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0년대 게임광고] 게임을 사면 98 프랑스 월드컵 유니폼이!
2018.12.31 16:15 게임메카 류종화 기자
한국 게임의 성숙기였던 1990년대를 기억하십니까? 잡지에 나온 광고만 봐도 설렜던 그때 그 시절의 추억. '게임챔프'와 'PC챔프', 'PC 파워진', '넷파워' 등으로 여러분과 함께 했던 게임메카가 당시 게임광고를 재조명하는 [90년대 게임광고] 코너를 연재합니다. 타임머신을 타고 90년대 게임 광고의 세계로, 지금 함께 떠나 보시죠.
▲ '붉은악마' 광고가 실린 제우미디어 PC챔프 1997년 11월호 (사진출처: 게임메카 DB)
[잡지보기]
다사다난했던 2018년을 되짚어 보면, 6월 러시아 월드컵 때가 가장 기억에 남습니다. 스웨덴전과 멕시코전에서 2연패를 당했지만, 3차전인 독일전에서 기적의 2 대 0 승리를 거둬낸 국가대표팀의 분투. 별 다른 기대 없이 경기를 보다가 자리에서 펄쩍 뛰며 감탄했던 기억이 나네요.
2018년에 신태용호가 있었다면, 정확히 20년 전 98 프랑스 월드컵 때는 차범근호가 있었습니다. 당시 차범근호는 아시아 최강 전력, 국내 최초 월드컵 16강 진출이 가능한 팀이라는 평가를 들으며 전국민의 기대를 한 몸에 받았습니다. 그래서일까요, 막 발돋움을 시작한 게임업계에서도 차범근호에 대한 기대감을 게임으로 표현했습니다. 그것이 바로 최초 국산 축구게임이라 불리는 ‘붉은악마’ 입니다.
▲ 최용수를 메인 모델로 삼은 축구게임 '붉은 악마' (사진출처: 게임메카 DB)
위 광고는 제우미디어 PC챔프 1997년 11월호에 실렸습니다. 98 월드컵이 열리기 8개월 전임에도 ‘붉은악마’를 내세운 마케팅이 통한 것을 보면 당시 축구열기를 짐작할 수 있을 것입니다. 너무 기대가 컸던 나머지 98년 월드컵 도중(!) 성적부진을 이유로 차범근 감독을 경질시킬 정도였으니까요. 참고로 광고문구를 보면 내년 열리는 98 프랑스 월드컵 외에도 5년 후에 열릴 2002 한/일 월드컵까지 기대하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아마 2002 월드컵 이후 세대는 당시 축구열기를 짐작키 어려울 겁니다. 그 정도로 전국민이 축구에 열광하던 시기였죠.
표지모델은 당시 국가대표 스트라이커였던 최용수(현 FC 서울 감독)입니다. 당시에도 유상철이나 하석주, 서정원, 최성용, 김병지, 홍명보, 황선홍 등 다양한 스타 플레이어들이 있었지만, 가장 많은 기대를 모은 것은 골 결정력이 있는 스트라이커 최용수였습니다. 예선에서도 아시아 득점 1위를 기록하는 등 폭풍 활약을 했고, 이 같은 활약상이 본선에서도 계속될 것이라는 믿음이 있었습니다. 그렇기에 광고에서도 전면에 나선 것이었겠죠. 다만 멕시코전에선 차범근 감독에게 기용되지 않았고, 이후 네덜란드와 벨기에 전에선 큰 활약을 펼치지 못했다는 점이 안타깝습니다.
위 게임은 일단 국산 최초 축구게임이라는 타이틀을 걸고 있습니다. 당시 국내 게임사였던 메디아소프트가 영국의 ANCO사와 협약을 맺어, 당시 나름 인기 축구게임이었던 ‘킥 오프(Kick Off)’ 시리즈를 국내 버전으로 낸 것이 바로 이 게임입니다. 참고로 ‘킥 오프’ 시리즈는 초기엔 NES 등으로 출시되던 2D 축구게임이었지만, 1996년부터 3D로 제작되어 소소한 인기를 끌었습니다. ‘붉은악마’ 역시 기본 틀은 이 ‘킥 오프 98’입니다만, 일단 광고에는 ANCO와 메디아소프트의 공동 개발이라고 표기돼 있으므로 국내 최초 축구게임이라는 타이틀을 붙이겠습니다.
