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인방송 단골 게임들, 사랑받는 비결 있다
2018.04.06 18:03 게임메카 이재오 기자
▲ 최근 개인방송 진행자들 사이에서 유행하는 '골핑 오버 잇' (사진: 게임메카 촬영)
'쾅!' 화면 너머에서 키보드 내려치는 소리가 들려온다. 10시간째 계속되는 실패에 시청자도 개인방송 진행자도 지쳐있는 상태. 그러나 진행자는 포기하지 않는다. 아니 포기할 수 없다. 켠 김에 왕까지 하겠다고 시청자들과 약속했기 때문이다. 시청자들의 조롱 섞인 응원에 힘입어 이를 악물고 다시 도전한다. 그 후 네시간 뒤 들려오는 환호 소리. 장장 14시간 동안의 사투 끝에 드디어 클리어에 성공했다. 클리어한 사람도 울고 시청자도 울었다.
요즘 게임을 주제로 한 개인방송에서 심심찮게 볼 수 있는 장면이다. 인터넷 방송계에서 인기 반열에 올라선 게임 대부분이 위와 같은 장면을 연출한다. 대다수의 팬은 자신이 좋아하는 개인방송 진행자가 게임을 플레이하며 괴로워하기를 원한다. 그래서 보다 이상하고 어려운 게임을 계속해서 진행자에게 부탁한다.
물론 자신이 선호하는 진행자가 고생 끝에 게임을 클리어하는 모습을 보고 싶어 하는 시청자도 많다. 게임을 하면서 힘들어하는 개인방송 진행자를 응원하고 클리어했을 땐 같이 기뻐하는 사람들도 적지 않다. 직접 하기엔 부담스러운 게임의 플레이 실황을 보기 위해서 방송을 보는 시청자들도 있다. 이렇게 시청자는 물론 개인방송 진행자에게도 인기 있는 매운(?!) 게임들. 그 매력은 대체 어디서 뿜어져 나오는 걸까?
쏘고 달리고 피하자! 간단하고 단순한 게임성
많은 개인방송 진행자에게 사랑받는 게임이 되기 위해선 일단 쉽고 단순한 게임성을 갖춰야 한다. 게임을 전문으로 하는 개인방송 진행자는 다양한 게임을 선보여야 한다. 출시된지 얼마 안됐거나 그때 그때 유행하는 게임을 빠른 속도로 이해하고 플레이해야 하므로 처음 게임을 접하는 사람들도 어렵지 않을 만큼 게임 전체의 동기와 스토리, 플레이 방식이 간단명료해야 한다. 보는 사람들 입장에서도 마찬가지다. 직접 플레이할 수 없는 환경에 놓인 시청자들이 게임을 재빨리 이해하기 위해선 게임 내에 복잡한 요소가 산재해서는 곤란하다.
▲ 런앤건 장르의 대표 주자 '록맨 시리즈' (사진: 게임메카 촬영)
단순한 게임성과는 별개로 적절한 난이도를 갖추고 있어야 한다. 보기에도 단순한 게임이 쉽기까지 하다면 하는 사람이건 보는 사람이건 누구나 금방 지루함을 느낄 수밖에 없다. 많은 도전횟수를 자랑할 정도의 난이도를 갖추고 있다면 적당한 긴장감을 유발함과 동시에 성취감을 느끼기에도 좋다. 물론 머리를 쥐어뜯을 만큼 어려운 난이도의 게임도 나름대로 방송에 어울린다. 개인방송 진행자와 시청자들의 끈기를 시험할 수 있다는 점에서 색다른 재미를 불러올 수 있기 때문이다.
플랫포머 게임이나 런앤건 스타일의 장르가 대체로 이에 속한다. 한때 종합 게임 콘텐츠를 외쳤던 개인방송 진행자라면 당연히 한 번씩 거쳐 갔을 '록맨 시리즈'나 그 정신을 계승한 '컵헤드(Cuphead)'같은 게임이 수많은 개인방송에서 플레이됐던 이유는 거기에 있다. 직관적인 게임 방식, 아기자기한 그래픽과 더불어 도전 욕구를 불러일으키는 난이도가 결합돼 플레이어는 물론이고 방송을 시청하는 사람들에게서도 호응을 이끌어내는데 성공했다.
▲ 보기엔 쉬워보이지만 실제로 플레이 해보면 머리를 쥐어뜯게 만드는 '컵헤드' (사진출처: 게임 공식 웹사이트)
'태초마을 하이~!' 정신줄 놓치면 어느새 처음으로
개인방송 진행자들 사이에서 인기 있는 게임의 공식 중 가장 정형화된 공통점은 언제든 맨 처음으로 돌아갈 수 있다는 점이다. 로그라이크 게임의 전통적인 특징과 닮아있다. 지금까지 열심히 노력하고 고생해서 이뤄낸 성과물이 한 번의 실수로 물거품이 되는 것이다. '다시 시작하기'라는 요소를 적극적으로 활용해 플레이어로 하여금 좌절감을 유발한다는 점이 개인방송의 특성과 잘 맞물린 셈이다.
