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아블로 4: 증오의 그릇, 이제야 비로소 완성됐다
2024.10.05 01:00 게임메카 이우민 기자
디아블로 시리즈는 1996년 첫 출시 당시 시원한 액션과 이를 뒷받침하는 어두운 분위기로, 많은 국내외 게이머들의 이목을 사로 잡았다. 그 인기는 디아블로 2에서 정점에 달했으나, 이후 후속작에서 아쉬운 모습을 보이며 점차 과거의 명성이 희미해졌다. 특히 최신작 디아블로 4에서는 매 시즌마다 혹평과 호평을 오가며 다사다난한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 기자 역시 디아블로의 오랜 팬으로써, 많은 아쉬움을 느낀 유저 중 한 명이었다.
그런 디아블로 4가 국내 기준 오는 10월 8일 확장팩 ‘디아블로 4: 증오의 그릇(이하 증오의 그릇)’으로 돌아온다. 이번 확장팩에서는 신규 직업 ‘혼령사’부터 새로운 콘텐츠 ‘지하 도시’와 ‘암흑 성채’, 각종 장비 시스템 추가 등 수많은 변화가 예고됐다. 이를 체험해본 결과, 이제서야 완성된 디아블로 4를 만난 기분이었다.
지루한 캠페인은 끝! 개선된 초반 플레이
디아블로 4 본편이 출시됐을 때를 돌이켜보면, 초반 캠페인이 너무 지루했던 기억이 있다. 전설 아이템도 얻기 어려웠을 뿐 아니라, 몬스터 밀도도 높지 않았기에 디아블로 본연의 재미를 느끼기 힘들었다.
반면 증오의 그릇의 캠페인은 사뭇 다른 느낌이었다. 초반부터 꽤 많은 적들이 몰려오며, 시작하자마자 운용 가능한 탈 것과 짧아진 이동거리로 빠른 퀘스트 진행이 가능했다.
여기에 빠른 레벨업과 향상된 전설 아이템 드랍율이 힘을 보탰다. 총 4시간 분량의 캠페인을 마친 뒤 캐릭터 레벨은 이미 50을 넘겼으며, 장비도 모든 부위에 전설 아이템과 고대 아이템을 장착했다. 덕분에 본편과 달리 초반부터 빠른 사냥이 가능했고, 장비 세팅의 재미도 일찍 느낄 수 있었다.
그 외에도 신규 지역 ‘나한투’와 새로운 몬스터들을 구경하는 재미도 쏠쏠했다. 그 중 일부는 기존 던전이나 몬스터를 재활용했다는 점에서 아쉬움도 있었으나, 그만큼 많은 신규 지형과 보스, 기믹이 등장해 캠페인 내내 흥미가 떨어지지 않는 선을 유지한다.
뭘 좋아할지 몰라 다 넣어봤어, 신규 직업 ‘혼령사’
이번 확장팩에서 가장 많은 주목을 받은 건 단연 새로운 직업 ‘혼령사’다. 혼령사는 고릴라, 독수리, 재규어, 지네까지 총 4가지 동물 영혼을 활용한 스킬을 가졌는데, 각 영혼마다 기존 직업들의 특징을 하나씩 가져온 듯한 느낌을 받았다.
우선 고릴라 혼령은 강력한 한 방과 높은 방어력에 특화되어 있다. 적을 넘어뜨리고 한 번에 높은 대미지를 주거나, 혹은 방패 막기 확률과 가시 피해를 올려 야만용사를 연상케하는 우직한 플레이가 가능하다. 물론 시원한 타격감 역시 빼놓지 않았다.
재규어 혼령은 도적처럼 빠른 기동력과 다단히트 공격이 중심이다. ‘포악함’이라는 고유 수치를 채워 극대화 확률이나 피해 증가 등 각종 보너스를 받을 수 있으며, 이를 기반으로 한 빠른 템포의 전투가 보는 맛과 손맛을 더했다.
독수리 혼령은 도적과 원소술사를 결합한 듯한 느낌을 준다. ‘깃털 사격’이라는 번개 피해 스킬이 핵심으로, 혼령들 중 가장 넓은 공격 범위가 장점이다. 여기에 높은 회피 확률과 이동 속도로 생존력을 챙겼으며, 이를 활용해 각종 능력치 보너스를 받을 수도 있다.
지네 혼령은 독과 공포 등 디버프 스킬에 중점을 뒀다. 독 구슬과 장판기를 활용해 독을 누적시킨 뒤, 타격 스킬로 이를 한 방에 터트리는 전투 방식이 특징이다. 전작의 부두술사와 본편에 등장한 드루이드를 적절히 섞었다고 생각하면 편하다.
이처럼 여러 직업들의 특징을 한 데 모은 만큼, 혼령사는 유저들의 다양한 성향을 폭넓게 아우른다. 특히 신규 유저 입장에서는 어떤 직업이 본인에게 맞을 지 필연적으로 고민하게 되는데, 혼령사의 경우 각 혼령을 써보며 적합한 플레이스타일을 찾기에 용이하다. 만약 어떤 직업을 할지 고민된다면, 일단 혼령사를 플레이 해보는 걸 추천한다.
지하 도시·암흑 성채로 풍성해진 엔드 콘텐츠
디아블로 4는 여러 시즌을 거쳐 다양한 엔드 콘텐츠를 선보였지만, 그럼에도 콘텐츠가 많은 편은 아니었다. 지옥 물결과 악몽 던전으로 기본적인 장비를 갖추고, 나락으로 장비를 강화하거나 랭킹에 도전하는 흐름이 반복이었다. 이로 인해 콘텐츠 피로감도 꽤 이른 시점부터 찾아왔다.
