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스트로 봇, 3인칭 액션에 VR이 무슨 필요냐 했는데...
2018.10.08 20:15 게임메카 안민균 기자
PS VR이 가진 단점은 명확하다. 모션 캡처 카메라가 전면에 단 하나, 그것도 고정돼 있다는 점이다. 때문에 플레이 가능 반경이 다른 VR 기기에 비해 좁고, 해상도가 떨어져 쉽게 멀미 현상을 유발한다. 즉, 유저가 적극적으로 움직이는 게임과는 맞지 않는다. 이로 인해 PS VR 게임은 ‘서머 레슨’ 같은 감상 위주 게임이나, ‘그란 투리스모 스포트’처럼 움직이지 않고 플레이 가능한 VR 게임이 주를 이루고 있다.
지난 2일 발매된 ‘아스트로 봇: 레스큐 미션(이하 아스트로 봇)’은 그런 PS VR 단점을 독특한 방식으로 보완했다. 이 게임은 통상 VR게임답지 않게 3인칭 쿼터 뷰 방식을 채택했다. 플레이어가 직접 행동 하는 것이 아닌, PS VR 마스코트 캐릭터 ‘아스트로 봇’을 조종해서 모험을 즐기는 것이다. 3인칭 액션이기 때문에 멀미도 덜하고, 특유의 아기자기한 그래픽은 화질 저하를 느끼기보단 가볍게 즐길 수 있는 캐주얼 게임이라는 긍정적인 느낌을 준다. 다만, 3인칭 액션 게임에 VR이 반드시 필요한가 하는 생각도 들었다.
다소의 기대와 의문을 안고 시작한 '아스트로 봇'은 과연 어떤 결과물을 내놓았을까?
▲ '아스트로 봇' 초반 플레이 영상 (영상: 게임메카 촬영)
옛날 생각나네, 고전 게임의 정수 담았다
게임은 ‘아스트로 함선’이 외계인에게 습격당하면서 시작된다. 오프닝에서 ‘아스트로 봇’들이 함선을 타고 플레이어에게 다가와 반갑게 인사하는데, 웬 욕심 가득하게 생긴 초록색 외계인이 등장해 ‘아스트로 함선’을 공격하고, 상징인 VR 고글 모양 부품을 빼앗아 달아난다. 결국 함선은 산산조각이 나버리고, 안에 타고 있던 ‘아스트로 봇’들은 5개의 외계 행성으로 뿔뿔이 흩어져 버린다.
▲ 얼굴에 심술이 가득한 외계인이 '아스트로 함선'을 습격한다 (사진: 게임메카 촬영)
▲ VR이 무척 가지고 싶었나보다 (사진: 게임메카 촬영)
플레이어는 유일하게 폭발에 휩쓸리지 않고 살아남은 ‘아스트로 함장 봇’과 함께 뿔뿔이 흩어진 ‘아스트로 봇’들과 함선 복구할 부품을 찾아내야 한다. 탐험해야 할 행성은 총 5개, 각각 4가지 스테이지가 준비돼 있다. 도시, 황야, 동굴, 울창한 숲, 해변, 해저, 화산, 그리고 거대한 고래 뱃속까지, 다양한 스테이지가 눈과 귀를 즐겁게 한다.
▲ PS VR을 끼고 보면 꽤 봐줄만 한 그래픽을 자랑한다 (사진: 게임메카 촬영)
플레이 방식은 ‘슈퍼 마리오’나 ‘록맨’ 같은 고전 게임과 굉장히 흡사하다. 직관적이며, 직선적이다. 정해진 루트에 따라 맵을 종횡무진 활보하며 코인을 얻고, 몬스터를 처치한다. 여기에 중간중간 등장하는 수집 요소와 퍼즐 요소가 ‘게이머심’을 부추긴다. 같은 스테이지여도 코인을 다 먹고 클리어하기, 몬스터를 빠짐없이 처치하기, 숨은 요소 전부 찾아내기 등 좀 더 완벽하게 클리어하고 싶어져 여러 번 반복해서 플레이하게 만드는 ‘고전’ 매력을 품고 있다.
