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루마불 이긴 '모두의마블', 판결문을 통해 살펴본 승리 이유
2018.05.10 18:15 게임메카 김미희 기자
▲ 모바일 '부루마불'(좌)와 '모두의마블'(우) 비교 이미지 (사진제공: 아이피플스)
‘부루마불’과 ‘모두의마블’은 얼핏 보면 비슷하다. 주사위를 굴려서 나온 수대로 말을 움직여, 땅을 먹고 건물을 올려 통행세를 받는 전반적인 진행방식이 유사하다. 그리고 이 둘은 전쟁 중이다. ‘부루마불’ IP를 가지고 있는 국내 모바일게임사 아이피플스는 지난 2016년에 넷마블을 고소했다. 쟁점은 두 가지다. 첫 번째는 ‘모두의마블’이 ‘부루마불’ 저작권을 침해했다는 것, 두 번째는 넷마블이 ‘모두의마블’을 ‘부루마불’을 원작으로 한 게임처럼 홍보한 것이다.
하지만 법정에서 ‘모두의마블’은 ‘부루마불’을 두 번이나 이겼다. 작년에 나온 1심에서도 법원은 넷마블의 손을 들어줬으며, 올해 4월에 나온 2심에서도 넷마블이 이겼다. 왜 이러한 판결이 나온 것일까? 게임메카는 서울고등법원을 통해 2심 판결문을 받아 그 이유를 자세히 살펴봤다.
저작권법으로 보호받을 수 있는 범위는 생각보다 좁았다
일단 ‘부루마불’과 ‘모두의마블’은 비슷하다. 법원 역시 이 점은 인정했다. 땅과 건물을 거래하는 것 외에도 ▲네모나게 생긴 게임판의 네 변을 따라서 땅을 상징하는 네모난 칸을 일렬로 배치된 것 ▲주사위를 던져서 나온 수만큼 칸 수를 이동하는 것 ▲땅을 상징하는 네모 칸에 도시 이름과 금액이 적힌 방식 ▲게임 시작 전에 은행에서 돈을 받는 것 등이 유사하다.
쟁점은 앞서 이야기한 것이 ‘부루마불’에만 있는 고유한 특성이냐는 것이다. 법원이 초점을 맞춘 게임은 1935년에 출시된 ‘모노폴리’다. ‘부루마불’ 역시 이 ‘모노폴리’에 있는 규칙을 가져오거나, 조금 수정해서 사용한 것이 대부분이라서 ‘부루마불’ 개발사에 저작권이 있다고 볼 수 없다는 것이다.
▲ '부루마불' 역시 이전에 출시된 부동산 거래 게임과 유사한 규칙을 지녔다 (자료제공: 서울고등법원)
실제로 판결문에는 “앞선 모든 구성은 지주놀이, 모노폴리, 안티 모노폴리에 이미 적용된 것이다. 특히 ‘모노폴리’는 큰 상업적 성공을 거두며 1935년에 출시된 후 약 80년 간 2,500여 종이 넘는 다양한 게임 형태로 제작됐고, 국어를 포함한 43개 언어로 번역되어 우리나라를 포함한 111개국에 판매됐다”라며 “부루마불을 개발한 A(1심 증인 중 한 명)도 ‘모노폴리를 보고 아이디어를 얻었다’고 증언한 바 있다”라고 말했다.
이는 ‘부루마불’의 자세한 내용을 살펴봐도 그러하다. ▲땅을 상징하는 네모 칸 위에 건물을 놓을 공간을 구분해 놓는 것 ▲게임 속 땅을 여러 종류로 나누고 각기 다른 용도로 쓰는 것 ▲무인도, 우주여행, 황금열쇠와 같은 특수 지역과 여기에 적용된 게임 규칙 ▲별장에서 시작해 랜드마크까지 가는 단계적인 건물 건설 방식도 ‘모노폴리’에 있던 규칙을 고친 것이라 ‘부루마불’만의 특징이라 판단하기 어렵다는 것이다.
▲ 건물을 올려놓을 곳을 구분해놓는 것도 '모노폴리'에서 나왔던 방식이다 (자료제공: 서울고등법원)
게임 규칙은 아이디어, 저작권법으로는 보호하지 않는다
하지만 ‘부루마불’ 제작사가 재미를 높이기 위해 새로운 규칙을 넣은 부분도 분명히 있다. 이 부분은 보호받을 수 없는 것일까? 이 역시 저작권 보호 대상이 아니라는 것이 법원의 입장이다. 기본적으로 게임 규칙은 저작권으로 보호받기 어렵다.
