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0년대 게임광고] 페이커급 인기였던 ‘쌈장’ 이기석
2019.11.18 16:51 게임메카 류종화 기자
한국 게임의 성숙기였던 1990년대를 기억하십니까? 잡지에 나온 광고만 봐도 설렜던 그때 그 시절의 추억. '게임챔프'와 'PC챔프', 'PC 파워진', '넷파워' 등으로 여러분과 함께 했던 게임메카가 당시 게임광고를 재조명하는 [90년대 게임광고] 코너를 연재합니다. 타임머신을 타고 90년대 게임 광고의 세계로, 지금 함께 떠나 보시죠
요즘엔 장래희망으로 프로게이머를 꼽는 학생들도 많고, 실력만 된다면 더 이상 불가능하거나 철 없는 꿈도 아닌 시대가 됐습니다. 그러나 불과 20년 전만 해도 프로게이머라는 단어 자체가 낯설디 낯선 신조어였죠. 게임은 어린애들의 취미활동일 뿐인데, 게임을 잘 해서 돈을 번다는 것 자체를 쉽게 상상하지 못 하던 시대였습니다. 실제로 초기 프로게이머 기반이 위태위태하기도 했고요.
당시 ‘프로게이머’라는 단어를 최초로 일반인들에게 알렸던 사람이 있었으니, 바로 ‘쌈장(Ssamgjang)’ 이기석이었습니다. 이기석은 국내 최고이자 최초 프로 대회였던 KPGL 2연속 우승에 이어 블리자드 래더 토너먼트에서도 우승을 기록하며 신주영과 함께 1세대 프로게이머로 떠올랐는데요, 이후 1999년 KT 인터넷 서비스 ‘코넷’ CF에 광고모델로 출연하며 프로게이머라는 단어를 세간에 알리는 데 일조하게 됩니다. 해당 광고로 인해 ‘쌈장 이기석’은 그야말로 연예인급 화제의 인물이 됐는데요, 당시 그의 인기를 실감할 수 있는 다양한 광고들을 모아봤습니다.
제우미디어 PC파워진 1999년 12월호 광고에 나온 코넷 광고입니다. 앞에서 언급했듯, 이기석을 최초로 CF 무대에 끌어낸 장본인이라고도 할 수 있죠. 전화선 기반 PC통신이었던 KT가 인터넷 상용화를 본격적으로 진행하며 TV와 신문, 잡지 등에 대대적으로 광고를 진행했는데, 신기술임을 알리기 위해 당시 막 주목받기 시작하던 스타크래프트 1세대 프로게이머 이기석을 전격 기용했습니다.
날아오는 레이스 함대를 향해 양팔을 쫙 벌리던 TV CF와는 달리, 지면광고는 나름 얌전한 모습이군요. 인터넷 멀티플레이 게임을 하기에 적합하다는 서비스 설명과 함께, 스타크래프트에 나오는 다양한 유닛 모습이 등장합니다. 왠지 복사+붙여넣기 느낌이 강하긴 하지만요. 그리고 광고 전면을 커다랗게 차지하는 이기석의 카리스마 있는 모습이 강조되고 있습니다.
다음해 2월에는 그의 이름을 건 책도 나왔습니다. 책 제목은 ‘이기석! 프로게이머를 꿈꾸며’인데, 얼핏 들으면 자서전 같은 느낌도 납니다. 참고로 이 책의 정체는 스타크래프트 전략 가이드북입니다. 이기석과 SG 소속 프로게이머 4인이 함께 작성한 전략들이 들어 있는데, 아무래도 당시 가장 유명했던 이기석을 대폭 전면에 내세웠습니다. 이기석의 경기가 담겨 있는 전술 동영상 CD와 뱃지, 브로마이드까지 증정할 정도였으니, 이쯤 되면 스포츠 스타나 다름없습니다.
5월에는 스타크래프트를 넘어 다른 게임 콘셉트의 광고도 찍었습니다. 이쯤 되면 더 이상 스타크래프트 뿐 아니라 프로게이머라는 직업을 대표하는 유명인으로 거듭났죠. 이전까지는 일반인 티가 많이 나던 외모도 점점 가꾸기 시작해, 이제는 반쯤 연예인 같은 느낌으로 거듭났습니다.
위 광고는 에이지 오브 엠파이어가 아니라, ‘에일리언 네이션스’라는 새로운 RTS게임 광고입니다. 당시 에이지 오브 엠파이어 2와 세틀러 3를 능가하는 게임이라며 광고를 했지만 오래 가지 못하고 묻혔죠. 당시 이기석은 게임 하느라 밤 새고 혼나는 느낌으로 광고를 찍었는데, 잘 나가는 프로게이머도 이 게임이 너무 재밌어서 밤을 새 플레이한다는 것을 전달하고 싶었던 것 같습니다.
12월호에는 HQ팀 신작 천년의 신화 광고에도 출연했습니다. 실제로 한 가지 게임에 집중하는 최근 프로게이머와 달리, 당시는 정규 프로리그가 탄탄하지도 않았고 미래에 대한 불안도 많았기에 다양한 게임을 동시에 즐기는 프로게이머들이 많았습니다. 이기석 역시 스타크래프트 외에도 C&C 레드얼럿, 워크래프트 2 등 다양한 게임을 고루 즐겼었습니다. 위에 든 게임 광고가 다 RTS 게임인 이유도 그런 면에서 해석할 수 있죠.
당시 이기석은 이제 막 생겨 불안불안한 프로게이머라는 직업 위에서, 초기 우승 성적과 CF로 얻은 유명세를 십분 이용해 다양한 외적 활동을 했습니다. 광고 뿐 아니라 각종 이벤트 홍보, 방송 출연 등 연예인 버금가는 스케쥴을 소화했죠. 그로 인해 본업인 스타크래프트 실력 향상이 더뎌져 임요환을 필두로 한 2세대 프로게이머들에게 왕좌를 내줬다는 비판도 있지만, 당시 ‘쌈장’의 활약이 아니었다면 프로게이머라는 직업이 일반인들에게 알려지고 대중화 되기까지는 더 오랜 시간이 걸렸을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