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디言] 겜브릿지, 게임으로 재난의 상처 치유하다
2017.08.21 16:34 게임메카 김영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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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 세상이 미친 듯이 흔들리고 천둥 같은 굉음과 함께 건물들이 허물어진다. 몸도 가누기 힘든 혼란 속에서 수많은 이들이 잔해에 깔려 죽거나 다쳤고, 다행히 목숨을 건져도 당장 마실 물조차 없어 내일을 장담하지 못한다. 지난 2015년, 이웃나라 네팔에서 일어난 규모 7.9 대지진으로 약 2만 가까운 부상자가 나오고 660만 명에 달하는 이주민이 발생했다.
이 참사로 네팔의 경제는 십 년 이상 퇴보했으며 식량난은 세 배 이상 악화된 것으로 추산된다. 수려하던 자연 경관과 문화 유산도 파괴돼 관광 수입마저 기대하기 어려운 실정이다. 더욱 안타까운 점은 시간이 흐를수록 사람들의 관심이 사그라진다는 것. 2년이 지나도록 지진의 여파는 그대로임에도 네팔은 국제 사회에서 점차 잊혀져 갔다.
솔직히 기자도 네팔의 현황에 대하여 전혀 몰랐다. 2년 전 관련 뉴스를 접하긴 했지만 이내 머릿속에서 지워버렸다. 그러다 겜브릿지 스튜디오를 접했다. 네팔 대지진 생존자의 이야기를 게임화하여 판매 수익으로 피해 수복을 돕겠다는 당찬 소셜 벤처. 정말로 지난 4월 ‘애프터 데이즈 EP1: 신두팔촉’을 세상에 내놓은 도민석 대표와 대화를 나눴다.
▲ 사회적 게임 '애프터 데이즈' 선보인 겜브릿지 도민석 대표 (사진출처: 게임메카)
言 소셜 벤처 겜브릿지 스튜디오에 대해 소개해달라
도민석: 겜브릿지란 게임과 브릿지(다리)의 합성어로 ‘게임으로 세상을 잇자’는 의미를 담았다. 게임을 통해 세상에 도움이 되고자 2015년 창업했으며 지난 4월 첫 작품 ‘애프터 데이즈 EP1: 신두팔촉’를 출시했다. 그사이 다소 인원이 변경돼 현재는 4명이 함께하고 있다.
言 게임 개발로서 사회적 기업을 차리게 된 계기가 궁금하다
도민석: 대학생 시절 학업과 진로에 대한 고민으로 원형 탈모가 올 정도였다. 힘든 시기를 보내며 정신상담센터에서 자원 봉사도 했는데 이때 사람의 정신건강이 굉장히 중요하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래서 당시 선배들과 함께 직접 정신건강 관리 프로그램을 만들어보기도 했다.
이후 보다 깊은 이해를 위해 문화기술대학원에서 게임의 학술 효과를 극대화하는 기능성 게임을 공부했다. 창업을 결심한 것도 이즈음인데 아무래도 일반적인 게임사가 추구하는 영리적인 비즈니스 모델로는 원하는 바를 이룰 수 없다고 판단해 소셜 벤처로 가닥을 잡았다.
▲게임으로 세상에 도움이 되고자 소셜 벤처 게임사를 창업했다고 (사진출처: 겜브릿지)
言 그러면 우선 ‘애프터 데이즈’가 어떤 게임인지 얘기해달라
도민석: ‘애프터 데이즈’는 2년 전 발생한 네팔 대지진 생존자의 이야기를 바탕으로 재구성한 2D 횡스크롤 어드벤처게임이다. 전체적인 내용은 주인공 ‘아샤’가 살고 있는 지역 ‘신두팔촉’에 지진이 발생하면서, 이웃들을 구하고 함께 살아남으려 고군분투하는 과정을 그렸다.
가령 잔해를 뒤져 모은 소재로 들것을 만들어 부상자를 옮기거나 여기저기 돌아다니며 구호 물자를 돌리는 식이다. 총 6개 챕터로 구성되며 빠르면 1시간 정도로 엔딩을 볼 수 있다. 4월에 구글플레이로 출시했고 9월 내로 iOS 및 스팀(PC)까지 지원할 것이다.
