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판례.zip] 포켓몬 대 팰월드, 국내서 소송한다면?
2024.01.30 16:58 게임메카 강정목 변호사
지난 19일 스팀에 앞서 해보기로 출시된 팰월드가 선풍적인 인기를 끌고 있습니다. 다만, 팔월드가 승승장구하며 기존부터 제기됐던 포켓몬스터 표절 논란도 함께 불거지는 흐름입니다. 특히 팰월드에 등장하는 몬스터인 '팰' 중 일부가 포켓몬스터 특정 포켓몬과 디자인이 지나치게 유사하여 표절한 것이 아니냐는 의혹이 제기되고 있습니다.
실제로 팰월드 출시 후, 팰에 포켓몬스터 스킨을 씌울 수 있는 비공식 유저 모드가 공개됐다가 삭제되기도 했는데요, 앞으로도 게임이 계속 흥행을 이어간다면, 이와 관련된 소음 역시 지속될 것으로 예상됩니다.
이에 앞서 이야기한 논란과 가장 밀접한 캐릭터 저작권에 대해 알아보는 시간을 가지려 합니다. 물론 포켓몬 측 포켓몬컴퍼니와 팰월드 측 포켓페어 양사 모두 일본 회사이기에 법적 분쟁이 발생하더라도 일본에서 진행될 가능성이 크지만, 각 회사가 국내 게임사라고 가정하여 국내에서 소송이 발생한다면 표절 분쟁이 어떻게 흘러갈지에 대해 가볍게 전망해 보려 합니다. 캐릭터 저작권이란 어떤 것이고, 국내를 기준으로 이에 대한 침해는 어떻게 판단되는지에 대한 두 가지 판례를 통해 간략히 살펴보겠습니다.
캐릭터 저작권, 국내 법원은 어떻게 판단하나?
먼저, 캐릭터 저작권이란 무엇인지에 대해 알아보겠습니다. 일반적으로 캐릭터는 크게 시각 캐릭터와 어문 캐릭터로 구분됩니다. 시각 캐릭터는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영화, 만화, 게임 등에서 등장하는 시각적으로 표현된 캐릭터를 뜻합니다. 미키마우스, 피카츄, 뽀로로 등 우리가 일반적으로 생각하는 캐릭터는 시각 캐릭터인 경우가 많습니다. 어문 캐릭터는 소설, 각본 등 문서로 된 저작물에서 글로 묘사되는 요소를 특징으로 하는 등장인물입니다. 이번에 다룰 게임 속 캐릭터는 시각 캐릭터에 해당하며, 이후에 다룰 캐릭터 저작권 관련 사건은 모두 시각 캐릭터 저작권에 대한 것입니다.
우리나라 판례는 캐릭터 그 자체를 독자적인 저작물로 보아 캐릭터 저작권을 인정하는 추세입니다. 여러 복잡한 문제가 있지만, 게임이나 영화에 등장하는 캐릭터 자체의 재산적 권리를 인정하고, 이에 따라 저작권법에서 규정하고 있는 저작재산권을 캐릭터 저작물에 대해서도 모두 인정하고 있습니다.
구체적으로 타인의 캐릭터를 그대로 가져다 쓰는 것을 금지하는 복제권, 유튜브 등 일반공중이 볼 수 있는 곳에 공개하는 것을 금지하는 공연권, 다른 사람 캐릭터를 기반으로 동인지 혹은 영상 등을 새롭게 만들 수 있는 2차적 저작물 작성권 등이 캐릭터 저작권에 인정되는 대표적인 권리입니다.
이러한 재산권이 있기 때문에 포켓몬스터에 대해서도 저작권자인 닌텐도 허락 없이는 포켓몬을 팰월드를 비롯한 다른 게임에 무단으로 가져가서 사용해서는 안 되는 것이죠.
똑같지는 않지만 비슷한 캐릭터라면?
캐릭터에도 저작권이 있다는 점은 앞서 설명드렸습니다. 그렇다면, 기존 캐릭터와 완전히 동일한 것은 아니지만 비슷한 경우에는 어떨까요? 표절 문제 대부분은 이처럼 '완전히 같지는 않지만 유사한' 경우에 불거지곤 합니다.
법률적으로 유사한 캐릭터 간 저작권 침해 여부를 판단할 때 사용하는 용어가 바로 '실질적 유사성'입니다. 우리 법원 판례에 따르면, 어떤 캐릭터가 기존 캐릭터에 포함된 일부 요소를 다소 이용했더라도 기존 캐릭터와 실질적인 유사성이 없는 별개의 저작물로 볼 수 있다면, 이는 창작으로서 기존 캐릭터의 저작권을 침해한 것이 아니라고 판단합니다.
실질적 유사성에 대해 법원이 판단하는 과정을 잘 나타낸 판례가 소위 '미피와 부토 사건'이라고 불리는 서울고등법원 2012라1419 결정입니다. 미피는 네덜란드 메르시스 베붸사가 저작권을 가지고 있는 토끼 캐릭터고, '부토(부끄러운 토끼)’는 국내 회사 로커스가 개발한 토끼 캐릭터입니다. 이 사건은 미피 측이 부토가 미피를 표절한 캐릭터라며 소송을 제기하면서 촉발됐는데요. 이에 대해 법원에서는 1심과 2심 모두 미피와 부토는 실질적으로 유사하다고 볼 수 없다고 판단하며 원고인 미피 측의 청구를 기각했습니다.
