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드 오브 워쉽, 거함거포주의가 말하는 ‘느림의 미학’
2017.03.16 16:28 게임메카 김헌상 기자
▲ '월드 오브 워쉽' 대표이미지 (사진제공: 워게이밍)
최근 사람들에게 ‘먹히는’ 게임은 속도전을 앞세웠다. 유저에게 얼마나 빨리 게임의 핵심 재미를 전달하느냐가 중요한 과제로 떠올랐기 때문이다. 박진감 넘치는 ‘한타’를 강조하는 AOS라면 라인전을 과감하게 쳐내고, RPG에서는 ‘육성’에 들어가는 시간을 줄이기 위해 단숨에 ‘만렙’을 달성하는 캐시 아이템을 판매하기도 한다.
그런데 이런 트렌드를 역행하는 게임이 3월 13일 국내 서비스에 돌입했다. 워게이밍의 ‘월드 오브 워쉽’이다. 워게이밍은 첫 작품인 ‘월드 오브 탱크’에서도 묵직한 전투를 선보였지만 이번에는 더하다. 전투 시작 후 2분은 족히 지나야 적의 그림자가 보이고, 발사한 포탄은 과녁에 맞으려면 5초 이상 날아가야 한다. 뱃머리를 돌리는 것도 쉬운 일이 아니라, 진로를 잘못 정하면 후퇴도 못 하고 불귀의 객이 된다. ‘오버워치’처럼 적응하기 쉽고 속도감 있는 게임과는 사뭇 다르다.
그런데 더 재미있는 점은 특유의 ‘느린 플레이’가 지루하지 않다는 것이다. 넓은 바다에서 거대한 군함을 이끌고 진짜 ‘해상전’을 하는 듯한 맛을 살렸다. 워게이밍이 자신하는 ‘느림의 미학’이 고스란히 살아있는 게임이라는 것이다.
▲ 워게이밍의 '느림의 미학' 담긴 '월드 오브 워쉽' (사진제공: 워게이밍)
‘거함거포주의’가 지배하는 바다의 전장
‘월드 오브 워쉽’을 간단하게 말하면 ‘월드 오브 탱크’를 해상전으로 옮겼다고 할 수 있다. 제2차 세계대전에서 활약한 다양한 군함을 조종해 전투를 벌이는 것이 핵심이다. WASD로 이동하고, 마우스 좌우버튼으로 포를 쏘는 전반적인 조작도 ‘월드 오브 탱크’와 비슷하기에, 이 게임을 했다면 쉬이 적응할 수 있다. 여기에 경험치를 올려 부품을 개발하고, 더 높은 티어의 군함을 연구하는 등, ‘월드 오브 탱크’의 뼈대를 고스란히 물려받았다.
▲ '월탱'에서도 자주 본 익숙한 로비 화면 (사진출처: 게임메카 촬영)
함종에 따라 특화된 분야가 있는 점도 비슷하다. 예를 들어 순양함은 속도와 장갑, 공격력 등이 균형을 이루고 있다. 여기에 대공 능력도 우월하다. 체구가 작은 구축함은 함선 중 가장 빠르기에 치고 빠지기에 능하다. 이어서 전함은 느리지만 단단하고 화력이 강한 바다 위의 요새다. 마지막으로 항공모함은 가장 독특한 함종으로, 전투기나 폭격기, 뇌격기를 동시에 지휘하는 RTS 형식의 전투를 펼치게 된다.
여기에 ‘월드 오브 워쉽’ 만의 맛을 더하는 요소가 있다. ‘거함거포주의’라는 말로 표현되는, 지상전과는 스케일이 다른 해상전이다. 게임에서 상대적으로 작은 편에 속하는 구축함도 1,000톤이 넘는다. 그러다 보니 실려 있는 무장도 강력하다. 가장 처음 타게 되는 미국 1티어 순양함인 ‘이리(ERIE)’는 152mm 구경의 주포 4문을 탑재하고 있다. 기본 화력이 ‘월드 오브 탱크’에서 최강의 화력을 뽐내는 10티어 구축전차나 자주포에 살짝 못 미치는 수준이다. 즉, 탱크와는 화력부터 다른 함선을 초기부터 몰 수 있기에 게임을 시작하자마자 육중한 '함선'의 매력에 빠져들기 충분하다.
