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만 관중 신화가 진다, 스타크래프트 프로리그 '흥망성쇠'
2016.10.18 19:50 게임메카 김미희 기자
▲ 지난 9월에 열렸던 마지막 '스타크래프트' 프로리그 결승전 현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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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은 ‘e스포츠의 성지’로 유명하다. 올해에도 부산에서 다양한 e스포츠 리그가 열리며 팬들의 눈길을 끌었다. 그렇다면 왜 부산은 e스포츠 팬들에게 ‘성지’로 기억되고 있을까? 그 원동력은 스타크래프트 프로리그에 있었다. 2004년과 2005년에 부산 광안리 해수욕장에서 열린 프로리그 결승전 현장에는 10만 관중이 몰려 인산인해를 이뤘다. 방송 카메라에 한 번에 들어오지 않을 정도로 많은 관중은 e스포츠 열기가 얼마나 뜨거운지를 확실하게 보여줬다.
‘광안리 10만 관중’ 신화를 만들어냈던 ‘스타크래프트’ 프로리그가 14년 만에 작별을 고하고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졌다. 2003년 3월, ‘스타크래프트: 브루드워’로 시작된 프로리그는 2016년 9월에 열린 16번째 결승전을 끝으로 종료를 선언했다. 개인 대결 위주였던 e스포츠 초창기에 프로야구와 같은 팀 대항전을 내세워 색다른 볼거리를 제공했던 ‘스타크래프트’ 프로리그는 1세대 리그로서의 수명을 다했다.
개인이 아닌 팀으로 뭉친다, e스포츠 시장 키운 프로리그
▲ 프로리그에서는 개인리그에서는 맛볼 수 없는 팀워크를 실감할 수 있었다
사진은 프로리그 2016시즌 우승 당시 진에어 그린윙스
2000년대 초반부터 스타플레이어를 중심으로 태동하던 e스포츠 시장이 크게 성장할 수 있었던 원동력은 프로리그에서 나왔다. 개인리그가 프로게이머 개인의 커리어를 높였다면, 프로리그는 당시에는 생소했던 게임팀을 대기업 후원을 받는 탄탄한 프로게임팀으로 성장시키는데 일조했다. 개인보다 팀이 돋보일 수 있는 프로리그의 특성과 2:2 팀플레이, 에이스 결정전, 승자연전까지 개인리그에서는 볼 수 없는 독자적인 콘텐츠가 만나 프로리그는 큰 인기를 끌었고, 그 인기가 대기업 후원까지 이끌어냈다.
프로리그 종료 직전에는 7개 팀에 불과했으나 실제로 팀이 가장 많을 시기에는 그 수가 12개 팀에 달했던 적도 있다. 특히 SK텔레콤, KT, 삼성전자, STX, 팬택과 같이 대기업이 후원하는 프로게임단이 늘어나며 연봉이나 연습 환경과 같은 선수들의 처우 역시 개선됐다. 여기에 선수와 팀을 이끄는 감독 외에도 선수들을 지원할 코치나 사무국 역할이 중요해지며 관련 직종 역시 늘어났다. 다시 말해 프로리그는 성장기에 접어든 e스포츠 시장 전체 파이를 키운 것이다.
선수 역시 많은 출전 횟수를 잡을 수 있었다. 개인리그의 경우 모든 선수가 본선에 오를 수 없지만 팀 단위로 움직이는 프로리그는 실전 경험이 없는 신예나 팀이 준비한 복병과 같은 선수를 활용할 수 있었다. 즉, 보다 많은 선수들이 본인의 이름을 알릴 수 있는 장이 된 것이다.
기회는 뉴페이스에 국한되지 않았다. 현재는 없지만 스타크래프트 프로리그에는 상무팀이 있었다. 2007년 4월에 창단된 공군 에이스는 e스포츠에 유일무이한 상무팀으로 선수들의 병역 문제를 해결해주고, 팀 내 경쟁에 밀려 출전 기회를 잡기 어려웠던 올드 게이머 및 2군 선수들이 재기할 기회를 잡을 수 있는 활로로 통했다. 신예부터 올드게이머까지 다양한 선수를 포용했던 프로리그는 스타플레이어 탄생을 돕는 기반이 됐다.
