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임업계 노조가 생긴 이유? ˝이직만으로는 해결 안 되니까˝
2018.09.05 18:23 게임메카 김미희 기자
▲ 넥슨 노동조합 '스타팅 포인트' 배수찬 지회장 (사진: 게임메카 촬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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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임업계 노동환경이 열악하다는 것은 잘 알려진 사실이다. ‘크런치’라 불리는 강도 높은 초과근무는 업계를 넘어 대중에도 널리 알려졌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국내 게임업계에는 노동조합이 없었다. 힘들다는 말은 많지만 액션이 없었던 것이다. 그런데 최근 분위기가 급변했다. 지난 9월 3일에 설립된 넥슨 노동조합에 이어 5일에는 스마일게이트 직원들도 노조를 만들었다고 알려왔다. 침묵을 지키던 게임업계 종사자가 드디어 목소리를 내기 시작한 것이다.
도대체 무슨 일이 있었길래 사람들이 움직이기 시작한 것일까? 게임메카는 9월 5일, 판교에 있는 한 카페에서 넥슨 노동조합 ‘스타팅 포인트’ 배수찬 지회장을 만나 이에 대한 이야기를 들어봤다. 게임업계에는 이직이 많다. 맡고 있던 프로젝트가 끝나면 회사를 나가는 것이 관례로 자리잡았고, 회사에 불만이 있다면 이를 해결하기보다 ‘내가 나가고 말지’라는 생각으로 다른 일자리를 알아보는 경향이 강했다.
하지만 이제는 이직만으로는 한계에 부딪쳤다는 것이 배수찬 지회장의 의견이다. 배 지회장은 “이직을 하고, 또 하다가 주위를 둘러보니 결국 불만을 가진 사람들이 서로 자리만 바꿔 앉는 형국이 되어버린 것이다. 다시 말해 이직으로도 문제를 해결할 수 없게 됐다. 실제로 블라인드에서도 요새 이 이슈가 화제로 떠오르고 있다”라고 말했다. 게임사 어디를 가도 똑같은 상황이니 아무리 이직을 해도 동일한 문제에 부딪치게 된 것이다.
이직으로 해결할 수 없는 고질적인 문제는 무엇인가?
▲ 넥슨 노동조합 '스타팅 포인트'가 문을 열었다 (사진출처: 스타팅 포인트 공식 홈페이지)
배수찬 지회장은 넥슨에서 8년 동안 프로그래머로 일했으며, 현재 미공개 프로젝트에 참여 중이다. 바쁜 와중에도 노동조합 지회장을 맡기로 결심한 이유는 무엇일까? 배 지회장은 “올해부터 유연근무제가 도입되며 세부 사항을 협의할 노사위원회가 구성됐다. 투표를 거쳐 노사위원회 구성원이 된 다음 회사와 협의를 진행하다 보니 명목상으로 도장만 찍게 하려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노사위원회로는 안 되겠다는 생각에 노동조합을 구성하게 됐다”라고 말했다.
정확히 어떤 부분이 불공평한 것일까? 그는 “가령 유연근무제는 본래 하루에 4시간을 일하던, 12시간을 일하던 직원 스스로가 하루에 쓰는 근무시간을 자유롭게 조정하는 것이다. 하지만 실제로는 생각보다 업무시간을 자유롭게 할 수 없다. 여기에 하루에 4시간만 일해도 되는 날에 반차를 쓰면 일반적으로는 출근하지 않아도 된다고 생각하지만 회사에서는 그래도 나와서 2시간을 일을 하라고 한다”라고 설명했다.
법정근무시간은 8시간이며, 반차는 그 중 절반에 대해서 휴가를 내는 것이다. 즉, 4시간을 쉴 수 있는 반차를 냈고, 그 날이 4시간만 근무하는 날이라면 시간적으로 따져봤을 때 출근하지 않아도 된다. 하지만 회사에서는 연차가 아닌 반차이기 때문에 4시간을 일하는 날이라면 2시간을 근무할 것을 요구하고 있다. 유연근무제가 시행되기 전과 똑같이 반차를 내도 실제로 쉬는 시간은 4시간에서 2시간으로 줄어드는 현상이 발생하는 것이다.
