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원투수 허민, 넥슨 개발 침체를 깰 강속구 던질 수 있을까?
2019.09.10 18:11 게임메카 김미희 기자
넥슨이 소문만 무성하던 허민 대표 영입에 대한 공식 입장을 밝혔다. 원더홀딩스 허민 대표는 앞으로 외부 고문으로서 넥슨의 전반적인 게임 개발에 관여할 것이라 밝혔다. 기존에 개발 총괄을 맡고 있던 정상원 부사장이 회사를 떠나고, 넥슨은 내부에 ‘개발 총괄’을 두지 않을 것으로 알려졌다. 다시 말해 허 대표가 외부 고문으로서 개발을 책임질 것으로 보인다.
지금 넥슨은 ‘던전앤파이터(이하 던파)’를 이을만한 자체 흥행작을 내야만 한다. 지금도 회사를 책임지고 있는 게임은 ‘던파’, ‘메이플스토리’, ‘카트라이더’ 등 10년 넘은 노장들이며, 야심차게 선보인 ‘서든어택 2’, ‘메이플스토리 2’ 등은 참패를 면치 못했다 2010년과 2011년에 등장해 나름의 입지를 구축한 ‘마비노기 영웅전’과 ‘사이퍼즈’를 끝으로 시장에 두각을 드러낸 넥슨 자체 개발작은 대가 끊겼다.
이에 넥슨은 강도 높은 조직쇄신 중이다. 지난 8월에는 ‘바람의나라’, ‘메이플스토리’ 등 주요 IP 중심으로 사업조직 개편을 완료했고, 지금은 개발 조직을 다듬는데 주력하고 있다. 그 과정에서 추진하던 프로젝트도 접고 있다. 9년 간 막대한 개발비를 들인 ‘페리아 연대기’를 중단했고, 넥슨레드가 만들던 ‘프로젝트 G’ 역시 드랍됐다. 인디 감성을 앞세운 ‘이블 팩토리’, ‘애프터 디 엔드’를 만든 네오플 산하 스튜디오 ‘스튜디오42’도 해체됐다.
가장 결정적으로 NXC 김정주 대표는 올해 초에 넥슨을 매각하려 했으나, 회사를 팔지 못했다. 내놓는 자체 개발작이 시장에서 부진하고, 자체 신작이 시장에 나오는 기간도 길었으며, 매각이라는 목표도 이루지 못했다. 3가지 상황이 겹친 상황에서 김정주 대표가 허민 대표를 구원투수로 영입한 의중은 짐작이 된다. ‘던파’를 성공시킨 노하우를 바탕으로 ‘제 2의 던파’를 찾아달라는 것이다.
허민 대표는 넥슨을 책임질만한 개발력을 보여준 바 있나?
그러나 한 가지 우려되는 점은 허민 대표가 ‘제 2의 던파’를 발굴해낼 역량을 갖추고 있느냐다. 2010년에 위메프를 창업하며 국내에는 다소 생소했던 이커머스 시장에 빠르게 뛰어들며 통할만한 소재를 찾아내는 사업적인 안목을 보여준 바 있다. 다만 허 대표는 넥슨의 사업이 아닌 개발을 책임지게 된다. 따라서 넥슨 개발을 총괄할 개발 역량을 가지고 있느냐가 관건이다.
허 대표가 게임업계에서 이룬 업적은 확실하다. 국내에서도 전무후무한 흥행 성적을 기록한 ‘던파’를 낳은 장본인이다. ‘던파’ 중국 성과를 발판 삼아 네오플은 작년에 영업이익 1조 2,157억 원을 달성했으며, 불가능에 가까운 영업이익률 93%를 달성했다. 하지만 허민 대표가 2008년에 네오플을 팔고 떠난 후부터 돌이켜보면 ‘던파’만큼의 흥행작을 낸 적이 없다.
허민 대표의 원더홀딩스에는 게임 개발사 두 곳이 있다. 2014년에 온라인 액션 RPG ‘최강의 군단’을 선보였던 에이스톰과 ‘프렌즈마블’을 비롯한 모바일게임 3종을 출시한 원더피플이다. 먼저 ‘최강의 군단’은 허민 대표가 게임업계를 떠났던 2008년 이후 처음으로 투자한 게임이고, 김윤종 대표를 위시한 ‘던파’ 사단의 액션 RPG로 이목을 집중시킨 바 있다. 그러나 기대와 달리 초기에만 반짝했을 뿐, 콘텐츠와 운영 모두가 총체적 난국에 빠지며 3년 만에 문을 닫았다. 2014년 출시 기준 개발 인원 110명, 개발비 150억 원이 들어간 게임이라 생각하면 너무 빠르게 생명이 다했다.