▲ 네팔 대지진 생존자의 이야기 '애프터 데이즈 EP1: 신두팔촉' (사진출처: 겜브릿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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言 ‘EP1: 신두팔촉’이니 당연히 ‘EP2’도 나올 것 같다
도민석: 그렇다. ‘EP1: 신두팔촉’는 ‘애프터 데이즈’ 프롤로그에 해당한다. ‘EP2’에서는 연락이 끊긴 남편을 찾아 네팔의 수도 카투만두로 향하게 된다. ‘EP1’은 스튜디오 결성 후 첫 프로젝트이다 보니 의욕만 앞서 완성까지 우여곡절이 많았다. 짧은 플레이 분량에 너무 많은 메시지와 사실 정보를 우겨 넣었다. ‘EP2’는 전작에서 아쉬웠던 점을 보완한 작품이 될 것이다.
言 국내 사례도 있었을 텐데 네팔 대지진을 조명한 특별한 이유라도
도민석: 2014년 세월호 침몰 사고 당시에 한창 기능성 게임을 공부하고 있었다. 세상에 도움이 되겠다고 연구실에 들어앉았는데 눈 앞에 비극을 보면서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입장이 너무 무력하더라. 언젠가 사회적 공감대가 형성된다면 국내 사례도 꼭 게임화하고 싶지만, 아직은 우리 준비가 부족한데다 유가족의 마음을 헤아릴 필요도 있다.
네팔의 경우 예전부터 각종 다큐멘터리를 보며 내심 동경하던 나라였다. 막연히 언젠가 여행하고픈 곳이었는데 2015년 갑자기 참사가 터졌다. 네팔의 상징과도 같은 히말리야 산맥은 두 대륙판이 충돌하며 생긴 천혜의 지형이다. 즉 오늘날 네팔을 만든 대자연의 힘이 이제는 되려 네팔을 파괴한 셈이다. 이 아름다운 나라를 수복하기 위해 뭐라도 돕고 싶었다.
▲ 무참히 파괴된 네팔의 수도 카투만두, EP2의 배경이기도 하다 (사진출처: 겜브릿지)
言 네팔 대지진을 게임화하기 위해 어떤 조사 과정을 거쳤나
도민석: 외부에서 보도되는 정보만으로 게임을 만들기는 한계가 있다. 불과 몇 년 전 일어난 비극이기에 다루기가 더욱 조심스럽고. 그래서 현지 사정에 해박한 이들을 찾다가 ‘아름다운 커피’라는 공정무역단체를 만났다. 네팔을 비롯한 동남아, 중앙아시아에서 커피와 초콜릿 등을 수입해다 국내에 판매하며 유사시에는 재난 대응까지 한다.
이 ‘아름다운 커피’ 네팔 지부가 있는 곳이 바로 신두팔촉이다. 우리나라로 치면 경기도쯤 되는데 대지진 피해가 가장 극심했던 지역이다. 대부분 산간 마을이라 길이 끊기면 그대로 고립되고 커피 재배 외엔 달리 생계 수단도 없어 여파가 더욱 컸다. 당시에는 지진으로 통신 장비가 마비돼 일부 언론에서는 전원 사망이라 보도까지 했다.
‘아름다운 커피’ 네팔 지부의 도움을 받아 카트만두에서 일주일, 신두팔촉에서 3일 가량 조사를 진행했다. 실제 생존자를 만나 악몽 같던 상황을 전해 듣고 파괴된 현지 모습도 담아왔다. 2년이 지났건만 가옥이 복구되지 못해 여전히 다들 슬레이트를 엮어 만든 임시 거주지에서 생활하고 있더라. 학교도 5,000여 곳이 무너져 교육 환경도 매우 열악하다.
▲ 직접 대지진이 일어난 지역을 찾아 생존자들의 경험담을 들었다 (사진출처: 겜브릿지)
言 실제 참사를 게임으로 만들기가 어려운 점은 무엇인가
도민석: 게임 내외적으로 적잖은 어려움이 따른다. 외적으로는 사고 지역에 직접 찾아가 생존자를 만나고 신뢰를 얻기가 쉽지 않다. 사고의 충격으로 아직까지도 밤잠을 못 이루는 분들에게 어쩔 수 없이 아픈 기억을 상기시켜야 하니까. 그래서 미리 인터뷰를 위한 트레이닝도 받고 질문 하나를 선정하는데도 고심을 거듭했다.
