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디言] 둘이서 함께 하는 VR 동굴 탐험, 로스트 케이브
2018.01.26 10:20 게임메카 김영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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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규모 독립 개발은 제한되고 촉박하며 당초 계획과는 다른 방향으로 튄다고들 한다. 특히 그것이 VR(Virtual Reality, 가상현실)과 같은 미개척지라면 더욱 그렇다. 어딘가 있을 보물을 찾아 미지의 동굴 속으로 내딛는 한 발짝처럼 늘 위험과 기회를 동반한다.
산배 오범수 대표의 1인 개발작 ‘로스트 케이브’가 바로 그런 게임이다. 국내 최초로 애플워치용 게임을 선보이고, 제한된 시야와 음향으로 공포감을 극대화한 ‘딤 라이트’로 국내외 찬사를 받기도 했던 오범수 대표는 새로운 도전으로 VR을 선택했다.
동굴을 헤매는 두 주인공의 이야기를 그린 ‘로스트 케이브’는 일회성 체험에 그치는 것이 아닌 제대로 된 3인칭 어드벤처를 표방하고 있다. 독특한 콘셉트와 탄탄한 만듦새를 인정받아 제5회 게임창조오디션에서 준우승을 차지하기도 했다.
플랫폼 원년이라 일컬어지던 2016년이 한참 지나고도 VR은 여전히 걸음마 단계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이런 가운데 ‘로스트 케이브’ 출시를 목전에 둔 오범수 대표는 시장을 어떻게 바라보고 있을까? 경기창조경제혁신센터에서 그를 만나 자세한 얘기를 들었다.
▲ VR 어드벤처 '로스트 케이브' 개발한 산배 오범수 대표 (사진: 게임메카 촬영)
言 반갑다. 우선 자기 소개를 부탁한다
오범수: ‘로스트 케이브’를 개발 중인 산배 오범수다. 예전에는 조그만 개발사에서 프로그래머로 일했고 이후 디렉터를 맡기도 했다. 2015년 즈음 회사가 어려워져 퇴사했는데, 구직을 하기보단 내 게임을 직접 만들고 싶었다. 당시 애플워치 발매에 맞춰 국내 최초로 게임을 선보였지만 기기 보급이 기대 같지가 않더라. 진짜 돈 생각하지 말고 딱 하나만 더 만들고 구직하자 결정했는데 다행히 ‘딤라이트’가 잘 됐다. 그 덕에 여기까지 올 수 있었고.
言 구직을 못할 실력이 아닌데, 독립 개발로 선회한 계기가 있나
오범수: 독립 개발자라면 다들 비슷하지 않나. 회사 생활하며 가장 많이 생각하는 게 ‘이건 내가 만들고 싶은 게임이 아니야’란 거다. 특히 작은 개발사일수록 소위 ‘대세’를 베껴 만드는 경우가 많으니까. 구직을 할 땐 하더라도 일단은 스스로 좋아하는 게임을 만들고 싶었다.
言 그런데 사명이 굉장히 독특하다. 산배나무 열매에서 따왔나
오범수: …산배나무가 있다는 걸 방금 알았다. 그게 아니라 ‘산으로 가는 배’란 뜻이다. 지금은 여건상 혼자지만 언젠가 팀원들이 늘어났을 때, 누구나 분야에 상관없이 자기 의견을 개진하고 그것을 적극 수용하는 수평적인 조직을 만들고 싶다. 이런걸 가리켜 보통 ‘사공이 많으면 배가 산으로 간다’고들 하니까. 원래는 나쁜 의미로 쓰이긴 하지만(웃음).
言 본격적으로 ‘로스트 케이브’에 대해 얘기해보자
오범수: ‘로스트 케이브’는 두 명의 캐릭터를 중심으로 진행되는 VR게임이다. 고고학자인 주인공 일행은 고문서를 통해 전설 속 지저(地底)민족에 대해 알게 되고, 숨겨진 보물을 찾아 잊혀진 동굴을 탐험한다. 전체적인 구성은 스테이지를 굽어보는 3인칭 시점과 각 주인공의 1인칭 시점을 오가며 퍼즐을 풀고 스토리를 진행하는 어드벤처 장르다.
