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리딩 엣지, 공각기동대·아키라에서 영감 받았다
2020.03.06 17:41 게임메카 류종화 기자
개인적으로 수 년 전부터 눈여겨 보고 있는 개발사가 한 곳 있다. 바로 닌자 시어리다. 크기만 따지면 분명 중소규모 개발사다. 2017년 자사 역량이 총 집결된 헬블레이드: 세누나의 희생 개발팀이 15명 수준이었다고 하니, 프로젝트 하나에 백 명 단위 인력을 투입하는 대형 개발사는 분명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놓는 게임들을 보면 헤븐리 소드, DmC: 데빌 메이 크라이, 헬블레이드 등 AAA급 타이틀에 비견할 만한 완성도를 자랑한다. 자연스레 닌자 시어리라는 단어만 들어도 기대가 되는 상황이다.
그런 닌자 시어리 신작이 곧 출시된다. PC와 Xbox One으로 오는 3월 24일 발매되는 4 대 4 액션 게임 ‘블리딩 엣지’가 그 주인공인데, 사실적 묘사보다는 만화풍에 가까운 그래픽, 철저한 멀티플레이 위주 팀 기반 전투 등은 기존 닌자 시어리 게임과는 다소 차이가 있어 보인다. 사실 처음 공개됐을 때만 해도 왠지 모를 이질감에 썩 반응이 좋지는 않았으나, 몇 차례의 테스트와 시연 버전 공개로 해외 반응은 호평으로 돌아선 상태다.
얼핏 닌자 시어리 답지 않아 보이는 게임 블리딩 엣지는 어떻게 탄생했을까? 그리고 어떤 부분에닌자 시어리 특유의 장점들이 숨어 있을까? 이 궁금증을 해결할 기회가 생겼다. 게임메카는 3일(현지시간), 미국 샌프란시스코에서 열린 블리딩 엣지 미디어 시연회를 통해 핵심 개발자들을 대거 만나볼 수 있었다.
시작은 2014년, 공각기동대와 아키라에서 영감 얻었다
앞서 이야기했듯, 닌자 시어리는 최근 MS 인수 후 인력을 대폭 늘리긴 했지만, 대다수 프로젝트를 소수정예로 진행해 온 곳이다. 소수정예라는 게 말은 멋있지만, 닌자 시어리는 MS 인수 전까지 자금난으로 인해 어쩔 수 없이 회사 규모를 작게 유지할 수 밖에 없었다. 아무리 경험이 많고 노하우가 있는 개발자라도 몸은 하나이기에, 거대 프로젝트를 하나 맡고 있으면 다른 게임까지 동시에 개발하긴 쉽지 않다.
블리딩 엣지는 닌자 시어리가 MS에 인수되기 전부터 진행되던 프로젝트였다. 그렇다면 정확히 언제부터 개발을 시작한 것일까? 이 질문에 대해 블리딩 엣지 개발을 총괄한 크리에이티브 디렉터 라니 터커(Rahni Tucker)는 게임을 기획한 시점이 자그마치 2014년임을 밝혔다.
당시 닌자 시어리는 3인칭 액션 게임을 위주로 제작해 왔고 평가도 좋았다. 이에 라니 터커는 자신이 좋아하는 멀티플레이 경쟁 게임을 닌자 시어리 특유의 3인칭 액션으로 만들어 보고 싶어졌고, 초기 기획안을 회사 대표에게 가져갔다. 이 기획서는 통과됐고, 프로토타입 제작을 위한 아주 작은 팀이 꾸려졌다.
그러나 스튜디오 여건상 본격적인 개발은 쉽지 않았다. 당시 닌자 시어리는 헬블레이드: 세누아의 희생 개발을 위해 전사 역량을 집중하고 있었다. 라니 터커를 비롯한 블리딩 엣지 초기 개발팀 역시 여기에 투입됐고, 결국 블리딩 엣지는 오랜 기간 빛을 보지 못했다. 이 게임 개발이 다시 시작된 것은 헬블레이드 개발이 중간쯤 다다르고 손이 많이 가는 작업들을 외주에 맡기며 개발 측면에 여유가 조금 생길 무렵이었다. 이에 닌자 시어리 이사진은 중단됐던 블리딩 엣지 프로젝트를 본격적으로 다시 시작하기로 결정했다. 그렇게 블리딩 엣지는 7명의 초창기 멤버로 개발을 시작했으며, 팀 규모는 2020년 3월 현재 15명 정도로 늘어났다. 물론 여전히 큰 팀은 아니다.