▲ 기본적인 플레이는 흡사 '슈퍼 마리오'나 '록맨' 시리즈를 닮았다 (사진: 게임메카 촬영)
▲ 나름 샅샅히 뒤졌는데도 비어있는 슬롯을 보면 도전의식을 불태우게 된다 (사진: 게임메카 촬영)
PS VR 매력 한껏 담았다, 손과 머리로 느끼는 액션
사실 앞서 언급한 내용만 따지면 ‘아스트로 봇’은 그저 VR을 표방한 고전풍 게임일 뿐이다. VR 장비를 착용한 만큼 별도 조작 없이 고개를 돌리는 것만으로 카메라를 돌릴 수 있어 조작에 좀 더 몰두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긴 하지만, VR 전용 게임이라는 느낌은 덜하다. 그런데도 자신 있게 ‘아스트로 봇’을 ‘특별하다’고 말할 수 있는 이유는 PS VR과 듀얼쇼크를 이용한 다양한 액션에 있다.
우선 VR 헤드를 이용한 액션이 상당히 만족스럽다. 게임을 진행하면서 ‘VR을 3인칭 시야 확보용으로만 사용하면 그냥 모니터를 보는 것과 무엇이 다를까?’라는 회의감이 들기 시작할 무렵, 눈앞에 표지판 하나가 가로막는다. 의아한 나머지 화면을 쳐다보면 고개를 힘껏 들어 박치기하라는 설명이 나온다. 호기심 반 의심 반 진짜로 박치기를 해보자 통쾌한 충격음과 함께 표지판이 젖혀지고 앞으로 진행할 수 있게 된다. 대다수 플레이어는 여기서 느낄 것이다. ‘아, 이게 아스트로 봇이구나’하고 말이다.
▲ 노골적으로 시야를 가리고 있는 표지판, 힘차게 박치기를 먹여주자 (사진: 게임메카 촬영)
▲ 담담하게 게임플레이를 하던 기자의 몸에 생기가 도는 순간 (영상: 게임메카 촬영)
이외에도 쿼터 뷰 너머 플레이어에게 직접 물감 총알을 발사해서 방해하는 슬라임 몬스터가 등장하거나, 날카로운 침을 세운 채 얼굴로 달려드는 벌 몬스터를 박치기로 날려버려야 하거나, 입김을 불어 민들레 씨앗을 털어버려야 하는 등 오감을 자극하는 가상현실 요소를 만나볼 수 있다. 특히 날아오는 몬스터의 공격을 피하고 반격해서 날려버렸을 때 쾌감이란 말로 표현할 수 없다.
▲ 처음 당했을 때 엄청 놀랐다 (영상: 게임메카 촬영)
여기에 듀얼쇼크를 활용한 손맛 액션이 재미를 더한다. 게임을 진행하다 보면 커다란 기계 상자가 나타나는데, 상자를 열어보면 딱 듀얼쇼크에 알맞은 구멍이 나온다. 거기에 듀얼쇼크를 꽂아 넣으면 상자가 열리게 되고, 듀얼쇼크에 특수기능이 추가된다. 예를 들면 1스테이지의 ‘갈고리’가 있다. 듀얼쇼크 상단 터치패드 부분을 누르면 갈고리가 사출되고, 구조물에 걸린다. 이후 듀얼쇼크를 힘껏 잡아당기면 벽이 무너진다. 2스테이지부터는 ‘수도꼭지’를 사용할 수 있다. 물을 뿌려 식물을 자라나게 하거나, 불을 꺼서 ‘아스트로 함장 봇’이 가는 길을 개척할 수 있다.
