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 e스포츠에도 선수협회가 필요하다
2019.10.28 17:48 게임메카 김미희 기자
최근 e스포츠에서 선수 권익 보호가 도마에 올랐다. 지금 떠오른 것은 그리핀 불공정계약 의혹이다. 미성년자 선수를 압박해서 원하지 않는 이적 계약을 맺게 했다는 것이다. 김대호 전 감독의 개인방송을 통해 제기된 이 문제는 국회의원까지 나서서 명명백백한 해결을 요구하며 스포트라이트가 집중되었고, 최근에는 e스포츠 선수 표준계약서를 마련하라는 법안까지 발의됐다.
그 전에 근본적으로 생각해볼 문제가 있다. 게임단과 분리되어 e스포츠 선수들이 목소리를 낼 수 있는 믿음직한 창구가 있느냐다. 이번에 불거진 그리핀 사건 전에도 e스포츠 선수들이 정당한 권리를 찾을 수 있도록 도와줘야 한다는 이야기는 꾸준히 나왔지만 실질적인 대안은 없다.
특히 e스포츠 선수는 프로 스포츠 선수보다 어린 나이에 활동을 시작하고, 선수 생명도 짧은 편이다. 한국콘텐츠진흥원이 발간한 ‘2018 e스포츠 실태조사’에 따르면 프로 선수 평균 연령은 20.8세이며, 평균 경력은 2.8년으로 3년이 채 안 된다. 전성기도 짧고, 프로 생활을 시작하는 나이도 어려서 사회 경험이 부족하다.
여기에 국내 e스포츠 선수의 경우 어린 나이에 해외로 진출하는 경우도 상당히 많다. 따라서 팀과 계약을 맺거나, 팀에서 활동하는 동안 부당한 대우를 받지 않도록, 선수 입장을 대변할 창구가 필요하다. 여기에 프로를 꿈꾸는 아마추어 선수들이 활동하기 어려운 점으로 손꼽은 1순위는 ‘열악한 훈련환경’이었고, 개인 연습이 있는 날 평균 연습 시간을 묻는 질문에 5.4%가 14시간 이상 연습한다고 답했다.
또한, e스포츠의 경우 야구, 축구 등 프로 스포츠와 달리 선수 연봉이 정식으로 공개되지 않는다. e스포츠 실태조사에 따르면 국내 e스포츠 프로 선수 평균 연봉은 1억 7,558만 원이지만, 연봉을 많이 받는 선수와 적게 받는 선수 편차가 크기 때문에 모든 프로 선수가 1억 원 이상의 연봉을 받는다고 말할 수 없다. 선수 입장에서는 내가 받는 연봉이 실력에 준하는지, 다른 팀 선수와 비교하면 어떤지를 가늠할 척도가 부족한 셈이다.
반면 주요 프로 스포츠에는 선수 보호를 위해 결성된 선수협회가 있다. 대표적인 예시는 2000년에 우여곡절 끝에 결성된 한국프로야구선수협회다. 최근 한국프로야구선수협회는 KBO, 10개 구단과 함께 ‘자유계약’ 제도 개선에 대해 논의하고 있다. 선수 입장에서 중요한 사안이라 볼 수 있는 ‘자유계약’에 대해 선수를 대표해서 원하는 안을 제시하고, 선수 입장에서 이를 구단 측과 의견을 조율하는 단계에 와 있다.
이처럼 e스포츠에도 선수협회를 만들어 선수 권익을 스스로 보호하고, 부당하다고 생각되는 부분을 하나씩 고쳐가는 실질적인 행동이 요구되는 때다. 선수협회가 모든 문제를 해결할 만능열쇠는 아니며 선수협회 운영과 행보에 대해서도 찬반이 갈릴 수도 있으나, 선수 입장을 대변할 협회가 있는 것과 없는 것은 천지차이다.
물론 현재도 라이엇게임즈, 블리자드 등 종목사에서 자사가 주최하는 대회 규정에 선수 처우에 대한 내용이 들어가 있기도 하고, 국내 e스포츠를 대표하는 한국e스포츠협회가 있는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종목사 활동은 그 범위가 자사 종목에 한정되어 모든 선수를 아우를 수 없고, 종목사 이익 우선이 될 수밖에 없는 구조다. 한국e스포츠협회도 선수보다는 게임단에 무게가 실려 있는 단체다.
e스포츠 목표 중 하나는 정식 체육종목으로 발돋움하는 것이다. 한국e스포츠협회가 대한체육회 가맹을 위해 힘쓴 이유도 여기에 있다. e스포츠가 정식 스포츠가 되기 위해서는 많은 부분을 고려해야 하지만, 그 중 놓쳐서는 안 될 부분은 e스포츠 선수들의 권익 보호를 위한 장치를 마련하는 부분이다.
e스포츠는 현재 올림픽 입성을 바라보고 있다. 당장 터진 큰 사건에 빠르게 대응하는 것도 좋지만, 원론적인 부분에서 e스포츠 선수를 위한 ‘선수협회’ 결성을 진지하게 고민해볼 타이밍이다. 이름만 ‘선수협회’로 만들어두는 것이 아니라, 어린 나이에 프로 생활을 시작한 선수들에게 진짜 필요한 도움을 제공할 수 있는 탄탄한 협회를 만들어나가는 것을 목표로, 일정 수준 이상 영향력을 갖춘 전∙현직 선수가 총대를 맬 때가 아닌가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