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랙옵스4 망친 블리자드 코리아 번역, 모던 워페어도 우려
2019.09.10 15:58 게임메카 류종화 기자
인피니티 워드가 개발한 리부트작 ‘콜 오브 듀티: 모던 워페어’가 출시를 앞두고 예약 판매를 시작했다. 이번 작품은 리스폰으로 떠났던 옛 주요 개발진 일부가 돌아와 만든 작품이자 시리즈의 원류로 회귀해 새로운 마음으로 시작하는 의미 깊은 작품으로, 제작진이 직접 “한 차원 높은 수준의 진화한 콜 오브 듀티”라고 말할 정도로 액티비전블리자드 본사에서도 기대를 걸고 있는 타이틀이다.
그러나, 게임이 잘 나오더라도 한국 유저들은 불안해 할 수밖에 없다. 블리자드 코리아가 작업한 전작 ‘콜 오브 듀티: 블랙 옵스 4’가 역대 최악의 번역과 현지화로 악명을 떨쳤기 때문이다. 잘 만들어서 전세계가 즐겁게 하는 게임을, 국내에서만 작년과 같은 악몽을 되풀이 하는 것이 아니냐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
게임은 잘 나올 것 같다
블리자드 코리아는 10일, 서울 삼성동에서 ‘콜 오브 듀티: 모던 워페어’ 발표회를 열었다. 이 자리에는 제작사 인피니티 워드 디노 베라노(Dino Verano) 프로듀서가 참석해 게임에 대해 소개하는 자리를 가졌다.
이 날 자리에서는 게임의 주된 모드인 싱글 캠페인과 멀티플레이 모드가 집중적으로 소개됐다. 특히 역대 최대 분량이라고 소개된 캠페인 모드는 신규 플레이 영상까지 소개되며 기대감을 높였다. 테러리스트로 보이는 인물들이 점거한 집에 침투해서 적을 섬멸하는 영상을 통해 치열한 전투 속에서 때로는 동료를 잃고, 누가 적이고 민간인인지 구분하기 어려운 곳에서 과감한 결정을 내리는 과정이 상세히 다뤄져 스토리에 대한 기대감을 불러일으켰다.
멀티플레이 모드는 가볍게 즐길 수 있는 2 대 2 총격전 모드가 중요도 높게 소개됐으며, 야시경과 레이저를 사용하는 동굴 속 전투, 동맹군과 연합군 진영으로 나뉘는 캐릭터성, 액세서리를 50개까지 부착 가능한 총기 개조 기능 등이 소개됐다. 또한 캠페인 모드의 확장판 개념인 분대 기반 멀티플레이 협동전도 언급됐다.
그래픽 품질 역시 한 단계 진화한 수준이다. 최신 그래픽 엔진으로 실사 수준의 렌더링을 구현했으며, 사진측량기법과 최첨단 아트 툴셋, 모든 개체를 실사화하고 그림자 효과를 극대화하는 새로운 렌더러를 사용해 정교함과 방대함 양쪽을 잡았다. 즉, 게임 자체는 상당히 기대할 만 하다는 평가다. 특히 과거 호평을 받은 ‘모던 워페어’를 리부트 한다는 것 하나만으로도 올드 팬들의 복귀를 기대할 수 있는 요소다.
이번에도 블리자드 코리아가 발목 잡을까
그러나 역시 한국 유저들은 불안하다. 작년 국내 출시된 ‘콜 오브 듀티: 블랙 옵스 4’가 사상 최악의 번역으로 악명을 떨친 바 있기 때문이다. 전작은 블리자드 코리아가 본사인 액티비전과 개발사인 트레이아크와 협업해 현지화를 진행했다. 이 중 액티비전과 트레이아크는 외국 회사이므로 사실상 한국어 번역 품질에 대한 책임은 블리자드 코리아에 있다. 이번 작품 역시 번역 시스템이 동일하기 때문에, 국내 유저들 사이에서는 또 다시 ‘반글화’로 게임이 얼룩지는 것이 아니냐는 불안이 팽배해 있다.
발표회가 끝나고 이어진 질의응답 시간에, 게임메카는 한국을 찾은 인피니티 워드 디노 베라노 프로듀서에게 해당 부분을 질문했다. “역대 최대 규모 캠페인 모드를 넣는다는 점에서 기대가 되지만, ‘블랙 옵스 4’에서 보여준 블리자드 코리아의 번역 품질 논란이 되풀이 될 경우 한국 유저들로부터 또 좋지 않은 평을 받게 될 수 있다. 혹시 번역 품질에 대한 액티비전이나 인피니티 워드 차원의 품질관리 대책이나 피드백 계획이 있는가”라는 질문이었다.