▲ 두 주인공의 흥미진진한 동굴 탐험을 그린 '로스트 케이브' (사진출처: 산배)
言 두 캐릭터와 세 가지 시점을 오가는 퍼즐이 독특하다
오범수: 가령 둘이 길을 가다 낙석으로 헤어지게 됐을 때 한 명이 아래로 돌아가면 다른 쪽은 간단한 조작이나 퍼즐로 사다리를 내려주거나 하는 식이다. 또한 3인칭 시점으로만 볼 수 있는 영역도 있어서 시점을 바꿔가며 주인공들을 이끌어주게 된다.
사실 캐릭터를 둘로 나눈 것은 아무래도 한 명보다는 장면 연출이 훨씬 수월하기 때문이다. 1인 개발이다 보니 이런 작은 부분까지도 신경 쓰지 않을 수 없다. 그런데 막상 주인공이 둘이니 다들 두 사람의 특별한 상호작용이나 협동을 기대하더라. 아무래도 실수였던 것 같다(웃음).
言 다양한 배경을 고려했을 텐데 최종적으로 동굴을 선택했다
오범수: ‘로스트 케이브’가 동굴을 내세운 데는 두 가지 이유가 있다. 하나는 VR 효과가 극대화되는 경험이 압도적인 무언가를 봤을 때라는 것. 이런 위압감을 주려면 심해나 동굴이 적당한데, 자료 조사를 하다 보니 내가 심해공포증이더라. 이쪽은 도저히 힘들어서 동굴로 정했다.
또 하나는 프로그래머 출신이다 보니 예쁘고 풍부한 배경 묘사가 어렵다는 현실적인 장벽이다. ‘딤라이트’를 개발하면서 어두운 가운데 빛을 집중적으로 쬐어서 신비한 느낌을 살릴 수 있다는 것을 알았다. 이런 방식을 가장 잘 활용할 수 있는 공간 역시 동굴이라 판단했다.
▲ VR이 주는 압도적인 현장감을 살리고자 동굴을 선택했다 (사진출처: 산배)
言 과거에는 3인칭 게임으로만 소개됐는데 빌드를 완전히 바꿨다
오범수: 정확히는 여태껏 빌드를 네 번 갈아엎었다. VR은 시장 변화가 굉장히 빠르다. 오큘러스가 처음 나올 때는 모션 컨트롤러가 없었고, 3인칭 게임을 Xbox 패드로 플레이하는 것이 주류였다. 3인칭 VR게임은 마치 눈 앞에 피규어가 뛰어다니는 느낌인데 그 나름대로 충분한 매력이 있다. 또한 멀미 문제에서 자유롭다는 이점이 크다.
그런데 ‘로스트 케이브’를 만드는 와중에 텔레포트 방식이 나오고 그것도 모자라 그냥 직접 움직이는 수준에 이르렀다. VR을 오래 즐긴 코어 유저들은 더 이상 멀미로 크게 고생하진 않는다. 그래서 ‘로스트 케이브’ 또한 1인칭 시점을 부분적으로 도입했다가 현재는 세 가지 시점을 자유롭게 오가며 플레이하는 단계까지 발전시켰다.
言 그러면 VR게임의 주된 문제인 멀미와 시선유도는 해결책을 찾았나
오범수: 1인칭 시점은 양팔을 흔들며 전진하는 ‘스윙암’ 기술을 적용시켰는데 멀미가 거의 느껴지지 않는다는 피드백을 받아서 아주 만족스럽다. 3인칭 시점에선 선 자리에서 스테이지 전체를 볼 수 있도록 구성해 유저의 움직임을 최소화했다.
