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판례.zip] 이미 사용한 유료 아이템, 환불 가능할까?
2022.09.15 11:25 유관우 변호사
최근 모바일게임 유료 아이템 환불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습니다. 우선 전자상거래법에 따라 게임머니나 게임캐시를 구매한 후 이를 사용하지 않았다면, 구매한 날부터 7일 안에 청약철회가 가능합니다. 그런데 결제한 게임머니로 아이템을 구입해 보관함 등으로 이동시켰다면 이는 게임머니를 쓴 것이므로 청약철회는 불가능합니다. 아울러 구입한 즉시 능력치가 높아지는 아이템처럼 구매 후 즉시 소비되는 아이템도 같은 이유로 청약철회가 어렵습니다.
위에 언급된 청약철회 대상이 아닌 경우 환불을 받기 위해선 법적 소송을 진행해야 하지만, 유저 승소 판례는 찾기 어렵습니다. 실제로 게임사에 대한 불만으로 청약철회가 불가능한 아이템을 환불해달라고 요구한 소송이 있었습니다. 무협 RPG를 서비스하는 한 게임사가 유저 118명을 고마운 고객으로 선정하며 고가의 유료 아이템을 무료로 제공한 일이 있었는데요, 아이템을 받지 못한 유저 68명이 "게임사가 불공평한 경쟁을 조장하고, 이용자들에게 배신감을 안겼다"고 주장하며 이제껏 구매한 아이템을 환불해달라는 소송을 제기했습니다.
그러나, 해당 소송에 대해 법원은 '게임사는 유료 아이템을 많이 구매한 이용자들에게 혜택을 제공하는 차원에서 아이템을 지급했을 뿐이고, 아이템을 주기 때문에 원고들이 유료 아이템을 구매한 것은 아니다'라며 원고 패소 판결을 했습니다.
다만, 일반적인 변심에 의한 환불이 아니라면 이야기가 달라집니다. 몇 달 전, 초등학교 6학년 아이가 아버지 휴대전화로 애플 앱스토어에서 게임 아이템 426만 원어치를 결제한 일이 있었습니다. 아이 아버지는 애플에 환불을 요청했으나 애플은 31만 원만 환불해줬고, 나머지 395만 원에 대한 환불을 거절한 이유도 설명해주지 않았죠. 스미싱이나 해킹을 당해 나도 모르는 사이에 게임 아이템이 결제된 사례도 있었는데요, 실제로 할인쿠폰을 준다는 문자에 포함된 링크를 클릭해 주민등록번호 등 개인정보를 입력했다가 넷마블 게임 아이템 30만 원이 결제되는 사건이 발생하기도 했습니다.
이러한 피해 사례는 얼마나 많을까요? 올해 소비자보호원 발표에 따르면 게임 소비자 상담 445건 중 ‘계약취소 및 환급 거부’가 331건(74.4%)으로 가장 많았는데요, 이 중 '법정대리인 동의 없는 미성년자 결제'가 110건(33.2%)으로 1위였고, '제3자의 명의도용으로 인한 결제’가 41건(12.4%)으로 2위였습니다. 그 외에는 ‘접속불량·버그 발생 등 시스템 오류’는 36건(10.9%), ‘착오로 인한 결제’가 26건(7.9%) 순이었죠.
미성년자가 부모 동의 없이 결제한 경우 환불이 가능할까
우선 미성년자가 게임 아이템을 결제하려면 부모 등 법정대리인 동의를 받아야 합니다. 부모 동의가 없다면 계약을 취소할 수 있고(민법 제5조), 전자상거래법에도 통신판매업자는 미성년자에게 법정대리인 동의가 없다면 미성년자 본인 또는 법정대리인이 그 계약을 취소할 수 있다는 내용을 알려야 한다고 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대부분 게임사의 이용약관에는 법정대리인 동의가 없는 미성년자 결제는 취소할 수 있다는 내용이 포함되어 있죠. 아울러 구글과 애플은 전자상거래법에서 통신판매중개업자이자, 전기통신사업법에서 말하는 앱마켓 사업자이기도 합니다. 따라서 이들도 자사 마켓에서 미성년자 구매를 환불 이유로 선택할 수 있도록 제공하고 있죠.
그런데 게임 결제는 비대면으로 진행되기 때문에 앱마켓 사업자나 게임사 입장에서는 결제한 사람이 정말로 미성년자인지, 미성년자라면 법정대리인 동의를 받았는지 등을 알기 어렵습니다. 예를 들어, 성인 명의 계정과 신용카드로 결제됐는데 '미성년자가 결제한 것이니 환불해달라'고 요청한다면 그것만으로는 사실관계를 판단할 수 없죠.
