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정남] 힐러는 힘캐야! 게임에서 잘못 해석한 직업 TOP5
2019.08.29 18:13 게임메카 류종화 기자
※ [순정남]은 매주 이색적인 테마를 선정하고, 이에 맞는 게임을 골라 소개하는 코너입니다
게임을 통해 현대 사회에서 보기 힘든 다양한 직업들을 만날 수 있다. 그 중에는 마법사나 네크로멘서처럼 상상 속 직업도 있지만, 전사나 기사, 도적 같은 실제 존재했던 직업들도 많다. 아무래도 RPG의 원형이 된 D&D부터가 ‘반지의 제왕’ 영향을 받아 유럽 중세풍 판타지 세계관을 바탕으로 했기에, 여기서 영향을 받은 직업들이 지금까지 내려오고 있다.
이러한 직업들은 게임마다 조금씩 다르긴 하지만, 일종의 법칙을 갖고 있다. 흔히들 전사는 힘과 체력, 무술가는 스킬치, 도적은 민첩성이 높고, 힐러의 주무기는 메이스, 요정의 주무기는 활 같은 식이다. 기자 역시 게임에서 이러한 직업들을 처음 만나다 보니 자연스레 이러한 상식이 굳어졌다. 그러나, 실제 역사를 되짚어보면 이는 모두 편견에 불과하다. 게임에서 잘못 해석한, 비정하기까지 한 중세 시대 직업을 확인해보자.
TOP 5. 궁수는 민첩 캐릭터가 아니라 힘캐다
일반적으로 게임에서 궁수 직업은 민첩성/손재주(DEX)에 치중하는 경향이 있다. 그래서 게임 속 궁수는 몸이 날랜 엘프나 힘은 약하지만 멀리서 아군을 돕는 활잡이 여성 캐릭터인 경우가 많다. 전투에 들어서면 궁수는 빠른 몸놀림을 바탕으로 적과의 거리를 조절해가며 재빨리 화살을 수십 발씩 발사하곤 한다. 전장을 팔짝팔짝 뛰어다니는 모습을 보면, 가끔은 이 캐릭터가 궁수인지 양학선인지 헷갈릴 정도다.
그러나, 실제 궁수는 몸놀림보다는 힘이 더 중요한 직업이다. 양궁장, 혹은 오락실에서라도 활을 당겨 본 사람들은 알 것이다. 시위를 당기고 유지하는 데만 해도 팔과 등근육을 얼마나 쥐어짜야 하는지. 그나마 위력이 강해지고 부담이 덜해진 현대식 활도 이 정도인데, 중세 활들은 어떨 것 같은가. 실제 16세기 영국 전함에서 발굴한 장궁은 시위를 당기는 데 드는 장력이 무려 150파운드(68.03kg)였다고 하니, 이런 걸 계속 당기려면 웬만한 강골이 아니고서는 힘들다. 여포라던가, 람보 같은 캐릭터 말이다. 이 기회에 알아두자, 궁수는 ‘힘캐’다.
TOP 4. 헌터에게 중요한 것은 지구력
궁수만큼은 아니지만, 게임에서 꽤 흔히 등장하는 직업 중 헌터(사냥꾼)가 있다. 간혹 궁수와 동일시되기도 하고, 궁수의 상위 클래스가 되기도 한다. 활만 쏘는 궁수와 달리 다양한 기계 장치를 사용하기도 하며, 사냥꾼의 특색을 반영해 간혹 동물을 부리는 테이머나 덫, 독 전문가로서의 특징을 갖기도 한다. 주로 폭딜과 치명타 등을 핵심으로 삼기에 DEX나 크리티컬 등에 특화돼 있다.
그러나 총이 등장하기 전 고대 사냥꾼들의 생태를 보면, 헌터는 무엇보다도 체력에 특화된 캐릭터다. 기본적으로 인간의 사냥법은 2족보행 특유의 월등한 지구력을 바탕으로 사냥감을 계속 쫒아가다, 결국 사냥감이 지쳐 나자빠지길 기다리는 방식이었다. 산을 오르내리며 하루에도 십수 시간을 뛰어다니며 사냥감을 며칠씩 쫒아다니려면 엄청난 체력이 뒷받침돼야 한다. 우리 모두 앞으로는 헌터를 묘사할 땐 지구력의 상징 이봉주 선수를 기억하자.