시선유도의 경우 몇 가지 방법이 있다. 첫 째는 사운드. 오른쪽에서 ‘쾅!’ 소리가 나면 30% 정도가 돌아본다. 물건이 날아오거나 연기가 피어나면 또 30% 정도가 보고. 그래도 안되면 빛으로 유도하거나 주인공이 그쪽을 쳐다보도록 한다. 사람은 누가 뭘 쳐다보면 따라 하기 마련이다. ‘로스트 케이브’는 동굴이란 특성상 특정 부분만 밝기 때문에 시선이 이탈할 걱정은 적은 편이다.
言 애초에 VR이란 전위적인 플랫폼에 도전한 배경도 궁금하다
오범수: ‘딤 라이트’ 들고 BIC에 갔다가 오큘러스 관계자를 만난 것이 시작이었다. 기어 VR로 포팅 제안을 받아 작업을 시작했는데, 이게 VR 개발이 너무 재미있는 거다. 결국 PC로 제대로 된 게임을 만들고 싶어 오큘러스 리프트 DK2를 구했다. 처음에는 간소하게 동굴 탐험하는 6개월짜리 프로젝트였는데 점점 살이 붙더니 총 4부작 대서사시가 돼버렸고. 참고로 ‘로스트 케이브’는 2편에 해당한다.
▲ 전작 '딤 라이트' 포팅이 계기가 돼 VR게임에 빠져들었다고 (사진출처: 산배)
言 VR기기 보급이 당초 기대보다 상당히 더디다
오범수: VR게임이 안 팔리는 게 보급률 때문만은 아닐 것이다. 처음 스팀VR이 열렸을 때 플랫폼 홀더가 품질 관리를 하지 않아 온갖 저급품이 넘쳐났다. 결국 유저들 사이에서 확실히 검증되지 않으면 거들떠도 보지 않는 분위기가 형성됐고, 여러 커뮤니티를 돌며 게임을 추천해달라고 해봐도 정말 유명한 게임 몇 개밖에 안 나오는 상황이 됐다.
스팀스파이로 지난해 나온 VR게임을 전부 살펴보니 유명 IP를 썼거나 검증된 개발사가 아닌데 1만 다운로드를 넘긴 것은 ‘곤(GORN)’ 하나였다. 직접 해보면 정말 괜찮은 게임도 3~4,000개 나가면 많이 팔렸단 수준. 다만 이제는 착용성과 가격이 개선된 후계기도 나오고 저질게임도 줄어드는 추세라 점차 나아지리라 본다. 그래도 1년 정도는 더 어렵지 않을까.
言 그러면 이 다음 작품도 VR게임으로 만들 계획인가
오범수: VR게임 한번 손댄 개발자 중에 또 만들겠다는 사람이 없다(웃음). 사실 개인적으로 ‘로스트 케이브’ 속편을 내고 싶다. 이번에 2년 정도 버틸 자금이 들어오면 VR게임을 만들고, 애매하게 벌면 모바일로 갈아타고, 아예 땡전 한 푼도 못 건지면 구직을 해야겠지.
▲ VR 속편이냐 모바일이냐 구직이냐 그것이 문제로다 (사진: 게임메카 촬영)
言 ‘로스트 케이브’ 오픈스펙은 어느 정도이며 언제쯤 즐길 수 있을까
오범수: 13~15개 스테이지로 이루어지며 2시간 반 정도면 엔딩을 볼 수 있다. 아마 VR이 익숙하지 않다면 그보다 더 걸릴지도. 2월 내로 개발을 완료하고 3월 말이나 4월 초까지는 출시하려 한다. 웬만하면 3월 내에 선보이는 것이 목표다.
言 매년 BIC에 참가하고 있는데 기억에 남는 피드백이 있다면
오범수: 특별히 기억에 남는다기 보다는 모든 피드백이 중요하다. 혼자 개발하다 보면 어떤 부분이 불편하거나 재미가 없는데 ‘내가 너무 많이 해서 그런가?’ 싶을 때가 있다. 그런데 이런 행사에서 시연을 해보면 다들 그걸 지적한다. 세상에 내가 너무 많이 해서~란 것은 없더라.
