롤 애니 ‘아케인’, 사실상 처음부터 다시 쓰는 유니버스
2021.11.07 11:37 게임메카 이재오 기자
리그 오브 레전드(이하 롤) IP를 활용한 최초의 애니메이션 아케인의 1막이 드디어 공개됐다. 첫 장편 애니메이션인데 요새 가장 핫한 OTT인 넷플릭스에서 공개되는 만큼 많은 게이머들의 기대를 한 몸에 받고 있다. 운좋게 한발 빨리 아케인을 감상해본 입장에서 기본적으로 아케인을 더 재밌게 보는 방법, 그리고 아케인은 과연 잘 만들어졌는지에 대해서 1막 내용을 기준으로 설명해보는 시간을 가져봤다.
롤 유니버스 내에서 '아케인'이 지니는 위치는?
그동안 라이엇게임즈는 롤 세계관 정립을 위해 무려 세 번에 걸쳐 유니버스를 개편해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롤은 게임 구조상 스토리 전달력이 현저히 부족할 수밖에 없다 보니, 정말 관심 있게 홈페이지에서 이것저것 찾아보지 않는 이상 인물의 관계도, 지역 배경을 알 방도가 없다. 그런 의미에서 이번 아케인은 사실상 롤 유니버스를 재편하고 다시 시작하는 과정으로 봐도 무방하다. 어찌 보면 작중 발생하는 사건 사고보다 캐릭터의 성격과 사연, 그리고 필트오버와 자운에 대한 묘사 및 설명에 더 치중돼 있는 작품이라고 봐도 무방하다.
이야기와 드라마의 기본 설정은?
3막 9장 중에 1막은 철저히 이야기의 도입이며, 그만큼 배경 설명에 전력을 다하고 있다. 정확히는 필트오버와 자운의 관계는 미묘한 신경전과 바이와 징크스, 그리고 그의 양아버지 밴더와 얽힌 사연, 마법공학을 연구하는 제이스의 이야기가 병렬적으로 나열된다.
징크스와 바이는 시작부터 필트오버의 자운 공략으로 인해 식솔들을 모두 잃고 밴더에 의해 거둬졌으며, 밴더는 무너질뻔한 자운을 지탱하는 영웅으로 묘사된다. 제이스는 사람들 몰래 아카데미에서 마법공학을 연구하는 선구자고 빅토르는 그의 동문, 하이머딩거는 담당교수다. 한 가지 재밌는 부분은 필트오버와 자운이 지상과 지하라는 위치 설정, 그리고 극 중 등장하는 몇몇 조연들의 인식 및 법리적 관계와는 별개로 마냥 수직적이지 않다는 것이다. 더불어 아직 햇병아리에 가까운 제이스의 연구가 필트오버와 자운 전반에 걸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보는 것도 주요 관점 포인트라고 할 수 있다.
캐릭터 기본 배경 설정과 달라진 부분은?
캐릭터의 성격이나 간략한 설정은 분명 현재 롤 홈페이지에 적혀 있는 내용과 크게 다르지 않다. 징크스와 바이의 경우는 특히나 그렇다. 하지만, 작중 등장하는 캐릭터의 배경설정엔 일부 차이가 있다. 가령 하이머딩거는 신경질적 강박관념이 있다는 이야기와 달리 훨씬 합리적이며 안전을 추구하는 인자한 교육자로 그려진다. 더불어 제이스와 빅토르는 라이벌보단 서로에게 진심을 갖춘 조력자에 가깝다. 특히나 제이스는 빅토르를 꼭 필요한 조력자로 아끼며, 빅토르 또한 마법공학사에 걸쳐 제이스보다 더 큰 역할을 하는 인물로 그려진다.
한편, 징크스와 바이의 이야기는 사실상 새로 쓰이는 만큼 처음부터 끝까지 주의 깊게 시청할 필요가 있다. 특히, 1막은 배경 설정에도 적혀 있지 않은 내용인 ‘파우더’라는 이름으로 불리던 소녀가 어떻게 ‘징크스’가 되어가는지를 다루고 있기 때문에 더더욱 유심히 지켜봐야 한다.
작화와 액션은?
