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틀필드 1' 체험기, 미래전 날려버릴 1914년 산 꿀잼
2016.06.16 18:56 게임메카 김영훈 기자
▲ 1차 세계대전을 무대로 한 '배틀필드 1' (사진출처: 공식 홈페이지)
지난 5월 1일, 액티비전 산하 인피니티 워드가 3년 만의 신작 ‘콜 오브 듀티: 인피니트 워페어’를 전격 발표했다. ‘어드밴스드 워페어’와 ‘블랙옵스 3’에 이어 군용 안드로이드가 전장을 지배하고 전투기가 단독으로 대기권을 돌파하는 미래 전장을 무대로 삼은 FPS다. 공개된 영상의 때깔은 두말할 필요 없이 훌륭하지만 어째 세간의 반응은 시원찮다. 해당 영상의 유튜브 호불호는 16일 현재 ‘싫어요’가 ‘좋아요’ 6배에 달할 지경이다.
뭇 게이머의 불만은 한마디로 ‘미래전은 이제 그만’이라 압축할 수 있다. 이들이 ‘둠’이나 ‘헤일로’가 아닌 ‘콜 오브 듀티’를 즐기는 이유는 생동감 넘치는 전장 묘사와 뛰어난 현실 고증에 있다. 그러나 미래를 배경으로 삼는 순간 밀리터리 FPS만의 강점은 대부분 퇴색되고 만다. 더군다나 ‘어드밴스드 워페어’와 ‘블랙옵스 3’가 이렇다 할 인상을 남기지 못한 만큼 게이머들은 ‘콜 오브 듀티’가 가장 빛났던 현대전, 혹은 세계대전으로 회귀하길 바라고 있다.
이러한 바람이 EA에 전해졌을까? ‘인피니트 워페어’가 공개된 지 일주일도 안되어 등장한 ‘배틀필드 1’은 모두가 염원하던 과거로 향했다. 그것도 아예 시리즈 최초로 1차 세계대전까지 시간을 되감았다. 과거에도 ‘베르됭’처럼 1차 세계대전을 배경으로 한 FPS가 있기는 했지만, 현 세대 게이머들에게 '1차 세계대전'은 다소 생소한 시기가 아닐 수 없다. 과연 ‘배틀필드 1’이 미래전에 지친 밀리터리 FPS 마니아를 위한 가뭄 속 단비가 되어줄까?
E3 기간 동안 진행되는 EA 자체 행사장에서 ‘배틀필드 1’의 실체를 직접 확인할 수 있었다. 폐가와 참호가 산재한 거대한 전장에서 20 대 20 점령전의 막이 올랐다.
▲ '배틀필드 1' 게임플레이 트레일러 (영상출처: 공식 유튜브)
전장이 살아 숨쉬는 득한 현장감, 1차 세계대전에 온 것을 환영한다
게임이 시작되자마자 느껴진 감상은 ‘전장이 살아 숨쉰다’는 것. 단순히 그래픽이 좋고 나쁘고의 문제가 아니다. 프로스트바이트 엔진을 다루는데 도가 튼 EA 다이스답게 ‘배틀필드 1’의 겉모습은 더할 나위 없이 빼어나다. 그러나 한편으로 그래픽적인 면에서는 2015년에 출시된 ‘스타워즈: 배틀프론트’와 비교하여 눈에 띄게 발전한 부분도 없다. 분명 현세대 최고의 그래픽이기는 하지만 이제껏 보지 못한 무언가를 기대한다면 다소 실망스러울 것이다.
그러나 그보다 중요한 것은 현장감이다. 자욱한 연기 사이로 보이는 반쯤 무너진 참호와 앙상하게 뼈대만 남은 폐가, 땅에 아로새겨진 전차의 흔적과 지축을 울리는 포격까지. 플레이어를 둘러싼 생동감 넘치는 환경 그 자체를 '배틀필드 1'에서 볼 수 있다. ‘스타워즈: 배틀프론트’의 전장이 아름다운 디자인에도 불구하고 다소 영화 세트장스러운 느낌을 줬다면, ‘배틀필드 1’은 세계대전의 치열한 격전지에 플레이어를 곧장 던져 넣는다. ‘내가 지금 전쟁터 한복판에 있다’는 가슴 벅찬 두근거림을 느끼는데 단 2초도 걸리지 않는다.