그래서 앱마켓 사업자는 첫 번째 환불 요청은 승인해주더라도, 두 번째부터는 거절하는 경우가 많은데요, 환불을 거절당했다면 한국콘텐츠진흥원 산하의 콘텐츠분쟁조정위원회나 한국소비자원에 조정을 신청할 수 있고, 바로 소송을 제기하는 것도 가능합니다. 조정이나 소송까지 간다면 미성년자가 결제한 게임 환불이 가능할까요? 이 경우는 사례별로 나눠서 살펴볼 필요가 있습니다.
1. 부모 명의 휴대전화로 결제됐다면
먼저 부모 명의로 가입된 휴대전화로 게임이 결제됐다면 환불받지 못할 우려가 높습니다. 미성년자가 결제했다고 증명하기 어렵기 때문이죠. 실제로 아들이 본인 휴대전화로 몰래 온라인게임 캐시를 충전해 34만 원을 결제했다고 주장한 사건이 있었는데요, 법원은 원고 휴대전화로 발송된 인증번호가 입력된 후 34만 원이 결제된 점과 이러한 본인 확인 방식은 약관 등을 통해 동의를 받은 방식이라는 점을 들어 청구를 기각했습니다.
2. 미성년자 명의 휴대전화로 결제된 경우
미성년자 명의로 가입된 휴대전화로 게임이 결제된 경우는 어떨까요? 이 경우에는 결제 방식에 따라 환불 가능성이 달라집니다. 만약 부모 신용카드로 결제됐고, 부모가 동의했다고 보기에는 금액이 크다면 환불받을 수 있는 여지가 있습니다. 물론 환불을 위해서는 미성년자 명의로 계약된 휴대전화계약서, 가족관계증명서, 결제내역서 등 사실관계 확인을 위한 자료를 제출해야 합니다.
실제로 민사소송에서 일부 승소한 사례가 있습니다. 미성년자가 어머니 신용카드로 허락 없이 클래시 오브 클랜 아이템 181만 9,496원을 결제한 사건인데요. 결제 당시 구글 계정은 미성년자 본인 계정이었습니다. 이에 대해 법원은 구글 계정 이용자와 신용카드 명의인이 다르고, 미성년자 계정임에도 결제 과정에서 구글 측이 신용카드 명의인이 결제에 동의했는지 확인하지 않았다고 판단했습니다. 이에 구글의 주의의무 위반은 불법행위를 구성한다며 결제금 50%인 90만 9,748원을 배상할 책임이 있다고 판결했습니다. 다만 원고도 성인이 아닌 자녀가 임의로 신용카드로 게임 아이템을 구매하지 않도록 가르칠 의무를 게을리한 과실이 있다고 봤죠.
3. 미성년자 명의로 만든 체크카드로 결제된 경우
그렇다면 미성년자 본인 명의로 만든 청소년 체크카드로 게임 아이템을 결제한 경우에는 어떻게 될까요? 이 경우에는 법정대리인 동의가 없었다는 이유로 계약을 취소하기는 어렵습니다. 법정대리인이 금액 범위를 정해서 자녀가 사용할 수 있도록 준 재산은 미성년자가 임의로 처분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민법 제6조 참조) 즉, 미성년자가 본인 용돈으로 구입할 수 있을 정도의 소액이라면 결제한 사람이 미성년자라는 이유로 계약을 취소하는 것은 어렵다는 점을 알아둬야 합니다.
따라서 아이에게 휴대전화 사용을 허락한 부모는 아이가 부모 카드나 휴대전화로 게임을 결제하지 않도록 해야 합니다. 구체적으로 결제할 때마다 비밀번호를 입력하도록 설정하거나, 소액결제, 콘텐츠이용료 한도를 낮추고, 결제 시 알림이 오도록 설정하는 등 생각지 못한 결제가 발생하지 않도록 노력할 필요가 있습니다.
친구나 지인이 몰래 결제했다면 환불이 가능할까?
미성년자 자녀가 아니라도 친구나 지인이 몰래 내 계정이나 카드로 게임 아이템을 결제해서 난감해지는 경우도 있습니다. 원칙적으로는 이 경우에도 환불받을 수는 있지만, '내가 동의하지 않은 결제'라는 점을 증명해야 합니다. 실제로 구글플레이 환불 정책에는 '구글플레이 사용자가 본인 계정 또는 결제 세부정보를 타인에게 알려주는 경우 환불하지 않는다'고 명시하고 있기에, 결제 관련 정보를 알려준 것이 아니라는 점을 자료 등으로 증명할 수 있어야 환불이 가능하죠.
이에 대한 민사사건 하나를 소개하겠습니다. 원고는 친구 집에 놀러 갔다가 휴대전화를 놓고 왔는데, 친구가 원고 휴대전화로 313만 3,720원에 달하는 소액결제 서비스를 받았습니다. 원고는 통신사를 상대로 소송을 제기했으나 법원은 '이용자 부주의로 인한 손해에 대해서는 배상책임이 없다'는 통신사 이용약관을 들어 원고 청구를 기각했습니다.
