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기행] 하프라이프 '빠루' 전사는 어떻게 탄생했을까?
2020.05.08 18:40 게임메카 이새벽
밸브는 지금은 게임 플랫폼 스팀으로 유명한 회사이지만, 알고 보면 완성도 높은 게임 다수를 만들어낸 개발사기도 하다. 그 중 밸브를 개발명가 반열에 올린 프랜차이즈가 있으니 바로 ‘하프라이프’다. 1998년에 첫 작품이 나온 이 시리즈는 신작이 나올 때마다 늘 팬을 만족시켜왔다. 특히 최근 발매된 VR 게임 ‘하프라이프: 알릭스’는 무려 13년 만에 나온 신작인 만큼 그 어느 때보다 관심이 컸다.
다만 하프라이프 자체가 워낙 오래된 시리즈인 만큼 전작 스토리를 잘 모르는 게이머도 많고, 세월이 흘러 잊어버린 올드 게이머들도 있을 터. 이번 주에는 하프라이프 시리즈 줄거리를 정리해봤다. 밸브의 반석이라 불리는 하프라이프 시리즈, 과연 어떠한 내용인지 살펴보자. 아직 발매된 지 얼마 안 된 하프라이프: 알릭스 내용은 전부 뺐으니 스포일러 걱정은 하지 않아도 된다.
실험 한 번 잘못했다가 지구가 멸망했다, 하프라이프 1편
몇 해 전 스위스 제네바에서 진행된 입자가속기 실험을 두고 나온 이야기가 있었다. 실험 중 작은 블랙홀이 생성돼 지구가 위기에 처할 수 있다는 것이었다. 다행히 실제로 이러한 사고가 벌어지지 않았다. 그런데 게임 하프라이프에서는 이 입자가속기 사고와 비슷한 일이 일어나고 말았다. 한 연구소에서 순간이동 실험을 하다 공간에 구멍이 생기고, 이를 통해 외계인 침략군이 나타나 지구를 쑥대밭으로 만들었기 때문이다.
1998년 발매된 하프라이프 1편은 연구소에서 근무하던 일개 물리학자 고든 프리맨이 느닷없는 외계인 침략 사건에 휘말리며 무자비한 전사로 거듭나는 사건을 다룬다. 고든의 직장이자 게임 배경이 되는 블랙 메사 연구소는 위험한 실험을 극비리에 진행하던 기밀 시설이었다. 주인공 고든 프리맨은 블랙 메사 연구소에 근무하는 우수한 연구원이며, 군인이나 전사와는 거리가 먼 인물이었다.
그러나 게임이 시작됨과 동시에 고든 프리맨의 운명은 180도 바뀌고 만다. 상부 독촉을 받아 무리하게 실험을 진행하다 대형사고가 터지고, 이로 인해 외계 포탈이 열리며 외계인 침략자들이 나타난 것이다. 이후 실험실은 온갖 흉악하고, 적대적인 외계인으로 가득 찬다. 살아남은 연구원 소수는 탈출을 시도하지만, 그마저 사건을 은폐하기 위해 투입된 정부특수부대에게 대부분 살해된다. 고든 프리맨도 바로 이러한 위기에 처한 연구원 중 하나였다.
다만 고든은 연구소에서 진행하는 재난 대응 과정에 성실히 임했으며, 높은 방호도를 자랑하는 유해 환경 방호복 기능을 잘 다루는 몇 안 되는 연구원이었다. 덕분에 그는 다른 연구원이 일방적으로 몰살될 때 살아남을 수 있었고, 연구소 내부를 잘 알고 있다는 이점을 이용해 외계인과 특수부대를 역으로 물리치기에 이른다. 물론 이 설명이 연구원이라고는 믿을 수 없는 그의 전투력을 납득할 수 있을 정도의 설정은 아니지만, 일단 게임 상 내용은 그렇다.
아무튼 이렇게 살아남은 고든은 블랙 메사 연구소를 소탕하고, 마침내 외계와 지구 경계에 있는 차원인 ‘젠’으로 가 침략군 수장 니힐란스를 처치한다. 그런데 알고 보니 그게 끝이 아니었다. 사실 니힐란스와 그 휘하에 있는 보르티건트 종족은 노예에 불과했다. 그 뒤에는 콤바인이라는 여러 외계종족의 제국이 있었던 것이다. 이로 인해 고든은 블랙 메사를 초토화시킨 니힐란스를 물리치고도 외계 침략은 막을 수 없었다.