▲ 미래전에 지친 밀리터리 FPS 마니아라면 간만에 가슴 벅차는 전장일 것이다
(사진출처: 영상 갈무리)
향상된 물리 효과와 날씨 변화도 게임에 생동감을 부여하는 중요한 요소이다. 시연에서 거의 모든 지형지물을 파괴하는 것이 가능했다. 가령 돌진하는 전차에 석벽이 무자비하게 박살이 나는가 하면 포격으로 땅이 깊게 파이기도 했다. 아울러 화창하던 하늘에 안개가 끼고 비가 내리며 가시 거리가 제한되고, 주위 소음이 빗소리에 섞여 들리는 등 사실적인 날씨 효과가 실제 게임플레이에도 큰 영향을 미쳤다.
전차병부터 초대형 비행선까지, ‘배틀필드 1’만의 신규요소 완비
시연 버전에서 확인할 수 있는 병과는 돌격병, 의무병, 보급병, 정찰병 그리고 전차병까지 합쳐서 5종이다. 전차병을 따로 빼놓은 이유는 전차로 리스폰했을 때만 선택할 수 있기 때문이다. 전차병은 주무기가 다소 빈약하지만 전차에 탑승한 채 자가 수리가 가능하다. 이 외에도 그간 ‘배틀필드’에서 흔히 볼 수 있던 공병은 존재치 않고 차량파괴 역할은 돌격병에게 주어지는 등 전작과는 다른 크고 작은 차이가 있었다.
점령전이 진행되는 전장은 최초 리스폰 지역 외에 3~4곳에 점령지가 존재한다. 이곳에 깃발을 꽂고 버티며 더 많은 점수를 획득하는 진영이 승리한다. 아군이 확보한 점령지는 새로운 리스폰 지점이 되기 때문에 유저들이 몰리며 자연스레 전선이 형성된다. 여기에 점령을 위해 달려드는 적군을 상대하기 위해 여기저기서 산발적인 교전이 지속적으로 이루어졌다. 다만 전차와 복엽기 등 차량은 플레이어가 탑승한 채 리스폰되는 방식으로 바뀌어, 전작처럼 적진에 배치된 차량을 뺏어 타며 우위를 공고히 하는 수법은 쓸 수 없게 됐다.
가장 흥미로운 요소를 하나 꼽으라면 바로 초대형 체펠린 ‘베헤모스’다. 앞서 공개된 영상에서 압도적인 존재감을 과시한 괴물 비행선으로, 열세에 놓인 팀에게 조종권이 넘어가기 때문에 게임이 일방적으로 흐르는 것을 막아준다. 비행선을 직접 조종해 폭격을 가하고, 상단에 기관총을 이용해 적 비행기를 격추시킬 수도 있다.
다만 회피라는 게 아예 불가능한 느리고 거대한 비행선이라 집중포화 앞에서는 금새 무력화된다. 화력은 강력하되 움직임에 제약을 두어 '베헤모스'가 지나치게 전세를 뒤흔들지 않도록 밸런스를 맞춘 것으로 생각된다. 아직 게임에 익숙치 않은 탓도 있겠지만 등장 때 풍긴 '최종 보스'급 포스에 비해서는 게임을 지배할 정도로 매우 강력하지는 않다. 아, 추락하며 지상을 초토화시키는 연출만큼은 최고였다.
▲ 초대형 비행선 '베헤모스'의 위엄, 다만 덩치와 달리 압도적으로 강력하진 않다
(사진출처: 영상 갈무리)
1차 세계대전은 총이 부실하다? 볼트액션 소총의 끝내주는 손맛
‘배틀필드 1’이 1차 세계대전을 배경으로 채택했을 때 총기에 대해 우려하는 게이머가 적잖았다. 화력이 넘쳐 흐르는 현대전과 각종 명기가 탄생한 2차 세계대전과 달리 1차 세계대전에는 총을 비롯한 각종 무기가 초기 단계를 밟는 과정이라 총 구성이 다소 심심할 수도 있겠다는 생각도 들었다. 천만 다행히도 시연에서 확인할 수 있는 총기 종류는 부족함이 느껴지지 않았다. 각 병과별로 3개의 주무기 선택지가 주어지며, 보조무기는 따로 또 설정할 수 있다.