그렇게 본격적인 개발이 시작됐으나, 이번에는 게임 색깔을 정하는 큰 산이 남아 있었다. 롤 하면 판타지와 스팀펑크 등이 뒤섞인 세계관이, 오버워치 하면 미래적이고 애니메이션적 분위기가 느껴지듯, 블리딩 엣지도 한 눈에 ‘이거다’ 알 수 있는 특징이 필요했다. 라니 터커는 펑크 스타일을 추구했으나, 구체화를 맡은 사운드 및 아트 담당자들은 좀 더 명확한 방향을 설정해야만 했다. 블리딩 엣지 리드 아티스트인 아론 멕엘리고트(Aaron McElligott)는 당시 상황을 이렇게 회상했다.
“처음에는 여러 번 콘셉트를 잡는 데 실패했다. 도무지 어떤 방향을 택해야 할 지 감이 잡히지 않았다. 그러던 중 다양한 애니메이션을 봤다. 공각기동대(Ghost in the Shell), 아키라(Akira) 같은 작품들에서 SF적인 영감을 얻었고, 철콘 근크리트(Tekkonkinkreet)의 페인팅과 그래피티가 입혀진 도시 건물들을 보고서 이거다 하는 촉이 왔다. 그렇게 해서 근미래 배경 펑크 스타일 블리딩 엣지 콘셉트가 잡혔다”
전체적인 아트 콘셉트가 결정되자, 사운드 분야에서도 펑크한 느낌을 주기 위해 여러 노력을 기울였다. 블리딩 엣지 다니엘 갈란테(Daniele Galante) 시니어 사운드 디자이너는 “블리딩 엣지 캐릭터들은 한 명 한 명마다 굉장히 많은 특징(문화권, 기계 파츠 등)이 부여돼 있다. 이런 것들을 다 표현하기 위해 엄청나게 많은 음악 스타일을 한 데 섞는 과정이 필요했다”라며, “로큰롤, 메탈은 물론이고 최신부터 옛날 음악까지 많이 참고했다. DJ 섀도우(DJ Shadow), 키드 코알라(Kid Koala) 같은 아티스트의 느낌부터, 최근에 닌자 시어리와 협업한 노이지아(Noisia)까지. 이런 많은 음악을 콜라주 시켜 밝은 풍의 펑키 스타일로 탄생시켰다”고 설명했다.
직관적이면서 매력적인 캐릭터를 만들기까지
블리딩 엣지는 캐릭터 기반 대전 게임이다. 이런 종류 게임이 대부분 그렇듯, 캐릭터 매력은 게임 흥행을 크게 좌우한다. 블리딩 엣지 캐릭터들을 보면 하나 같이 개성이 넘치는데, 자세히 보면 뭔가 조금씩 반전이 숨어 있다. 도깨비 가면을 쓴 닌자 캐릭터인 디몬(Deamon)은 어두운 피부의 미국인이고, 마오리족 전사 캐릭터인 마쿠투(Makutu)는 전통적인 헤어스타일이나 얼굴 문양과 대비되는 하이테크 기계 몸을 지니고 있다. 마냥 아름다운 여성 캐릭터나, 마냥 멋지기만 한 남성 캐릭터도 없다. 뭔가 전통적인 편견을 깨려 한 느낌이 강하게 든다.
이에 대해 아론 멕엘리고트는 “캐릭터 제작에 있어, 아트팀은 ‘현실성 있는 캐릭터’를 전제로 삼았다”고 설명했다. 이를 대표하는 캐릭터가 바로 보라색 머리의 헤비 캐릭터 ‘버터컵’이다. 아론에 따르면, 버터컵의 초기 콘셉트는 단순히 오토바이를 탄 여성 캐릭터 정도였다. 이를 위해 수많은 라이더 이미지들을 검색했는데, 대부분 날씬한 여자들이 비키니나 탱크탑, 가죽자켓을 입고 바이크 위에 앉아 있는 모습들만 나왔다.
아론은 “기존 여성+모터사이클 이미지는 전형적인 성상품화가 되어 있었다. 우리는 이를 깨고 싶었다. 섹스어필을 하지 않더라도 충분히 매력적인, 현실적이면서도 당당한 여성을 그리자는 생각으로 버터컵 디자인 콘셉트를 결정했다”라고 디자인 의도를 밝혔다. 워릭 멜로우(warwick Mellow) 수석 애니메이터 역시 “버터컵 디자인에 있어 미국 배우/래퍼인 퀸 라티파(Queen Larifah)나 베스 디토(Beth Ditto) 등 당당한 여성 이미지를 많이 참고했다”라고 설명했다.
