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리자드의 전성기 DNA가 담긴 회사들
2021.04.15 18:02 게임메카 이재오 기자
블리자드가 엔터테인먼트가 설립된 지도 어언 30년이다. 여느 회사가 그렇듯 오랜 시간 일선에 서서 게임 개발을 진두지휘하던 인력들도 지금은 대거 퇴사한 상태다. 한때는 장인정신으로 게임을 만드는 것으로 유명했던 블리자드지만, 세월에 흐름에 의한 세대교체까지는 어찌하지 못한 것이다. 물론 최근 블리자드는 '클래식'을 콘셉트로 다양한 작품을 선보이며 서서히 과거의 영광을 회복하고는 있지만, 이는 그만큼 과거의 블리자드를 그리워하는 사람들이 많다는 뜻이기도 하다.
그래서일까, 많은 사람들이 블리자드 직원들이 퇴사해서 만든 회사에도 관심을 표하고 있다. 그만큼 그들이 블리자드 시절 보여준 장인정신과 개발력, 지도력 등이 굉장했기 때문일 것이다. 재직 당시의 경력과 노하우를 앞세워서 블리자드의 정신적 후속작을 개발하고 있는 회사를 모아봤다.
창립 5년차 중견 회사, 본파이어 스튜디오
본파이어 스튜디오는 월드 오브 워크래프트의 전성기를 이끌었던 롭 팔도와 디아블로 3 콘솔판을 만들었던 조시 모스케이라, 블리자드에서 제작한 모든 영상을 담당하던 닉 카펜터 등이 합심해 설립한 회사다. 설립 당시 라이엇게임즈와 실리콘 밸리의 한 회사로부터 2,500만 달러(한화 약 279억 원)에 달하는 투자를 받으며 큰 주목을 받았다. 지난 2019년 말에는 갓 오브 워의 콘셉트 아티스트가 이 회사로 이직하며 더 큰 기대를 모았다.
본파이어가 만들고 있는 게임은 PC 기반 온라인 멀티게임이다. 롭 팔도가 2019년에 한 게임 행사에서 "멀티플레이에 집중하여 경쟁과 협동을 장착할 것"이라고 밝힌 것을 감안하면 PvP와 PvE가 모두 담긴 MMORPG나 그 비슷한 게임이 될 것으로 예상 가능하다. 물론 아직까지 정확한 콘셉트나 청사진이 나온 것은 아니라서 쉽게 단언할 순 없는 상황. 한편으로는 창립 후 5년이 다 되어 가는데 별다른 소식이 없는 것에 대해 서서히 의구심을 품고 있는 팬들도 있다. 본파이어가 하루빨리 성과를 보여줬으면 하는 바람이다.
하스스톤 개발진이 마블 IP로 게임을? 세컨드디너
지난 2018 4월, 제작 팀의 팀장이자 하스스톤의 얼굴마담이라 불리던 벤 브로드가 갑작스레 블리자드를 퇴사한다는 소식을 알렸다. 이러니저러니 해도 하스스톤을 대표하는 개발자였던 만큼 팬들도 많이 아쉬워했다. 그로부터 3개월 뒤 벤 브로드가 세컨드 디너라는 신생 개발사에 최고 창작 책임자로 입사했다는 소식이 들려왔다. 그것도 본인과 같이 초창기부터 하스스톤을 제작했던 직원들과 함께 말이다. 당연하게도 팬들 입장에선 벤 브로드가 하스스톤에 버금가는 명작을 만들기 위해 새 둥지를 틀었다며 기대를 보냈다.
현재 벤 브로드는 세컨드 디너에서 마블코믹스 IP를 활용한 게임을 제작 중이다. 넷이즈로부터 약 3,000만 달러(한화 약 335억 원)를 투자받아 마블 엔터테인먼트와 계약을 체결한 것이다. 계약 당시에는 팀원 수가 5명 남짓했지만, 지금은 15명이 넘는 직원들이 함께 게임을 만들어 나가고 있다. 아직까진 게임과 관련된 세부 정보가 공개되지 않았지만, 벤 브로드와 마블의 만남만으로도 설레는 팬들도 많다. 과연 이들이 만든 마블 관련 게임은 어떤 모습일지 귀추가 주목된다.