또한 내적으로는 재미와 메시지의 균형을 맞추기가 힘들었다. 기능성 게임도 게임이면 게임답게 재미있어야 한다. 그래야 다른 작품과 경쟁해 인정 받고 후속작도 만들 수 있다. 우리의 목표인 네팔 상황을 알리기 위해서도 최대한 많은 유저가 게임을 즐겨줘야 한다. 그런데 ‘EP1’은 재미있으면서 교훈까지 줄만한 기획력이 부족했다.
실제 참사를 게임으로 만들면 함부로 유머코드나 재미요소를 삽입할 수 없다. 게임에 맞춰 각색을 하긴 해야겠는데 이것도 조심스러운 부분이고. ‘아름다운 커피’ 네팔 지부를 통해 생존자들에게 데모를 보여주고 피드백 받기를 수 차례 반복해 허락 받은 부분까지만 게임에 사용했다. 그래도 ‘EP2’에서는 조작감도 개선하고 액션성도 더해 조금 더 재미를 주고자 한다.
▲ 실화를 살리다 보니 재미와 메시지의 균형을 맞추기 어려웠다 (사진출처: 겜브릿지)
言 게임화 소식을 접한 네팔 생존자들의 반응은 어땠나
도민석: 당초 네팔에 갈 때 초기 버전을 들고 갔다. 도심에 사는 젊은 부유층이야 아이폰도 있고 게임을 즐겨 하는데, 신두팔촉 농부들은 아예 게임이 뭔지도 모른다. 그래서 게임의 개념을 설명하기가 너무 어려워 그냥 만화영화라고 했다. 만화는 만화인데 사람이 누르면 움직이는 그런 거. 생전 처음으로 게임을 해보며 신기하고 재미있어 하는 모습에 뿌듯했다.
설득 과정도 의외로 순탄했다. 자신들의 이야기를 콘텐츠로 만들어 세계에 알리는 일이라니 적극적으로 동참해주었다. 오히려 미화시키거나 하지 말고 있는 그대로 담아달라고 지진 당시 상황을 자세히 얘기해주고 더 잘 만들라고 부탁하기도 했다. 책임감이 들어 게임이 잘되면 학교에 컴퓨터도 지원하고 학용품도 사오겠다고 호언했다.
言 ‘애프터 데이즈’ 개발에 특별히 영감을 준 작품이 있나
도민석: 가장 큰 것은 역시 ‘발리언트 하츠’다. 1차 세계대전에 참전한 한 군인을 다룬 게임인데 전체적인 구성과 디자인 등 여러 면에서 ‘애프터 데이즈’의 토대가 됐다. 이 게임을 하며 네팔의 현 상황이 전쟁터와 비슷하다고 생각한 것이 직접적인 개발 단초가 되기도 했고.
▲ '애프터 데이즈'의 토대가 된 유비소프트 '발리언트 하츠' (사진출처: 게임 웹사이트)
다음으로 유고슬라비아 내전을 다룬 ‘디스 워 오브 마인’. 사실 ‘애프터 데이즈’ 개발 초기에는 생존자가 아닌 구호단체 의사가 주인공이었다. 유저가 그러하듯 제3자의 시선으로 참상을 바라보자는 취지였는데 갈수록 다들 의사에만 몰입해 정작 네팔은 조명 받지 못하더라.
‘디스 워 오브 마인’을 보면 유저 스스로가 내전의 한복판에서 살아남기 위해 온갖 경험을 하며 게임에 몰입하지 않나. 그래서 기획을 전면 수정한 끝에 실제 생존자인 먼두 타파(커피조합 코디네이터)씨를 모델로 주인공 ‘아샤’가 탄생했다.
아울러 ‘디스 워 오브 마인’은 우리의 비전과도 맞닿아있다. DLC ‘워 차일드 채리티’을 만들어 판매 수익 전체를 전쟁고아를 돌보는 NGO에 기부했다. 이런 방식으로 게임이 사회 문제를 개선하는데 실질적인 도움이 될 수 있다고 믿는다.
▲ 개발 초기에는 참사에 직면한 구호단체 의사가 주인공이었다 (사진출처: 겜브릿지)
言 그러면 ‘애프터 데이즈’ 판매 수익도 네팔에 도움이 되나
도민석: 물론이다. 그것을 위해 만든 게임이니까. ‘애프터 데이즈’ 매출 20%가 ‘아름다운 커피’를 통해 신두팔촉 지역 복구사업에 쓰인다. 다만 판매량이 기대보다 저조해서 20%라고 해봐야 절대적인 액수가 부족한 지경이라, 현재는 전액 기부를 고려 중이다. 이번 프로젝트를 의미 있게 마무리해야 그 다음도 바라볼 수 있다고 생각한다.