여기에 설상가상으로 정부는 블랙 메사에 열린 포탈을 통해 끊임없이 지구로 들어오는 외계인을 막기 위해 핵무기를 사용하기로 결정했다. 결국 정부요원이 설치한 핵무기에 의해 블랙 메사는 핵의 불길에 휩싸인다. 정상적인 상황이면 고든 프리맨은 니힐란스를 쓰러뜨리고도 젠에서 탈출할 수 없거나, 탈출한다 해도 블랙 메사를 뒤덮은 핵폭발에 휘말릴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절체절명의 위기에서도 고든 프리맨은 죽지 않았다. 정체불명의 존재가 시간을 멈추고 그를 구해낸 것이다.
사실 블랙 메사에서 벌어진 모든 일의 배후에는 정체불명의 한 사내가 있었다. 언제나 정장에 브리프 케이스를 들고 다니는 그는 이름도 알 수 없었고, 처음에는 정부요원인 것처럼 보였지만 실은 인간조차 아니었다. 결말에서 그는 고든 프리맨이 자신이 섬기는 조직에게 큰 이익이 되었다며 조직을 위해 일할 것을 제안한다. 거부 시 고든은 젠을 탈출하지 못하고 외계인에게 살해당할 운명이지만, 수락하면 다시 그가 필요할 때를 위해 시간정지 공간에 들여보내주겠다는 것이었다.
스토리만 놓고 보면 사실 하프 라이프는 단순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게임은 후대 FPS의 스토리텔링 방식을 바꿔 놓았다는 평가를 받는다. 그 이유는 하프 라이프 스토리가 대단하고 끝내 줘서가 아니라, 이야기를 플레이어에게 전달하는 스토리텔링에서 극명한 차이를 보여주었기 때문이다. 기존 FPS와 달리 하프 라이프는 별도 텍스트나 컷신을 쓰지 않고 게임 내 연출만으로 스토리를 소화해낸 것이다.
지금 보면 다소 진부한 스토리에, 흔한 스토리텔링 방식이라고 생각할 수 있겠다. 그러나 하프라이프가 발매된 1998년만 해도 이러한 방식으로 스토리를 전하는 게임은 드물었다. 둠이나 튜록 등 당시 인기를 끌었던 FPS만 해도 게임을 하는 것만으로는 스토리를 이해하기 힘들었다. 이와 달리 하프라이프는 대사나 컷신이 아니라 게임을 하면서 자연스럽게 스토리 흐름을 따라갈 수 있고, 플레이와 연출이 끊김 없이 자연스럽게 이어진다. 이 점은 플레이하는 사람의 긴장감과 몰입도를 끌어올린다는 극찬을 받았고, 하프라이프의 대표적인 특징으로 자리잡았다.
비평적인 성공에 힘입어 밸브는 1편이 나온 다음해인 1999년부터 후속작 ‘하프라이프 2’ 개발에 착수했다. 다만 실제로 이 게임이 출시된 건 상당히 긴 시간이 흐른 후였다. 개발 시작 후 5년이 흐른 2004년 11월이 되어서야 발매됐기 때문이다.
지구를 구하러 돌아왔지만 구하진 못했다, 끝맺음이 아쉬웠던 하프라이프 2
하프라이프 2는 전작으로부터 20년 후를 다룬다. 다만 고든은 전작 후 시간이 느리게 흘러가는 차원에서 잠들어 있었기에, 주인공 입장에서 생각하면 스토리는 전작에서 바로 이어지는 것처럼 느껴진다. 다만 고든이 돌아온 지구는 그의 기억과 완전히 달라졌다. 그가 다른 차원에 잠들어 있던 사이 지구는 이미 콤바인 본대의 침공에 패배해 식민지가 돼버린 것이다.
다소 갑작스러울 수도 있겠지만 그간 벌어진 일은 이렇다. 전작에서 고든은 블랙 메사 연구소에 생긴 포탈은 닫았지만, 사고 여파는 이미 전세계로 퍼진 후였다. 전세계에 포탈 폭풍이라는 후속작용이 연쇄적으로 일어나 외계생물들이 소환되고 있었던 것이다. 외계인 제국 콤바인은 이 포탈 폭풍을 통해 대규모 군대를 동시다발적으로 전세계에 배치해 7시간 만에 전세계를 굴복시켰다. 이를 7시간 전쟁이라 부른다.