허민 대표의 원더홀딩스가 보유한 또 다른 게임사, 원더피플도 롱런에서 아쉬움을 보였다. 원더피플 대표작은 2017년 12월에 출시한 ‘프렌즈마블’인데, 출시 초기에는 ‘모두의마블’도 꺾고 구글 게임 매출 6위에 오르며 기염을 토했으나, 지금은 구글 매출 178위를 기록 중이다. 캐주얼게임이 MMORPG에 비해 장기흥행이 어렵다는 점을 감안해야 하지만 몇 년 전에 나온 ‘모두의마블’이 현재 구글 매출 17위라는 점을 생각하면 상대적으로 신작임에도 힘을 쓰지 못했다.
이후에 북미에 선보인 소셜 카지노 ‘메가 히트 포커’ 역시 현지 시장에서 초기 돌풍을 오래 이어가지는 못했고, 작년 11월에는 모바일 대전 게임 ‘아레나M’을 출시했으나 상금 2억 원을 건 e스포츠 대회를 열었을 당시에도 구글과 애플 모두 매출 100위 안에 들지 못했다. 원더피플은 2017년부터 약 2년 간 보드게임, 소셜 카지노, 대전게임까지 각기 다른 장르의 신작을 부지런히 선보였다는 점에서는 개발력을 인정할 만하지만 히트작은 내지 못했다.
14년 전에 ‘던파’를 선보였던 감각, 지금도 남아 있을까?
앞서 소개한 에이스톰과 원더피플을 토대로 살펴보면 허민 대표는 ‘던파’ 외에는 게임업계를 깜짝 놀라게 할 대박을 낸 경우는 없었다. 이를 바꿔서 말하면 허 대표가 게임업계에 남긴 확실한 족적은 1조가 넘는 연매출을 달성한 ‘던파’ 하나밖에 없다. 그런데 ‘던파’가 시장에 출시된 것은 2005년이며, 허민 대표가 넥슨에 네오플을 매각하고 떠난 시점은 2008년이다. 이를 종합해서 생각하면 허 대표는 10년 넘게 게임시장에 ‘던파’에 버금가는 강속구를 던진 적은 없다
이러한 허민 대표에게 시장에 통할만한 히트작을 찾아낼 감각이 남아 있느냐가 의문이다. 허 대표는 넥슨에서 직접 게임을 만들기보다는 외부 고문으로 출시를 앞둔 게임을 살펴보고, 그 중 옥석을 가려내는 역할을 맡을 가능성이 높아 보인다. 10년 동안 ‘히트작’에 대한 공백이 있었던 허 대표가 넥슨 개발 총괄로서 ‘던파’ 이상의 신작을 발굴하며 회사의 갈증을 풀어줄 능력을 보여줄 수 있느냐가 의문이다.
게임시장은 10년이면 강산이 수십 번도 바뀔 정도로 변화가 빠르다. 시장에 통할만한, 혹은 통할 것으로 예상되는 트렌드를 빠르게 찾아내고, 이 게임이 뜰만한 ‘최적의 출시 타이밍’을 골라야 한다. 네오플을 떠난 후의 행보를 살펴보면 허 대표에게 3D 열풍이 불던 당시 오락실 감성을 앞세운 2D로 무장한 ‘던파’를 찾아내 성공시킨 날카로운 안목이 남아 있으리라 장담하기는 어렵다.
넥슨 혹은 김정주 대표가 허 대표에게 기대하는 것은 창사 이래 최대 위기에 빠진 넷마블을 구해낸 방준혁 의장과 같은 역할로 보인다. 넷마블을 창업한 후 회사를 CJ E&M에 매각하고 게임업계를 잠시 떠났던 방 의장은 2011년에 고문으로 넷마블에 돌아왔고, 발 빠른 모바일 전환을 발판 삼아 넷마블을 ‘모바일 1인자’에 올려놨다. 과연 허민 대표가 넷마블을 구해낸 방 의장과 같은 역할을 해줄 수 있을지 유심히 지켜볼 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