言 개발 과정에서 생긴 재미있는 에피소드도 소개해달라
오범수: VR 전문가 ‘멀미왕’에게 리뷰 카피를 보낸 적이 있는데 아직 여주인공의 이름이 정해지지 않은 상태였다. 그런데 리뷰에서 얘를 자꾸 '꽃님'이라고 해서 나도 덩달아 그렇게 불렀는데, 나중에 진짜 이름을 지을 때도 동양적인 느낌을 살려 ‘연두’로 정했다. 문제는 그 즈음 영화 ‘가디언즈 오브 갤럭시’에서 ‘욘두’가 나오는 바람에… 서양 유저들이 이걸 어떻게 받아들일지 참.
▲ 문제의 '꽃님' 영상, 다만 갈아엎기 이전 빌드다 (영상출처: 멀미왕 유튜브)
言 그간 느낀 소규모 개발의 일장일단을 집어달라
오범수: 장점이야 물론 자기가 하고 싶은걸 한다는 것. 단점은 사람이 부족해서 하고 싶은걸 할 수 없다는 것(웃음). 그래서 소규모 개발은 아이디어가 정말 많아야 한다. 기획을 한 20개 마련하면 그 중 가용인원으로 개발 가능한 게 두어 개 남는다.
言 그럼에도 소규모 개발에 뛰어드는 이들에게 조언을 부탁한다
오범수: 최소한 게임 개발이 게임을 하는 것만큼 재미있어야 한다. 돈이 안 될 확률이 높고 희망으로 먹고 사는 일이라, 재미라도 있어야 버틴다. 그리고 돈이 전혀 없는 상황에서 게임 개발은 힘들다. 가능하면 최대한 여유자금을 모으고 도전하기 바란다. 주머니가 궁하면 마음이 피폐해진다. 그리고 이왕 소규모 개발을 하기로 했으면 최선을 다하면 좋겠다.
첫 작품이니까 가볍게 호흡 맞춰보는 용도로 만든다거나 이걸로 돈을 벌고 나중에 하고 싶은걸 하자는 경우가 있는데 그러면 안 된다. 대부분 그게 여러분의 마지막 작품이 된다. 3개월이면 만들 수 있을 것 같지만 6개월 이상 걸린다. 속편을 영영 내지 못하는 팀이 굉장히 많다. 그럴 바에야 어디 가서 당당히 보여줄 수 있는 게임을 만드는 게 좋지 않나.
경력이 없다면 우선 회사에 다녀보라. 아무것도 모르고 들어올 만큼 호락호락한 바닥이 아니다. 처음에는 다들 ‘혼자서 이 정도면 잘 만들었잖아’라고 안도하는데 유저들은 개발자가 몇 명인지 절대 신경 쓰지 않는다. 개발조직이 어떻게 돌아가고 어느 정도 퀄리티를 내는지, 그런 게임으로도 시장에서 어떤 취급을 당하는지 직접 겪어봐야 한다.
言 좋은 얘기다. 끝으로 산배가 추구하는 ‘인디’란 무엇인지 알려달라
오범수: 인디란 결과가 아닌 과정을 뜻하는 것이라 본다. 흔히 대중의 기호나 매출 등 작품 외적인 부분에 휘둘리지 않고 스스로 추구하는 게임을 만드는 것을 인디라 하지 않나. 게임 화면이 이른바 ‘인디스럽다’고 인디가 아니다. 중요한 것은 개발자가 지닌 의도와 마음가짐이다. 즉 ‘내 게임은 인디게임이다’가 아니라 ‘나는 인디개발자다’가 맞는 것이겠지.
▲ 인디게임은 없고 인디개발자만 있다는 오범수 대표 (사진: 게임메카 촬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