그렇기에 하프라이프 2에서 고든이 보는 지구는 7시간 전쟁으로 이미 콤바인 식민지로 전락한 곳이었다. 시민은 외계인과 유전자가 혼합된 반-인간 치안유지대의 감시 속에 살아가고, 조금이라도 외계인 지배자 체제를 거스르면 총살되거나 수용소에 수감됐다. 어떻게 보면 어둠의 시대에 갑자기 돌아온 셈인 고든은 1편에서 자신을 거둬준 정체불명의 존재로부터 지구의 해방자가 되라는 느닷없는 임무를 받게 된다.
지구를 외계인 침략자로부터 해방시켜야 하는 막중한 임무를 맡은 만큼 이번에는 고든 프리맨도 혼자 활동하지는 않는다. 전작에서 적으로 나왔던 외계인 노예 보르티곤트들이 하프라이프 2에서는 아군으로 등장한다. 이들은 콤바인에게 개조돼 고통받던 지도자 니힐란스를 죽여 종족을 해방시켜준 고든에게 감사를 표하며, 구세주와 같은 고든을 따라 콤바인에 함께 저항한다. 실제로 게임 내에서 보르티곤트들은 자주 고든과 함께 싸워준다.
여하튼 고든 프리맨은 지구에 돌아오자마자 얼마 안 되는 인간 및 보르티곤트 저항군과 함께 콤바인에 맞서 싸우게 된다. 인류를 배신하고 콤바인에 붙은 대가로 지구 집정관 자리를 얻은 악당 월리스 브린 박사는 계속 외계인 유전자를 혼합한 개조인간 병사를 파견해 고든의 앞길을 가로막고, 고든의 동료 일라이 밴스 박사를 구속한다. 그러나 보르티곤트의 도움을 받은 고든은 콤바인 수용소를 급습해 파괴하고 포로 대부분을 구출해낸다.
다만 안타깝게도 일라이 밴스는 구출 직전 콤바인 식민지 중심시설인 시타델로 이송돼, 원래 고든이 수용소를 습격했던 목적은 이루지 못하게 된다. 그럼에도 고든 프리맨이 악명 높은 노바 프로스펙트 수용소를 파괴하고 거둔 승리에 고무된 시민들은 차츰 저항군에 가담하기 시작하고, 게임은 본격적인 후반부로 들어선다. 이제 곳곳에서 소요사태가 발생하고, 폭동에 주춤한 콤바인 치안유지부대는 점점 후퇴하기에 이른다.
이 틈을 타 고든은 시타델로 침입해 일라이 밴스 박사를 구출하려 한다. 한편 외계인 앞잡이가 되어 인류를 팔아 넘긴 월리스 브린 박사는 인류의 저항이 심해지며 콤바인으로부터 쓸모 없는 것 아니냐는 의심을 받았다. 따라서 이를 만회하기 위해 수단방법을 가리지 않고 고든을 제거하려 든다. 결과는 고든 프리맨의 승리로 끝났다. 그는 모든 적을 물리치며 시타델 상층부에 도달해 동료들을 구하고, 악당 월리스 브린도 파멸시켰다.
다만 그 과정에서 문제가 발생했다. 수세에 몰린 월리스 브린 박사가 공간이동으로 도망치는 것을 막기 위해 싸우던 중 시타델에 폭발이 일어난 것이다. 게다가 폭발 중 고든에게 지구를 해방시킬 것을 명한 정체불명의 사내가 시간을 멈추고 나타나 다시 고든을 데리고 가겠다는 말까지 한다.
이대로라면 고든은 일을 깔끔하게 마무리하지 못하고 다시 잠들 운명이었다. 그러나 이번에는 고든에게도 동맹이 있었다. 함께 싸워온 보르티곤트들이 나타나 종족 고유의 초능력으로 정체불명의 사내의 간섭을 막아낸 것이다. 덕분에 고든은 공간간섭에 당하지 않고 계속 남아 사태를 수습할 수 있었다.
고든은 일을 마쳤으나 하프라이프 2 결말 자체는 다소 모호하다. 고든 프리맨은 20년 만에 식민지로 전락한 지구로 돌아와, 저항군을 규합하고 반격의 봉화를 피우며, 결국 총독 월리스 브린 박사도 파멸시킨다. 그렇다고 콤바인이 완전히 패한 것은 아니고 시민해방도 아직이었다. 과거에도 지구를 구했던 영웅이 20년 만에 돌아와 적 앞잡이를 응징하고 본격적인 싸움이 시작되려는 시점에 이야기가 끝나버린 것이다. 따라서 미완의 이야기라는 느낌이 강하게 남을 수밖에 없었다.
