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을 잃은 생존게임 디스테라, 방향성 명확히 해야
2022.12.09 17:27 게임메카 전소하 기자
멸망한 지구에서 중요 자원인 테라사이트를 인류의 새 거주지로 보내는 생존게임, 디스테라가 11월 24일 앞서 해보기로 출시됐다. 제작진은 출시에 앞서 “생존게임계의 배틀그라운드가 되고 싶다”는 포부를 드러냈는데, 역주행 기록을 세운 러스트와 비슷한 장르라는 점에서 국내외 많은 팬들에게 관심을 끌었다.
실제로 게임을 시작해보면 아름다운 콘셉트 아트가 눈을 사로잡고, 누구나 부담 없이 손댈 수 있는 접근성이 눈에 띈다. 앞서 이와 같은 게임을 해보지 않았더라도 흥미를 돋울 만한 요소들도 눈에 보인다. 다만, 게임 자체에 대한 평가는 그리 좋지 못하다. 스팀 평가는 복합적(61% 긍정적)에 그치며, 출시 후 보름이 지났지만 유저 리뷰 수도 231개로 기대에 비해 적은 편이다.
과연 디스테라는 포부처럼 생존게임계의 배그가 될 수 있을까? 제작 의도와 실제 게임성을 판별하기 위해 멸망한 지구로 떠났다.
간단한 목표에 비해 알기 힘든 지향점
디스테라의 기본 요소는 크게 3가지다. 의식주 문제 해결, 다양한 건물을 짓는 크래프팅, 환경적 요소와 적에게서 살아남는 생존 요소다. 여기에 러스트 계열답게 PvP에서는 타 유저의 건물을 침략할 수도 있어, 침략 혹은 방어의 중요성도 커진다.
첫인상은 하드코어하기로 유명한 러스트와 유사한 게임성임에도 상당히 캐주얼하다는 점이었다. 자원과 장비들을 등급으로 나눠 놓았기에, 깊은 숙고 없이도 시스템을 빠르게 파악할 수 있었다. 이런 장르의 게임들은 보통 물건 하나를 제작하는 데도 자원이나 노동 력 등 요구하는 것이 매우 많다. 따라서 초보 유저는 총알 하나 만드는 데에도 엄청난 공부와 많은 시행착오, 부단한 노력이 필요하다. 그러나 디스테라는 슈팅에 중점을 둔 게임답게 제작 시스템을 매우 간편하게 구현했다. 게임을 배우려 머리 아프게 공부하지 않아도 된다는 점이야말로 가장 큰 장점이라고 할 수 있겠다.
각종 모션에서 느껴지는 피드백도 칭찬할 만하다. 총을 발사해 NPC나 다른 유저를 쓰러뜨릴 때, 장전할 때, 기계 팔에 배터리를 끼워 넣을 때, 상자를 해킹할 때 느껴지는 피드백은 게임에 몰입하는 데 크게 도움을 준다. 이와 함께 원하는 대로 기지를 만들거나 차량을 제작하면 큰 성취감도 느껴진다. 확실히 해당 장르에 새로 입문하는 유저들에게는 진입장벽을 낮추고 초반 성과를 확실히 주는 친절한 게임이다.
그러나 캐주얼함을 지향하는 게임임에도 불구하고 몇 가지 의문스러운 부분도 눈에 띈다. 대표적인 점이 접속 종료 시 캐릭터를 방치해둬야 하는 시스템이다. 이는 러스트 시스템과도 비슷한데, 러스트의 경우 유저들이 서로 모여 플레이 시간대와 역할을 나눠 서로를 지켜주며 기지와 자원을 방어하고 자원을 가공하고 파밍하는 경우가 많다. 이는 하드코어한 게임성을 추구하는 러스트니까 가능한 시스템이다.
그런데, 캐주얼한 게임을 내세운 디스테라에 이런 하드코어 기반 시스템이 붙어 있으니 살짝 당황스럽다. 가벼운 마음으로 놀러 왔다가 갑자기 커다란 숙제를 떠안은 느낌이 든다. 여기에 디스테라는 자원 관리 시스템에서도 캐주얼을 추구했기에, 가공이나 채취 등에서도 파고들 깊이가 얕기에 시간대나 역할을 분담까지 해 가며 플레이 할 필요까진 잘 느껴지지 않는다. 따라서 접속 종료 시간은 그저 불안함만 유발할 뿐이다. 다행인지 불행인지, 9일 기준 스팀 일 최대 동시접속자 수 133명으로 유저가 절대적으로 부족하기에, 클랜을 만드는 것도 요원하지만 누군가가 나를 습격할 염려도 적어 보인다.
생존 측면의 경우 가장 중요한 부분이 배고픔 관리다. 허기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냉장고를 뒤지거나, 필드의 동물을 사냥해 요리하거나, 폐허에서 통조림을 찾아 섭취해야 한다. 그러나 식량 아이템의 등급이나 종류가 달라져도 아무런 버프가 없기 때문에, 다양한 음식들은 그저 많은 종류로 아이템 칸만 차지하는 느낌이다. 퀵슬롯 버튼을 눌러 배고픔 수치를 채우기만 하면 그만인데, 차라리 없는 게 낫지 않나 하는 의구심까지 들었다. 생존에 욕구 요소를 적용한 것은 좋지만, 이를 해결하는 과정을 너무 일차원적으로 단순화 시켜서 번거로움만 남아버린 느낌이다.
