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야 정쟁에 밀린 e스포츠 표준계약서법, 폐기 위기
2020.03.05 15:59 게임메카 김미희 기자
작년 연말에 e스포츠 업계를 강타한 그리핀 불공정계약 사건은 프로게이머가 팀과 계약을 맺을 때 부당한 대우를 받지 않도록 보호해야 한다는 경각심을 불러일으켰다. 특히 프로게이머 다수가 미성년자라 보다 엄격한 규칙이 필요하다는 지적도 있었다. e스포츠 표준계약서법이 발의된 배경도 여기에 있다. 이러한 법이 여야 정쟁에 밀려 본회의를 넘지 못하고 폐기될 위기에 놓여 있다.
국회는 지난 26일부터 본회의를 열고 법안을 통과시키고 있다. 발의된 법안은 본회의를 넘어야 비로소 법이 될 수 있다. 그런데 e스포츠 표준계약서법은 본회의까지 오지 못했다. 상임위에 접수된 법안을 심사하는 법안심사소위원회를 넘지 못했기 때문이다.
원래 문체위는 11월 20일에 법안심사소위원회를 열어서 법안을 심사하려 했다. 그러나 20일에 진행하기로 한 소위는 여야 간 정쟁으로 인해 파행됐고, 그로부터 3개월이 넘은 지금까지 단 한 번도 소위가 열리지 않았다. 발목이 묶인 법안은 e스포츠 표준계약서법을 포함해 152개에 달한다.
아울러 현재 열리는 본회의는 사실상 20대 국회 마지막 본회의다. 4월 15일에는 총선이 열리며 그 전에 한 번 더 본회의가 열릴 것으로 보이지만 이 회의는 법안심사를 위한 것이 아니라는 것이 국회 관계자의 설명이다. 여기에 본회의 직전 단계라 볼 수 있는 법사위는커녕, 상임위도 넘지 못한 e스포츠 표준계약서법이 극적으로 통과되리라 기대하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한 일이다.
여기에 총선이 진행되고 당선된 의원을 중심으로 21대 국회가 구성되면 20대 국회에서 발의됐으나 본회의를 통과하지 못한 법안은 버려진다. 지금 열리는 본회의가 20대 국회에서 e스포츠 표준계약서법을 통과시킬 마지막 기회였으나 이번 국회를 넘지 못할 전망이다.
e스포츠 표준계약서법은 작년 10월 22일에 미래통합당 이동섭 의원이 대표발의한 것으로 e스포츠 선수가 팀과 계약을 맺을 때 사용할 수 있는 표준계약서를 마련하는 것이 핵심이다. 이동섭 의원이 법안을 발의한 계기는 그리핀 불공정계약 사건이다. 선수와 팀이 계약을 맺을 때 일정한 틀이 없고, 이로 인해 사회 경험이 다소 부족한 선수들이 팀과 불공정한 계약을 맺는 경우가 많아서 정부에서 일종의 가이드라인이라 할 수 있는 표준계약서를 마련하고, 팀들이 계약을 맺을 때 이 표준계약서를 토대로 하라는 것이었다.
그리핀 불공정계약 사건은 이를 다시 조사해달라고 요청하는 국민청원 참여자가 20만 명을 돌파했을 정도로 e스포츠 팬들의 공분을 일으켰다. 그리고 표준계약서는 e스포츠 선수를 보호하기 위한 최소한의 장치가 될 수 있다. 작년 현안 중 하나였고, 그 중요성이 높음에도 여야 정쟁으로 법안에 대한 심사 자체가 진행되지 않으며 폐기될 위기에 놓였다.
문체부는 지난 1월 18일 국민청원에 대한 답변을 전하며 3월까지 e스포츠 선수 표준계약서를 만들겠다고 밝혔으며 이는 5일 발표한 2020년 문체부 업무계획에도 포함되어 있다. 아울러 라이엇게임즈와 한국e스포츠협회 역시 올해 1분기까지 LCK 자체 표준계약서를 마련해 이를 도입하겠다고 전한 바 있다. 다만 표준계약서 사용을 뿌리내리게 하기 위해서는 법에 그 내용을 명시하는 것이 필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