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정남] 즉사 스킬이라니? 초창기 온라인게임 실수 TOP 5
2019.09.05 20:02 게임메카 류종화 기자
※ [순정남]은 매주 이색적인 테마를 선정하고, 이에 맞는 게임을 골라 소개하는 코너입니다
옛날옛적, 집에서 ‘요리왕 비룡’을 보다 문득 동파육을 만들어 보려 시도한 적이 있었다. 당시는 인터넷 레시피가 지금처럼 발달하지도 않았고, 한국에서 동파육이라는 요리가 잘 알려지지도 않았기에 참고할 만한 사례가 없었다. 그렇다고 애니메이션에 나온 용이 솟구치는 요리방법을 따라할 순 없고… 결국 어두컴컴한 곳에서 동파육이라는 길을 향해 더듬어 가며 시작한 모험은 정체모를 탄 고깃덩어리라는 비극만 남긴 채 끝이 났다.
참고할 만한 사례가 없으면 누구든 시행착오를 겪기 마련이다. 특히나 앞서 걸어간 사람 없이 처음 개척하는 길이라면 말할 것도 없다. 90년대 후반에서 2000년대 초반 PC 온라인게임이 그랬다. 모든 것이 맨 땅에 헤딩이었고, 수많은 실수 끝에 지금의 기반이 다져졌다. 요즘 보면 농담처럼 들리는 기초적인 실수가 숱하게 벌어졌던, 온라인게임 초창기 치명적 실수 TOP 5를 살펴보자.
TOP 5. 온라인게임 데이터가 내 컴퓨터에 저장된다고?
얼마 전 E모 모바일게임에서 일어난 비극에서도 볼 수 있듯, 멀티플레이 기반 게임의 최고 우선순위는 보안이다. 특정 유저가 게임 데이터를 입맛대로 건드려 다른 이들보다 우위를 점하는 것은 게임 질서를 뒤흔들고 존망을 위태롭게 만든다. 이에 대다수 온라인/모바일게임 운영사들은 서버에 저장된 유저 정보를 무슨 일이 있어도 건드리지 못하도록 보안에 특히 신경을 쓰고 있다. 뭐, 안 그래왔던 곳도 몇 있는 모양이다만……
그런데, 온라인게임 초창기에는 유저 데이터를 무려 서버가 아닌 유저 개인 PC에 저장하는, 말도 안 되는 일이 종종 있었다. 대표적인 사례가 바로 ‘디아블로 1’이다. ‘디아블로 1’은 배틀넷을 최초로 지원한 블리자드 게임인데, 문제는 출시 시기가 온라인게임에 대한 개념도 제대로 잡히지 않은 1996년 연말이었다는 점이다. 당시 배틀넷 운영에 대해 아무 경험이 없던 블리자드는 싱글플레이에서 그랬듯 멀티플레이 세이브 데이터를 윈도우 폴더 내 파일로 저장하도록 했고, 유저들은 좋아라 하며 마구 파일을 주물러댔다. 지금 생각하면 있을 수도 없는 일이다. 그나마 다행인 점은 이 사태로 당시 온라인 멀티플레이 게임을 준비 중이었던 게임사들이 정신을 바짝 차렸다는 점 정도랄까?
TOP 4. 초등학생들도 할 수 있는 돈 놓고 돈 먹기, 도박 미니게임
2006년 ‘바다이야기’ 사태로 한바탕 몸살을 앓은 대한민국은 그 어느 나라보다 사행성 게임에 민감해졌지만, 사실 그 이전까지는 사행성에 꽤 둔감했던 것이 사실이다. 대표적인 것이 일반 MMORPG에서 종종 찾아볼 수 있던 도박성 미니게임이다. 카드 게임을 도입했던 ‘로한’, 가위바위보 게임을 도입했던 ‘일랜시아’가 대표적이다.
이러한 시스템은 처음엔 유저 간 가볍게 즐길 수 있는 미니게임으로 기획됐다. 그냥 게임만 하기엔 스릴이 부족할 것이라고 느꼈는지, 게임머니나 아이템을 걸고 승자가 독식할 수 있게 만든 게 문제였지만. 이는 유저들의 사행성을 자극해 모든 유저들이 도박에만 올인하는 사태가 벌어졌다. 심지어 당시 이 게임들은 아이템중개 사이트를 위한 현거래도 활발했기에, 일부 유저는 여기에 빠져 현실 재산을 탕진하기도 했다. 문제가 커자 ‘로한’ YNK(현 플레이위드)와 ‘일랜시아’ 넥슨은 해당 시스템을 부랴부랴 삭제했다. 지금으로 따지면 당장 게임위가 출동해 철컹철컹 했겠지만, 시기가 시기였던지라 조용히 넘어갔다.
