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시티 부실해도 물량은 압도적, '알파스타' 프로게이머 '압승'
2019.01.25 07:26 게임메카 이재오 기자
2016년, 구글은 인공지능(AI) '알파고'를 통해 판 후이, 커제, 이세돌 등 세계 최정상급 프로 바둑기사들을 꺾으며 세상을 놀래켰다. 이 광경이 e스포츠에서 3년 만에 재현됐다. RTS게임 '스타크래프트 2(이하 스타 2)'에 도전한 구글 딥마인드의 새 AI '알파스타'가 프로게이머 2명을 상대로 모두 5 대 0 세트 스코어를 기록하며 승리를 거둔 것이다.
블리자드와 딥마인드는 25일, '스타 2' 인공지능 개발 현황을 공개했다. 이번 시연에선 현재까지 연구성과에 대한 발표와 함께 프로게이머들과의 경기 내용이 리플레이를 통해 공개됐다. 경기에 참가한 선수는 팀 리퀴드 소속 'TLO' 다리오 뷘시와 'MaNa' 그레고리 코민츠였으며, 경기는 카탈리스트 맵에서 프로토스 대 프로토스로만 진행됐다. 아직 알파스타가 다양한 맵과 종족별 유닛 상성에 대해서 이해할 시간이 부족했기에 내린 결정이다. 방송 말미에는 MaNa와의 생방송 경기가 추가로 치러졌다.
취약한 심시티, 정교한 컨트롤, 의외의 조합
알파스타는 첫 번째로 TLO와 경기를 치렀다. TLO는 본래 저그를 운용해왔던 선수였으나 알파스타의 경험치가 부족하다는 것을 고려해 프로토스로 경기에 임했다.
알파스타는 사람과 달리 심시티와 상대 초반 러쉬에 취약한 모습을 보여줬다. 대부분의 프로게이머들이 입구에 관문을 두 채 지으면서 적의 침투에 대비하는 것과 달리 미네랄 옆에 관문을 지었으며, 이후 지어지는 건물 대부분이 효율성을 고려하지 않은 구성이었다. 실제로 TLO가 사도를 사용해 초반 러쉬를 시작하자 상당히 당황하며 많은 프로브를 헌납하기도 했다.
그러나 중반부 이후 알파스타의 경기력은 매서워졌다. 무엇보다 유닛 수급 속도와 컨트롤에서 남다른 모습을 보였다. 공격당하는 유닛의 체력이 낮아지면 칼같이 진형 뒤로 물리며 개체 수를 보존했다. 추적자를 빠른 속도로 모은 알파스타는 정찰을 통해 적의 유닛이 부족하다는 것을 파악하고 그대로 공격을 강행, 게임을 시작한 지 10분도 안 되서 TLO의 GG를 받아낸다.
이후 3경기에서도 비슷한 양상이 계속됐다. 여전히 알파스타는 초반 심시티에 취약한 모습을 보였다. 입구를 전혀 막지 않았고, 게이트웨이 건설도 입구와 먼 곳에 시전해 효율성을 고려하지 못한 포지셔닝이라는 평가를 받았다.
이 시점에서 알파스타의 놀라운 플레이가 나왔다. 알파스타가 사도 2마리를 적진으로 보내는 중 적의 이동 경로를 예측하고 사이오닉 이동을 사용해 적 시야 밖으로 러쉬를 시도한 것이다. 이후 절묘한 컨트롤로 적 방어를 뚫고 본진에 침투하는 데도 성공했다. 큰 피해를 주지는 못했으나 관객의 박수를 받을 만큼 사뭇 멋진 컨트롤이었다.
알파스타는 이후 추적자와 분열기를 대량으로 모아 대규모 전투를 벌였다. 상대적으로 분열기는 광역공격이 가능하다는 장점이 있지만, 아군에게도 피해를 입히고 정교한 컨트롤이 거의 불가능해 잘 사용되지 않는 유닛이다. 그러나 알파스타는 해당 경기에서 꾸준히 분열기를 운용했다. TLO는 다양한 유닛 조합으로 알파스타를 흔들었고 1차 공격을 어렵게나마 방어해냈으나, 물량 차이와 함께 상대 분열기의 공격을 받아치지 못하고 결국 GG를 선언했다. 무리하고 단순해 보였던 알파스타의 조합이 물량과 컨트롤에 의해 통한 셈이다.
1경기에서 알파스타는 지속적인 정찰이나 방어, 다양한 유닛 조합보다는 맵 특성을 활용하는 컨트롤과 빠른 속도로 유닛을 뽑는 물량으로 적을 압도했다. 중간중간 정찰 없이도 적의 행동 패턴을 예측해 뒤를 급습하는 모습을 보여주기도 했다. TLO는 "알파스타의 원 넥서스 빌드를 이용한 초반 빠른 물량 수급을 대비하지 못한 것이 패인"이라고 말했다.
매 경기 새로운 걸 학습하는 알파스타
두 번째 경기는 MaNa와 치뤄졌다. MaNa는 원래 프로토스를 주로 다루는 선수였던 만큼 상대적으로 프로게이머 측의 핸디캡은 1경기에 비해 적은 상황이었다. 실제로 MaNa는 모든 세트에서 예언자와 차원 분광기를 이용해 알파스타의 본진을 쉴새 없이 공략했다. 알파스타의 취약한 심시티를 파악하고 건물을 공략해 큰 피해를 입히기도 했다. 그러나 알파스타는 AI답게 당황하지 않았다.
