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임 규칙에도 저작권이 있다'는 대법원 첫 판결 나왔다
2019.07.01 15:03 게임메카 김미희 기자
게임 규칙은 저작권을 인정하지 않은 판결이 많았다. 이를 뒤집는 첫 대법원 판결이 등장하며 업계에 큰 파란이 일 것으로 예상된다. 게임 규칙이라도 이 게임의 개성이 드러나는 방식으로 조합된 것이 있다면 저작권이 있다고 볼 수 있는 판결이 나온 것이다.
대법원 3부는 지난 27일 ‘팜히어로사가’의 킹닷컴이 홍콩 모바일게임 ‘포레스트매니아’ 국내 서비스를 맡은 아보카도엔터테인먼트를 상대로 낸 저작권 침해금지 소송에 대해 원고 패소였던 원심을 깨고 사건을 서울고등법원으로 돌려보냈다. 2심에서 사건에 대해 제대로 판결하지 못했으니 다시 살펴보라는 것이다.
두 업체의 법적공방은 2014년부터 시작됐다. 1심에서는 킹닷컴이 ‘다른 사람이 만든 것을 무단으로 모방해 이익을 취하는 것’을 금지하는 부정경쟁방지법을 바탕으로 승소했으나 2심에서는 판결이 뒤집혔다. 서울고등법원이 피고 아보카도의 손을 들어준 것이다. 이를 토대로 카피캣 게임이 난무하는 게임업계에서 새로운 카드로 떠올랐던 ‘부경법’도 통하지 않는다는 인식이 생겼다.
그런데 대법원이 킹의 ‘팜히어로사가’의 손을 들어주며 판도가 또 뒤바뀐 것이다. 더 눈길을 끄는 부분은 대법원이 ‘팜히어로사가’의 게임 규칙에 대해 자세히 다루며 두 게임이 유사하다고 밝히고 있는 부분이다.
매치3 퍼즐이라도 구성이 독자적이라면 저작권 있다
게임에서 매치3 퍼즐은 보편적인 규칙이다. 다만 재판부는 “다양한 형태의 매치3 게임이 있었지만 ‘팜히어로사가’는 과일, 야채, 콩, 태양, 씨앗, 물방울 등을 형상화한 기본 캐릭터를 중심으로, 방해 캐릭터로는 당근을 먹는 토끼, 전투 레벨의 악당 캐릭터로는 너구리를 형상화한 캐릭터를 사용하여 농장을 일체감 있게 표현한 게임이라는 점에서 기존 게임과 구별된다”라고 전했다.
아울러 기본 및 추가 보너스 규칙과 히어로 모드, 전투 레벨, 알 모으기 규칙, 특수 칸 규칙 등을 단계별로 도입하여 플레이어가 게임 목표를 달성하는 과정에서 새로운 재미와 신선함을 느끼게 한다고 보았다. 여러 아이디어와 규칙을 모아서 독자적인 구조를 완성한 점에는 ‘팜히어로사가’만의 저작권이 있다고 판단한 셈이다.
대법원은 눈에 보이는 캐릭터, 음악, 그림 외에도 게임 전체를 구성하는 규칙과 구성이 얼마나 유사한지를 자세히 들여다본 것이다. 아울러 독자적으로 구성한 규칙이라면 창작성이 인정된다고 보았다. 재판부는 “특정한 제작 의도와 시나리오에 따라 기술적으로 구현된 주요한 구성요소들이 선택, 배열되고 유기적인 조합을 이루어 기존 게임과 확연히 구별되는 창작적 개성을 갖게 되었다”라고 말했다.
이어서 피고 게임 ‘포레스트매니아’에 대해 재판부는 “원고 게임과 동일한 순서로 히어로 모드, 전투 레벨, 알 모으기 규칙, 특수 칸 규칙 등을 단계적으로 도입하여 원고 게임의 제작 의도와 시나리오에 따라 기술적으로 구현된 주요한 구성요소들의 선택과 배열 및 조합을 그대로 사용하였다”라며 두 게임은 실질적으로 유사하다고 보았다.
아울러 재판부는 “그런데도 원심은 원고 게임의 창작적 개성을 제대로 심리하지 않고 원고 게임과 피고 게임이 실질적으로 유사하지 않다고 판단하였다. 이 부분 원심의 판단에는 게임 저작물의 창작성과 실질적 유사성에 관한 법리를 오해하고, 필요한 심리를 다하지 않아 판결에 영향을 미친 잘못이 있다”라고 전했다.
게임 규칙에 저작권 있다, 대법원 판례의 의미는?
대법원에서 구체적인 게임 규칙과 구성에 대해서도 기존 게임과 구분되는 개성이 있다면 저작권이 있다고 인정한 판례는 국내외 업계에 큰 반향을 일으킬 것으로 예상된다. 게임 시장에 카피캣 게임이 난무했던 이유 중 하나는 게임 규칙은 저작권이 인정되지 않는다는 기존 판례가 있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번에 대법원에서 이를 정면으로 뒤집는 판결이 나오며 업계에서도 카피캣 게임 개발 및 출시에 대한 경각심을 가져야 하는 때가 온 것이다. 특히 대법원 판례는 이후에 발생하는 비슷한 사건에서도 시시비비를 가리는 중요한 기준으로 사용되기에 업계에서 촉각을 곤두세울 수밖에 없다. 시장에서 흥행한 게임을 무차별적으로 베껴서 내는 업계 관행에도 변화가 찾아올지 기대되는 부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