▲ 탱크와 달리 화재에도 아랑곳하지 않는 전함의 위엄 (사진출처: 게임메카 촬영)
이처럼 '월드 오브 워쉽'에 등장하는 군함들은 하나같이 ‘헤비급’이다. 이에 게임에서도 이러한 육중함을 가감 없이 표현했다. 몇천 톤은 족히 넘는 쇳덩이들이 떠다니니 자연히 전투의 템포는 느리지만, ‘거함거포주의’로 대변되는 해상전의 박력은 더 높아졌다. 주포를 일제히 사격할 때의 포격음은 묵직함이 느껴지며, 소리만으로도 강력함을 유감없이 드러낸다. 한꺼번에 발사된 포탄이 하늘을 수놓는 모습 역시 장관이다. 어뢰에 맞은 전함이 폭발하는 장면도 통쾌함을 전달한다. 거대한 군함들의 화력전에 대한 ‘로망’이 있다면, ‘월드 오브 워쉽’의 전장은 놓치기 아까울 정도로 매력적이다.
▲ 군함은 역시 멋있다! (사진출처: 게임메카 촬영)
▲ 전투 끝에 침몰하는 모습도 '심쿵', 앞으로 내가 더 잘할게... (사진출처: 게임메카 촬영)
진정한 제독이라면 한 수 앞을 내다봐야지
하지만 아무리 화력이 강력해도 ‘느리기만’ 한 게임은 재미 없다. 이에 ‘월드 오브 워쉽’에는 특유의 ‘느린 템포’를 보완하는 장치가 있다. 바로 한 수 앞을 예측해야 하는 전략이다. 순간적인 상황에 대처하는 반응 속도보다 얼마나 상대의 움직임을 잘 읽느냐가 승패를 가른다. 따라서 템포는 느리지만, 시시각각으로 달라지는 전장 상황에 저절로 집중하게 된다.
전투의 기본인 ‘포격’에서부터 고려해야 할 사항이 많다. 군함들의 주포는 강력한 만큼 조준도 느리고, 포탄도 10여 초는 날아가야 목표물에 맞게 된다. 따라서 명중률을 높이기 위해서는 적의 이동 방향과 속도를 예측해, 미리 쏘는 센스가 필요하다. 다른 공격 수단도 마찬가지다. 어뢰는 포탄보다 느려서 더욱 신중한 조준이 필요하고, 항공모함이 다루는 뇌격기와 폭격기는 적의 대공방어망 사이를 비집고 들어가는 컨트롤이 요구된다. 어느 하나 손쉽게 다룰 수 없다.
▲ 예? 저걸 맞추라고요? (사진출처: 게임메카 촬영)
그러다 보니 처음부터 백발백중의 실력을 갖추는 것은 힘들다. 하지만 대다수 슈팅게임이 빠른 반응 속도를 요구하는 것에 비하면 진입 장벽이 낮은 셈이다. 즉, 피지컬보다는 전황을 읽는 눈이 더 중요하기 때문에 경험이 쌓이면 조금씩 명중률이 높아지고 있다는 점을 실감하게 된다. 또, 명중 외에도 부품 파괴, 화재 유발 등 공격의 결과를 배지 형태로 보여 주기 때문에, 한 방이라도 맞췄을 때 ‘해냈다’는 성취감을 더욱 자주, 크게 느낄 수 있다.
▲ 좌측을 보면 공격의 결과를 한 눈에 알 수 있다 (사진출처: 게임메카 촬영)
군함을 움직일 때도 예측은 필수다. ‘월드 오브 워쉽’의 경우, 말 그대로 바다에 떠 있는 거대한 배를 다룬다. 즉, 배 자체가 무겁기 때문에 브레이크를 걸어도 관성 때문에 천천히 멈추고, 뱃머리를 돌릴 때도 시간이 필요하다. 즉, 이러한 점을 감안해 세심하게 군함을 움직여야 한다.
