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판 7 리메이크, 정체성과 트렌드를 모두 잡았다
2020.04.14 18:34 게임메카 서형걸 기자
지난 1997년 출시된 파이널 판타지 7에는 매력 넘치는 캐릭터가 다수 등장한다. 뾰족머리에 커다란 대검 ‘버스터 소드’를 사용하는 주인공 클라우드, 청순/가련한 외모와 달리 굳은 심지의 에어리스, 저돌적이지만 동료에게는 따뜻한 남자 바레트. 그리고 게임 역사상 가장 인기 있는 여성 캐릭터로 꼽히는 티파 록하트까지, 등장인물 하나하나의 인기가 웬만한 주인공 못지 않다.
이처럼 수많은 인기 캐릭터가 실사에 가까운 3D 그래픽으로 갈아입고 23년 만에 돌아왔다. 외형 묘사만 달라진 것이 아니라, 배경 설정과 인물간의 관계도 디테일이 더해져 몰입감을 더한다. 아울러 시리즈 고유 전투시스템에 실시간 액션을 더한 전투는 박진감과 전략성 두 마리 토끼를 모두 잡았고, 편곡을 거친 음악들은 원작보다 훨씬 더 감미로워졌다. 거친 배경 표현과 게임 플레이를 늘어지게 만드는 서브 퀘스트는 다소 아쉽지만, 파이널 판타지 7 리메이크는 아웃카운트를 늘려나가던 스퀘어에닉스를 되살릴 ‘조커’였다.
* 본 리뷰는 SIEK와 스퀘어에닉스로부터 리뷰 코드를 제공받아 작성됐습니다.
* 게임 스토리에 대한 일부 스포일러가 포함돼 있습니다.
감탄사 연발, 티파, 에어리스, 그리고 (여장)클라우드
파이널 판타지 7 세계관은 과학기술과 마법이 혼재돼 있다. 특정 집단(국가)의 자원 독점에 의해 빈부격차의 심화, 자원 남용에 따른 환경 파괴, 이와 같은 현실을 바꾸기 위해 과격한 방법도 불사하는 저항집단 등 현실과 크게 다르지 않은 소재들을 다루고 있어 23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쉽게 공감할 수 있다.
파이널 판타지 7 리메이크는 이러한 원작 세계관의 얼개를 유지하며, 등장 인물, 단체, 사건에 대한 설정이 변경되거나, 세부사항이 추가됐다. 오랜 팬 입장에서는 원작과 달라진 부분들을 하나씩 찾아보는 것도 게임을 즐기는 하나의 재미다. 아울러 원작을 해보지 않았던 플레이어에게는 등장인물에 대한 자연스런 감정이입을 유도해, 게임 스토리에 몰입하게 한다.
원작과 달라진 부분 중 가장 눈에 띄는 것은 캐릭터 외형 묘사다. 등장인물들이 23년 전 원작은 물론, 파이널 판타지 7 신규 팬들을 대거 유입시켰던 3D 애니메이션 ‘파이널 판타지 7 어드벤트 칠드런’보다 월등히 사실적으로 구현돼 캐릭터 성격을 보다 직관적으로 이해할 수 있게 됐다.
이러한 부분이 가장 단적으로 드러나는 캐릭터는 바레트다. 아발란치의 저항활동을 위해서라면 물불을 가리지 않는 저돌적 성격이지만, 아군에게는 유쾌하고 의지가 되는 리더인데다가, 딸 ‘마린’ 앞에서는 한없이 자상한 소위 ‘딸 바보’다. 파이널 판타지 7 리메이크에서 바레트는 저항활동 중 선글라스를 착용해 야성미가 부각된 반면, 평상시에는 선글라스를 벗어 선한 눈매를 드러낸다. 이처럼 외형만으로 인물의 성격을 세세하게 드러내는 것은 단순한 그래픽의 원작에서는 불가능했던 부분이다.
이러한 그래픽은 플레이어의 눈도 즐겁게 한다. 첫 미션인 1번 마황로 폭파 작전에서 주인공 클라우드가 열차에서 뛰어내려 아름답게 착지한 다음 고개를 치켜드는 장면이나, 인트로 영상에서 마황로 배관 앞에 앉아있는 에어리스 등은 이미 출시 전 여러 번 공개된 모습임에도 자연스레 감탄사가 나올 만큼 인상적이다.
그 중에서도 단연 압권은 티파와의 첫 만남과 클라우드의 여장씬이다. 티파와의 첫 만남의 경우 티파가 운영하는 가게 ‘세븐스 헤븐’에서 1인칭 시점으로 전개되는 대화 장면이 있는데, 순간적으로 ‘VR 연애 시뮬레이션인가?’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 생생한 느낌이 든다. 여장 클라우드의 경우 원작에서는 ‘의외로 귀엽네’ 정도라면, 이번 리메이크에서는 세계관 최고 미인이라고 할 수 있을 만큼 비주얼 쇼크를 선사하기에 더욱 유쾌하게 다가온다.