‘전환배치’도 문제로 지적했다. 배수찬 지회장은 “프로젝트가 종료되거나 팀이 도중에 깨지면 ‘전환배치’가 진행된다. 직원 입장에서는 회사 안에서 새로운 구직에 나서는 격이다. 이 때 본인을 원하는 팀을 찾지 못하면 그 직원은 갈피를 잡지 못하게 되고, 이를 버티지 못해 회사를 나가게 된다. 이러한 일이 빈번하게 일어나고 있다”라고 덧붙였다.
넥슨 노동조합은 넥슨코리아 직원만 대상으로 하는 것은 아니다. 넥슨네트웍스, 넥슨지티, 네오플 등 계열사도 포함이다. 특히 네오플은 넥슨 노동조합 안에 ‘네오플 분회’가 따로 있다. 배 지회장은 “최근 제주도에 태풍 피해가 심했다. 당시 카카오나 다른 업체들은 재택근무 혹은 전사 휴무를 한 반면 네오플 직원들은 태풍을 뚫고 정시출근을 해야만 했다”라고 설명했다. 이 역시 사소한 부분이라 볼 수 있지만 회사가 직원을 어떻게 생각하는지 체감할 수 있는 부분이다.
현재 600명 이상 신청, 넥슨 노조 우선과제는 ‘포괄임금제 폐지’
▲ '스타팅 포인트' 조직도 (사진출처: '스타팅 포인트' 공식 홈페이지)
이러한 일련의 과정을 거쳐 게임업계에도 노동조합이 필요하다는 공감대가 형성됐다. 넥슨 노조의 경우 배수찬 지회장을 비롯한 넥슨 직원 3명이 초기 설립 과정을 준비했으며, 설립 직전에는 13명으로 늘었다. 배 지회장은 “두 달 동안 본격적으로 준비해 노조를 설립하고 가입신청을 받기 시작했다. 첫 날에는 100명 정도 신청할 것이라 전망했는데 생각보다 많은 인원이 참여했다. 현재 신청자는 600명 이상이며, 오늘(5일) 안에 700명을 찍을 것으로 예상한다”라고 말했다.
이처럼 분위기가 고조된 만큼 노조가 앞으로 하고 싶은 일도 많다. 그렇다면 노조가 최우선과제로 생각하는 것은 과연 무엇일까? 배수찬 지회장은 “포괄임금제 폐지다. 52시간 근무제가 도입됐지만 일이 많았던 사람은 이를 체감할 수 없다. 근무시간은 줄어도 일은 그대로라 결국 남아서 일을 해야 되기 때문이다”라며 “그리고 포괄임금제는 과도한 야근을 일으키는 요인이다. 초과근무수당을 제대로 지급하지 않는다는 점과 함께 근본적인 근무시간이 길어지는데 결정적인 영향을 미친다”라고 말했다..
이와 함께 이야기한 부분은 인센티브다. 배 지회장은 “아직 확정된 것은 아니지만 회사가 성과를 올리면 모든 직원에게 그 성과가 배분되는 구조를 만들고 싶다. 프로젝트에 참여한 개발자만이 아니라 CS, QA와 같은 비 개발 조직에도 일정 금액이 분배되는 것이다. 모두가 조금씩이라도 성과를 나누어 받는 문화를 정착시키면 회사가 출시한 게임이 성공했을 때 내 게임, 남의 게임을 가리지 않고 모두가 기뻐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라고 설명했다.
노동권 교육도 중요 과제로 생각하고 있다. 그는 “협상 내용 중 하나가 노동권 교육이다. 노무지식에 대해 알려주는 강연이 필요하다”라고 말했다. 그리고 연대는 넥슨 안에서 끝나지 않는다. 그는 “넥슨 직원은 물론 다른 게임사 직원들도 원한다면 강연에 참석해 필요한 정보를 들을 수 있도록 하고 싶다. 이 외에도 노동조합을 설립하고 싶은 곳이 있다면 기꺼이 도와드리겠다”라고 전했다. 스마일게이트 노조에 대해서도 “누가 먼저 시작했냐는 중요하지 않다. 같이 일어나게 되어 너무 좋고 앞으로의 활동을 응원한다. 끝까지 버티는 모습 보여주셨으면 좋겠다”라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