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섯 개 법인 묶은 통합 교섭, 스마일게이트 어떻게 해냈나?
2019.03.29 15:54 게임메카 김미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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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마일게이트가 큰 일을 해냈다. 올해 10월 포괄임금제 폐지를 포함한 단체협약에 노사가 잠정 합의한 것이다. 눈길을 끄는 점은 법인 하나가 아니라 5곳을 묶어서 통합 교섭을 이뤄냈다는 것이다. 이 부분이 눈길을 끈 이유는 통합 교섭이 흔치 않기 때문이다. 넥슨 노조도 네오플, 넥슨코리아가 따로 교섭을 진행해 각각 협약을 맺었으며, 다른 계열사가 아직 남아 있다.
스마일게이트 노조 ‘SG길드’ 차상준 지회장도 “통합 교섭은 우리나라 노조 역사상에서도 손에 꼽힌다고 들었다. 화섬 내부에서도 이 이야기를 듣더니 놀라더라”라고 밝혔다. 스마일게이트가 교섭을 시작한 시점은 작년 11월이다. 4개월 동안 교섭 9번을 거쳐 잠정합의에 도달했다. 여기에 게임업계에 노조가 생기기 시작한 것은 작년이다.
게임업계에 노조가 있었던 역사도 짧았고, 4개월이라는 교섭 기간은 긴 편은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눈에 뜨이는 의미 있는 결과가 나온 셈이다. 그렇다면 스마일게이트는 어떻게 이러한 값진 결실을 손에 넣게 된 것일까?
줄 것은 주고, 받을 것은 받자는 전략이었다
회사와 노조는 친구는 아니다. 노조와 회사 모두 포기할 수 없는 마지노선이 있고, 이를 지키기 위해 안간힘을 쓰게 된다. 단체협약에 대한 교섭을 진행하는 것도 마찬가지다. 어떻게 보면 중요 거점을 두고 대립하는 냉전과도 같다. 여기에서 요구되는 것은 선택과 집중이다. 차상준 지회장은 “서로가 줄 것은 주고, 받을 것은 받자는 전략이었다. 고무줄처럼 팽팽히 맞서기만 하면 아무것도 얻지 못하게 될 수도 있지 않나”라고 전했다.
그 중심에는 노조가 설립된 후 생긴 새로운 조직 ‘노사협력실’이 있었다. 꼭 노조에 관련된 이슈가 아니더라도 노사 간에 서로 이야기할 것이 있다면 이를 논의하는 창구가 생긴 것이다. 차 지회장은 “노사협력실을 통해 오랜 기간 이야기를 하다 보니 나중에는 서로가 지금 무엇을 말하고 싶은 것인지 이해하게 됐다”라고 설명했다.
앞선 이야기만 들어보면 아무런 갈등 없이 교섭이 진행된 것 같지만 현실적으로 그럴 수는 없다. 회사와 노조가 중요하게 생각하는 가치는 다르고, 의견이 충돌하는 부분도 발생할 수밖에 없다. 접점이 전혀 없는 평행선에서 시작해, 점점 거리를 좁히며 하나로 모일 수 있는 합의점을 찾아내는 것이 일반적인 교섭 과정이다.
따라서 원하는 것만 주장해서는 합의에 도달할 수 없기에 노조 역시 줄 수 있는 부분은 주고, 필요한 것은 꼭 받자는 전략을 앞세웠던 것이다. 교섭 내용을 예로 들면 남성 직원 출산 휴가가 있다. 이번 단체협약에는 남성 직원 출산 휴가를 유급 5일로 확대한다는 내용이 포함되어 있다. 차 지회장은 “기간을 좀 더 늘리고 싶었으나 정부에서 남성 출산 휴가 확대를 추진 중이기에 이 부분에 대해서는 힘을 빼지 않기로 했다”라고 덧붙였다.
그렇다면 단체협약 중 가장 합의하기 힘들었던 부분은 무엇일까? 차상준 지회장은 포괄임금제 폐지와 입사 3년 차에 장기 근속 휴가를 추가하는 부분을 꼽았다. 과정은 힘들었으나 스마일게이트 노사는 올해 10월부터 포괄임금제를 폐지하고 기존 임금에 포함된 ‘시간 외 수당’은 기본급에 포함시키기로 결정했다. 아울러 3년 차 장기근속휴가도 추가됐다.