다만, 친구가 몰래 내 명의로 결제한 행위는 컴퓨터 등 사용사기죄, 민법상 불법행위에 해당할 수 있습니다. 따라서 환불이 아니라 친구를 형사고소하거나 민사소송을 제기해 피해금액을 받을 수 있습니다. 실제로 피고가 원고 명의 휴대전화로 넷마블 등에서 몰래 514만 원을 결제한 사건에 대해 법원은 피고 측에 위 결제금액을 원고에게 배상하라고 판결한 사례도 있습니다.
계정이 해킹되어서 게임머니가 결제된 경우에는 환불 가능할까?
피해자 600여 명에게 휴대전화에 전송된 인증번호를 가로채는 URL을 발송한 후, 넥슨코리아 등에서 게임머니 약 1억 3,000만 원을 결제한 범인이 붙잡혀 징역 4년 8개월에 처해진 사례가 있습니다. 이 사건에서 넥슨코리아는 피해자들에게 피해액을 환불해줬죠.
그런데 이 사건과 같이 스미싱 피해를 당했다고 해서 항상 환불이 가능한 것은 아닙니다. 실제로 원고가 스미싱으로 피해를 입었다고 주장했으나, 법원이 이를 믿지 않아 패소한 사건도 있습니다. 당시 원고는 할인쿠폰을 지급한다는 스미싱 문자를 받은 후 소액결제가 진행됐다며 환불을 요구했으나, 법원은 '원고의 휴대전화 기기는 스미싱 문자를 받더라도 악성코드나 앱 설치가 어려운 종류고, 스미싱 피해 전에도 소액결제가 있었다'며 원고 패소 판결을 내렸습니다.
해킹 피해를 증명하지 못해 패소한 사건이 또 있습니다. 누군가 원고 계정으로 접속해 게임 아이템을 구매한 후 처분했고, 원고가 경찰에 신고한 결과 게임 아이템을 처분할 당시 IP 위치가 중국 길림성으로 확인됐습니다. 그럼에도 검찰은 피의자를 특정하지 못해 기소중지 처분을 내렸죠.
이후 원고는 아이템 구매대금에 대한 채무부존재확인소송(채무가 존재하지 않음을 확인하는 소송)을 제기했습니다. 그러나 법원은 결제 과정에서 원고의 신용카드를 인증하는 방식으로 본인확인이 진행됐고, 신용카드 비밀번호는 본인이 알려주지 않으면 알기 어려운 정보라며 원고는 아이템 구매대금을 지불해야 한다고 판시했죠. 법원은 해킹을 당했다는 원고 주장을 믿지 않은 겁니다.
해킹을 당했다는 점이 입증됐더라도 게임사 잘못이 아니라면 환불이 불가능할 수 있습니다. 앞에서 살펴본 것과 비슷한 사건인데요, 누군가가 원고 계정에 접속해 비밀번호를 변경하고 아이템과 게임머니를 처분했습니다. 경찰 수사 결과 VPN 사용이 확인되어 해외에서 범행이 일어난 것으로 추정됐으나, 피의자를 특정할 단서를 발견할 수 없어 기소중지 의견으로 검찰에 송치됐죠.
이에 원고는 게임사, 결제대행사, 통신사를 상대로 게임 계정 복구 및 환불을 요청하는 민사소송을 제기했는데요, 법원은 '피고들에게 위와 같은 경우까지 대비해 보안 서비스, 스팸 차단 서비스를 제공할 의무가 있다고 볼 수 없다'며 피고들의 잘못으로 해킹이 발생한 것이 아니라고 판단했습니다. 결국 원고는 패소했죠.
이처럼 해킹으로 피해를 받았다는 점이 명확한데도 환불받지 못한 경우가 많습니다. 다만 피해자가 수사기관에 피해사실을 신고하지 않으면 게임사도 구제해주기 어렵기 때문에, 피해 사실을 알았다면 먼저 수사기관에 신고해야 합니다. 스미싱 피해를 당했다면 문자 메시지 등을 캡처하여 보관하는 등 관련 증거를 수집할 필요가 있습니다. 마지막으로 사전에 해킹을 막기 위해 휴대전화에 로그인된 구글 계정을 2단계 인증(애플의 경우 이중 인증)으로 보호하는 것이 좋습니다.
이렇게 모바일게임 환불에 대한 관련 판례를 집중적으로 살펴봤습니다. 환불의 경우 사례가 많아서 이후에도 다른 방향으로 이 주제를 이어갈까 합니다. 다음 편에서는 게임 아이템 버그에 관련된 환불 소송, 그 다음에는 환불을 악용한 유저에 대한 사례를 다뤄보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