言 ‘애프터 데이즈 EP2: 카투만두’ 외에 차기작도 준비 중인가
도민석: 현재 도시 슬럼화 문제를 다루는 세계적인 NGO ‘헤비타트’와 함께 기획 중인 게임이 있다. 3D 도시개발 시뮬레이션 장르가 될 듯 하고 스팀을 통해 출시할 계획이다. ‘아샤’가 해외에서 인기가 많아 ‘EP2: 카투만두’ 이전에 그녀를 활용한 작은 게임이 몇 개 나올 수도 있다. 어찌됐던 ‘EP2: 카투만두’는 만전을 기하여 전작의 실수를 반복하지 않는 것이 목표다.
▲ 게임 판매 수익은 '아름다운 커피' 통해 신두팔촉 복구사업에 쓰인다 (사진출처: 겜브릿지)
言 앞으로도 이러한 사회적 게임을 계속 개발할 계획인가
도민석: 시리아 난민이나 북한 문제처럼 그 나라가 자력으로 해결하기 벅찬 문제를 다루고자 한다. 다만 스튜디오 단독이 아니라 여러 전문성 있는 NGO와 협력해 정말 도움이 되는 게임을 만들겠다. 이 과정에서 ‘국경 없는 이사회’처럼 실존하는 영웅들의 희생정신도 이야기하고 싶고. 이런 게임이 자라나는 청소년에게 긍정적인 영향을 끼친다면 더 바랄 나위 없겠지.
해외에는 이렇게 사회를 변화시키고자 하는 게임만을 모아 소개하는 ‘게임즈 포 체인지’ 컨퍼런스가 있다. 궁극적인 목표는 우리가 더 잘 돼서 한국의 ‘게임즈 포 체인지’를 여는 거다. 홀로 변화를 추구하는 데는 분명 한계가 있다. 청소년들이 사회적 게임에 관심을 갖고 이담에 더 좋은 작품을 만들어준다면 사회가 올바른 방향으로 나아가지 않겠나.
▲ 청소년들이 사회적 게임에 관심을 갖도록 노력하겠다는 도민석 대표 (사진출처: 게임메카)
言 사회적 기업으로서 게임 개발을 꿈꾸는 이들에게 조언한다면
도민석: 모쪼록 건강한 ‘멘탈’을 가졌으면 좋겠다. 이 일을 하며 욕을 굉장히 많이 들었다. ‘그냥 너네 개발비를 네팔에 기부하고 접어라’거나 ‘도움 받아야 할 것들이 누굴 돕는다고 난리냐’거나. 이런 독설은 받아들이기에 따라 거름이 되기도 하고 그냥 독이 돼버리기도 한다. 자신의 비전을 믿고 타인의 비난을 받아넘길 수 있는 아량이 필요하다.
또한 시장에서 생존하지 못하면 좋은 일도 할 수 없다. 틈틈이 외주 작업도 수행하고 정부 지원과 유저 후원도 적극적으로 알아보라. ‘애프터 데이즈’를 완성할 수 있었던 가장 큰 동력은 한국사회적기업진흥원에서 주관하는 육성산업에 선정됐기 때문이다. 지금 사무실도 진흥원에서 운영하는 소셜캠퍼스에 무상 입주해있다.
크라우드 펀딩은 그걸로 개발비를 번다기 보단 출시 전 사전 마케팅 차원에서 활용하는 것이 좋다. 적어도 알파, 베타 빌드까지 만들어 보여주지 않으면 되려 역효과가 날 수 있다. ‘애프터 데이즈’는 텀블벅과 와디즈 펀딩에 모두 성공했는데 목표액은 100만 원 전후였다. 금액이 문제가 아니라 유저들과 만나 프로젝트를 소개하고 인정받았다는 점이 중요하다.
그래도 사회적 게임이 마케팅 비용은 적게 드는 편이다. 취지가 좋고 이런 일을 하는 게임사도 드물기 때문에 각종 기관이나 언론에서 적극적으로 도와주더라. 덕분에 이렇게 게임메카 독자 여러분과도 인사하게 됐고. 이처럼 쉽지 않은 길이지만 도움의 손길이 있으니, 더 많은 이들이 사회적 게임 개발에 도전하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