반대로 쉽게 합의한 부분도 있을까? 차 지회장은 “인센티브 확대와 전환배치에 대한 부분이다. 회사에서도 관련 규정이 필요하다는데 동감했기에 상대적으로 수월하게 협의에 이를 수 있었다”라고 설명했다. 이를 바탕으로 기존에는 전혀 인센티브를 받을 수 없던 조직도 인센티브를 받을 수 있도록 바뀌었고, 전환배치는 2개월 안에 완료하는 것을 목표로 회사와 노조가 협력하기로 했다.
직원 2,000명의 의견을 모아 ‘단체협약’을 만든다는 것
앞서 이야기한대로 스마일게이트는 5개 법인을 묶어서 통합 교섭을 맺었다. 5개 법인에 각각 단체협약을 만들어서 교섭한 것이 아니라, 5곳에 모두 적용될 내용 하나를 두고 회사와 협의한 것이다. 따라서 회사와의 협의도 중요하지만 5개 법인 모두를 아우를 수 있는 ‘통합 교섭안’을 만드는 것도 중요한 일이었다.
5개 법인 직원을 모두 합치면 약 2,000명에 달하며 하는 일도 법인마다 크게 차이가 난다. 예를 들어 스마일게이트알피지는 ‘로스트아크’ 개발 및 서비스를 맡고 있지만, 스마일게이트스토브는 자체 플랫폼 ‘스토브’ 서비스를 담당하고 있다. 차상준 지회장 역시 “어마어마한 크기의 조직에 대한 내용을 비교 분석하며 확인해야 했기에 꽤 진땀을 뺐다”라고 말했다.
그 과정은 힘들었지만 더 큰 가치가 있었다. 서로 다른 조직에서 일하던 직원들이 서로를 이해하게 되는 계기가 되었다는 것이 그의 설명이다. 예전에는 다른 부서에서는 무슨 일을 하는지조차 잘 몰랐지만 지금은 어떠한 일을 하고, 일을 하며 어떤 어려움이 있는가를 좀 더 자세히 알게 되었다는 것이다.
차 지회장은 “저는 개발 부서지만 수석부지회장은 보안 업무를 맡는 지원 부서, 사무장은 사업에서 통계 쪽을 담당하고 있다. 분야가 각기 달라서 처음에는 힘들었던 부분도 있지만 서로의 이야기를 들어보며 본인이 속하지 않은 법인에 대해서도 ‘여기는 이런 회사였구나’라는 부분을 느끼며 공감대가 생겼다”라고 전했다.
노조 활동 때문에 크런치를 하면 안 되지 않나?
작년 9월에 생긴 스마일게이트 노조는 첫 과제라 할 수 있었던 단체협약에 대한 잠정합의를 이뤄내고 조인식을 앞두고 있다. 이에 앞서 3월 28일부터 29일까지 잠정합의안에 대한 찬반투표를 진행한다. 노조 입장에서는 큰 산을 하나 넘은 셈이다. 통합 교섭이라는 의미 있는 결실을 손에 쥔 노조의 다음 목표는 무엇일까?
차 지회장은 “조직 시스템을 만드는 작업을 많이 해야 할 것 같다. 지금까지는 몇 안 되는 인력으로 크런치를 하며 일을 진행해왔지만 이제부터는 안정적인 시스템을 바탕으로 일이 진행되는 구조를 만들려고 한다”라며 “노조는 직원들을 지켜주기 위해서 일을 하는 사람인데 정작 노조 구성원은 크런치를 하는 것은 아이러니한 것 같다”라고 말했다.
이어서 그는 “저나 배 지회장(넥슨 노조 배수찬 지회장) 같은 사람들이 일방적으로 희생하는 것처럼 보이면 노조를 하려는 사람이 아무도 없지 않겠나. 노조를 만들고 싶어하는 다른 게임사 사람들도 좀 더 주저하게 될 것이라 생각한다. IT지회(스마일게이트, 넥슨, 네이버, 카카오)에서도 이를 해소할 다양한 방법을 고민하고 있다”라고 전했다.
직원들에 대한 교육도 생각하고 있다. 차 지회장은 “휴가를 예로 들면 있는지 몰라서 못 쓰는 휴가가 정말 많다. 이러한 휴가 제도가 있다는 것 자체를 모르는 분들도 많다. 여기에 내용 자체도 복잡하다. 내부 직원들에게 이러한 부분을 알려주는 교육 프로그램도 준비하려고 한다”라며 “노동법에 대한 내용을 알려주는 카드 뉴스도 앞으로도 공식 페이지에 주기적으로 올려서 지속적으로 알리려고 한다”라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