TOP 3. 수집형 게임에서 내가 모으고 키운 캐릭터가 삭제?
코나미 ‘위닝일레븐(PES)’ 시리즈는 라이선스 때문에 고통받는 게임으로 유명하다. 전통적으로 라이선스를 다수 획득하지 못 해 유저들이 패치를 통해 해결해 왔다. 간혹 유명 팀이나 리그 라이선스를 획득하기도 했는데, 올해는 호날두를 비롯한 유벤투스 라이선스를 얻었다. 그리고 국내에서는 호날두 불매 운동이 터졌다…
아무튼, ‘위닝일레븐’이 처음으로 온라인에 도전한 것이 바로 NHN과 손잡고 2012년 선보인 ‘위닝일레븐 온라인’이다. 맞수(로 여기고 싶었던) ‘피파 온라인’ 시리즈처럼 선수 수집이 게임의 주된 요소 중 하나였다. 이에 서비스 시작 당시엔 위닝답지 않게 라이선스를 많이 확보했는데, 지브릴 시세, 루시우, 고메즈 같은 유명 선수들도 포함돼 있었다. 문제는 2013년 4월, 라이선스 갱신에 실패하며 해당 선수들이 한순간에 게임에서 삭제됐다는 점이다. 그것도 무려 332명이나! 온라인게임에 서툴었고 라이선스 확보에 힘들어하던 코나미의 가슴아픈 실책 중 하나다. 만약 최근 수집형 게임에서 이런 일이 생긴다면… 상상하기도 싫다.
TOP 2. GM이 화나서 유저들을 전부 죽였어요
지금은 다소 명성이 바랬으나, 리차드 개리엇은 한때 세계 최고 개발자였다. 특히나 대표작인 ‘울티마’ 시리즈에서는 신 그 자체였다. ‘울티마’ 시리즈에서부터 NPC ‘로드 브리티쉬’로 계속 출연하던 그는, ‘울티마 온라인’에서는 아예 본인이 전지전능한 GM이 되어 유저들과 소통하기 시작했다. 아마도 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GM이 아닐까 싶다.
그런데, 그런 로드 브리티쉬에게도 흑역사가 있다. 초기 베타테스트 당시 한 게이머가 범위마법으로 인한 시스템의 허점을 교묘히 악용, 가드를 이용해 로드 브리티쉬를 죽인 것이다. 허허 웃으며 끝냈으면 좋았을 것을, 리차드 개리엇은 극대노해 주변 플레이어를 모조리 몰살시키고 자신을 죽인 게이머를 게임에서 영구 추방하는 극단의 조치를 내렸다. 명목상으로는 버그 사용에 대한 제재였라고 밝혔지만, 데몬 군단을 소환해 죄 없는 주변 사람들까지 싸그리 죽인 것에 대한 변명은 되지 않는다. 지금이었다면 GM이 불판 위에서 그랜절을 하더라도 용서하기 어려운 일이지만, GM의 역할에 대한 개념이 잡혀 있지 않았던 시기였던 터라 유저들도 오리진도 그냥 넘어갔다는 게 재밌다.
TOP 1. MMORPG에서 '즉살' 스킬이라니!?
손노리의 역작이었던 ‘포가튼사가’. 한국 RPG에서 볼 수 없었던 프리 시나리오 시스템을 채택해 출시 전 많은 호평을 받았으나, 정작 출시되고 나서는 게임 진행이 불가능할 정도의 숱한 버그들로 인해 오명을 쓴 비운의 게임이다. 그래도 게임 자체는 꽤 재미있었던 터라, 본격적인 온라인게임 시대가 열리자마자 곧바로 온라인화 되었다. 바로 ‘포가튼사가 2’다.
사실 이 게임은 시대적 상황을 감안하더라도 다방면으로 문제가 많은 게임이었다. 그 중 가장 재미있는 것이 바로 ‘있으면 안 될’ 스킬들이다. 예를 들면 ‘악싸울아비’의 ‘일격필살’을 비롯한 몇 개 스킬은 적중한 상대를 일정 확률로 ‘즉사’시킨다. 상대방의 방어력이나 체력 등과 관계 없이 확률에 따라 결정된다. 아마도 원작에서 언데드 몬스터를 일정 확률로 즉사시키는 ‘턴언데드’ 스킬에서 영감을 얻은 듯 한데, 결국엔 MMORPG에서 ‘절대’ 시도해선 안 될 사례 중 하나로 후대에 남았다. 엄복동처럼 게임안 잘 안돼도 스킬 하나만은 기억에 남았으니 나름 성공하지 않았나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