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0년대 게임광고] 박일 성우가 나레이션 맡았던 ‘랑그릿사’
2019.08.06 15:35 게임메카 류종화 기자
한국 게임의 성숙기였던 1990년대를 기억하십니까? 잡지에 나온 광고만 봐도 설렜던 그때 그 시절의 추억. '게임챔프'와 'PC챔프', 'PC 파워진', '넷파워' 등으로 여러분과 함께 했던 게임메카가 당시 게임광고를 재조명하는 [90년대 게임광고] 코너를 연재합니다. 타임머신을 타고 90년대 게임 광고의 세계로, 지금 함께 떠나 보시죠
지난 7월 31일, 외화 더빙의 신으로 불린 박일 성우가 별세했습니다. 불과 얼마 전까지만 해도 ‘토이 스토리 4’의 버즈 역으로 영화관에서 만났던 목소리였기에 더욱 안타까움이 컸는데요, 유년기부터 그의 목소리를 듣고 자라온 각계각층 팬들의 추모가 이어졌습니다.
박일 성우는 영화나 애니메이션 뿐 아니라 게임 분야에서도 종횡무진 활약했는데요, ‘스타크래프트 2’, ‘블레이드 앤 소울’, ‘갓 오브 워 3’ 등 다양한 게임에서 위엄 넘치고 중후한 캐릭터를 담당했죠. 너무 최근 게임만 언급한 것 같은데, 사실 널리 알려지진 않았지만 20년도 더 전부터 게임에서 그의 목소리를 만날 수 있었습니다. 오늘 소개할 ‘랑그릿사’가 바로 그 주인공입니다.
제우미디어 PC챔프 1998년 4월호에 실린 ‘랑그릿사 1’ 광고입니다. 세계기행 코너를 통해 소개한 것처럼, ‘랑그릿사’는 본래 ‘엘스리드’라는 턴제 전략 게임의 외전으로 1991년 메가드라이브로 출시된 작품이죠. 이후 이 게임이 인기를 끌며 다양한 버전으로 컨버팅됐고, 1998년에는 윈도우 98 PC버전으로도 출시됐습니다. 국내 팬들은 대부분 이 때 ‘랑그릿사’를 처음 접했는데요, 사실 이 때 일본에선 이미 ‘랑그릿사 5’가 출시를 앞두고 있을 때였죠. 지금 생각해 보면 꽤나 느렸네요.
당시 국내 정식 발매됐던 ‘랑그릿사’는 당시 게임으로서는 꽤나 드물게 전문 성우들을 기용해 한국어 음성 더빙을 했습니다. 광고 오른편을 보면 당시 참여했던 성우들이 나오는데요, 가장 위에 박일 성우가 나레이션을 맡은 것이 표시돼 있습니다. 사진은 옛날 사진이고 해상도가 낮아서 제대로 알아볼 수 없는데, 가장 가운데 나온 남성분이 박일 성우로 추측됩니다. 대략 성우만 10명 정도 동원된 것으로 보이네요.
참고로 당시는 국내에서 성우에 대한 인지도가 높지 않았던 시기였기에, 성우명 위에는 짧막하게 대표작들이 표시돼 있습니다. 게이머 눈높이에 맞췄는지 인지도 높은 애니메이션 위주로 배역이 소개돼 있는데요, 박일 성우의 경우 대표작인 ‘우주보안관 장고’의 장고 역이 표기돼 있군요. 이외에 강수진, 문지현, 박지훈, 김혜미 등 다양한 인기 성우들도 보입니다.
다음 페이지 광고에는 ‘랑그릿사’ 원화가 우루시하라 사토시의 미려한 일러스트와 함께 시스템 요구사항과 게임 특징 등이 정리돼 있습니다. ‘16MB 이상의 하드디스크 용량’이 가장 눈에 띄네요. 얼마 전 DSLR로 찍은 사진 한 장 크기가 대충 저 정도 했던 것 같은데요. 특징으로는 시스템과 음성 한국어화, Direct-X 기술, PC 버전의 강력한 그래픽 표현, 자유로운 세이브, 편리한 인터페이스 등이 강조돼 있습니다.
설명을 유심히 보면 ‘플스용 랑그릿사’와 주로 비교하는 것을 확인할 수 있는데요, 실제로 플스판은 용량 문제로 각종 영상과 음성이 삭제되거나 화질과 음질이 심각하게 낮아지는 등 평가가 낮았던 제품이었습니다. PC 버전은 플스판을 기반으로 했지만, 그래픽과 사운드, 시스템 등을 대폭 개선한데다 한국어 음성까지 입혀 국내 유저들에게 뜨거운 사랑을 받았죠. 사실상 국내 ‘랑그릿사’ 열풍의 주역이었다고 해도 무방하겠습니다.
광고 마지막장에는 ‘랑그릿사’ 하면 떠오르는 대표 일러스트와 함께 세계관 소개 문구가 짧막하게 나와 있습니다. ‘랑그릿사’라는 전설의 검을 차지하기 위해 수많은 전쟁이 있었고, 이 검이 진정한 주인의 손에 들어가는 순간 모든 진실이 밝혀진다고 하네요. 20년도 넘게 지났으니 살짝 스포일러 해 보자면, 이후 ‘랑그릿사 5’에서 밝혀진 성검 ‘랑그릿사’의 정체는 사실 인간의 정신을 에너지로 삼하 행성 궤도에 있는 위성 병기를 통제 장치이자 군용 신호기입니다. 갑자기 SF 설정이 훅 파고 들어오니 많은 이들이 당황했고, 결국 시리즈가 끝나버렸죠.
최근 모바일에서 한창 인기 행진을 하고 있는 ‘랑그릿사’를 생각하며 이 광고를 보니 감회가 남다릅니다. 사실 이 게임이 정식 발매됐을 당시엔 “아득한 옛날~ 소유한 자에게 무한한 힘을 부여해준다고 전해지는 전설의 성검 랑그릿사~” 나레이션을 들어도 그냥 평소 듣던 아저씨 목소리라고 생각하고 넘겼었는데, 이 기회에 한 번 다시 들어봐야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