넥슨의 장수 게임 일랜시아가 프로젝트 ER을 통해 리플레이 버전으로 새롭게 태어난다. 원작의 고전적 감성과 픽셀 아트 정체성을 유지하면서도 현대적인 시스템과 콘텐츠 보강을 통해 완성도를 높일 계획이다. 9월 스팀 테스트를 앞둔 이번 프로젝트는 글로벌 단일 서버를 지향하며 자유도 높은 샌드박스 MMORPG의 재미를 다시 구현하고자 한다
▲ 현재 넥슨 클래식으로 분류되어 서비스 중인 일랜시아 (사진: 게임메카 촬영)
1998년 처음 선보여진 일랜시아는 바람의나라와 어둠의 전설에 이은 넥슨의 세 번째 게임이다. 사실상 넥슨 최고참 게임에 가깝다. 당시 울티마 온라인에서 선보였던 다양한 생활형 콘텐츠에 영감을 받아, 전투직 외에도 모험직과 상인직의 세 가지 직업적 분류를 구현했으며, 아기자기하고 미려한 도트 그래픽을 통해 당시 많은 인기를 모았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며 생활형 MMORPG로서의 입지는 후발 주자인 마비노기에 빼앗겼으며, 클래식 MMORPG로서의 입지 역시 바람의나라에 밀렸다. 그 결과 '넥슨 클래식 게임'이라는 카테고리에 묶여 오랜 시간동안 방치됐고, 추가 콘텐츠 개발 역시 18년 간 이루어지지 않고 있어 사실상 '미완성 게임'으로 방치돼 있었다. 소수의 마니아들이 모여 개발 재개를 요구한 적도 있지만, 현실적인 이유로 진행되진 않았다.
그러던 일랜시아에 새로운 바람이 불어온다. 2025년 12월 넥슨이 시작한 '프로젝트 리플레이'로 외부 개발이 허용되며, 새로운 버전이 나오고 있는 것. 주인공인 '프로젝트 ER'은 앞서 '일랜시아 리마스터'로도 알려진 게임으로, 9월 중 스팀을 통해 첫 테스트를 시작할 예정이다. 여러 스크린샷과 티저 영상 등을 통해 옛날 모습을 그대로 살린다는 취지가 공개되긴 했지만, 상세 내용은 불분명한 상황. 과연 '프로젝트 ER'의 모습은 어떠할지, 게임메카는 개발자와 인터뷰를 통해 상세 내용을 들어봤다.
▲ 프로젝트 ER 티저 영상 (영상출처: 프로젝트 ER 공식 유튜브 채널)
먼저 본인 소개와 일랜시아에 대한 추억 등을 듣고 싶다
안녕하세요, '프로젝트 ER'의 리드 개발자 데러리프입니다. 소프트웨어 기술 개발 및 컨설팅 분야에서 약 12년간 일했고, 지금은 안식년 동안 일랜시아 리플레이 프로젝트인 '프로젝트 ER'을 개발하고 있습니다. 서버 최적화 컨설팅 업무 등 게임과 인접한 도메인에서의 경험은 있지만, 게임업계에서 본격적으로 프로젝트를 이끄는 건 이번이 처음입니다.
일랜시아는 2003년 무렵 초등학교 친구의 권유로 처음 접했습니다. 처음에는 친구를 따라 가볍게 시작했는데, 생각보다 훨씬 오래 즐기게 됐습니다. 2003년부터 2008년까지는 슈브와 사스라 서버에서 상인 계열 캐릭터로 여러 캐릭터를 서버 랭킹 10위권까지 키웠는데요. 직접 아이템을 만들어 팔고, 미용 어빌리티로 다른 이용자의 머리를 꾸며주고 대가를 받았던 일이 특히 즐거운 기억으로 남아 있습니다.
