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코어' 체험기, 진짜 록맨의 후계자는 따로 있었다
2016.06.22 19:24 게임메카 김영훈 기자
▲ '록맨' 아버지가 만든 3인칭 플랫포머 액션어드벤처 '리코어' (사진출처: 공식 홈페이지)
게임사들은 언제나 자사 신작이 더 많은 유저에게 보여지고, 더 높은 기대를 모으길 바란다. 그러나 가끔은 지나치게 높은 기대감이 독이 되는데, 이번 E3 2016에서 만난 ‘리코어’가 딱 그런 경우였다. 첫 트레일러를 본 후 1년간 나름대로 상상하던 이미지가 있었는데 막상 실제 게임플레이가 너무나 딴판이라 시쳇말로 살짝 ‘깼’달까?
확실히 지난해 E3에서 공개된 ‘리코어’ 트레일러는 굉장했다. 서정적인 음악이 깔리는 가운데 로봇 애완견과 함께 황폐화된 세계를 여행하는 소녀의 이야기는 많은 이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아마 기자뿐 아니라 모두가 ‘월-E’와 ‘툼레이더’ 사이 어디쯤을 상상했을 것이다. MS 쇼케이스에서 전면에 내세운 작품이다 보니 당연히 ‘AAA급 타이틀이겠거니’하는 편견도 작용했다.
아니나다를까 새롭게 게임플레이 영상이 공개되자, 유저들의 혹평이 빗발쳤다. 가뜩이나 대작이 부족한 Xbox 라인업이라 실망이 더 컸으리라. 당시 행사장에 있던 기자는 직접 시연해볼 수 있었는데, 결론부터 말하자면 ‘리코어’는 AAA급 타이틀이 아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안 좋은 게임은 더더욱 아니다. 실은 색안경을 벗고 직접 즐겨보라고 권하고 싶다. 가격도 3만8,900원으로 저렴한 편이다.
▲ 엄청난 대작 탄생을 예고(?)한 E3 2015 '리코어' 트레일러 (영상출처: 공식 유튜브)
낯선 게임에서 그 시절 ‘록맨’의 향수가 느껴진다
애당초 ‘리코어’가 주목을 받은 이유는 일본 스타개발자 이나후네 케이지가 관여했기 때문이다. 이나후네 케이지가 누군가, 전설적인 ‘록맨’의 아버지 아니던가? 여기에 실질적인 개발을 담당한 아마추어 스튜디오는 닌텐도 ‘메트로이드 프라임’ 개발진 출신이 모여, 횡스크롤 액션게임 ‘배트맨: 아캄 오리진 블랙게이트’를 만든 이들이다. 사실 이 조합만 보면 AAA급 타이틀을 기대하는 것이 더 이상할 정도다.
‘기어즈 오브 워’나 ‘더 라스트 오브 어스’를 기대하지만 않는다면 ‘리코어’는 썩 괜찮은 고전 감성의 3인칭 플랫포머라 할 수 있다. 전체적으로 가벼운 슈팅 감각과 크고 작은 퍼즐 및 탐험 요소는 ‘록맨’과 ‘메트로이드’를 닮았다. 요즘 게임치고 시나리오도 그리 복잡하지 않고, 10대 타겟팅 타이틀답게 연출도 상당히 가볍다. 물론 성인 게이머 입장에서는 다소 실망스러울 수도 있겠다.
▲ 아마도 이런 모습을 상상한 이는 거의 없을 것이다 (사진출처: 영상 갈무리)
게임의 골자는 당찬 소녀 ‘줄 아담스’가 로봇들과 함께 포스트 아포칼립스 세계를 탐험하는 것이다. E3 시연에서는 20분 가량 게임을 즐길 수 있었는데, ‘줄’이 땅속에 묻힌 어떤 기계 구조물을 돌아다니며 ‘애널라이저(Analyzer, 분광기)’를 찾는 내용이었다. 무기는 등에 멘 총을 사용하며 다른 도구는 적재적소에 상호작용 키를 누르면 알아서 꺼내 쓰는 방식. 자동으로 따라오는 로봇은 개 '맥'과 거미 '세스'로 자유롭게 교체 가능했다.
