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임 이용장애 민관협의체 5년, 논의는 걸음마 단계
2024.07.16 19:56 게임메카 김미희 기자
2019년에 WHO가 국제질병분류(ICD-11)에 게임 이용장애를 추가한다고 결정된 후, 국무조정실에서는 문화체육관광부, 보건복지부 등 관련 정부부처와 정신의학계, 게임업계, 법조계 등 민간전문가가 모인 ‘민관협의체’를 구성했다. 이를 만든 이유는 게임 이용장애 국내 도입 여부를 결정하는 것에 있어서 여러 분야에서 전문가 자문을 구하기 위함이다. 그로부터 5년 간 11차례에 걸친 회의가 진행됐으나, 논의는 걸음마 단계에 그쳤다.
관련 내용은 16일 문화연대에서 주최한 WHO 게임 이용장애 등재 쟁점 연속토론회에서 나왔다. 이번이 연속토론회 첫 회였고, ‘WHO 게임이용장애 국내 도입 논란, 어디까지 왔나?’를 주제로 삼았다. 현장에서 한국예술종합학교 교수이자, 시민단체인 문화연대 대표이자, 민관협의체 위원으로로 활동 중인 이동연 교수가 민관협의체 논의는 초기 단계에 그쳤고, 좀 더 치열한 논의가 필요하다고 밝혔다.
이동연 교수는 “2019년 7월 23일에 회의를 시작해 11차례에 걸쳤다. 벌써 5년이 지났는데 평균적으로 1년에 한 두 번 한 셈이다. 첫 회의부터 상당한 의견대립이 있어서 3개소위로 나눠 충분한 연구를 해보기로 했다”라며 “1소위는 게임 이용장애 질병코드 등재에 대한 과학적 근거를 분석하는 연구, 2소위는 게임이용장애 실태조사 기획 연구, 3소위는 게임이용장애 질병코드 도입에 따른 파급효과연구다. 그리고 실태조사에서 구체적인 진단도구 도출이 부족해 이를 보완하는 연구가 추진됐다. 11차 회의에서 최종 보고서가 보고됐다”라고 전했다.
다만 이동연 교수는 개인적인 관점에서 협의체 활동에 대해 개정된 KCD(한국표준질병사인분류)가 시행될 수 있는 가장 빠른 시점인 2026년까지 합의된 결론을 도출할 수 있을지에 의문을 제기했다. 그는 “연구용역에 대한 진지한 토론이 있어야 하는데, 하루 만나서 2시간 동안 연구용역 보고를 받고 이야기하는 것이 과연 의미가 있을까 하여 추가 논의 등을 요구했다”라고 밝혔다.
앞서 이야기한 4가지 연구 중 보완연구에 참여한 이락디지털문화연구소 이장주 소장 역시 “관련 논의는 5년 전을 넘어 지난 20년 간 진전이 없다. ICD-11에 대해서도 출발선 상에 여전히 다 머물러 있는 것 같다. 이 현상이 정확하게 무엇인지 경계도 못 쳤고, 범위를 정했다면 어떻게 알아볼 것이냐에 대한 방법론에 대해서도 전혀 진전이 없다”라며 “민관협의체에서 처음에 의제 세팅을 하고 갔어야 하지 않나 싶다. 계획을 세우고, 회의를 거치고, 공표가 되고, 다른 전문가 의견을 듣는 식으로 절차적인 합리성을 지키는 것이 중요하지 않을까 생각한다”라고 말했다.
물론 게임 이용장애 질병코드 도입에 대해 민관협의체에서 결정권을 가진 것은 아니다. 다만 도입을 결정하고 구체적인 방법을 논의하는 것이 아니라, 도입할지 말지에 대한 자문기구 역할을 하는 협의체라면 연구용역을 구성하고 보고를 받는 것을 넘어 생산적인 논의가 있어야 한다는 것이 이동연 교수의 의견이다.