▲ 태초마을 하이~! 절대 긴장을 놓아선 안되는 '게팅 오버 잇' (사진출처: 게임 공식 웹사이트)
트위치 스트리머로 인정받기 위해선 반드시 클리어해야 하는 게임으로 유명한 '게팅 오버 잇(Getting Over It with Bennett Foddy)'이나 '앙빅(Anvik)', '던그리드(Dungreed)' 등이 그 대표적인 예라고 볼 수 있다. 특히 '게팅 오버 잇'은 해당 방면에서 제일 악랄하기로 유명하다. 난해한 조작감과 절묘한 맵구성 덕분에 잠깐만 실수해도 '태초마을'이라 불리는 시작점으로 돌아오게 된다. 안정권이라고 생각되는 부분조차도 안심할 수 없다. 언제든 태초마을로 돌아올 수 있다는 긴장감을 유지하며 플레이해야 하는 게임이다.
▲ 매번 적들이 무작위로 배치되며, 한 스테이지에 오래 있으면 주인공이 늙어서 죽는 '앙빅' (사진출처: 게임 공식 웹사이트)
이런 부분은 시청자에게 개인방송 진행자를 놀릴 수 있는 요소와 응원할 수 있는 요소를 동시에 제공한다는 장점으로 작용한다. 개인방송의 핵심 시청자들은 언제나 괴로워하는 모습을 즐기는 시청자와 한없이 응원하는 시청자로 나뉜다. 만약 게임이 잘 안 풀려 다시금 시작점으로 돌아온다면 그것만으로 즐거워하는 시청자가 있고, 힘을 내서 좀 전보다 더 좋은 기록을 낸다면 또 그것만으로 즐거워하는 시청자가 있다. 그런 의미에서 '다시 시작하기' 요소가 적극적으로 가미된 게임은 두 가지 성향의 시청자들을 모두 만족시킬 수 있어 인터넷 개인방송을 즐기는 사람들에게 선호되는 경향이 있다.
▲ 런앤건 형식에 로그라이크를 첨가한 '던그리드' (사진출처: 게임 공식 웹사이트)
어제는 못 깼지만, 오늘은 슈퍼플레이! 고무줄 같은 플레이 타임
개인방송에서 플레이하기 적합한 게임은 대체로 전체 플레이 타임을 탄력적으로 조절할 수 있어야 한다. 유저들의 실력만 뒷받침된다면 순식간에 게임을 클리어하는 것도 가능하지만 그렇지 않은 경우는 10시간을 넘게 플레이해도 초반 구간에 머무를 수 있는 게임들이 아무래도 개인방송 진행자들에게 인기 있을 수밖에 없다. 그들의 게임 실력은 천차만별이다. 그만큼 실력에 따라 진행되는 게임의 양상도 천차만별이다. 이를 적극적으로 활용해 콘텐츠 타임라인을 자유롭게 구성할 수 있다는 부분은 개인방송 진행자에겐 큰 이점으로 작용한다.
▲ '게팅 오버 잇'의 세계기록은 1분 37초다 (사진출처: 게임 공식 웹사이트)
이를테면 '게팅 오버 잇'이나 그 팬 게임인 '골핑 오버 잇(Golfing Over It)'같은 게임은 조작에 익숙지 않은 초심자가 플레이할 경우 10시간이 넘게 걸리지만 반대로 조금만 능숙해지면 30분 안에도 충분히 클리어할 수 있다. 고수의 경우 5분 만에 클리어하는 것도 가능하다. '컵헤드'도 마찬가지다. 당장 유튜브를 검색하면 오랜 시간을 걸려 클리어하는 사람과 화려한 플레이로 순식간에 클리어하는 타임 어택 영상이 공존하는 것을 볼 수 있다. 같은 게임이라도 각자의 실력과 취향에 맞춰서 콘텐츠를 구성할 수 있는 것이다.
보는 것도 게임을 즐기는 또 다른 방법
사실 상기한 게임들이 많은 사람에게 플레이되는 건 아니다. 보기에는 재밌을지 몰라도 직접 하기엔 녹록지 않은 게임들이 대다수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개인방송 진행자들에게서 지속적으로 플레이되며 유례없는 인기와 유저를 얻는 게임도 적지 않다. 그런 의미에서 지금까지 열거한 조건들은 많은 사람들한테서 널리 사랑받을 수 있는 게임을 만들기 위한 가이드라인은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