▲ e스포츠의 전무후무했던 상무팀 '공군 에이스' (사진출처: 공식 홈페이지)
승부조작에 지재권 분쟁까지, 프로리그의 쓸쓸한 말로
순항하던 프로리그는 2010년에 크게 휘청거렸다. 사회 전반에 큰 충격을 준 e스포츠 승부조작은 프로리그에 직격타를 날렸다. 실제로 대표 선수가 승부조작에 가담했던 CJ 엔투스와 하이트 스파키즈는 두 감독이 사퇴한 후 팀이 합병되는 수순을 밟았다. 여기에 한국e스포츠협회와 블리자드 간 ‘스타크래프트’ 리그 지적재산권 분쟁이 거세지며 차기 시즌 개최를 장담할 수 없는 위기에 몰렸던 적도 있다. 대회를 주최하는 한국e스포츠협회 입장에서는 이처럼 대내외적으로 분위기가 좋지 않은 와중에 신한은행의 뒤를 이을 새로운 후원사를 찾아야 한다는 문제가 겹쳤다.
우여곡절 끝에 2011년 SK플래닛 스타크래프트 프로리그가 스타 1과 스타 2를 병행하는 방식으로 열렸고, 2012년에는 ‘스타 2’로 완전히 종목이 바뀌었다. 프로리그 입장에서는 새로운 국면의 시작이었으나 상황은 좋지 못했다. 우선 2011년에 OGN과 함께 프로리그 주축을 이루고 있던 MBC게임이 폐지됐다. 여기에 2012년부터 본격적인 e스포츠 행보에 나선 ‘리그 오브 레전드’가 새로운 강자로 부상하며 ‘스타크래프트’ 프로리그는 상대적으로 팬들의 관심에서 밀려났다.
▲ 지적재산권 분쟁이 터진 후 1년 뒤인 2011년에 라이선스 계약이 체결됐으나
예전 인기를 회복하기에는 역부족이었다 (사진제공: 한국e스포츠협회)
그리고 2013년에는 STX 소울과 웅진 스타즈와 같이 대기업이 후원하던 팀이 해체 수순을 밟았다. 이후 프로리그는 출전팀 및 후원사 확보에 난항이 심해졌다. 전에 있던 기업팀은 사라지고, 새로 팀을 창단하겠다고 나서는 기업은 찾아보기 어려웠다. 다시 말해 출전팀에 구멍이 생기기 시작한 것이다. 급기야 2014년에는 프로리그를 만들었던 OGN이 떠나고 후발주자로 나섰던 스포TV 게임즈가 중계를 홀로 맡는 지경에 달했다.
2015년에는 협회 소속팀에 MVP나 프라임, 스타테일과 같은 비 협회팀이 합류하며 8팀 구도가 완성됐으나 2016년에는 그마저도 불가능해졌다. 마지막까지 발목을 잡았던 것은 승부조작이었다. 프라임을 이끌던 박외식 전 감독이 승부조작으로 구속되는 초유의 사태가 발생하며 8팀이 아닌 7팀으로 리그를 치러야 하는 상황이 발생한 것이다. 여기에 국내 ‘스타 2’ 리그에서 몇 없는 간판 선수로 손꼽히던 이승현마저 승부조작으로 실형을 받으며 프로리그도 회복하기 어려운 상처를 입었다.
그리고 2016년 9월 3일 열린 프로리그 결승전에서 진에어는 KT 롤스터를 4:0으로 누르고 창단 첫 통합 우승을 차지했다. 그리고 이것이 '스타크래프트'로 열리는 마지막 프로리그 결승전이 되었다. 진에어의 우승을 끝으로 '스타크래프트' 프로리그는 더 이상 열리지 않는다. 그리고, 마지막 우승팀 진에어는 프로리그 폐지 후에도 팀을 운영하기로 확정한 유일한 스타 2 게임단으로 남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