▲ 한국 대표팀 능력치 상승을 내세운 '붉은 악마' (사진출처: 게임메카 DB)
광고 곳곳에서는 애국 마케팅 흔적을 찾아볼 수 있습니다. 첫 번째 페이지에서는 게임을 사면 국가대표 유니폼을 주는 것을 크게 광고하고 있고, 두 번째 페이지에는 대놓고 ‘4천만 붉은 전사들이 일어났다’라는 멘트와 함께 응원단 사진이 커다랗게 박혀 있습니다. 아래쪽에는 ‘한국 대표팀의 순위 향상’이라는 멘트까지 적혀 있습니다. 실제로 게임 내에는 한국 대표팀의 능력치가 상당히 높게 잡혀 있었습니다. 물론 당시 차범근호가 아시아 예선에서 좋은 성적을 거두며 기대감을 불러일으키긴 했지만, 유럽이나 남미 강호에 근접하는 경기력으로 묘사한 것은 조금 심하지 않나 싶습니다. 뭐, 당시엔 이런 밸런싱이 더 호응을 받았을 때였으니까요.
참고로 이런 애국심 마케팅이 꽤 먹혀들었는지, 멕시코전을 이틀 앞둔 1998년 6월 12일 MBC 뉴스데스크에서는 이 게임(정확히는 이듬해 나온 후속작인 ‘붉은 악마 2’)으로 시뮬레이션을 돌려 승패를 가늠해보기도 했습니다. 당시 결과에 따르면 멕시코가 선제골을 넣긴 하지만 후반전 들어 서정원과 최용수가 연이어 골을 넣어 2 대 1로 승리한다고 나왔는데, 실제로는 우리나라가 선제골을 넣고도 1 대 3 역전패를 당했죠. 최용수는 나오지도 않았고요. 슬픈 결과입니다.
▲ '붉은 악마' 게임을 가지고 멕시코전 시뮬레이션을 한 MBC 뉴스데스크 (사진출처: imbc)
아래쪽에는 게임 스크린샷이 4장 들어있습니다. 조금 어둡게 나오긴 했는데요, 게임 그래픽은 당시 기준으로서도 그리 좋다고는 할 수 없는 수준이었습니다. 게임성 역시 다소 산만했다는 지적을 받고 있고요. 결국 ‘킥 오프’ 시리즈와 이를 기반으로 한 ‘붉은 악마’는 ‘피파’나 ‘액추어 사커’ 시리즈 등에 밀려 2003년 ANCO의 도산을 끝으로 자취를 감췄습니다. 그렇다고는 해도 당시 한국 선수들을 제대로 표현해 준 축구게임이 없었다는 것을 감안하면 국내 게이머들에게는 꽤나 의미 있는 게임이 아닐까 합니다.
*덤으로 보는 B급 게임광고
▲ 게임 모음집 CD를 부록으로 줬던 서적 광고 (사진출처: 게임메카 DB)
오늘의 B급 광고는 도서출판 커넥트에서 발간한 서적 ‘PC 오락실’과 ‘인터넷 게임뱅크’ 입니다. 사실 서적으로서 큰 가치가 있는 책은 아니고, 당시 발매된 지 2~3년쯤 된 구작 게임들을 부록 CD 하나에 몰아넣은 게임 모음집에 가까운 서적입니다. 당시에는 이런 게임 모음집 형태의 CD 부록이 꽤나 유행했는데요, 정식 라이선스를 받은 것인지는 모르겠습니다.
게임 라인업이 자세히 나와 있진 않지만, 광고를 뜯어 보면 ‘버추어 파이터 2’, ‘소닉 3 앤 너클즈’, ‘봄버맨’, ‘스트리트 파이터 제로’, ‘엑스맨’, ‘버추어 캅’ 등이 실려 있으리라 판단됩니다. ‘PC 오락실 – 격투 게임 스페셜’ 이라는 서적명답게 격투 게임들이 주로 실려 있군요. 아래쪽의 ‘인터넷 게임 뱅크’는 인터넷이라는 단어가 무색하게 ‘소닉 3 앤 너클즈’가 메인으로 실려 있습니다. 자세히 보니 인터넷에서 선정한 최고 게임이라고 하는데, 낚시성 제목 느낌이 강하게 듭니다. 이런 서적들도 2000년대를 거치며 인터넷 와레즈가 범람하자 차츰 사라졌으니, 지금으로선 추억의 한 페이지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