바뀐 전투 시스템, 정체성과 트렌드를 모두 잡았다
파이널 판타지 7 리메이크의 전투 시스템은 그래픽 못지않게 큰 변화를 겪은 부분이다. 시리즈 정체성인 ATB 시스템에 실시간 액션이 더해졌는데, 개발자들은 이 두 가지를 잘 어우러지도록 하기 위해 심혈을 기울였다고 한다.
ATB 시스템은 턴제 방식에 실시간 요소를 첨가한 것이다. 정해진 순서에 따라 움직이는 일반적인 턴제 방식과 달리 ATB 게이지가 존재하는데, 캐릭터 민첩성 수치에 따라 차오르는 속도가 다르다. 해당 게이지가 모두 찰 경우 공격, 기술 구사, 아이템 사용 등을 할 수 있다. 커맨드를 선택하는 도중에도 시간은 흐르기에 일반 턴제 시스템보다 높은 긴장감을 부여한다.
파이널 판타지 7 리메이크의 전투는 기본적으로 실시간 액션이다. 연속 공격을 통해 느낄 수 있는 짜릿한 손맛과 절묘한 타이밍을 요구하는 회피 및 막기 등으로 긴장감이 배가됐다. 하지만 이러한 실시간 액션만으로는 보스들은 물론, 일반 몬스터도 잡아내기 어렵다. 적에게 결정타를 날리기 위해서는 ATB 시스템을 활용한 커맨드 구사가 필수다.
사용할 수 있는 커맨드에는 특수 기술인 어빌리티, 장착한 마테리아를 통해 사용할 수 있는 마법, 그리고 아이템 등이 있다. 보통 ATB 게이지 한 칸을 소비하지만, 2개를 요구하는 커맨드도 있다. 적의 약점 및 내성, 그리고 아군의 상태에 따라 효과적인 커맨드가 다르기에 상황에 따라 적절한 커맨드를 선택할 필요가 있다. 커맨드 구사 시 시간이 느리게 가기에 선택 시간은 충분하다.
앞서 언급한 바와 같이 일반 공격으로는 큰 대미지를 주지 못한다. 그러나 ATB 게이지를 모으고, 이를 통해 적에게 큰 피해를 줌과 동시에 더 많은 피해를 입힐 수 있는 버스트 상태에 빠지게 할 수 있다. 버스트 상태는 시간이 제한돼 있기에 최대한 많은 횟수로 공격을 퍼붓고, 커맨드까지 구사해야 한다. 이처럼 실시간 액션과 ATB 시스템은 어느 서로 긴밀하게 연계돼 있다.
물론 원작 팬에게도, 그리고 이번 리메이크로 파이널 판타지 7을 접하게 된 신규 유저에게도 본 시스템은 낯설게 느껴진다. 그렇기에 처음에는 굉장히 난해하고 어렵다는 인상을 받게 된다. 하지만 게임 플레이 초반부를 넘겨 시스템에 적응하고 나면, 높은 난이도에도 불구하고 파고드는 맛이 있음을 알게 된다.
옥에 티, 배경 그래픽과 서브 퀘스트
앞서 언급한 것 외에도 화려한 액션, 보다 세밀하게 묘사된 게임 속 공간적 무대인 미드가르, 그리고 마테리아와 무기를 활용한 캐릭터 육성 요소 등 장점이라고 꼽을 수 있는 부분이 다수 존재한다. 하지만 배경 그래픽의 낮은 완성도와 일부 서브 퀘스트가 몰입을 방해한다는 점이 아쉽다.
배경 그래픽 완성도는 게임 플레이 초반에는 두드러지지 않는다. 오래 머무르는 지역이 별로 없는데다가, 캐릭터 비주얼이 워낙 월등히 좋다 보니 눈 여겨 보지 않으면 쉽게 지나치게 된다. 그러나 주요 스토리 컷씬에서 캐릭터와 배경의 이질감이 부각되는데, 이후에는 미드가르 곳곳을 돌아다니면서 배경 묘사를 눈에 걸리기 시작한다. 또한 중반 이후 서브 퀘스트를 진행하면서 방문했던 곳을 다시 방문하는 경우가 많아지는데, 아무래도 반복적으로 방문하다 보면 이전에는 신경 쓰지 않았던 배경 그래픽이 더 눈에 띈다.
서브 퀘스트 역시 게임 플레이 중반 이후 몰입감을 방해하는 요소다. 초반에는 무난히 넘길 수 있는 간단한 퀘스트들로 이뤄져 있는데, 중반 이후부터 개수도 많아질 뿐더러, 점점 더 고조되는 스토리 분위기와 정반대로 가벼운 내용을 담은 것이 튀어나와 몰입을 방해한다. 아울러 주어지는 힌트도 적고, 다소 난해한 미니맵 때문에 장소 찾기도 어려워 지루하다는 느낌이 들 정도다.
이와 같은 단점에도 불구하고 파이널 판타지 7 리메이크에 대한 감상은 ‘정말 멋지게 돌아왔구나’다. 원작 팬들은 물론 게임 이름만 들어봤던 게이머까지 만족시킬 수 있을 정도의 완성도를 자랑한다. 출시 전 분할 판매 논란으로 팬들의 우려를 사긴 했지만, 현 시점에서는 앞으로 나올 후속작이 더 기대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