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0년대 게임광고] 국산 게임의 자존심이 ‘마리오 카트’ 짝퉁?
2019.02.04 11:13 게임메카 류종화 기자
한국 게임의 성숙기였던 1990년대를 기억하십니까? 잡지에 나온 광고만 봐도 설렜던 그때 그 시절의 추억. '게임챔프'와 'PC챔프', 'PC 파워진', '넷파워' 등으로 여러분과 함께 했던 게임메카가 당시 게임광고를 재조명하는 [90년대 게임광고] 코너를 연재합니다. 타임머신을 타고 90년대 게임 광고의 세계로, 지금 함께 떠나 보시죠.
[잡지보기]
90년대 중반은 국산 PC게임 업계가 조금씩 성장하기 시작한 시기였습니다. 94년 손노리팀의 ‘어스토니시아스토리’, 95년 소프트맥스의 ‘창세기전’ 등이 차례대로 나오며 한국만의 색채를 가진 게임들이 차츰 등장하기 시작했고, 토종 게임 개발사들이 하나둘씩 생겨났습니다. 이로 인해 게이머들 사이에서는 ‘게임은 당연히 외국 것’이라는 인식이 조금씩 가시기 시작했죠.
막 걸음마를 뗀 한국 게임산업은 그 포부도 대단했습니다. 비록 지금은 미국이나 일본 등에 밀리고 있지만, 언젠가는 그들에 버금가는 우리만의 게임을 만들겠다는 다짐이었죠. 그러나 창조의 어머니는 모방이라는 말이 있듯, 초기 국산 게임들은 일본이나 미국 게임의 틀을 상당수 참고했던 것이 사실입니다. 사실 완전히 새로운 게임 만들기가 어디 쉽겠습니까. 충분히 이해합니다. 다만, 오늘 소개할 게임은 좀 너무하다 싶네요.
본격적인 게임 광고 소개에 앞서, PC챔프 1996년 1월호에 실린 미리내 소프트웨어의 야심찬 새해인사를 보시겠습니다. 광고 한 면을 통째로 사용해 국산 PC게임 시장의 현황과 다짐을 풀어나갔습니다. 요약하면 일본과 미국 게임 문화에 식민지배 당하고 있는 국내 게임시장에서, 본인들이 나서 국산 게임의 자존심을 지키겠다는 내용입니다. 아래쪽 회사소개 역시 ‘국산 PC게임의 대명사’ 라고 나와 있군요.
참고로 미리내 소프트웨어를 모르시는 분들을 위해 잠깐 설명하자면, 1987년 설립된 유서 깊은 게임사입니다. 80년대 후반부터 최초의 국산 콘솔 슈팅게임 ‘그날이 오면’ 시리즈를 통해 국산 게임의 명맥을 이어 왔고, PC게임 전성기에는 ‘망국전기’, ‘지무신대전 네크론’, ‘고룡전기 퍼시벌’ 등을 개발하며 나름 유명세를 떨친 곳이었죠. 망작도 있었고 흥행작도 있었지만, 어쨌든 뚜렷한 색채를 가진 국산 게임 제작사였음임에는 확실합니다.
그런 미리내 소프트웨어에게, 아마도 이 게임은 지우고 싶은 흑역사가 아닐까 싶습니다. 위 광고와 같은 달, 같은 잡지에 실린 미리내 소프트웨어 신작 광고입니다. 이름하야 ‘카트 레이스’. 영웅의 후예들이 모여 펼치는 스릴 있고 박진감 넘치는 대결을 그린다고 합니다.
이 게임이 왜 문제작인지는 돌려 말하지 않겠습니다. 광고 왼쪽 아래 조그맣게 그려진 스크린샷만 봐도 압니다. 잘 안 보이신다구요? 조금 확대해 드리겠습니다.
네 그렇습니다. 딱 봐도 1992년 슈퍼패미콤으로 나온 닌텐도 ‘슈퍼 마리오 카트’를 베껴 만든 게임입니다. 2D 그래픽으로 구성된 카트 레이싱과 맵 디자인, 아이템으로 상대방을 방해하고 공격하며 진행하는 게임 방식, 심지어 8인 캐릭터 선택창과 세로 화면분할까지. 2000년대 들어 넥슨 ‘카트라이더’가 같은 논란을 샀지만, 이 게임에 비교하면 양반입니다.
뭐, 한국적인 색채(?)를 위해 게임 아이템을 불방망이, 볼링공, 드럼통, 휘발유 등으로 바꿔놓긴 했는데, 실상은 결국 ‘슈퍼 마리오카트’의 아이템 효과들과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당시 PC게임 유저들도 바보는 아니라 이 게임이 ‘슈퍼 마리오카트’의 복제판이라는 것은 알고 있었고, 결국 이후 국내 게임산업 발전에 전혀 영향을 미치지 못 한 괴작으로 남았습니다.
아무튼 이후 미리내 소프트웨어는 ‘카트 레이싱’의 흑역사를 씻고 다양한 PC게임을 내며 나름 승승장구하다, IMF 당시 유통사의 부도로 인해 문을 닫고 말았습니다. 이후 온라인게임으로 자리를 옮겨 미리내 엔터테인먼트로 부활해 ‘칸 온라인’을 출시했지만 다시 한 번 망했고, 2011년 모바일에서 미리내 게임즈로 다시 한 번 부활해 ‘그날이 오면 for kakao’를 냈습니다. 지금은 해당 게임도 닫힌 상황, 과연 미리내라는 이름을 언제 다시 볼 수 있을지 기대가 됩니다.
덤으로 보는 B급 게임광고
요즘 게이머들은 게임 공략을 찾을 때 웹진이나 커뮤니티, 유튜브 등을 참고합니다. 그러나 과거엔 잡지나 책이 대세였습니다. 특히나 잡지 몇 페이지로 끝나지 않는 대규모 역사 시뮬레이션 게임들의 경우 공략집 한 권 정도는 기본으로 끼고 있어야 했죠. 가끔은 내가 공부를 하고 있는지, 게임을 하고 있는지 헷갈릴 정도였습니다.
위 광고에 등장하는 코에이 게임 핸드북 역시 그러한 의도에서 나왔습니다. ‘삼국지 3, 4’와 ‘대항해시대 2’, ‘원조비사’ 등에는 게임 내 장수(인물)와 지역, 유닛들의 세부 정보가 고스란히 나와 있고, ‘삼국지 영걸전’에는 수십 개의 스테이지 세부 정보가 담겨 있었….겠죠? 사실 이 때 게임들이 데이터가 그리 크진 않았지만, 깊이 자체는 요즘 게임과 비교해도 꿀리지 않았던 것 같습니다. 문득 책 옆에 끼고 게임 해보고 싶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