1세트는 그런 알파스타의 강점이 잘 드러난 경기였다. MaNa의 지속적인 견제에도 꿋꿋이 추적자를 모아서 적 본진에 쳐들어간 것이다. 체력이 떨어진 유닛은 리콜을 이용해 본진으로 소환, 피해를 최소화했으며, 매우 정교한 컨트롤을 활용해 적의 광전사를 아무것도 못하게 만들기도 했다. 분전 속에서도 알파스타의 추적자는 그 수가 줄지 않았고 결국 'MaNa'는 1세트를 쉽게 내주고 말았다.
2세트에선 알파스타가 정찰에 힘을 쓰지 않는 이유가 밝혀졌다. 이전 플레이에서의 데이터를 기반으로 적의 주된 이동경로와 행동 패턴을 예상하기 시작한 것이다. 이를 통해 적의 시야에 걸리지 않는 침투경로를 미리 설정하는 모습도 보여졌다. 이를 통해 단순하고 약점이 명확한 추적자로도 효율적인 컨트롤과 공격이 가능했다.
3세트에선 알파스타가 처음으로 제대로 된 심시티를 선보였다. 심지어 정찰 중에 상대방 미네랄을 채취해가는 센스도 발휘했다. 정교한 컨트롤은 여전히 인상적이었다. 쉴드를 펼치는 유닛을 일점사로 공격하면서 다른 한 유닛만 떼어내 건물을 공격한 것이다. 방어 시에는 언덕 지형을 이용해 적의 사거리를 빠져나가 유닛을 보전하는 테크닉도 선보였다. 알파스타의 화려한 컨트롤에 'MaNa'는 한 번 더 GG를 선언했다.
4세트 초반에도 알파스타의 날카로운 무빙이 돋보였다. 사도 2기를 이용해 초반 본진 러쉬를 시도한 알파스타는 경로가 막혀 사도가 죽을 위기에 놓이자 일체의 망설임 없이 리콜을 통해 사도를 구해내는데 성공했다. 이후 경기 중반에 진행된 전면전에선 적의 조합에 밀리는 모습도 보였는데, 암흑기사에 의해 본진이 피해를 입자 추적자를 천천히 빼면서 유닛을 정렬할 수 있는 시간을 벌었다. 결국 중앙에서 언덕을 이용한 효율적인 진형으로 적을 일망타진하는 데 성공하면서 게임은 그대로 알파스타의 승리로 끝났다.
마지막 생방송으로 치뤄진 특별경기는 MaNa의 승리로 장식됐다. 알파스타는 앞선 경기에서 MaNa가 줄곧 사용했던 예언자를 통해 상대의 자원 수급에 지속적으로 타격을 입혔다. 경기가 계속될수록 새로운 전략을 배워가는 알파스타를 볼 수 있었다. 마나는 이에 굴하지 않고 차원 공격기와 불멸자로 적 본진을 쉴 틈 없이 공략하면서 알파스타 타이밍을 계속 흔들었다. 알파스타가 본진 방어를 하며 우왕좌왕하자 MaNa는 집정관을 모아서 적 본진으로 쳐들어갔다. 전 경기와 마찬가지로 계속해서 추적자만 모았던 알파스타는 결국 집정관을 내세운 마나의 러쉬에 별다른 저항을 하지 못하고 본진을 내줬다.
MaNa는 예상보다 빠른 속도로 추적자를 수급하는 알파스타를 칭찬하며 "저렇게 많은 추적자를 이렇게 정교하게 다룰 거라곤 예상하지 못했다"고 말했다. 딥마인드 관계자는 이에 대해 "평균 APM은 프로게이머에 비해 낮지만, 헛손질이 없는 만큼 더욱 정교한 컨트롤이 가능하다는 점이 통했다"고 밝혔다.
막강한 경기력이지만 명확한 약점
알파스타의 경기력은 예상보다 훨씬 뛰어났다. 다양한 유닛조합도 유닛 상성을 계산한 플레이도 없었음에도 불구하고, 빠르고 효율적인 컨트롤과 물량 수급으로 내내 상대를 압박했다. 적 인구가 150 언저리일 때 먼저 200 인구수를 채우는 경우도 종종 나왔을 정도였다. 심지어 경기가 지속되면서 기존에 안 하던 심시티를 구현한다거나 적의 전술을 따라 하는 등 더 발전하는 모습을 보여주기도 했다.
하지만, 그만큼 약점도 명확했다. 유닛별 상성이 뚜렷한 '스타 2'인 만큼 단조로운 조합에 발목이 잡힌 것이다. 여기에 다양한 전략을 사용해 본진이 공격당하자 당황하는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 단일맵에서 프로토스로만 치뤄진 종족전이란 점도 감안해야 한다. 상대적으로 프로토스에 강한 저그라던가 다양한 조합이 강점인 테란이 등장할 경우엔 어떻게 대처할지도 궁금했다.
이에 대해 딥마인드 관계자는 "알파스타는 직접 차차 다른 맵과 종족도 연습할 예정이다"라고 밝혔다. 프로게이머를 상대로 압도적인 실력을 보여준 알파스타가 앞으로 어떻게 성장할지 지켜보는 것도 재미있을 듯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