적당히 귀찮아 몰입하기 좋다, ‘스페셜포스 VR: 인피니티 워’
2019.08.15 10:00 게임메카 안민균 기자
VR은 ‘새로 산 스마트폰’과 같다. 가상현실이 신기한 것도 잠깐이란 뜻이다. VR은 기본적으로 귀찮다. 설치도 설치지만, 게임을 즐기기 위해서 직접 몸을 움직여야 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최초 VR을 접했을 때는 신기한 마음에 적극적으로 다양한 기능을 체험해보려고 하지만, 100시간, 300시간, 1,000시간…가상현실에 익숙해질수록 상호작용이 절제된 ‘적당히 귀찮은’ 게임을 찾게 된다.
그런 의미에서 오랜만에 덜 귀찮고 가벼운 마음으로 즐길 만한 VR FPS 게임이 하나 출시됐다. 국내 개발사 드래곤플라이가 지난 9일 출시한 ‘스페셜포스 VR: 인피니티 워’가 그 주인공이다.
귀찮은 동작은 생략, 캐주얼 FPS ‘스페셜포스 VR’
‘스페셜포스 VR: 인피니티 워’는 각국 특수요원들이 펼치는 밀리터리 대전을 다룬 VR 게임이다. 온라인 멀티플레이를 기반으로 최대 8인이 동시에 게임을 즐길 수 있으며, 데스매치, 팀 데스매치, 폭파 미션 등 기본적인 FPS 대전 모드를 가상현실에서 실감나게 즐겨볼 수 있는 것이 특징이다.
게임은 굉장히 캐주얼하다. 플레이어는 보고, 쏘는 동작만 기억하면 된다. 컨트롤러 트리거만 당겨도 총이 발사되고, 장전된 탄이 다 떨어지면 별도로 동작을 취하지 않아도 알아서 장전이 된다. 보통 VR FPS게임이 노리쇠 후퇴전진, 탄알집 교체 등 총기를 다루는 데 필요한 모든 동작을 세밀하게 묘사하는 등 최대한 현실을 반영하려고 노력하는 것을 생각하면 상반된 부분이다.
생략된 부분이 많다는 것은 얼핏 부정적으로 들릴 수 있는데, 실상은 그 반대다. ‘스페셜포스 VR: 인피니티 워’는 그런 ‘적당히 귀찮은 게임’이라 좋다. 자칫 귀찮을 수 있는 부분을 과감하게 덜어내고, 전투에만 집중할 수 있도록 배려했기 때문이다.
군 시절 생각나네, 현실감 넘치는 전투
이 게임을 하면서 옛날 생각이 많이 났다. 실제로 총을 쏘는 것처럼 자세를 취하고, 조준선도 정렬해야 한다. 즉, 실제로 총을 다뤄본 사람일수록 유리하다. 대한민국에는 실제로 소총을 다뤄본 게이머가 유독 많다. 바로 나라를 수호하는 대한민국 국군 장병들이다.
‘스페셜포스 VR: 인피니티 워’는 군 시절 경험했던 사격을 떠올리게 했다. 총은 한 손으로 쏘면 빠른 사격이 가능하지만, 반동이 심해서 조준이 힘들다. 남은 한 손을 총기 덮개 쪽에 가져다 대면 딱 달라붙어 양손으로 총을 쥐게 되고, 반동이 적어져 안정적인 사격이 가능해진다.
정조준도 해야 한다. 조준경 안에 타겟이 들어온다고 다 맞는 것이 아니다. 조준경에 얼굴을 딱 붙이고 적당히 기울여서 조준선을 정렬해야 적을 맞출 수 있다. 이 부분에서 ‘내가 VR FPS를 즐기고 있구나!’라는 실감이 들면서 즐거워지기 시작한다. 그렇게 게임에 집중하다 보면 저도 모르게 누구보다 완벽한 견착 자세를 취하고 있는 자신을 발견할 수 있다. 상대방이 이상하게 허공에 총을 쏘는 것을 발견하면 ‘저 녀석, 미필이구만!’이라는 근거 없는 우월감(?)에 빠지기도 했다.
앞서 말했듯 실제 탄을 발사하는 부분을 제외한 모든 동작은 간소화 됐다. 탄창을 모두 소모했을 경우 별도 동작 없이 자동으로 장전이 된다. 만약 수동 장전을 하고 싶다면 탄알집 부분이나 총기 덮개 부분을 손으로 쥐면 장전이 가능하다. VR게임에 시뮬레이션적인 측면을 요구하는 게이머에겐 호불호가 갈릴 수 있는 부분이다. 개인적으로는 게임에 집중할 수 있어서 좋았다.
수류탄, 연막탄 등 투척물 인식도 깔끔하다. 손을 휘두르면서 트리거를 당기면 투척물이 호를 그리며 날아가는데, 머리 속에 그린대로 잘 된다. 가끔 실수해서 바로 앞에 던져졌을 때 혼비백산하면서 도망가게 되는 것도 하나의 재미 포인트다.
