨터가 모두 랜(LAN)으로 연결되어 있었는데, ‘워크래프트2’ 멀티플레이 대전이 회사 내에서 인기였습니다. 현재 엠게임 이사진 대부분이 이 당시 ‘워크래프트2’를 즐기던 맴버들이에요. 이른바 ‘엠게임 배 워크래프트2 대회’라고 할까요?
이동훈 개발실장: 아.. 저도 기억해요. 두 팀으로 나눠서 ‘워크래프트2’ 대전을 했는데, 보통 커피 내기를 했거든요. 그런데 이상한 건 어느 팀이 이기고 지든 간에 제가 커피를 탄다는 거예요! 그럴 거면서 왜 내기를 하시는 건지(당시 막내의 설움 폭발)!
이동훈 실장의 말에 회의실은 웃음 바다가 됐다. 추억은 분위기를 부드럽게 만드는 힘이 있다. 30대 중반에 들어선 이동훈 개발실장이 이야기를 시작하자 마치 당시 20대 청년의 모습으로 돌아간 것처럼 느껴질 정도였다. 고배석 개발이사와 이동훈 개발실장이 서로를 쳐다보며 큰 소리로 ‘하하’거리며 웃는 모습을 보니 당시 엠게임의 회사 분위기가 어땠을지 짐작할 수 있었다. 그렇다면 지금은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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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엠게임 내부의 카페테리아. 가격이 싸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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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임메카: 엠게임이 지금과 같은 주요 게임 개발사가 될 수 있었던 이유는 어디에 있다고 생각하세요?
고배석 개발이사: 엠게임의 정체성은 손회장님의 개인성향에 큰 영향을 받았어요. 사람을 굉장히 중요하게 여기세요. 회사 내에 어떤 트러블이 발생했을 때, 사람을 쳐내기보단 원만하게 해결하길 원하는 스타일이시죠. 엠게임 자체의 밑바탕이 그렇게 다져지다 보니 파트타이머든 직원이든 회사에 들어오면 다 같은 가족으로 여기세요. 다같이 힘들고 다같이 즐거워야 한다는 주의세요.
IMF 당시에 저희 회사 역시 많이 힘들었어요. ‘다크세이버’가 자리를 잡기 이전이었고, 그나마 회사를 지탱하고 있던 측정기 소프트웨어 개발 부문도 일거리가 없어 힘들던 시절이었죠. 당시에 손회장님께서 직원들 모두를 1:1 면담하셨습니다. 생활에 필요한 비용이 얼마냐고 물으시더군요. ‘한 사람도 회사에서 내보내기 싫다.’시면서 모든 직원의 허리띠를 졸라맸었죠. 그리고 나중에 회사 사정이 나아지면서 IMF 당시 삭감했던 임금을 모두 지급해주셨습니다.
이동훈 개발실장: 회장님은 이런 말씀을 자주 하셨어요. ‘집을 팔아서라도 월급은 반드시 준다.’ 실제로 영세했던 당시부터 지금까지 약 10년 동안 직원들 월급을 한 번도 늦게 주신 적이 없으세요. 어떤 사람들은 한 개발사에서 그렇게 오래있는 것은 바보스러운 짓이다라고 말하지만, 회장님께선 그만큼 직원들을 배려해주세요. 엠게임은 저에게 있어 오랫동안 지켜주고 싶고, 일하고 싶은 개발사입니다.
게임메카: 평소 손회장님께선 사원들을 어떻게 대하시나요?
고배석 개발이사: 살갑게 대해주세요. 특히 신입사원들이 잘 적응할 수 있도록 여러모로 배려해 주시죠. 워낙 살갑게 대해주시니까 신입사원들 중엔 회장님인줄 모르는 사람들도 더러 있어요(웃음).
이동훈 개발실장: 이런 경우도 있었어요. 보통 회장님 정도 되시는 분들은 일반직원하고 어울릴 일이 별로 없잖아요. 그런데 회장님께서 자주 회사 곳곳을 둘러보시면서 살갑게 대해주시니까, 한 신입사원은 진짜 회장이 아니고 별명의 회장인 줄 알았다고 하더군요(웃음).