▲ 듀얼쇼크로 벽에 갈고리를 건 후 잡아 당겨 부수거나 (사진: 게임메카 촬영)
▲ 물을 뿌려 잎사귀를 돋아나게 한다 (사진: 게임메카 촬영)
특히 스테이지 보스와 대결할 때 이런 매력을 한꺼번에 느낄 수 있다. 행성마다 마지막 스테이지는 무조건 지역 콘셉트에 맞는 거대 보스가 기다리고 있는데, 특히 1스테이지 보스 ‘고릴라’가 인상에 깊게 남는다. 고릴라를 물리치려면 치아를 갈고리로 걸어 뽑아내야 하는데, 전투 과정이 압권이다. 치아에 갈고리를 건 후 듀얼쇼크를 잡아당겨 뽑아낼 때마다 느껴지는 손맛, 그리고 고릴라가 고통에 내뱉는 침에 시야가 물들 때 왠지 모를 만족감이 차오른다.
▲ 1스테이지 보스 '고릴라'와의 전투, 왠지 치아가 시린 기분이다 (영상: 게임메카 촬영)
새로운 형태의 VR 게임, 가능성을 엿보다
‘아스트로 봇’을 플레이하면서 가장 아쉬웠던 점은 아이러니하게도 게임이 PS VR 전용이라는 점이다. 사실 ‘아스트로 봇’에서 VR 요소는 흥을 돋우는 역할을 하지만, 핵심 요소는 아니다. 맘만 먹으면 VR 없이도 플레이할 수 있는 구조다. 실제로 게임 중 박치기나 적을 공격을 피하는 것은 꼭 하지 않아도 된다. 캐릭터가 앞으로 진행하면 자연스럽게 구조물이 화면상 머리 부분에 위치해 자동으로 박치기가 되며, 플레이어가 적의 공격을 맞아도 약간 화면이 흐려질 뿐, 아프지도 않고 앞에서 활동 중인 캐릭터가 대신 죽지도 않는다.
▲ 대부분 헤드 액션은 가만히 있어도 성공한다. 즐겁지 않을 뿐 (사진: 게임메카 촬영)
▲ 거대한 포탄에 당해도 잠깐 화면에 금이갈 뿐, 캐릭터는 멀쩡하다 (사진: 게임메카 촬영)
또 앞서 말했듯, PS VR이 가진 단점은 명확하다. 게임 플레이 간 가장 신경 쓰였던 부분은 플레이 가능 반경이 좁다는 점이다. 고정된 공간에서 플레이할 수 있는 ‘아스트로 봇’조차 자주 듀얼쇼크 추적이 뚝뚝 끊겨 게임 몰입을 방해했다.
개인적으로 PS VR을 사용하면 즐길 수 있는 액션이 추가되는 정도로, 일반 PS4 유저도 게임을 즐길 수 있게 했다면 더욱 좋았을 것으로 생각한다. 이 재미있는 게임을 독점하는 것은 아깝다는 느낌이다.
그런데도 ‘아스트로 봇’에 찬사를 보낼 수밖에 없는 이유는 ‘3인칭 VR 액션’이라는 장르를 올바른 방식으로 구현했기 때문이다. 이때까지 대부분의 3인칭 VR 게임은 단순히 VR 장비로 화면을 들여다보고, 전용 컨트롤러로 조작한다는 이유만으로 VR 게임임을 주장해왔다. 반면 ‘아스트로 봇’은 박치기도 하고, 갈고리를 걸어 잡아당기고, 게임 속으로 입김을 불어 넣는 등 실제 오감을 자극하는 흥미진진한 요소가 가득하다.
‘아스트로 봇’은 결코 완벽한 3인칭 VR 게임은 아니었지만, 적어도 즐거운 VR 경험이 가능한 게임이었다. 앞으로도 이런 ‘부담없이 즐길 수 있는 VR 게임’이 많아졌으면 하는 바람이다. 만약 PS VR을 고이 모셔둔 게이머가 있다면 ‘아스트로 봇’을 필히 추천해주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