게임플레이 대부분은 몰려드는 조그마한 로봇들을 쏘고, 마지막으로 덩치 큰 중간보스(?) 로봇을 쓰러트린 후 문을 열거나 퍼즐을 푸는 구조로 되어있다. 적 로봇은 머리 위에 에너지가 표시되며, 처치 시 ‘XP’ 마크가 뜨는 걸로 봐서 레벨 시스템을 짐작할 수 있다. 총을 쏘는 감각은 굉장히 가벼운데 그 시절 ‘록맨’을 3D로 옮겨놓은 이런 느낌일까. 뭐, 나쁘게 말하면 타격감이 그다지 훌륭하진 않다.
▲ 본격적인 TPS를 기대하면 곤란하다, 3D로 하는 '록맨' 느낌 (사진출처: 영상 갈무리)
전투는 기본적인 사격 외에도 차지샷을 날리거나 그래플링 훅으로 동그란 ‘코어’를 적출하는 것도 가능하다. 본격적인 TPS마냥 엄폐를 하거나 다양한 무기를 쓰는 등 전투 자체가 흥미진진하지는 않지만, 그럭저럭 지루하지 않은 선에서 게임에 녹아 들어있다. 전투에 중점을 두고 다른 부분을 가져다 붙인 TPS와 달리 ‘리코어’는 탐험이라는 큰 그림의 일부분으로 전투를 삽입한 셈이다.
‘리코어’의 정체성은 스테이지를 돌아다니며 길을 찾고 퍼즐을 풀 때 비로소 드러난다. 레버를 당겨야 나타나는 통로와 불길이 치솟는 바닥, 끊임없이 움직이는 발판처럼 플랫포머에서 흔히 볼 수 있는 기믹이 대거 등장한다. 퍼즐은 공략집 펴놓고 머리 싸매는 복잡한 문제가 아니라 버튼을 순서대로 눌러 문을 여는 정도다. 어려서 ‘록맨’과 ‘메트로이드’를 정복했다면 ‘리코어’도 별 문제없이 즐길 수 있을 것이다.
▲ 매달리고 열고 뛰어넘는 등 '플랫포머'스러운 기믹이 즐비하다 (사진출처: 영상 갈무리)
가벼운 마음으로 착한 가격 ‘리코어’를 맞아주자
앞서 언급했듯 ‘리코어’는 3만8,900원에 판매될 예정이다. 굳이 리뷰에서 가격을 강조하는 이유는, 이보다 더 판매자의 태도를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수치도 없기 때문이다. 오늘날 게임 가격대는 AAA급 대작이 6만 원, 인디가 2만 원 선을 지키는 것이 일반적이다. 인디게임이 저렴한 이유는 비싸면 안 팔리기 때문도 있겠지만, 개발자 스스로 ‘콘텐츠의 양이 적고 불만족스러울 수 있음’을 인정한다고 볼 수 있다.
MS는 대규모 자본과 이나후네 케이지의 명성으로 ‘리코어’를 AAA급으로 포장하기 보단, 있는 그대로 모습을 내보이고 적정 가격을 매기는 길을 택했다. 그 결과가 모두에게 만족스럽지는 않겠지만 그렇다고 무조건 6만 원짜리 게임과 동일선상에 놓고 비교하는 것은 부당하다. 비록 트레일러를 돌려보며 꿈꾸던 대작은 아닐지언정 ‘리코어’는 분명 재미있는 게임이다.
심오한 전개와 엄청난 눈요기가 아니라, 그저 몇 시간 동안 즐겁게 패드를 두드리길 바란다면 ‘리코어’는 최고의 선택이 될 것이다. 가벼운 마음으로 착한 가격 ‘리코어’를 맞아주자.
▲ AAA급 대작이 아니라 아쉽겠지만 착한 가격과 준수한 재미는 인정해주자
(사진출처: Xbox 스토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