결국 3에 닿을 수 없었던 에피소드 1과 에피소드 2
하프라이프 2는 앞서 이야기한대로 이야기가 끝나지 않은 것 같은 느낌을 다분히 남겼다. 밸브 도 이 문제를 충분히 인지하고 있었던 모양이다. 하프라이프 2가 발매된 이듬해인 2005년 밸브는 에피소드라는 일종의 스토리 확장팩을 개발한다고 발표했다. 당초 에피소드는 3번째까지 기획됐으며, 기존 하프라이프 2 엔진을 그대로 사용해 빠르게 만드는 것이 목표였다. 그러나 3편은 결국 나오지 못했고 에피소드 1과 에피소드 2는 각각 2006년과 2007년 발매됐다.
에피소드 1은 보르티곤트들이 정체불명의 사내의 공간 간섭에 개입하여 고든을 지키는 대목에서 이어진다. 본래 사내의 계획은 고든을 다시 시간이 정지된 곳으로 보냈다가 또 필요해질 때 꺼내서 이용하는 것이었다. 그러나 예상치 못한 간섭으로 고든은 계속 남아 저항군을 도울 수 있었다. 시타델에서 벌어진 폭발로 원자로가 손상돼, 도시 전체가 폭발할 위기에 처했기에 고든은 꼭 필요했다.
에피소드 1은 짧고 단순하다. 고든이 콤바인 군대 잔당과 시가전을 벌이며 아직 탈출하지 못한 시민들을 규합하고, 원자로가 폭발하기 전에 전차로 함께 도시를 탈출한다는 것이 거의 전부다. 물론 그 과정에서 특유의 연출과 재미있는 전투를 경험할 수 있으나 전개된 스토리만 놓고 보면 여전히 분량이 적다. 스토리상 진전을 바란 팬 입장에서는 아쉬움이 남을 수밖에 없었다.
이후에 나온 에피소드 2도 분량은 다소 부족했으나 조금 더 굵직한 내용을 담았다. 에피소드 1 결말에서 고든 프리맨과 시민들은 열차를 확보해 원자로가 폭발하기 전 탈출한다. 하지만 충격파에 휩쓸리는 바람에 열차가 철로를 탈선해 전복됐다. 이로 인해 고든 일행은 시타델 급습 당시에 확보한 콤바인 데이터 패킷을 지닌 채 걸어서 다른 저항군에 합류해야 했다.
여기에 설상가상으로 콤바인은 시타델이 폭발할 때 일종의 자폭 프로토콜을 가동했고, 폭발 시 모인 에너지를 이용해 거대한 포탈을 만들고 있었다. 이 포탈이 충분히 커지면 콤바인은 본거지 콤바인 오버월드에서 대규모 지원군을 소환해서 다시 지구를 정복할 터였다. 이에 고든 일행은 인근에 있던 화이트 포레스트에 위치한 저항군 비밀 기지로 가 슈퍼 포탈을 없앨 방법도 찾아야 했다. 문제는 그 길이 몹시 험난하다는 점이었다.
콤바인은 지구를 정복한 후 멀쩡한 도시를 중심으로 식민지를 건설했다. 반면 야생에는 포탈을 통해 젠에서 흘러 든 위험한 외계생물들이 침투해 자리 잡았고, 이후 방치됐다. 이에 저항군 일부는 도시에서의 활동을 포기하고 아예 콤바인 관심 밖에 있는 야생으로 가 비밀기지를 차리기로 했는데, 바로 그 중 하나가 고든 일행이 목적지로 삼은 화이트 포레스트 기지였다.
고든 일행은 숲에 둥지를 튼 외계 맹수들과 싸우고, 동시에 시타델에서 빼앗긴 데이터 패킷을 회수하기 위해 일행을 추적하는 콤바인 정예병까지 상대하며 화이트 포레스트로 향한다. 우여곡절 끝에 도착한 화이트 포레스트에는 포탈을 중화할 전자기 방사 위성이 있었다. 물론 이를 노리고 대규모 콤바인 특수부대가 비밀 기지로 침입하지만, 마침 기지에 도착해 있던 고든이 모두 격퇴한다. 덕분에 저항군은 포탈을 무력화하는 데 성공한다.
