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0년대 게임광고] 국산게임 1만 장 판매에 축배 들던 시절
2019.12.03 16:37 게임메카 류종화 기자
한국 게임의 성숙기였던 1990년대를 기억하십니까? 잡지에 나온 광고만 봐도 설렜던 그때 그 시절의 추억. '게임챔프'와 'PC챔프', 'PC 파워진', '넷파워' 등으로 여러분과 함께 했던 게임메카가 당시 게임광고를 재조명하는 [90년대 게임광고] 코너를 연재합니다. 타임머신을 타고 90년대 게임 광고의 세계로, 지금 함께 떠나 보시죠
얼마 전 슈퍼 스매시 브라더스 얼티밋이 전세계 1,380만 장을 판매하며 역사상 가장 많이 팔린 대전격투게임이 되었다는 소식이 전해졌습니다. 그 전에는 보더랜드 3가 출시 5일 만에 판매량 500만 장을 돌파했었죠. 굳이 해외로 눈을 돌리지 않더라도 2017년 국산게임 플레이어언노운스 배틀그라운드가 스팀 앞서 해보기 출시 6달 만에 1,000만 장 판매를 돌파한 사례도 있듯, 최근 패키지게임 흥행 여부는 최소 수십만에서 백만 장 단위입니다.
그러나, 게임산업 규모가 지금처럼 커지기 전에는 판매량 1만 장에도 축배를 들던 시절이 있었습니다. 1990년대 중반, 국산 PC게임이 조금씩 각광받으며 산업으로서 발돋움하던 시기 말이죠. 지금 기준에서는 다소 초라해 보일 지 몰라도, 맨땅에 헤딩으로 시작한 국산 PC게임이 만 장 단위 판매고와 억 단위 매출을 올림으로서 산업으로서의 가능성을 증명한 이정표였습니다.
위 광고는 제우미디어 게임챔프 1994년 10월호 별책부록 게임파워에 실린 어스토니시아 스토리 광고입니다. 광고주는 당시 유통사였던 소프트라이로, 게임 광고라기 보다는 1만 장 돌파 기념 이벤트 선전에 가깝습니다. 당시 국산 PC게임 중 판매량 1만 장을 넘은 게임은 없었기에, 지금으로서는 다소 적어 보이는 1만 장이라는 수치에도 꽤나 들뜬 기분이 느껴집니다.
광고를 살펴보면, 가장 위에는 게임의 주인공인 러덕, 로이드, 일레느가 SD풍으로 전면에 그려져 있습니다. 로이드의 초롱초롱한 왕눈이 눈에 띄네요. 아래쪽에는 모든 게임 구매자에게 모니터형 디스’켙’ 보관함을 준다고 쓰여 있습니다. 모니터 모양부터 지금은 찾아보기 힘든 두꺼운 CRT형인데다가, 5.25인치 디스켓 보관함이라는 물건 자체가 지금 기준에서는 골동품 취급이기에 나름 눈에 띄는 내용입니다.
아래쪽에는 게임 티셔츠를 증정하는 기념 이벤트까지 실시하고 있습니다. 유통사인 소프트라이가 어스토니시아 스토리 1만 장 판매에 얼마나 고무됐었는지 느낄 수 있는 부분이네요. 재미있는 점은 수도권 거주 고객은 직접 용산관광터미널 지하광장에 와서 티셔츠를 받아가라고 한 부분입니다. 지방 거주자에게만 배송해 준다는데, 아무래도 게임 1만 장 판매해서 1만 장 분량의 티셔츠를 모두 택배로 배송해주기엔 가격 부담이 컸겠죠.
광고 다음장에는 어스토니시아 스토리의 경이적인 판매기록을 수립했다는 이야기와 함께, 대전액션 게임인 ‘천하무적’을 발표한다는 멘트가 쓰여 있습니다. 이외에도 게임스쿨을 운영해 개발자를 양성한다는 멘트, 제 2회 컴퓨터학습 및 게임소프트웨어 페스티벌 초대 등 개발사로서 나아가겠다는 의지도 보이고 있네요.
여기까지만 보면 꽤나 축제 분위기처럼 보입니다만, 막상 제작사였던 손노리와 이원술 대표는 이 게임 성공으로 고작 보너스 100만 원만 받았다는 것이 훗날 인터뷰에서 밝혀졌습니다. 그러한 박대의 결과 손노리팀은 소프트라이와 결별해 데니암(현 어뮤즈월드)으로 이적했지만, 소프트라이는 어스토니시아 스토리를 적극적으로 어필하며 해당 제작 툴을 이용해 ‘포인세티아’라는 게임을 만들게 됩니다.
위에 소개된 광고가 바로 1995년 소프트라이에서 자체 개발한 포인세티아입니다. 이미 손노리와는 별도의 길을 가고 있었음에도, 자사가 유통했다는 이유만으로 광고에 ‘어스토니시아 스토리에 이어 RPG의 진수를 또 한 번 느끼실 수 있을 것입니다’라는 멘트가 쓰여 있습니다. 그것 외에도 아래 광고처럼 ‘이 한 편으로 95년 한국게임을 평가한다’ 같은 대대적인 광고를 실었습니다.
그러나, 포인세티아를 포함해 위에서 소개한 대전격투게임 ‘천하무적’ 등은 게임 개발에 대한 노하우 없이 사업적으로만 접근해서인지 결국 흥행에 참패했습니다. 이후 소프트라이는 ST소프트로 이름을 바꾸고 ‘붉은매’ 게임을 냈지만, 이마저도 혹평을 들으며 문을 닫았습니다. 결과적으로 소프트라이의 행보를 보면 어스토니시아 스토리 1만 장 판매에 들떠 섣불리 게임 개발에 뛰어든 케이스라고밖에 볼 수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