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0년대 게임광고] 디즈니에게 걸렸으면 경을 쳤을 게임
2019.03.19 15:53 게임메카 류종화 기자
한국 게임의 성숙기였던 1990년대를 기억하십니까? 잡지에 나온 광고만 봐도 설렜던 그때 그 시절의 추억. '게임챔프'와 'PC챔프', 'PC 파워진', '넷파워' 등으로 여러분과 함께 했던 게임메카가 당시 게임광고를 재조명하는 [90년대 게임광고] 코너를 연재합니다. 타임머신을 타고 90년대 게임 광고의 세계로, 지금 함께 떠나 보시죠
흔히들 디즈니를 ‘저작권괴물’이라고 부릅니다. 저작권을 굉장히 깐깐하게 내세우는데다, 자사 캐릭터를 변형하거나 훼손하는 데 굉장히 민감해 관련 업계(?)에서는 공포의 대상이기도 합니다. 오죽하면 무인도에 표류됐을 때 해변에 미키마우스 하나 그려놓으면 디즈니 직원이 귀신같이 찾아와 같이 나갈 수 있다는 블랙 유머가 있을 정도죠.
그러나, 90년대 중반 한국 게임업계는 그런 디즈니조차도 가볍게 무시해 주는 대범함을 지니고 있었습니다. 사실 자세히 뜯어보면 사회 전반적으로 저작권이나 표절에 대한 의식이 지금보다 가벼웠던 이유였겠지만, 그 분위기를 타고 디즈니가 알면 경을 칠 만한 게임도 서슴없이 내놨죠. 오늘 소개할 광고가 바로 그런 게임입니다. 왠지 표지부터 디즈니 고전 애니메이션을 연상시키는 일러스트의 게임파워 1995년 4월호로 떠나 보시죠.
오늘의 게임은 ‘슈퍼트리오’ 입니다. 광고문구로 ‘국산 소프트’라는 것이 강조돼 있듯, 국내 게임개발사인 동성조이컴에서 개발한 작품입니다. 참고로 동성조이컴은 게임기 생산 및 게임센터 ‘원더파크’ 등을 운영하던 회사로, 당시 막 발돋움하던 PC게임 개발에도 참여해 몇 개의 게임을 냈습니다. 1995년에는 국내 개발사가 모여 설립한 게임협회인 KOGA에 가입하는 등 나름 활발한 활동을 펼쳤습니다. 당시로서는 나름 중견 게임사였죠.
그러나, 아래쪽의 캐릭터들을 보고 있자면 그 명성(?)에 비해 다소 허탈한 기분이 듭니다. ‘슈퍼 트리오’라는 게임명답게 캐릭터는 세 명. 근데, 왠지 다들 어디선가 본 듯한 느낌이군요. 특히 왼쪽 아래에 있는 저 검은 쥐 말이죠.
검고 흰 피부에 3자로 생긴 헤어라인, 큰 귀, 하얀 장갑, 커다란 신발과 동그랗게 치솟은 코… 굳이 이리저리 설명하지 않아도 누가 봐도 미키마우스에 모자 하나 씌워 놓은 캐릭터가 주인공 자리를 떡 하니 차지하고 있습니다. 심지어 옷에는 커다란 단추까지 박혀 있네요. 미키마우스에서 모티브를 얻었다기엔 그냥 옷만 갈아입힌 수준이라, ‘이래도 되나…?’ 라는 생각까지 듭니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뒤쪽에 있는 근육개는 ‘톰과 제리’ 시리즈에 자주 출연하는 불독을 닮았네요.
참고로 이 당시 디즈니는 1992년 월트 디즈니 컴퍼니 코리아를 세우고 인어공주, 알라딘, 라이온 킹 등 다양한 애니메이션 더빙판을 출시하는 등 한국 시장에도 본격 진출했었습니다. 다만 그때나 지금이나 국내 지사의 주 사업은 애니메이션과 영화 수입 배급이지 저작권 보호가 아니라, 당시로서는 시장이 작았던 PC게임까진 신경쓰지 못하고 넘어갔던 것으로 추측됩니다. 굳이 게임까지 안 와도 미키마우스 캐릭터를 무단 도용한 팬시용품 등이 워낙 많았던 시절이기도 했고요.
광고를 조금 더 봅시다. 아까 잠깐 봤던 선전문구가 보입니다. “국산 게임의 비폭력 선언” 이라는데, 대체 어떤 부분이 비폭력인지 모르겠습니다. 스크린샷을 보면 적의 공격을 피하며 적을 물리쳐가며 진행하는 2D 횡스크롤 액션 장르 같아 보이는데, 자세히 보면 막 불을 쏘고 레이저를 쏘고 마법구슬을 쏘고 총알 비슷한 것도 날아다닙니다. 흠… 귀여우면 폭력이 아니다! 라는 주의인가 본데, 일단은 그렇다고 칩시다. 귀여우니까요.
마지막으로 아래쪽 게임설명과 사용환경이 눈에 띕니다. 당시 PC에서는 흔치 않았던 대규모 스테이지와 2인 협력 플레이를 구현한 점이 보이네요. 이것만으로도 많이들 샀을 듯 합니다. 사용기종은 386(!!) 이상, 하드디스트 10MB 이상, OS는 도스 3.0, 사운드에 ‘옥소리’도 눈에 띄네요. 24년 후 우리는 RTX니 SSD니 램 8기가니 뭐니 하고 있는데, 세상 참 많이 변했습니다.
*덤으로 보는 B급 광고
오늘의 B급광고는 이 코너에 자주 등장했었던 700 전화게임 광고입니다. 700이란 이 국번으로 시작하는 유료 ARS를 통해 음성 게임과 퀴즈 등을 즐기는 서비스였는데, 즐길거리는 없고 눈앞에 전화기만 있는 상황에선 꽤나 매혹적인 즐길거리였죠. 다만 이 광고에도 적혀있듯 요금이 30초당 50~80원으로 1시간만 통화해도 1만원에 육박하는 무시무시한 요금제였기 때문에 종종 사회적 문제가 되기도 했습니다.
수많은 700 서비스 중에서 굳이 이 광고를 소개한 이유는 왠지 반가운 추억의 국산 만화들이 보이기 때문입니다. 당시 아이큐점프를 통해 연재된 인기 만화 3종 단행본 표지가 있는데, 각각 이충호와 엄재경의 ‘마이러브’, 박산하의 ‘진짜 사나이’, 이재석의 ‘달숙이’입니다. 세 작품 모두 당대를 평정한 인기 만화로, 저도 시간만 나면 들여다 봤던 기억이 나네요. 20년이 넘게 지난 지금도 만화 속 에피소드가 몇 개씩 기억날 정도니……. 문득 90년대 만화가 그리워집니다. 저 만화 단행본 어디서 구하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