이 교수는 “WHO에서 등재된 것이 거부된 전례가 없다고 해서 도입을 가정사실화해서는 안 된다. 가장 빠른 시점인 2026년에 도입 여부를 결정하기 위해서는 과학적인 근거가 있어야 하고, 합의 가능한 진단도구가 도출되고, 진단도구를 결정하고, 파급효과에 대한 객관적∙정량적인 수치가 도출되어야 한다. 마지막으로 1번부터 4번까지 논의를 토대로 공청회 및 여론수렴을 위한 사회적 도출 과정이 있어야 한다. 이렇게 생각해보면 2026년까지 이 문제를 해결하는 것은 현재의 협의체 구조로는 쉽지 않다”라고 설명했다.
법적인 부분에서도 예상보다 따져볼 부분이 많다. 게임 이용장애 이전 ‘게임중독법’ 입법 당시에 제기됐던 세금 혹은 부담금 부과 문제, 자율규제로 넘어가는 게임규제가 다시 정부규제로 넘어가는 방향 전환, 헌법에서 보장하는 창작의 자유와 문화향유권 침해 등은 많이 이야기됐다. 그러나 이 외에도 생각해볼 만한 점이 있다.
국민대학교 법과대학 박종현 교수는 “형법 10조에 심신장애를 형사책임조각사유로 보고 있다. 정신적 질환 등으로 범죄구성이 안 된다고 방어할 수 있는데, 게임 이용장애는 인정될 수 있을지 의문이다. 법관은 게임 이용장애가 무엇이고, 어떠한 결과를 발생시키고, 범죄 가능성과 어떠한 상관관계가 있는지 충분한 연구결과가 있지 않는 한 절대로 책임조각 사유로 인정하지 않을 것이다. 의학적 판단이 당사자의 법적 상태를 설명하거나, 법적으로 보호하는데 하등의 가치를 못하는 상황이 벌어진다”라고 설명했다.
의료에 대한 공적∙사적보험도 짚어볼 필요가 있다. 박종현 교수는 “건강보험에서 치료를 인정받아서 지원하려면 근거중심 의학에 따라 아주 객관적이고 명징하게 증명된 치료법이 성립되어야 한다. 치료법이 없다면 질병코드는 있지만 건강보험 체계에서는 실질적으로 배제되는 상황이 벌어질 수 있다”라며 “실손보험 역시 기존에는 정신질환을 보장해주지 않다가 2016년부터 ADHD, 식이장애, 스트레스 장애, 조울증 등이 들어가기 시작했다. 합리적인 소비자라면 명확하게 실손보장을 받기 위해 의료기관에서 게임 이용장애 진단이 나오는 것을 거부할 것이고, 의료기관은 거기에 맞춰서 실손보험 대상이 되는 진단명을 활용할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마지막으로 한국게임산업협회 최승우 정책국장은 미국정신의학회의 DSM-5 TR(정신장애진단 및 통계편람)에는 여전히 게임 이용장애를 독립적인 질병으로 분류하려면 추가적인 연구가 필요하다는 입장을 유지하고 있다는 점을 강조했다. 이어서 그는 “DSM-5 TR에 보면 인터넷 게임을 유해하다고 규정하는 국가에 한국이 추가됐다. 정부는 미국정신의학회가 어떠한 이유로 DSM-5 TR을 통해 한국이 인터넷 게임을 유해하다고 규정하는 국가로 분류했는지에 대해 파악하고 있는지 사실관계를 확인해볼 필요가 있다”라고 말했다.
이어서 그는 “WHO 회원국 중 ICD-11 도입을 검토하는 나라는 120개국, 그중 게임 이용장애 도입을 검토하는 국가는 소수로 알려져 있다. 정부는 게임 이용장애 도입을 검토하는 나라가 어디인지, 왜 검토하고 있는지, 어떤 기준을 가지고 잇는지 객관적인 자료를 바탕으로 한국의 게임 이용장애 질병코드 도입 여부를 판단해야 할 것이다”라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