2014년부터 2017년 무렵 엘 서버에서 육성했던 상인은 최고 랭킹 한 자리수, 테스서버에서 육성했던 전사는 50위권 안까지 키워 보았습니다. 모험가 계열에서도 정령술사, 음유시인, 자연인 등 다양한 직업을 경험했지만, 가장 애착이 컸던 건 상인입니다. 상인은 캐릭터를 키우는 과정 자체가 다른 사람과의 관계로 이어지는 직업이었습니다. 제작이나 거래, 미용을 하려면 자연스럽게 말을 걸고 도움을 주고받게 되니까요. 단순히 수치를 올리는 것과는 다른 재미였고, 제가 기억하는 일랜시아의 가장 큰 매력입니다.
일랜시아 리마스터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싶다는 생각은 언제부터 했는가? 이번 프로젝트를 시작하기에 앞서, 넥슨 측과 소통한 시점이나 제안 과정 등은 어떠했는지 듣고 싶다.
프로젝트의 시작을 한 시점으로 딱 잘라 말하기는 어렵습니다. 어려서부터 일랜시아의 시스템 구조, 이를테면 '왜 전사는 다른 넥슨 MMORPG와 달리 파티 사냥이 안 될까?', '왜 상인의 아이템 제작 지침서는 끝까지 만들어지지 않았을까?' 같은 질문을 자주 떠올렸습니다. 전투·요리·미용·재단·낚시가 각각 독립적으로 성장하는 자유로움은 매력적이었지만, 그만큼 바로 그 구조 때문에 서로 이어지지 못한 시스템도 많아 보였습니다.
이에 2010년대 중반부터 개선 방법을 구상해왔고, 몇 년 전부터는 원작의 요소들을 본격적으로 분석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던 중 '넥슨 리플레이' 프로젝트가 발표되면서, 개인적인 분석에 머물러 있던 일을 실제 프로젝트로 이어갈 기회가 생겼습니다.
지원 과정에서는 단순히 게임을 복원할 수 있다는 증명보다, 그동안 파악한 구조적 문제를 어떻게 개선할지 보여주는 데 집중했습니다. 과거의 모습을 한 번 재현하는 게 아니라, 이후에도 계속 발전할 수 있는 게임을 제안하고 싶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포트폴리오에는 조직 규모와 상관없이 지속 가능한 개발 체계와 결과물을 함께 담았습니다. 이후 올해 1월 공식 지원 채널을 통해 포트폴리오를 제출했고, 여러 차례의 질의응답과 자료 보강을 거쳐 지금에 이르렀습니다.
▲ 현재 개발 중인 '프로젝트 ER' 화면 (사진출처: 프로젝트 ER 공식 티저 영상 갈무리)
넥슨 측에서 일랜시아 관련 자료를 받았을 때 어떤 기분이었는가? 받은 자료는 어느 정도 분량이었는지, 개발 전 놀랐던 부분이나 혹은 부족했던 부분이 있었는지 궁금하다.
선정 이후 공식 자료를 전달받았을 때 가장 먼저 든 생각은 '정신 붙잡자' 였습니다. 어린 시절부터 늘 일랜시아의 'what if'를 떠올렸을 만큼 개인적으로 애정이 큰 작품이었기에, 그걸 직접 만들어볼 기회가 열렸다는 사실에 너무 기쁘고 흥분했습니다. 오히려 그 감정 때문에 실수할까 봐, 며칠간 주변의 모든 연락을 끊고 생각을 정리하며 감정을 다스렸던 기억이 있습니다.
자료를 받은 뒤 가장 먼저 한 일은 그동안 세웠던 기술적 가설과 원작의 실제 구조를 대조하는 것이었는데, 다행히 핵심 가설은 크게 벗어나지 않았지만, 예상과 다른 부분도 있어 그 구조를 새로 설계한 토대에 어떻게 연결할지 판단하는 데 시간이 필요했습니다. 당초 1~2주면 끝날 거라 예상했지만, 이미지 애셋 데이터 구조를 확정하는 데 약 2개월 반이 걸려 5월 중순에야 실제 콘텐츠 개발에 착수할 수 있었습니다.