확장팩에 추가된 신규 콘텐츠 ‘지하 도시’와 ‘암흑 성채’는 이러한 부담을 상당 부분 덜어낸다. 우선 지하 도시는 일정 시간 내에 게이지를 모두 채우면 되는 던전 콘텐츠로, 나락과 흡사하다. 던전 내 적 밀도가 높아 끊임없는 전투가 펼쳐지며, 나락과 달리 제한 시간을 연장시키는 몬스터와 게이지를 채우는 몬스터가 따로 있어 생각보다 전략적인 판단을 요구한다.
기자의 경우를 예로 들면, 남은 시간이 많은 경우 시간 연장 몬스터는 과감히 넘기고 게이지 몬스터 위주로 사냥했다. 반대로 시간이 애매하거나 모자라다면, 시간 연장 몬스터를 유인해 게이지 몬스터와 함께 처치하며 시간 소모를 최소화했다. 또한 게이지를 가득 채우지 않아도 달성 수치에 따라 보상을 일부 획득할 수 있기에, 시간이 너무 모자랄 경우 게이지를 많이 채우는 핵심 몬스터만 사냥해 최대한 많은 보상을 챙겼다.
암흑 성채는 2~4명이 참여하는 파티 플레이 전용 콘텐츠로, 파티원이 각자 맡은 지역을 돌파한 뒤 함께 최종 보스를 처치하는 것이 주요 흐름이다. 파티원 간 협력이 필요한 콘텐츠는 전 시리즈 통틀어 처음이기에, 낯설지만 새로운 느낌을 전달한다.
다만 일부 지역은 협력하지 않으면 통과할 수 없도록 설계되어 있어, 싱글 플레이가 사실상 불가능해 아쉬웠다. 기자의 경우 파티원을 찾는 데 1시간 가까이 소요한 적도 있다. 물론 플레이할 당시 서버 내 유저가 적었으며, 게임 내에서도 이를 방지하기 위해 파티 찾기 시스템이 도입됐기에 실제로는 더 쉽게 찾아질 것이다. 하지만 기존 디아블로 유저 성향이 파티 플레이보다 싱글 플레이를 선호한다는 점을 감안하면, 많은 유저들이 이에 대해 불편함을 호소할 가능성이 커보였다.
용병과 룬, 익숙하지만 새롭다
앞서 언급한대로 증오의 그릇에는 많은 신규 콘텐츠가 추가됐지만, 용병과 룬 등 전작의 일부 시스템이 재등장했다. 대신 기존 시스템을 재활용하는 느낌이 들지 않도록 많은 부분이 변화됐다.
우선 용병은 전투 중 존재감이 눈에 띄게 커졌다. 디아블로 3에 등장했던 용병은 조금만 난이도가 높아져도 금방 쓰러지기 일쑤였는데, 증오의 그릇에서는 높은 난이도도 꽤 잘 버티는 모습을 보였다.
아울러 극소수 적을 도발하거나 약간의 보너스 능력치 등 미미했던 스킬 효과도 상향됐다. 광역 스턴을 가해 생존력을 올려주거나, 일정 시간 플레이어가 자원 소모 없이 스킬을 사용할 수 있는 등 실제 플레이에서도 용병 스킬의 체감이 상당히 컸다. 나아가 전작에 비해 스킬트리도 넓어져 플레이어 세팅에 맞게 용병 스킬을 연구하는 재미도 있었다.
룬은 각기 다른 효과를 지닌 두 가지 룬을 하나로 결합해 장비에 추가 효과를 부여하는 시스템이다. 크게 ‘행동 룬’과 ‘효과 룬’으로 정리할 수 있는데, 예를 들어 ‘회피를 사용하면’이라고 명시된 룬과 ‘주 자원을 1 회복한다’라는 룬을 합치면 ‘회피를 사용하면 주 자원을 1 회복한다’ 효과를 지닌 완성품이 나오는 방식이다. 다만 디아블로 2에서는 룬에 따라 대미지가 70% 넘게 증가하기도 했지만, 증오의 그릇에서는 스킬 레벨 3 증가, 재사용 대기 시간 감소 등 효과가 비교적 축소됐다.
때문에 디아블로 2 룬을 기대하면 실망할 수도 있으나, 오히려 그 부분이 장비 세팅의 부담감을 낮춘다. 증오의 그릇에서는 디아블로 2에 비해 장비 등급이 방대할 뿐 아니라, 담금질, 명품화 등 고려할 부분이 많다. 그렇기에 룬의 영향력이 전작처럼 컸다면, 오히려 장비 세팅과 빌드 연구에서 상당한 피로감이 느껴졌을 가능성이 있다. 대신 룬 효과도 꽤 유의미한 성능을 지니고 있기에, 세팅과 아이템 획득의 재미를 느낄 수 있는 적정선을 유지한다.
종합적으로 증오의 그릇은 디아블로 본연의 색깔은 유지하고, 여러 부가 요소로 깊이를 더했다. 신규 직업 혼령사와 지하 도시, 암흑 성채 등으로 부족한 콘텐츠를 보강했으며, 캠페인이나 느린 레벨업 속도 등 단점이 다수 개선됐다. 여기에 신규 위상과 룬, 위상으로 빌드도 한층 방대해졌다. 약 1년 3개월 동안 수많은 시즌과 확장팩을 거쳐, 디아블로 4가 마침내 완성된 모습으로 찾아온 느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