좀 더 구체적으로 보면 미피와 부토는 간결하고 귀여운 이미지를 앞세운 하얀 토끼 캐릭터라는 공통점이 있습니다. 그러나 법원에서는 '작고 귀여운 토끼'는 아이디어이며, 토끼를 2등신에 머리를 크게 키워 귀여움을 강조한 표현 방식은 이미 만화, 게임, 인형 등에서 흔히 사용되어 왔다고 밝혔습니다.
그렇다면 두 캐릭터 중 토끼 캐릭터라면 빠질 수 없는 표현이나 시장에 두루 사용되는 표현 방식 외에 제작자의 창의적인 부분이 동일한지 살펴봐야 하는데요. 법원에서는 캐릭터 얼굴과 의인화를 근거로 들었습니다.
우선 얼굴의 경우 미피는 입을 X로 표현하고 두 귀가 약간 거리를 두고 위로 길쭉 솟아 있지면, 부토는 코를 Y자로 그리고 두 귀는 아랫부분이 붙어 하트 모양을 이루고 있습니다. 이어서 미피는 원피스 등을 입을 때 의인화가 두드러지게 나타났으나, 부토는 목도리를 둘렀으나 의상이 없어 의인화로 보기 어려운 무성(無性)적인 체형이라 판단했죠.
결론적으로 미피와 부토는 비슷해 보일 수는 있으나 각기 다른 창의적인 표현이 포함되어 있고, 이에 부토 역시 새로운 저작물이라 볼 수 있기에 미피의 저작권을 침해했다고 인정할 수 없다는 것이 법원의 결론입니다.
실황야구 대 신야구, 게임 캐릭터 저작권 사건
앞서 이야기한 캐릭터 저작권에 대한 법리는 게임 캐릭터에도 그대로 적용됩니다. 이른바 '신야구' 사건이라 부르는 대법원 2007다63409판결에서는 실황야구를 제작한 코나미 측이 신야구를 만든 네오플에 대해 자사 게임 캐릭터를 표절했다고 주장하면서 소송을 제기하며 시작됐습니다.
이 사건에서도 법원은 실황야구와 신야구 캐릭터 사이에는 실질적 유사성이 없다는 결론을 내렸습니다. 즉, 표절이 아니고 각각 독립된 저작권이 있는 캐릭터라고 판단한 것입니다.
큰 흐름은 앞서 이야기한 미피 대 부토와 동일합니다. 두 게임 캐릭터는 캐주얼한 이미지를 강조한 야구선수 SD 캐릭터라는 동일한 부분이 있습니다. 다만 법원에서는 이와 같은 표현은 만화, 게임, 인형 등에서 귀여운 어린아이 같은 캐릭터 표현에 널리 사용되었거나 야구를 소재로 한 게임에서 필연적으로 비슷하게 표현할 수밖에 없다고 판시했습니다.
법원은 실황야구 캐릭터에서 창작적인 표현이 가장 잘 드러난 부분으로 얼굴 내 이목구비 생김새와 신발 디자인을 꼽았는데요. 이 두 부분에 있어 두 캐릭터는 상당한 차이가 있기에, 신야구 캐릭터가 실황야구를 복제했다거나 2차 저작물에 해당한다고 볼 수 없다고 판단했습니다.
팰월드와 포켓몬스터 간 분쟁은 어떻게 진행될 것인가
앞서 살펴본 두 사례에서도 알 수 있듯, 국내에서 캐릭터 저작권 침해를 법적으로 인정받기는 쉽지 않습니다. 일반인의 시각에서 다소 비슷하게 보인다고 하더라도, 법원에서 실질적 유사성을 인정하지 않아 각기 다른 저작물로 인정되는 경우가 많기 때문입니다.
만약 팰월드와 포켓몬스터 간 캐릭터 표절 문제에 관한 법적 분쟁이 일어난다면 어떻게 될까요? 실제로 일부 팰과 포켓몬은 상당히 유사한 점이 존재하기 때문에, 캐릭터 저작권에 관한 분쟁이 발생할 소지가 있다고 보입니다. 다만 소송이 발생한다고 하더라도 팰월드를 즐기는 유저들이 게임 자체에 대해 크게 걱정할 필요는 없을 것으로 예상됩니다. 게임 자체에 대한 표절 문제가 아니라 게임 내 일부 캐릭터에 관한 표절 분쟁이 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현재 팰월드에는 111여종에 달하는 팰이 존재하고 이 중 일부가 포켓몬과 유사성 문제로 논란이 일어나고 있습니다. 만약에 법원에서 팰월드가 포켓몬 디자인을 표절했다고 인정하더라도, 문제가 된 팰의 디자인만 교체하는 방향으로 진행될 가능성이 높습니다. 즉, 소송으로 인해 게임 운영 자체가 종료될 가능성은 매우 낮습니다.
팰월드는 출시된 지 채 한 달도 되지 않았으나 여러 의미로 전 세계 게이머에게 깊은 인상을 남겼습니다. 앞서 해보기 게임인 만큼 앞으로 더 많은 콘텐츠와 팰들이 추가될 것으로 예상되는데요, 앞으로 등장할 팰들은 팰월드만의 개성이 듬뿍 들어가 표절과 같은 잡음이 없는 게임으로 발전해 가기를 한 명의 유저로서 기대해 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