예를 들어 포격에 열중하다 눈앞에 섬이 있는 걸 못 봤다면? 뒤늦게 옆으로 틀어도 배는 여전히 앞으로 나아가기 때문에 십중팔구 섬에 부딪힌다. 육지에 걸려 속도를 잃게 되면 그저 좋은 과녁이 될 뿐이다. 또한 아무 생각 없이 전진하다 적에게 포위되는 상황도 자주 발생하는데, 이때 뒤로 돌아 얌전히 빠져나오기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다. 기동력이 가장 뛰어나다는 순양함조차 180도 회전하려면 1분이 넘게 걸리기 때문이다. 따라서 정신없이 싸우면서도 배가 어디로 나아가는지, 아군은 어떻게 배치되었고 적의 예상 위치는 어디인지 계속 고민하게 만든다.
▲ 끝까지 빠져나가려던 배의 최후는 고폭탄 찜질 (사진출처: 게임메카 촬영)
이처럼 ‘월드 오브 워쉽’은 생각할 거리가 많다. 앞서 말했듯이 전투를 시작하면 2분가량은 망망대해를 전진하는 것밖에 없지만, 유저의 머리 속에는 수많은 계산이 오간다. 아군의 작전은 물론 상대의 움직임을 보며 어디부터 전진할지를 계속 고민하게 만들기 때문이다. 즉, 거대한 군함을 이끌고 바다에 있는 제독처럼 ‘한 수 앞’을 내다보는 판단력이 요구된다. 배는 느리지만, 유저의 생각은 느리지 않은 점이 워게이밍이 ‘월드 오브 워쉽’에 담은 ‘느림의 미학’이다.
▲ 생각외로 자주 보게 되는 전술맵 (사진출처: 게임메카 촬영)
마니아를 넘어 모두를 포섭하려면 ‘튜토리얼’부터
‘월드 오브 워쉽’의 만듦새는 좋다. 거함거포주의가 지배하는 바다 위의 전장은 언제 봐도 박력이 넘친다. 집채 만한 강철의 방주가 불길을 뿜어내는 광경에 어찌 설레지 않을 수 있겠는가. 밀리터리 마니아라면 빠져들 수밖에 없고, 관심이 없다 해도 눈길이 가기 마련이다.
여기에 ‘월드 오브 워쉽’만의 독특한 게임 플레이도 재미를 더한다. 화려한 컨트롤보다는 미래를 내다보는 통찰력을 요구하기에, 더욱 폭넓은 전략을 구상하도록 요구한다. 눈으로 보기에는 다소 답답해 보이지만, 게임을 이해하기 시작하면 지루할 틈이 없다는 것을 알게 된다. 또한 배 자체가 빠른 건 아니기에 기자처럼 손이 느린 사람도 쉽게 즐길 수 있다.
▲ AI한테도 지던 기자가 이렇게 성장했다 (사진출처: 게임메카 촬영)
다만 아쉬운 점은 초보자를 위한 배려가 부족하다는 점이다. ‘월드 오브 워쉽’은 상당히 독특한 요소로 무장하고 있는 게임인데, 이를 제대로 설명하는 것을 보기 힘들다. 게임을 시작하면 각 국가의 1티어 군함만 제공하고 AI대전을 시키는데, 여기서 전투에서 도움이 될 법한 설명을 살펴볼 수 없다. 특히 ‘월드 오브 워쉽’에 필수적인 ‘예측 사격’ 등을 가르쳐 주지 않기 때문에, 초보 유저들은 게임의 재미를 느끼지 못할 수도 있다.
튜토리얼 대신 ‘예측 사격’과 같은 전술을 알려주는 ‘기본 훈련’ 영상이 있지만, 영상만으로는 필요한 부분을 배우기에 부족한 것이 사실이다. 결국 의도치 않은 진입장벽으로 인해 게임을 조사하고 공부할 준비가 되어 있는 마니아만 남게 될 우려가 있다. 모두가 더 쉽게 ‘월드 오브 워쉽’의 재미를 느낄 수 있도록 돕는 훌륭한 튜토리얼이 있다면, 게임을 즐기는 유저가 더욱 늘어날 것이다.
▲ 멋지다고 생각한다면 누구나 '제독'이 될 수 있다! (사진출처: 게임메카 촬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