그러나 이 질문은 인피니티 워드 측에 전달되지 않았다. 옆에 앉아 있던 블리자드 코리아 전동진 사장이 통역을 막고 대신 답변한 것이다. 전동진 사장은 “작년 ‘블랙 옵스 4’를 론칭하면서 블리자드 코리아도 액티비전도 많이 배웠다. 어떻게 하면 ‘콜 오브 듀티’를 한국에 잘 서비스 할 수 있을까 고민했다. 올해는 현지화나 서비스 품질에 대해서 분명히 나아진 모습을 보여줄 수 있을 것이라고 약속드릴 수 있다. 작년에 한 번 겪었으니 학습이 됐다”라고 밝혔다.
이것만으로는 블리자드 코리아의 입장이 아닌 본사(액티비전/인피니티 워드)측 품질관리에 대한 충분한 답변이 되지 못했다. 이에 디노 베라노 프로듀서를 직접 지목하며 다시 한 번 번역 품질관리 정책을 질문했으나, 이번에도 전동진 사장이 대답을 대신했다. 전 사장은 “작년 한국 서비스나 PC방 상황 등에 대해 개발팀도 그렇고 메인 테크 팀도 그렇고 다들 처음 겪어본 일이었다. 이에 대해 학습을 많이 했고, 작년에 있었던 문제들에 대해 많이 알고 있기 때문에 올해는 잘 할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한다”라는 답변이었다. 결국 한국어판 번역 품질이 좋게 나오지 않았을 경우에 대한 인피니티 워드나 액티비전 측 입장에 대해서는 듣지 못했다.
일단 블리자드 코리아 전동진 사장의 답변을 정리하면 작년 ‘블랙 옵스 4’의 일을 거울삼아 이번 ‘모던 워페어’에서는 달라진 모습을 보여주겠다는 것으로 압축할 수 있다. 그러나 최근 3달 간 공개된 한국어판 영상들의 번역 완성도만 봐도 이러한 약속은 이미 설득력을 잃은 상태다.
블리자드 코리아는 지난 5월부터 ‘콜 오브 듀티’ 한국 공식 유튜브 채널을 통해 지속적으로 한국어판 영상을 공개하고 있다. 그러나 지난 5월 30일 처음 공개한 공식 공개 트레일러에서부터 미흡한 번역이 지적됐다. 특히나 본격적인 돌입 전 불필요한 말이나 빛의 노출을 줄이고 야간투시경을 착용하면서 외치는 “Going dark!” 신호는 특유의 강렬한 임팩트로 영상의 주제를 관통하는 대사지만, 더빙판에서는 “작전을 시작한다”라는 밋밋한 대사로 바뀌어 팬들의 비판을 받았다.
7월 25일 공개된 ‘가장 완벽한 무기’라는 제목의 장비 소개 영상에서도 시작부터 오역이 나왔다. 총기에 다양한 액세서리를 부착해 나만의 총기를 만드는 건스미스(Gunsmith) 시스템을 ‘총기상’이라는 엉뚱한 단어로 번역한 것이다. 건스미스는 직역하면 ‘총기 제작자’이고 의역을 해도 '총기 개조'가 적합하다. 실제로 게임에서는 보상으로 얻은 액세서리들을 총기에 부착 개조해 스스로 자신만의 총기를 만드는 것을 뜻한다. 이를 총기상으로 번역한 것은 의역이 아닌 오역에 가깝다.
트레일러 영상에서 보여준 번역 품질이 정식 버전에서 확 바뀌리라고 기대하는 것은 대책 없는 희망에 가깝다. 보통 번역 작업이 한두 달에 끝나지 않고 ‘모던 워페어’의 게임 분량이 역대 최대 규모라는 점을 감안하면, 이미 상당 부분 번역과 더빙이 진행됐음은 자명하다. 그 상황에서 중간에 공개된 더빙 영상 번역과 ‘총기상’ 표기는 작년 ‘블랙 옵스 4’ 수준의 ‘반글화 논란’이 되풀이 될 수 있으리라는 불안감을 품게 한다.
블리자드 코리아 관계자는 이 자리에서 “블리자드 코리아가 서비스 주체로서, 액티비전 본사와 트레이아크(전작), 인피니티 워드(이번 작품) 3사가 함께 현지화를 진행한다”라며 부연설명을 했지만, 한국인들로 구성되어 번역 작업을 총감독해야 할 블리자드 코리아 입장에서 번역 품질의 책임을 외국 본사 및 개발사에 넘기고 있다는 비판에 직면할 듯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