‘부루마불’로 예를 들면 주사위를 던져 같은 숫자가 나오면 한 번 더 주사위를 던질 수 있는 ‘더블’이 있다. 하지만 법원은 이러한 규칙은 개발사만의 독특한 창의성이 들어갔다기보다 추상적인 규칙에 불과하다고 보았다. 게임 규칙이나 진행방식은 창작자가 만들어낸 ‘저작물’이 아니라 아이디어이며 이 부분은 저작권법으로 보호하지 않는다. 여기에 아이디어는 비록 독창적이라도 누구나 이용할 수 있는 ‘공공의 영역’이라는 설명이 덧붙었다.
▲ 여기에서 저작권이 인정된 부분은 왼쪽에 있는 '부루마불 2008' '더블'에 사용한 글씨체와 글씨 색, 캐릭터 외에는 없다 (자료제공: 서울고등법원)
게임판에 넣은 도시 이름을 결정한 부분도 비슷한 맥락이다. 아이피플스가 제출한 증거에 따르면 ‘부루마불’과 ‘모두의마불’은 게임판에 들어간 도시 이름 중 50%가 동일하다. 하지만 법원은 도시 이름 자체는 저작권으로 보호하지 않으며, 사용한 도시가 모두 유명한 곳이라 지명이 절반 정도 겹친다고 두 게임이 비슷하다고 인정하기 어렵다고 판결했다.
저작권으로 보호받는 부분은 이름과 이미지뿐
그렇다면 법원이 ‘부루마불’에서 저작권이 있다고 판단한 부분은 어디일까? 요악하면 이름과 이미지다. ‘무인도’, ‘우주여행’, ‘황금열쇠’와 같은 특수 지형을 부르는 이름과 여기에 넣은 그림, ‘부루마불 2008’에서 ‘더블’을 보여줄 때 사용한 독특한 글씨체와 캐릭터, ‘부루마불’ 모바일에 도입된 주사위와 게임 아이템 이름과 이들을 구입, 선택, 사용하는 화면 구성 등이다.
그리고 위에서 이야기한 부분들은 ‘모두의마블’에 다르게 들어가 있다. 일단 ‘무인도’ 자체는 두 게임에 동일한 이름으로 들어가 있다. 다만 법원은 3턴 동안 ‘더블’이 안 나오면 빠져나올 수 없는 곳에 ‘무인도’라는 이름을 붙이는 것은 저작권으로 보호할 수 없는 일상적인 표현이라 보았다. 그리고 ‘무인도’를 작은 섬에 야자수가 서 있는 그림으로 표현하는 것도 ‘무인도’를 그리라면 누구나 그렇게 그릴 수밖에 없기에 이 역시 ‘부루마불’만의 특징이라 할 수 없다는 것이 법원의 설명이다.
마지막으로 ‘무인도’에 쓴 그림 자체는 ‘부루마불’과 ‘모두의마불’이 다르다. 구도는 ‘야자수가 있는 작은 섬’으로 비슷하지만 똑같은 그림을 쓰지는 않았다는 것이다. 이어서 ‘우주여행’과 ‘황금열쇠’는 ‘모두의마블’에 각각 ‘세계여행’과 ‘찬스/포춘카드’라는 이름으로 들어갔으며 사용한 그림도 다르다. 주사위와 아이템 이름과 화면 구성도 마찬가지다. 즉, 법원은 ‘부루마불’에서 저작권이 있다고 판단된 부분 모두가 ‘모두의마블’과 동일하지 않다고 판단한 것이다.
▲ '부루마불' 황금카드(좌)와 '모두의마블' '포춘카드'(우) (자료제공: 서울고등법원)
그렇다면 넷마블이 ‘모두의마블’을 ‘부루마불’과 비슷한 게임인 것처럼 홍보한 것은 어떨까? 이에 대해 법원은 “피고(넷마블)가 ‘부루마불’의 기본적인 규칙과 진행방식을 반영해 게임을 만들고, 이를 홍보했다고 해도 상거래 관행이나 경쟁질서에 반하는 행위를 했다고 인정할 수는 없다”라고 말했다. 넷마블이 ‘부루마불’ 인기에 편승해서 ‘모두의마블’을 알리려는 의도 자체는 있었으나 이것이 법적으로 ‘불공정한 상거래’라고 판결할 수는 없다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