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휴! 컴퓨터에 설치된 게임 플랫폼이 몇 개야?
2019.07.30 10:29 게임메카 서형걸 기자
PC게임을 즐겨하는 게이머라면 컴퓨터를 켰을 때 스팀이 자동 실행될 것이다. 스팀은 수천, 수만 가지 게임을 저렴한 가격에 구매하고 소장 할 수 있는 대표 PC게임 플랫폼이기에, 많은 유저들이 기본으로 이용한다.
그러나 최근에는 보다 다양한 플랫폼을 설치할 수 밖에 없는 환경으로 바뀌었다. '오버워치'를 켜기 위해서는 블리자드 배틀넷을 실행하고, 매주 무료 배포하는 게임을 받기 위해 주기적으로 에픽게임즈 스토어에 로그인 한다. 최근에는 친구들과 '레인보우식스 시즈'를 하느라 유플레이에도 자주 접속한다. 요즘엔 좀 덜 하지만 한동안 '에이펙스 레전드' 때문이라도 EA 오리진에 자주 접속했으며, 고전게임이 플레이 하고 싶을 땐 GOG닷컴을 켠다. 그 외에도 폴아웃과 엘더스크롤을 즐길 수 있는 베데스다넷, 모바일 음성 메신저로만 알았는데 요즘엔 은근 즐길거리가 많아진 디스코드도 한 달에 한두 번 이상은 실행한다.
그러다 보니 사실 꽤 불편하다. 집에서는 대부분 플랫폼의 자동실행을 막아놓고, 계정과 비밀번호를 저장해서 쓰니까 로그인은 편하지만, PC방에라도 가서 플랫폼에 로그인 하려면 보통 일이 아니다. 스팀 계정을 오리진에 입력하면서 비밀번호 찾다가 허탈해지는 경우는 일상이다. 사용 빈도가 낮은 플랫폼 런처들은 켤 때마다 매번 업데이트 한다고 시간 잡아먹기 일쑤고, 간혹 계정과 비번 저장이 초기화라도 되면 난감해진다. 각 플랫폼마다 유저 커뮤니티와 서버도 달라 함께 플레이 하는 것은 물론 정보 교환도 쉽지 않다.
그러다 보니 디지털 패키지가 갖는 장점 역시 사라지고 있다. 게임을 즐기려면 CD를 구매해야 했던 시절엔 "이 많은 CD를 어떻게 정리하고 보관하나!"라는 고민을 했다. 스팀 라이브러리가 이런 고민을 해결해줬지만, 비슷한 플랫폼이 우후죽순 등장한 지금은 디지털 게임들이 여러 플랫폼에 나뉘어 있어 머릿속에서 분류 작업을 해야 한다. 과거의 고민이 되살아난 셈이다.
사실 100% 단점만 있는 건 아니다. 플랫폼끼리 경쟁구도가 형성됨에 따라 유저에게 돌아오는 이익도 많다. 시장 점유율 확대를 위해 AAA급 게임을 파격적인 가격에 판매하거나, 높은 완성도로 이름을 날린 명작을 무료로 배포하기도 한다. 일부 플랫폼은 매월 일정 금액만 지불하면, 다양한 게임을 무료로 즐길 수 있는 게임 구독 서비스도 제공하며, 플랫폼의 접근성과 이용 편의를 높이는 서비스 개선도 경쟁적으로 빠르게 이뤄진다. 플랫폼 별 할인도 거의 365일 돌아가며 실시된다.
개발자도 마찬가지로 많은 혜택을 누린다. 게임 사후관리 서비스가 확실히 개선되고 있으며, 에픽게임즈 스토어나 디스코드처럼 플랫폼이 가져가는 수수료를 대폭 인하해 개발자에게 돌아가는 수익을 확대하는 경우도 있다.
허나 이러한 한 컵 분량 장점만으로 앞서 언급한 집채만한 불편함의 불을 완전히 끌 순 없다. 그렇기에 게이머는 새로운 플랫폼이 등장할 때마가 기대감보다는 반감을 먼저 가지곤 한다. 새로운 플랫폼이 추가된다는 것만으로도 꽤나 스트레스인 것이다. 그렇기에 논란을 뚫고 등장한 새 플랫폼이 조금이라도 만족스럽지 못하면 가차없는 비판의 집중포화가 쏟아진다. 에픽게임즈 스토어에 대해 지금까지도 우호적이지 못한 여론이 많은 것도 이러한 이유가 포함돼 있다.
그러다 보니 일각에서는 이러한 불편함을 인지하고 개선하려는 시도도 이루어지고 있다. 지난 5월 CD프로젝트 레드가 공개한 ‘GOG 갤럭시 2.0’ 버전이 바로 그런 사례다. GOG닷컴은 물론, 스팀, 에픽게임즈 스토어, 오리진 등 PC게임 플랫폼뿐 아니라 플레이스테이션이나 Xbox 등 콘솔게임까지 'GOG 갤럭시' 라이브러리로 가져와 한 자리에서 모아 보는 것이다. 그러나 아직 비공개 테스트 단계이기에 얼마나 효율성이 있을지는 좀 더 지켜봐야 한다.
사실, 게임 플랫폼이 난립하는 현 상황은 역사에 비유하자면 춘추전국시대와 같다. 춘추전국시대는 분명 역사적 혼돈이 가득한 시기긴 했지만, 동시에 과학기술이나 철학, 병법, 문학 등 다양한 분야에서 괄목할 만한 발전을 보이기도 했다. 이는 이후 펼쳐지는 통일국가의 토대가 된다.
게임 플랫폼 시장 역시 마찬가지다. 스팀 독자구도가 무너지고 춘추전국시대가 시작된 지금, 치열한 경쟁을 통해 각 플랫폼은 제각기 경쟁적으로 눈부신 발전과 혁신을 시도하고 있다. 여기서 얻어낸 발전과 합의점들은 분명 게임 플랫폼 시장을 기름지게 만들 것이다. 더불어, 멀지 않은 미래에는 여러 플랫폼이 서로 협력하거나 서로의 장점을 하나로 모은 거대 라이브러리 왕조 시대가 올 수도 있을 것이다. 춘추전국시대에 들어선 게임 플랫폼 시장이 과연 어떻게 흘러갈 지, 우리는 역사의 한가운데 서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