기자는 ‘세계대전의 꽃은 저격’이라는 평소 소신껏 정찰병을 선택했는데, 세 가지 소총이 각각 유효 사거리가 확연히 달랐다. 여기에 제대로 거리를 조정하지 않으면 설령 몸에 탄환을 적중시키더라도 일격에 적을 쓰러뜨리지 못했다. 여기에 일반 소총은 사거리가 멀어질수록 집탄율이 심각하게 낮아지기 때문에 전작처럼 의무병이 조준 실력에 의지해 저격수를 잡기가 좀 더 까다로워졌다. 전체적으로 무기 종류가 다소 제한되는 대신 병과 특성을 강조해 역할 수행에 집중되도록 신경을 쓴 모습이다.
▲ 적의 머리를 날려버린 뒤 철컥거리며 재장전하는 볼트액션의 찰진 손맛!
(사진출처: 영상 갈무리)
끝으로 FPS의 알파이자 오메가인 '손맛’을 빼놓을 수 없다. ‘배틀필드 1’이 선사하는 볼트액션 소총의 손맛은 그야말로 끝내준다. 저격총을 적에게 겨누고 방아쇠를 당길 때마다 ‘고속으로 날아간 쇠붙이가 적의 몸을 꿰뚫는, 소위 ‘박히는’ 감각이 200% 전해졌다. 사운드가 굉장히 실감나며 철컥거며 볼트액션 소총을 장전하는 모습도 박력이 넘친다. 스코프에 시선을 고정하고 호흡을 가다듬으며 쏘도, 곧바로 재장전 후 다시 조준하는 과정은 현대전에서는 느낄 수 없는 야릇한 쾌감이 있다.
멀티플레이 잘 만드는 거 안다, 이제 ‘모느님’급 싱글 캠페인 하나 뽑아주길
20분도 안 되는 짧은 사연이었지만, 1차 세계대전의 전장은 너무나도 박진감 넘치고 중독적이었다. 다른 취재 일정이 아니었다면 다시 한번 시연 대기줄에 섰을지도 모를 정도다. 서두에 있었던 '과연 배틀필드 1이 미래전에 지친 밀리터리 FPS 마니아들을 위한 가뭄 속 단비가 되어줄까?'라는 질문에 대해 기자는 ‘배틀필드 1’이 세계대전을 꿈꾸는 모두에게 선물 같은 게임이 되리라 확신한다.
그렇다고 불안요소가 전혀 없는 것은 아니다. 아직 싱글 캠페인에 대한 정보가 하나도 드러나지 않았다. ‘콜 오브 듀티: 인피니트 워페어’가 멀티플레이를 감추고 있는 것과 정반대 상황인데, 그간 두 게임의 대결 양상을 보면 이건 그다지 좋은 징후가 아니다. ‘배틀필드’는 언제나 그림 같은 대단위 PvP 전장을 보여줬지만 싱글 캠페인은 '콜 오브 듀티'에 비해 부족하다는 평을 피해가지 못했다. ‘배틀필드’가 정말로 ‘콜 오브 듀티’를 이기고 싶다면 싱글플레이 콘텐츠를 보완해야만 한다.
탄탄한 캠페인이 받쳐주지 못하는 FPS의 한계는 ‘타이탄폴’과 ‘스타워즈: 배틀프론트’가 보여준 바 있다. 대규모 멀티플레이 전장을 구축하는데 있어서 EA 다이스는 최상위 개발사라 말할 수 있지만 깊이 있는 싱글 콘텐츠는 아직 의문이다. ‘배틀필드 1’을 통해 구현된 1차 세계대전 전장은 누구라도 이끌릴만한 매력을 갖췄다. 부디 이 금쪽 같은 소재를 낭비하지 말고 멋진 싱글 캠페인을 보여주기 바란다.
▲ 1차 세계대전을 훌륭하게 구현했으니 '모느님'급 캠페인을만 더하면 완벽하다
(사진출처: 영상 갈무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