마이크 모하임의 도전은 멈추지 않았다, 드림헤이븐
드림헤이븐은 블리자드 엔터테인먼트의 창립자이자 전 CEO로 회사를 진두지휘했던 마이크 모하임이 2018년 블리자드 퇴사 후 블리자드 전 직원 22명을 모아 만든 회사다. 개발 직군에 있는 직원이 전부 블리자드 출신이며, 스타크래프트 2와 히어로즈 오브 스톰의 디렉터였던 더스틴 브로더와 앨런 다비리가 대표 개발자다. 말 그대로 마이크 모하임이 젊었을 적 패기를 되살려 혼을 담아 설립한 회사라고 봐도 무방한 셈이다.
일단 만들어진 지 얼마 안 된 회사다 보니 어떤 게임을 제작하고 있는지에 대해선 따로 알려진 바가 없다. 다만 공식 홈페이지를 통해 현재 문샷 게임즈와 시크릿 도어라는 이름의 스튜디오 두 개를 운영하고 있음은 확인할 수 있다. 각 스튜디오 소개 페이지를 보면 문샷 게임즈는 감성적인 면모가 돋보이고, 세컨드 도어는 흑백의 도트 그래픽으로 재치있게 꾸며져 있다. 과연 마이크 모하임 밑에서 이 두 스튜디오가 어떤 게임을 내놓을지 지켜보자.
RTS의 부활을 꿈꾼다, 프로스트 자이언트 스튜디오
프로스트 자이언트는 블리자드에서 RTS를 제작하던 팀원들이 의기투합해서 설립한 회사다. 스타크래프트 2 프로덕션 디렉터였던 팀 모튼과 워크래프트 3 수석 캠페인 디자이너였던 팀 캠밸이 함께 모여서 작년 10월에 만들었다. 둘 외에도 디아블로 4 수석 아티스트였던 제시 브로피를 비롯해 직원 다수가 블리자드 출신이다.
창립자들의 면모를 보면 알 수 있듯이 프로스트 자이언트의 목표는 RTS 장르의 부활이다. 지금껏 블리자드에서 출시한 게임들의 진화형을 만들고 싶다는 이들은 PvE와 PvP가 모두 담겨 있는 PC 게임을 제작 중이다. 아직은 사전 제작 단계에 있지만, 앞서 소개된 회사들과는 달리 명확하게 제작하고자 하는 게임의 장르가 정해져 있다는 점은 높이 살 만하다. 다소 후발주자라 할 수 있는 프로스트 자이언트가 자신들이 염원하던 바를 이룩할 수 있을지 기대된다.
과거 블리자드 감성을 보드게임에 담는다, 크리스 멧젠
블리자드 성공의 일등 공신인 크리스 멧젠은 2016년 퇴사와 함께 은퇴를 선언했다. 오랫동안 블리자드에서 일하면서 몸과 마음이 많이 상했다고 밝힌 그는 이후 종종 멋진 목소리를 뽐내며 성우 작업을 할 때 외에는 가족들과 시간을 보내는 데 집중했다. 헌데 작년 10월 블리자드의 전 부사장인 마이크 길마틴과 함께 새로운 회사를 하나 설립했다. 바로 TRPG 전문 제작 회사인 워치프 게이밍이다.
워치프 게이밍은 TRPG 룰북이나 미니어처 게임을 만드는 회사로 디지털 게임을 만들진 않는다. 실제로 창립 이후 바로 던전 앤 드래곤의 커스텀 룰북을 발표하기도 했다. 팬들에겐 다소 아쉬운 부분일 수 있지만, 그가 블리자드에서 각종 세계관 제작과 시나리오 집필을 담당했던 것을 생각해보면 나름 잘 어울리는 회사를 차렸다고 볼 수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