인터뷰를 마치고 나니 엠게임이 지금의 위치까지 올라올 수 있었던 원동력이 사람중심의 경영에 있다는 사실을 알 수 있었다. 보통 한 회사의 경영방침은 최고경영자에 의해 결정된다. 당시는 손승철 회장이 지금은 그 바통을 권이형 대표가 즉, 엠게임의 이러한 사람중심의 경영은 곧 CEO인 귄이영 대표의 의지라는 말이 된다. 그렇다면 권이형 대표는 왜 사람중심의 경영을 시작하게 됐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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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건물 옥상에 조성되어 있는 공원과 농구장. 점심식사 후에 이용하면 `딱`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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엠게임 권이형 대표 미니인터뷰 - 직원이 바로 회사의 재산
게임메카: 권 대표님의 엠게임 경영철학은 무엇입니까?
권이형 대표: 한 마디로 표현하면 가족경영입니다. 모두 가족같이 지내자는 뜻이지요. 사람의 몸을 움직이는 것은 결국 사람의 마음입니다. 가족경영으로 직원들을 감동시킬 수 있어야 고객도 감동시킬 수 있는 것입니다. 또 많은 개발사들이 인력난에 시달리고 있습니다. 근본적인 이유는 회사가 직원들을 ‘이 회사와 함께 가고 싶다.’라는 마음 혹은 비전을 제시해 주지 못했기 때문이 아닐까요? 저는 직원들이 엠게임에서 오랫동안 일할 수 있는 편안한 환경을 조성하고 싶었습니다.
게임메카: 엠게임도 어려운 시기가 있었을 것이라고 생각됩니다.
권이형 대표: 물론 있었습니다. IMF 당시가 가장 어려운 시기였습니다. 당시 엠게임은 소프트웨어 아웃소싱업체였는데 주로 BtoB(회사를 상대로 사업을 진행하는 비즈니스 모델) 무대에서 활약했습니다. 그런데 IMF로 많은 회사들이 도산하거나 힘들어지는 상황이 됐고, 그만큼 BtoB 시작도 축소될 수 밖에 없었습니다.
엠게임도 허리띠를 졸라맬 수 밖에 없는 상황이었습니다. 당시 직원들의 월급을 줄일 수 밖에 없는 지경까지 갔었습니다. 물론 이후에 회사 사정이 나아지면서 지급하지 못했던 월급을 회사 주식으로 100% 보상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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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임메카: IMF 당시 어려운 회사 사정에도 불구하고 직원들을 내보내지 않은 이유는 무엇입니까?
권이형 대표: 직원이 회사의 재산이기 때문이죠. 사람을 줄이면 그만큼 회사의 성공 가능성을 줄이는 것과 마찬가지 입니다. 특히 IT산업은 더욱 그러하지요. 위기가 기회라는 말도 있잖아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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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엠게임 권이형 대표 |
그리고 중요한 것은 힘든 상황에서도 직원들이 회사를 믿고 따라와 주었기 때문에 지금의 엠게임이 존재할 수 있었다는 점입니다. 이 점은 지금도 정말 고맙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게임메카: 엠게임의 가장 성공적인 결단을 한 가지만 꼽는다면?
권이형 대표: 물론 게임 개발사로서의 진출입니다. 초창기 엠게임의 본업은 게임과 다소 거리가 있는 소프트웨어 개발이었습니다. 솔직히 IMF 당시엔 게임 개발 사업에 대한 의구심이 들었던 것도 사실입니다. ‘이 힘든 와중에 과연 게임을 개발해야 할까?’라는 의심말이죠. 만약 그 때 포기했다면 엠게임도 없었겠죠(웃음).
게임메카: 엠게임은 현재 상장 예비심사를 통과한 상태입니다. 소감 한 마디 부탁드립니다.
권이형 대표: 엠게임의 코스닥 입성을 기다려주시고, 격려해주신 많은 분들께 감사의 마음을 전합니다. 도약의 발판이 마련된 만큼 현재에 만족하지 않고 세계적인 기업으로 성장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또 엠게임은 온라인 게임 산업의 리더로서 더욱 산업의 발전을 위해 앞장설 것입니다. 감사합니다.
회사의 힘은 직원에서 나온다는 권이형 대표의 말이 인상적이었다. 회사가 회사만을 위한다면, 또 직원이 직원 자신만을 위한다면 그 회사는 제대로 힘을 낼 수 없다. 이것은 너무나도 당연하고 단순한 진리다.
지금은 한국 온라인 게임 인력시장이 위기라는 말이 나도는 시기다. 우리가 이 어려운 시기를 극복하기 위해선 너무나도 당연하기 때문에 잊고 있었던 진리들을 다시 한 번 되새겨 봐야 하는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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