진입장벽은 확실히 낮지만, 성취감도 낮다
앞서 잠깐 설명했듯 디스테라는 자원과 등급의 종류를 단순화하고 등급 별로 나눔으로써 진입 장벽을 낮췄다. 그렇기에 자원의 종류와 각 장비가 무엇을 요구하는지, 어디서 찾을 수 있는지 누구나 금방 이해할 수 있다. 아울러 타 생존게임에서 힘들게 느껴졌던 세세한 의료나 욕구 시스템은 아예 없거나 한두 가지 스탯으로 단순화 되어 있고, 친절한 UI까지 더해져 누구나 쉽게 시작할 수 있도록 했다.
이러한 낮은 진입장벽은 크래프팅이나 생존 뿐 아니라 슈팅에서도 그대로 이어진다. 총을 들고 다니는 서바이벌 생존게임답게 시작부터 무기가 주어지고, 제작도 가능하다. 여기에 러스트보다 교전이 잦고, NPC들을 자주 마주하게 된다. 다만, NPC의 전투 AI가 조금 답답하다는 것과, 권총과 연발계열 소총의 타격감이 없다시피 한 점이 슈팅게임으로서 발목을 잡는다. 위 두 무기를 쓸 땐 내가 적을 맞추고 있는 건지 아닌지조차 구분이 잘 가지 않을 지경이다. 한편 샷건과 스나이퍼 라이플은 꽤 준수한 타격감을 갖고 있다. 그래서 나중에는 성능이 아니라 재미를 위해 샷건과 스나이퍼 라이플만 사용하게 됐다.
또 하나의 문제는 낮은 성취감이다. 자원을 모아 상위 무기를 만들면 이를 사용하며 성취감이 느껴져야 한다. 대미지가 훨씬 강해진다거나, 연사 속도가 빠르거나, 집탄율이 눈에 띄게 높아지거나, 탄창 수가 늘어나는 등 눈에 띄는 이득이 전해져야만 유저로 하여금 제작에 몰두하게끔 만들 수 있다. 그러나 디스테라의 경우 애써 상위 무기를 만들어 장착해도 이점이 미미하다. 게다가 그렇게 만든 상위 무기를 사용할 쯤이면 더 강한 적이 등장하기 때문에 체감이 더 되지 않는다. 밸런스적으로 깊은 고찰이 필요한 부분이다.
긴장이 안 되는 생존게임
디스테라에서 파밍 장소를 지키는 NPC들은 이스케이프 프롬 타르코프의 ‘스캐브’처럼 각자 다른 팩션의 소속이다. 하지만 대부분이 같은 무기와 병종, 모델링을 공유하기에 단조로운 느낌을 준다. 특히 이러한 NPC의 경우 특정 지역에서만 리스폰되기에, PvE 플레이 시 평상시엔 아무런 긴장감을 느낄 수가 없다. 등급이 높은 사이클롭스 같은 NPC도 출현률이 매우 낮고 체력도 공격력도 높지 않은데다 AI 수준도 낮아 쉽게 처리할 수 있다.
여기에 보상까지 짜다 보니 항시 닥쳐오는 긴장감과 이를 극복하는 성취감 측면에서는 딱히 점수를 주기가 어렵다. 7days to die처럼 어느 팩션에서 일정 주기마다 습격이 닥쳐오는 등의 시스템이 추가된다면 어떨까 하는 생각이다.
자잘한 버그도 긴장감과 몰입감을 저하시키는 요소 중 하나다. 기자가 며칠 동안 확인한 버그만도 ▲쉴드 스킬을 사용해 저거넛의 미사일을 막았음에도 폭발 스플래시 대미지를 입는 경우 ▲저거넛이 바위 뒤로 날아가더니 고장난 듯이 그 자리에서 공격을 멈추는 경우 ▲저거넛의 미사일 투사체가 증발해 공격을 받지 않는 경우 ▲NPC의 경로찾기 알고리즘이 꼬였는지 이상한 곳으로 달려가는 경우 ▲아무 적도 없는 것을 확인했는데 갑자기 뒤에서 NPC가 리스폰되는 경우 ▲터렛이 근거리에서는 유저를 인지하지 못하는 경우 ▲빈 손으로 본인에게 주사를 놓는 경우 등이 있었다. 게임 외적으로도 불시에 게임이 종료되거나 몇 초 정도 멈추는 등 잦은 문제가 있었다. 아직 앞서 해보기기에 앞으로 개선될 수 있는 부분이라고 믿지만, 유저가 다 떠난 후에 개선되면 아무 소용이 없을 것이다.
직접 경험해 본 디스테라는 정식 서비스까지 손볼 곳이 상당히 많은 게임이었다. 아트와 접근성 면에서는 분명 매력이 있지만, 생존 슈팅 게임으로서의 방향성이나 레벨 디자인 측면에서 길을 잃은 느낌이다. 빠른 시일 내 이를 더욱 확고히 하고 다듬어 디스테라만의 가치를 증명해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