보통 FPS는 시점이 빠르게 바뀌고, 텔레포트 이동 방식을 사용하기 힘든 장르이기 때문에 VR 멀미에 대한 걱정이 많다. ‘스페셜포스 VR: 인피니티 워’는 이동 시 시야를 일부 제한하는 것으로 그런 멀미를 해결했다. 이동 속도가 빨라질수록 좌우 상하 시야가 줄어들고 정면만 눈에 들어오게 되는 구조다. 시야 제한이 방해된다고 생각한다면 설정 메뉴에서 해제할 수도 있다.
얼리액세스인 탓일까? 아직은 부족한 콘텐츠
‘스페셜포스 VR: 인피니티 워’는 앞서 해보기(얼리액세스) 게임이다. 그 때문일까? 게임 구성이나 밸런스 측면에서 아쉬운 점이 많이 엿보였다.
우선 ‘스페셜포스’ 요원들이 어째서 싸우게 됐는지 전혀 언급이 없다. 시작하자마자 간단한 튜토리얼을 통해 조작을 배우게 되고, 별다른 안내 없이 로비에 던져진다. 알아서 주변을 둘러보면서 학습해야 한다. 게임 도중 전적을 보거나, 설정 메뉴를 여는 등 꼭 필요한 기능도 안내해 주지 않아서 직접 찾아내야 할 정도다.
사실 이런 방치플레이 취급은 각종 VR 게임을 오래 경험한 게이머라면 익숙하다. 체감형 게임인 만큼 직접 움직이고 찾아보라는 의도로 해석될 수도 있다. 다만 기왕 ‘스페셜포스’라는 타이틀을 단 만큼 뭔가 분위기를 잡은 스토리가 진행되고, 그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시스템을 학습할 수 있도록 유도해줬으면 좋았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기본적인 게임 밸런스도 개선될 필요가 있다. 맵이 굉장히 좁고 엄폐물이 많기 때문에 산탄총이 유리하고, 저격소총은 불리하다. 산탄총은 엄폐물 뒤에 숨으면서 빠르게 접근해서 근접사격이 가능해 플레이가 편하다. 또 이상하게 한 손으로 들고 쏴도 반동이 없다. 반면 저격 소총은 VR 특성상 실제로 총을 견착한 상황이 아니라 손이 많이 흔들려서 조준도 힘든데, 여기에 맵까지 좁아서 차분히 저격할 수 있는 안전지역을 확보하기가 어렵다.
또 보급품이 너무 안전한 곳에 위치해있고, 재생성 주기가 짧다. 보급품을 챙길 시 즉시 투척물과 탄창이 충전되는데, 이게 대부분 참호 근처에서 생성된다. 만약 본인이 군필자라면 보병전에서 참호 전투가 얼마나 중요한 지 알 것이다. 앉아서 보급품만 주워다 수류탄만 던져도 대부분 플레이어는 접근도 하지 못하며, 만약 어렵게 뚫고 들어왔다고 일방적인 엄폐사격에 벌집이 될 뿐이다.
콘텐츠도 부족하다. 게임 플레이 시 경험치가 쌓이고 계급이 올라가지만, 혜택은 전무하다. 총도 권총 포함 8개밖에 되지 않는다. 총기 커스터마이징, 클랜전 등 기존 FPS 게임에서 볼 수 있던 추가 콘텐츠 도입이 시급하다.
너무 캐주얼함을 강조하다보니 VR에서만 가능한 기능과 특징을 잘 살리지 못했다는 것도 아쉽다. ‘스페셜포스 VR: 인피니티 워’는 정말로 총을 쏘고 칼을 휘두르는 것밖에 하지 못한다. 다른 VR FPS 게임처럼 땅에 떨어진 총을 줍거나, 날아오는 폭탄을 주워서 다시 던져준다거나, 멋있게 칼을 던져서 적을 사살할 수 있는 등 직접 손을 이용해 경험할 수 있는 다양한 상호작용을 마련했으면 어땠을까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이처럼 다소 미흡한 부분은 있으나, 게임이 아직 앞서 해보기 버전이라는 것을 감안하면 충분히 이해할 수 있다. 좀처럼 동시접속자가 확보되지 않아서 쓸쓸하게 AI와 총격전을 벌여야 된다는 문제점만 어떻게 해결됐으면 좋겠다.
만약 VR FPS에 관심은 있는데 ‘온워드’, ‘파블로프’ 같은 본격적인 하드 밀리터리 VR FPS 게임은 부담스럽다면 ‘스페셜포스 VR: 인피니티 워’를 추천하고 싶다. 최신 게임답게 그래픽도 훌륭하고, 오로지 전투에만 신경 쓴 콘텐츠에 큰 만족을 얻을 수 있을 것이다.
‘스페셜포스 VR: 인피니티 워’는 스팀에서 구매할 수 있으며, 가격은 2만 6,000원이다. 게임을 즐기기 위해서는 밸브 인덱스, 오큘러스 리프트, HTC 바이브, 윈도우 MR 등 VR 기기가 필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