슈퍼 포탈을 닫는데 성공한 고든 프리먼은 이후 저항군과 함께 시타델에서 노획한 데이터를 확인한다. 여기에는 전혀 예상치 못한 정보가 있었다. 블랙 메사 연구소와 쌍벽을 이루던 첨단기술개발업체 애퍼처 사이언스가 실험 중 잃었다고 전해진 선박 보리알리스 호가 발견됐다는 내용이었다. 애퍼처 사이언스는 밸브의 또 다른 명작 포탈 시리즈에 등장하는 기업으로, 이들 역시 공간이동과 시간여행을 연구한다.
이후 고든과 동료들은 보리알리스 호를 찾아 그 안에 남아있을 것으로 추정되는 애퍼처 사이언스 기술을 바탕으로 콤바인 잔존병을 처치하고 지구를 탈환하기로 한다. 그러나 떠나기 직전에 콤바인들의 습격이 있었고, 이 전투에서 동료 일라이 밴스가 촉수에 뇌를 관통당해서 살해되는 충격적인 장면이 나온다. 그의 딸인 알릭스 밴스와 고든은 극적으로 살아남지만, 에피소드 2는 보리알리스로의 여행을 앞두고 동료가 사망했다는 충격 속에서 끝난다.
여기서 이어질 예정이었던 에피소드 3은 당초에는 2007년 연말 출시를 목표로 하고 있었고, 밸브는 이 확장팩으로 하프라이프 2 이야기를 완결하겠다고 발표했다. 그러나 유독 매 시리즈마다 세 번째 게임을 내지 못하는 징크스가 있는 밸브답게, 이 에피소드 3은 끝내 출시되지 못했다. 불분명한 이유로 지연에, 지연을 거듭하다 사실상 흐지부지된 것이다. 이후 하프라이프 2는 13년 동안 에피소드 2에서 미완인 채로 멈춰 있었다.
에피소드 시리즈는 하프라이프 3을 개발하는 대신 빠르게 스토리를 전개하기 위해 기획했던 확장팩이었으나, 그 의도를 완전히 충족하지는 못했다. 하프라이프 2에서 시작된 스토리가 완벽히 정리되지 않은 채 긴장만 고조시키고 끝났다. 팬들은 처음에는 에피소드 3을, 나중에는 하프라이프 3을 기대했지만, 밸브는 에피소드 2 발매로부터 13년이 지난 2019년이 될 때까지 별다른 답이 없었다.
갑자기 나온 후속작 하프라이프: 알릭스, 그리고 하프라이프의 미래
2019년 11월, 밸브는 갑자기 하프라이프의 ‘다음 이야기’라며 VR게임 하프라이프: 알릭스를 공개했다. 이 게임은 지금까지 고든 동료로 등장해온 알릭스 밴스가 주인공으로 등장하며, 전작 하프라이프와 하프라이프 2 사이를 다룬다. 그러나 아예 과거만 나오는 것은 아니다. 이 게임에서 벌어지는 사건이 에피소드 2 이후 스토리에 상당히 큰 영향을 미치기 때문이다.
아직 발매된 지 얼마 안 된 게임이기에 하프라이프: 알릭스 스토리는 가급적 말을 아끼기로 하겠다. 다만 한 가지 안타까운 점은 에피소드 2에 내용이 연결되기는 하지만 하프라이프: 알릭스는 어디까지나 지금까지 있던 사건들의 뒷이야기를 보여주는 데 치중했다는 느낌이 드는 것이다. 결국 에피소드 2 후의 이야기를 기대했던 사람들에게는 아쉬움이 남을 수밖에 없다. 출시할 거라던 에피소드 3에 해당하는 이야기는 아니니 말이다.
그렇다면 에피소드 3, 혹은 하프라이프 3은 언젠가는 볼 수 있을까? 이 역시 알 수 없다. 하프라이프 시리즈 각본을 담당했던 마크 레이드로우가 밸브에서 퇴사하며 하프라이프 3에 대한 개인적인 구상을 공개하긴 했지만, 이 또한 퇴사한 개발자의 개인적 구상에 지나지 않는다. 결국 언제 후속작이 나올지, 그 후속작 내용이 어떨지를 확신할만한 이야기는 아닌 셈이다. 무엇보다 밸브는 아직까지 침묵하고 있다.
과연 밸브는 3편은 절대 내지 않던 징크스를 깨고 하프라이프 3을 낼 수 있을까? 하프라이프는 에피소드 2에서 찝찝하게 끊겨버린 스토리를 제대로 회수해서 완결될 수 있을까? 13년이나 기다렸지만 안타깝게도 조금 더 기다려야 할 듯하다. 그래도 하프라이프: 알릭스가 작은 희망을 준 만큼 더 기다릴만한 여지는 생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