TOP 3. 암살자는 공격보다는 지능이다
일반적으로 암살자 캐릭터는 게임 내에서 가장 높은 공격력을 자랑하는 경우가 많다. 조작은 다소 까다롭지만 빠른 몸놀림을 바탕으로 압도적인 폭딜을 쏟아내고, 간혹 그림자에 숨거나 은신을 통해 적의 등 뒤에서 치명적인 일격을 가하기도 한다. 게임에 따라 다르지만 공격력이나 민첩, 스피드 등을 높이고 대신에 방어력이나 체력은 낮은 하이 리스크 하이 리턴 캐릭터다.
그러나 실제 암살자들의 활동을 보면, 이런 신체적 강함보다는 오히려 지력을 찍어야 한다. 암살자는 적에게 들키거나 의심받지 않고 대상의 곁으로 다가가 남몰래 처지하고 빠져나와야 하는데, 여기에는 다양한 지식과 정보 수집, 연기력 등이 필수였다. 실제로 암살 대상의 바로 옆까지 다가가거나 함정을 설치할 수만 있다면, 그 이후에는 힘이건 민첩성이건 중요치 않다. 고위층 암살자일수록 전사보다는 첩자 혹은 전략가에 가까운 것이다. 지력이 낮고 몸만 빠른 암살자는 기껏해야 말단 일회용이다. 앞으로 암살자 캐릭터를 만들 때는 지능 수치도 살포시 눌러주도록 하자.
TOP 2. 바드와 드루이드, 다른 직업 아니에요?
정통 판타지를 추구하는 게임에선 바드와 드루이드라는 직업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일반적으로 드루이드는 숲과 동물 등 자연의 힘을 빌려 적과 싸우는 마법사고, 바드는 악사나 음유시인으로 다양한 버프나 디버프를 걸어주는 보조 기술 캐릭터에 가깝다. 일반적으로 이 둘은 전혀 다른 클래스로 분류되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이 둘은 엄밀히 말해 하나의 직업이다. 정확히 말하면 드루이드가 되기 바로 전 단계가 바드다. 애당초 드루이드란 고대 영국 켈트 신앙의 사제로, 제사장과 철학자, 정치학자, 역사학자, 의사, 천문학자, 교육자를 겸하는 지식인 직책이었다. 로마 기록에 따르면 드루이드가 되기 위한 과정은 20년에 달하는데, 이를 위해 필수적으로 거쳐야 하는 과정 중 하나가 바드였다. 즉 드루이드는 바드의 2차 전직인 것이다. 참고로 TRPG ‘AD&D’ 초기판에서는 드루이드를 거쳐 바드로 전직하는데, 지금으로 따지면 교수를 거쳐 대학원생이 되는 셈이니 넌센스다.
TOP 1. 사랑으로 어루만져 주는 힐러라구요?
힐러 하면 어떤 이미지가 떠오르는가? 따뜻함? 희생? 사랑으로 어루만져 주는 천사? 흔히들 힐러에 대해 가지고 있는 심상은 대부분 이렇다. 간혹 메이스를 들고 전투에 나서는 힐러가 있긴 하지만, 치료할 때만큼은 성스럽기 그지없는 이미지다. 오죽하면 만화 명대사 중 “힐러에게만 가면 돼. 아무리 다쳐도 힐러에게만 가면 살 수 있어”라는 말도 있겠는가. 어쨌건, 힐러는 마력 혹은 지능에 특화된 캐릭터임은 확실하다.
그러나, 중세시대 힐러의 실상을 알고 나면 이러한 생각도 쏙 들어갈 것이다. 당시 힐러들의 주 임무는 어떻게든 죽지만 않게 하는 것이었다. 상처를 사정없이 벌려 찢어 화살촉을 꺼내고, 오염된 상처부위를 자르고, 뼈를 절단하고, 두개골을 톱질하는 도구들을 보고 있자면 이게 치료도구인지 ‘블러드본’에 나오는 고문도구들인지 구분이 가지 않는다. 마취도 없던 시절이라 환자가 몸부림치지 못하게 꽉 잡고 있어야 하는 것은 기본이고, 수혈 개념이 없던 시기라 최대한 피를 덜 흘리게 하기 위해선 뼈 하나 정도는 10초 만에 뚝딱 잘라낼 수 있어야 했다. 즉, 힐러야말로 근접 전사 겸 적 몬스터 고문해서 정보 캐내기에 가장 적절한 직업이 아닐 수 없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