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 만화가 우용곡, 샤이닝니키 한복 발언 근본 없는 이유
2020.11.09 19:07 게임메카 서형걸 기자
샤이닝니키가 한국 게이머들 기억 속에 ‘최악의 게임’으로 각인되기까지 필요한 시간은 단 일주일이었다. 한국 서비스를 기념해 나온 한복 의상이 중국인들의 반발에 의해 삭제됐고, 이에 대해 한국 게이머들이 성토하자 운영진은 “중국에 대한 모욕이 한계를 넘어섰다”며 한국 서비스 종료를 선언했다.
사실 샤이닝니키 서비스 종료 이전에도 ‘한복은 중국 전통의상’이라 주장하며 시비를 거는 중국인과 이에 대해 정면 반박하는 한국인 사이 대립이 있었다. 그 일선에는 한국 전통 문화를 소재로 한 그림을 그리는 일러스트레이터들이 있다. 게임메카는 지난 수년간 한복, 한국 역사와 신화를 소재로 한 작품을 만들어 온 우용곡 작가와 인터뷰를 진행해, 샤이닝니키 사태의 발단이 된 ‘한복은 중국 전통의상’이란 주장과 그 과정에 대해 자세한 이야기를 들어봤다.
샤이닝니키 이전, 중국 네티즌들의 한국 일러스트레이터 공격
우용곡 작가는 한국 전통 문화를 소재로 한 그림을 그릴 때 한국 복식학회의 논문, 궁중기록화, 초상화, 고고학 논문, 발굴보고서, 사진 등 광범위한 학술자료들을 참고한다. 그래서 그의 그림은 철저한 고증에 기반한 복장으로 유명하며, 실제로도 복식 연구 논문 삽화를 비롯해 전문 연구자들과 다양한 협업을 이어가며 전문성을 인정받고 있다.
우용곡 작가는 본인의 그림을 블로그와 트위터 등에 공유한다. 지난 5월에는 고구려부터 조선 후기까지의 의상 변천사를 그린 그림을 게재한 바 있다. 그런데 이 그림을 그린 직후부터 ‘한복은 중국 전통의상’이라 주장하는 중국인들의 공격을 받기 시작했다.
이들을 ‘극단주의자’라 표현한 우용곡 작가는 “저는 물론 한국 복식사 아트북을 낸 ‘글림자’ 작가님을 비롯한 많은 분들이 표적이 됐다. 이에 알고 있는 정보들을 정리하는 차원에서 반박글을 쓰기 시작했다”고 말했다. 샤이닝니키로 한복 논란이 수면 위로 떠오르기 반년 전, 이미 SNS 상에서는 전통의상을 둘러싼 논쟁이 전개되고 있던 것이다.
“명의 문화는 조선, 당의 문화는 일본, 송의 문화는 베트남으로 갔다”
중국 극단주의자들의 주장은 크게 3가지로 정리할 수 있다. 첫째는 명의 속국인 조선은 관복을 받았기에 의관이 서로 같다는 것이다. 두 번째는 한국은 고대부터 중국의 영향을 받았고, 특히 고구려, 부여는 중국 소수민족 지방정권이기에 한국 복식도 중국 복식이라는 것이다. 마지막은 원나라 말~명나라 초 중국에서 유행했던 고려 풍습 ‘고려양’에 대한 전면 부정이다.
우용곡 작가는 이 같은 주장에 대해 “매우 심각한 오류가 있다”고 말했다. 고대 동북아시아 여러 나라가 당나라의 영향을 받은 것은 부정할 수 없다. 그렇지만 고유 복식은 완전히 소멸하지 않았고, 시간이 지남에 따라 지배층이 주로 입었던 중국풍 의상 역시 본토와 다른 모습으로 변화하게 된다. 조선 관복 체계도 초기에는 명나라 관복 제도를 참고하였으나, 세종 대부터 독자적인 변화가 시작되었기에 명나라와 동일하다고 볼 수 없다는 것이 우용곡 작가의 설명이다.
중국 극단주의자들이 고려양에 대해 부정하는 것은 그들이 주장하는 ‘중국->주변국’ 형태의 일방적 문화 전파에 반대되는 사례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원나라 말~명나라 초 중국에서 유행했던 고려 풍습 ‘고려양’은 당대 여러 기록에서 확인되기에 날조된 것으로 보기 어렵다. 우용곡 작가는 “원나라 말기 중국 여성 복장 중 아오췬(袄裙)이라는 송나라나 몽골에는 없던 양식이 등장하는데, 이것이 고려양일 가능성이 높다”고 첨언했다.