지연의 주된 원인은 처음 작업 범위를 단순히 새 콘텐츠를 클라이언트에 넣는 정도로 예상했던 데 있었습니다. 여러 게임의 개발로그를 참고해 파이프라인을 설계해두었지만, 이 프로젝트가 MMORPG급 규모라는 점을 간과한 게 당시 가장 큰 실수였습니다. 최적화를 위해 Monogame 기반 자체 엔진을 쓰고 있기에 유니티·언리얼의 일반적인 애셋 파이프라인 노하우를 그대로 적용할 수 없었고, 전체 애셋을 관리하는 자체 ERP를 새로 만들어 통합해야 했습니다. 예상한 병목은 '아트 애셋 생산 파이프라인'으로 이를 현대적 산업 표준에 맞게 규격화해야 했는데, 실제 내부 파이프라인이 예상과 달라 이 기간 동안 바이너리 구조체 전체를 여러 차례 재설계한 것이 가장 큰 병목이었습니다.
받은 자료에는 실제 게임에 구현된 내용뿐 아니라 구현되지 못한 요소, 서사상 끊어진 연결 고리에 관한 내용도 일부 포함돼 있었습니다. 일랜시아 유저라면 누구나 궁금해할 만한 흥미로운 부분들이었습니다. 구체적인 종류와 분량은 공개할 수 없지만, 원작을 다시 이해하고 앞으로의 방향을 정하는 데 의미 있는 자료였습니다.
▲ 세계관이나 스킬 등 끝내 제대로 구현되지 않은 요소가 많이 남아 있는 일랜시아 (사진출처: 넥슨 공식 홈페이지)
개발 시작 시점부터 현재까지 개발 히스토리가 궁금하다.
이 프로젝트의 개발 시작은 하나의 시점이 아니라 약 1년에 걸친 범위였습니다. 2024년 말부터 2025년 중순까지는 일랜시아의 각 시스템이 어떤 의도로 설계됐는지를 살펴봤습니다. 단순 분석보다는 과거 설계 의도를 중심으로 게임을 들여다본 셈인데, 이 과정에서 일랜시아 아트 애셋(무기, 옷 등 착용 장비) 제작에 필요한 이미지 수가 너무 많다는 문제를 발견했습니다.
이때 '픽셀 아트 생산'에 흥미를 느껴 일랜시아와 무관한 이미지 AI를 따로 연구·개발했는데, 과거 이미지 인식(YOLO) 프로젝트 경험이 도움이 됐습니다. 결과적으로 애셋 제작 비용과 공수를 줄이려던 이 연구가, 지금 프로젝트 ER의 제작 파이프라인 일부를 개선하는 데 큰 도움이 됐습니다.
실제 개발의 시작점은 2025년 12월로 보는 게 정확할 것 같습니다. 넥슨 리플레이 프로젝트가 발표된 뒤, 기존의 분석 작업을 실제 출시가 가능한 형태로 빠르게 전환했습니다. PoC와 상용 게임은 안정성, 확장성, 유지·보수 기준이 완전히 다르다고 판단해 전체 구조부터 다시 잡았습니다. 다행히 서버 아키텍처는 이전부터 구상해온 덕분에 초안과 제출용 드래프트를 빠르게 만들 수 있었습니다. 서버 초기 PoC 제작에 약 3~4주, 클라이언트에 2주가 걸렸고, 넥슨에 제출할 기획안과 전체 프로토타입까지 총 6주가 소모됐습니다. 클라이언트 역시 원작 구조 분석을 마친 상태라 가시적인 결과물을 비교적 빠르게 만들 수 있었습니다.