또 다른 예는 뉴질랜드 마오리 전사 마쿠투다. 마쿠투는 얼핏 자연 속에서 살아갈 것만 같은 강인한 원주민 전사다. 그러나 감정 표현의 춤 부분을 보면 현대적인 음악에 맞춰 섬세한 댄스를 즐긴다. 이에 대해 시니어 사운드 디자이너 다니엘은 “마쿠투는 전투를 좋아하고 자신의 문화를 아끼는 큰 덩치의 우락부락해 보이는 캐릭터지만, 사실은 젠틀하고 섬세한 내면을 가진 반전적인 캐릭터다. 이에 맞춰 음악도 원주민 음악보다는 모던한 음악을 부여해 특징을 표현했다”고 설명했다. 참고로 추후 공개될 돌고래 캐릭터 ‘메코’의 경우 일렉트릭 뮤직을 좋아한다. 이처럼 게임 내 캐릭터들은 제각기 남다른 개성과 메시지를 가지고 있다.
이처럼 개성이 다양한 캐릭터들임에도 불구하고, 체형이나 느낌만 보면 얼핏 평범해 보이기도 한다. 헤비 캐릭터들은 하나 같이 덩치가 커서 딱 봐도 탱커처럼 생겼고, 어쌔신 캐릭터들은 죄다 전사/마법사 느낌이다. 서포트 캐릭터들은 DJ나 주술사 등 딱 봐도 지원가 스타일이다. 고정관념에서 탈피한다는 방침과는 상반되는 구도다.
사실 이는 제작진의 의도였다. 역할군에 따라 캐릭터들의 체형이나 느낌이 일관돼 보이는 이유에 대해 워릭 멜로우 수석 애니메이터는 “확실히 의도적인 부분”이라고 설명했다. 덩치가 작은 탱커나 커다란 서포터 등 파격적인 반전을 줄 수도 있었지만, 그것보다는 처음 플레이 하는 유저 입장에서 생각했다는 것이다. 워릭 멜로우는 “처음 게임을 시작한 플레이어에게 네 명의 적이 달려올 때, 한 눈에 ‘재는 나한테 달려오고, 쟤는 뒤에서 서포팅을 할 것이다’ 라는 것을 알게 하고 싶었다”고 직관성을 높이기 위한 결정이었음을 밝혔다.
직관성을 위한 디자인은 게임 기획에서도 예외는 아니었다. 게임 구도를 4 대 4 대전으로 잡은 것도 이러한 노력의 일환이다. 라니 터커 디렉터는 “처음에는 2 대 2, 3 대 3, 5 대 5, 심지어 8 대 8까지 시도해 봤다. 그 결과 4 대 4가 가장 알맞다는 결론을 내렸다. 이유는 두 가지다. 첫 번째는 게임 내에 근거리 공격을 하는 캐릭터가 꽤 많다 보니, 팀원이 5명 이상이 되면 전투가 너무 정신 없어진다. 싸우다 보면 뭔가 한 곳에 모여 복작거리는 와중에 버튼만 막 누르는 느낌이 드는데, 처음 게임을 하는 사람들이 특히 혼란스러워 한다. 두 번째는 역할 구분을 위해서다. 사실 3 대 3도 전투는 재미있다. 그런데 그 경우 팀을 짜고서 세 가지 역할군을 무조건 하나씩 강요받게 되면서 선택의 자유가 없어지더라. 그런 이유에서 블리딩 엣지는 4 대 4 전투로 방향을 정했고, 복잡하지 않으면서 직관적인 현재의 전투 형태를 갖추게 됐다”고 설명했다.
마지막으로 신규 캐릭터에 대한 이야기를 나눴다. 블리딩 엣지는 출시 시점에서 12명의 캐릭터를 선보인다. 이 중 11명은 이미 공식 홈페이지와 테스트를 통해 공개됐으며, 나머지 1명은 아직 실루엣만 공개된 돌고래 캐릭터 ‘메코’다. 커다란 수조 속에 들어 있는 돌고래 메코는 원거리 헤비 역할군으로, 시기 적절히 사용해야 하는 보호막 등을 가진 상급자용 캐릭터가 될 전망이다.
메인 디렉터 라니는 “현재 캐릭터들은 아무래도 게임을 처음 시작하는 사람들도 쉽게 할 수 있는 초보자용이 많다. 앞으로 추가될 캐릭터들에 대해 구체적인 내용은 아직 밝힐 수 없지만, 메코 같은 상급자용 캐릭터들이 많아질 것”이라고 설명했다. 다이넬 갈란테 시니어 사운드 디자이너 역시 “향후 추가되는 신규 캐릭터의 테마곡을 만드는 과정에서, 개인적으로 K-POP 콘셉트 음악을 작업하게 되면 너무 재미있을 것이다. 관련 부분을 꼭 메인 디렉터에게 어필해 주길 바란다”라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