중국 극단주의자들이 자국 전통 의상이라 주장하는 것은 비단 우리나라의 한복만이 아니다. 우용곡 작가는 “이들 사이에서는 ‘명나라의 문화는 조선으로, 당나라의 문화는 일본으로, 송나라의 문화는 베트남으로 갔다’라는 말이 돌고 있다”고 했다. 즉, 동북아시아 모든 나라의 전통 복식을 포함한 문화가 중국의 아류라는 주장이다.
‘한푸’는 21세기 초에 나온 신조어
이 같은 극단주의자들의 근원은 2000년대 초로 거슬러 올라간다. 2001년 중국 상하이 APEC 정상회의에서 각국 정상들이 치파오를 입고 사진을 찍었는데, 이에 대해 일부 중국인들이 반발하며 ‘한푸(漢服’라는 신조어를 만들었고 곧이어 ‘한푸 부흥 운동’이 시작됐다.
즉, 중국 전통의상을 지칭하는 ‘한푸’라는 단어는 학술적 논의를 거쳐 탄생한 것이 아니다. 우용곡 작가는 “중국 복식 학계에서도 한푸의 개념에 대해 논란이 많다”며, “다만, 한푸 부흥 운동을 주도하는 단체에서는 ‘삼황오제 시대부터 청나라 이전까지 한족들이 입어왔던 모든 옷’들을 통칭한다”고 말했다.
이처럼 한푸 부흥 운동은 치파오를 비롯한 청나라(만주족)의 풍습에 대한 반발로부터 시작됐다. 이를 통해 만주족의 치파오가 아닌, 한족 중심의 새로운 복식 이미지를 자리잡게 하려는 것이다. 여기에 2000년대 초반, 조선족 한복과 고구려 벽화 및 유물들을 중국 문화 일부로 편입시킨 동북공정의 영향으로 ‘한복은 한푸의 아류’라는 주장까지 나오게 됐다.
다만, 동북공정과 달리 한푸 부흥 운동은 중국 정부나 학계가 아닌, 민간 주도의 운동이라는 점이 차이다. 우용곡 작가는 “중국 학계에서는 한푸 부흥 운동 세력의 국수주의적 행보를 비판하는 입장이다”며, “중국 공산당은 공식적으로 오족공화(五族共和)를 표방하고 있어 멸만흥한(滅滿興漢)과 비슷한 주장을 하는 한푸 부흥 운동 세력이 달갑지만은 않을 것”이라 말했다. 또한 샤이닝니키 서비스 종료 글에 중국 공산주의 청년단의 기사가 있긴 하지만, 중국 정부의 공식 입장이라 속단하기엔 이르며 방관자 정도로 판단된다고도 덧붙였다.
전통문화 콘텐츠 위축이 우려된다
우용곡 작가는 샤이닝니키로 수면 위로 떠오른 ‘한복-한푸 논란’의 가장 큰 문제로 한국과 중국이 서로의 복식에 대해 잘 모른다는 점을 지적했다. 실제로 중국 네티즌들은 중화사상과 문화패권주의적인 입장을 견지하며 한국 복식 문화에 대한 이해 없이 자국 사료만을 취합해 역사 왜곡을 하고 있다.
이와 반대로 일부 한국인들의 감정적인 반발도 발전적인 논의를 저해한다고 지적했다. 우용곡 작가는 “명나라 고려양 복식을 조선시대 한복으로 착각해 이를 소재로 그림을 그린 중국인 일러스트에게 욕을 하는 경우도 있다”며, 이 외에도 “고려양이 아닌 옷에도 고려양이라고 하는 것과 중국풍 복식인데 고유풍이라 설명하는 사례도 존재한다”고 설명했다.
우용곡 작가는 인터뷰를 마무리하며 상호간 이해 없는 진흙탕 싸움은 국내/외 콘텐츠 업계의 위축을 불러일으킬 것이라는 우려를 내놓았다. 외국 게임들이 한국 서비스를 시작하며 한국 전통 문화와 관련된 마케팅 자체를 꺼려할 수도 있다는 것이다. 실제로 이미 일본 만화, 애니메이션 업계에서는 한국에 관한 언급 자체를 피하는 상황이 발생하고 있다고 한다. 우용곡 작가는 “한국 전통 문화 콘텐츠가 써먹지도 못하는 계륵이 되어 버리지 않을까 걱정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