이 드라마의 가장 큰 장점은 훌륭한 작화와 액션 연출에 있다. 기본적으로 K/DA 뮤직비디오를 비롯해 각종 롤 관련 영상을 제작했던 포티셰 프로덕션이 제작한 만큼 2D와 3D가 적절히 섞여 있으면서도 롤 팬들에겐 익숙한 작풍을 보여준다. 액션 또한 세계관에서 주로 사용되는 마법공학과 자운의 각종 불쾌한 기술이 집약돼 어디서도 본 적 없는 독특한 연출 구도를 보여준다. 악역 실코가 제작한 물약을 먹고 강화된 인간이 벌이는 육중한 액션부터 바이의 육탄전이나 어린 징크스의 미숙하지만 위력적인 폭탄까지 볼 거리가 풍부하다. 무엇보다 정교하고 사실적인 3D 노선을 걷고 있으면서도 업계 최고 수준의 시네마틱 영상을 자랑하는 블리자드와는 사뭇 다른 행보라는 점에서 더욱 인상 깊다.
악역은?
이번 작품에 등장하는 주요 인물 혹은 선역은 대부분 이미 게임에서 등장한 챔피언인 반면에, 악역을 비롯해 암투를 벌이는 캐릭터는 대부분 아케인만의 오리지널 캐릭터다. 그 중에서 메인 악역인 ‘실코’는 꽤 독보적인 개성을 자랑한다. 붉게 빛나는 왼쪽 눈과 얇은 체형에 반비례하는 카리스마는 동네 불량배에게 억지로 약물을 주입하는 과정 등을 통해 잘 드러난다. 특히 1막 마지막에 적이었던 인물까지 자연스럽게 자신의 편으로 포섭하는 과정은 가히 1막의 하이라이트라 할 수 있다. 1막을 보고 나면 앞으로 이 캐릭터가 어떤 활약을 펼칠지가 기대될 정도다. 이 밖에도 ‘멜’을 비롯한 필트오버의 권력가들의 독단적인 행보도 눈에 띈다.
캐릭터가 너무 많은 거 아닌가?
작 중에 등장하는 캐릭터는 포스터에 나와있는 사람들 외에도 에코와 징크스, 바이의 주변 인물을 포함해 말 그대로 차고 넘친다. 더불어 그 캐릭터의 성격을 하나하나 파악하는 것도 바쁠 정도로 1막은 숨 가쁘게 흘러간다. 그로 인해 발생하는 단점이 하나 있는데, 몇몇 캐릭터들이 급하게 소모되거나 아무 의미 없이 산화되는 경우가 적지 않다는 것이다. 다행히 주역 캐릭터의 비중은 상당히 고르며 마법 광석을 둘러싼 병렬적인 에피소드가 진행된 이후 이 내용이 하나의 사건으로 합쳐지는 과정은 분명 흥미롭다. 하지만 그 과정에서도 주역 중 한 명인 케이틀린의 분량과 역할이 다소 흐려지는 결과가 나오기도 했다. 아 물론 2막을 비롯해 극이 진행됨에 따라 이 문제는 얼마든지 해결될 가능성이 있다.
결국 중요한 것은 사건이 아닌 사건의 여파
사실 정말 중요한 것은 이 드라마에서 펼쳐지는 사건이 아니라 사건의 여파다. 1막은 징크스와 바이가 필트오버에서 불법을 저지르게 되며, 그 작은 사건이 제이스와 빅토르의 연구와 밴더와 필트오버 정치인들의 복잡한 관계에 각각 긍정적이고 부정적인 영향을 미치는 과정을 서술하고 있다. 더 중요한 것은 이 사건들이 지난 이후 바이와 징크스, 제이스와 빅토르, 케이틀린의 성격과 행동 양상, 외모까지 변한다는 것이다. 이 드라마의 재미는 바로 이렇게 각종 일들의 잔향으로 인해 변하는 캐릭터를 보는 것이다. 어떻게 보면 롤 게임 용어 중 하나인 ‘스노우볼’을 녹여낸 스토리가 바로 1막이 아닐까 싶다.
그래서 이 드라마는 볼만한가?
단도직입적으로 말해서 1막만으로도 이 드라마는 굉장한 흡인력을 지니고 있으며, 그 자체의 완성도도 훌륭하다. 이렇게 다양한 이야기와 캐릭터가 얽히고설키다 보면 주마간산처럼 장면들을 훑고 지나기 바쁜데, 아케인은 과감히 배경 설정에 전적으로 투자한 1막에서도 흥미로운 설정과 주요 캐릭터의 개성을 앞세워 이 문제를 타파했다. 남은 2막을 비롯해 필트오버와 자운뿐만이 아니라 데마시아와 녹서스, 타곤산과 프렐요드의 이야기가 궁금할 지경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