현재 핵심 개발팀은 저를 포함해 세 명입니다. 함께 게임을 즐기기도 하지만, 게임에 대한 다양한 아이디어를 주고받으며 개발을 함께 이끌어가고 있습니다. 팀원 중 한 명은 인프라 엔지니어로, 서버 방어, 스펙 선택, 로드밸런싱 설계 등 개발 과정의 중요한 의사결정을 함께하고 있습니다. 다른 한 명은 변호사로, 회사 소속 팀원은 아니지만 법률·행정적인 부분에서 큰 도움을 주고 있습니다. 세 사람의 주 사용 언어와 문화적 배경이 서로 다른 덕분에, 다양한 언어의 로컬라이제이션을 자연스럽게 결정하게 됐습니다. 프로젝트 합류에 관심을 보이는 분들과 디스코드로 계속 대화를 나누고 있지만 아직 확정되지는 않았고, 추가 채용은 내년 1분기 이후로 예상하고 있습니다.
개발에 있어 가장 어려웠던 부분은 어디였는지, 현재 어떤 방식으로 개발해오고 있는지 궁금하다.
의외로 가장 어려운 건 기술 구현이 아니었습니다. 기술적인 부분은 대부분 어떻게든 해결 가능한 영역이라고 생각하고, 진짜 문제는 '재미'를 만드는 방식이었습니다. 일랜시아의 재미를 지금의 플레이 경험 안에서 어떻게 살릴지 결정하는 일이 가장 어려웠습니다. 이건 눈에 보이는 문제도 아니고, 정답이 정해진 문제도 아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팀원과 주변 사람들의 의견을 자주 듣고 있습니다.
기술적인 개발은 일반적인 소프트웨어 개발 방식과 거의 동일하게 진행하고 있습니다. 필요한 계획을 짜고 PRD를 작성한 뒤 단계별 이슈를 오픈해 코드를 작성하고, 테스트·리뷰와 시나리오 테스트를 거쳐 CI/CD 등으로 마무리합니다. 평소에도 해오던 업무 흐름이라, 코드 작성을 사람이 아닌 AI가 담당한다는 점만 달라졌을 뿐 그 외의 일반적인 업무흐름은 대부분의 기업들이 수행하는 개발 파이프라인과 유사하게 동작합니다.
다만 AI가 코드를 작성하는 만큼 단위 테스트와 시나리오 테스트가 더 정밀해야 해서, 서버 공격용 헤드리스 클라이언트를 만들어 매 단위마다 대량의 시나리오 테스트를 수행하고, 발견된 결함을 다음 이슈로 오픈하는 피드백 루프를 운영하고 있습니다. 아트 애셋은 일랜시아 전용 아트 애셋 생산 파이프라인을 구축해 대부분의 이미지 생산에 확장 적용할 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 버튼 아이콘은 1분에 몇십 개, 수백 프레임짜리 갑옷도 하루에 몇 종류씩 만들어낼 수 있으며, 이런 생산 기능은 대부분 같은 기술에서 파생됩니다.
과거 게임 소개 당시 ‘리마스터’라고 명명되어 있었다. 그 '리마스터'라는 단어가 어떤 의미와 범위를 의미하는지 궁금하다. 그래픽과 사운드, UI 등만 손보고 원작 그대로를 가져갈 것인지, 아니면 추가 요소들을 적극적으로 넣을 것인지...
'리마스터'는 프로젝트 초기에 성격을 간단히 설명하려고 쓴 임시 표현에 가깝습니다. 실제로 제출한 포트폴리오에는 '리마스터, 리부트, 리덕스' 등 다양한 표현을 함께 썼는데, 커뮤니티 등을 통해 '리마스터'라는 단어로 자리잡은 것 같습니다.
리마스터, 리메이크, 리부트처럼 're'가 붙는 말은 많지만, '프로젝트 ER'을 그중 하나로 정확히 규정하기는 어렵습니다. 원작을 상당 부분 계승하면서도 필요한 곳은 적극적으로 다시 만들기 때문입니다. 지금은 넥슨이 공식적으로 쓰는 '리플레이'라는 표현이 가장 잘 맞는다고 생각합니다. 따라서 정식 출시 명칭은 아직 정해지지 않았습니다.
그래픽은 원작의 표현 방식을 이어갑니다. UI는 현대적인 화면 비율과 고해상도 디스플레이에 맞춰 새로 설계하되, 기존 팬들이 현대적 UI에 불편을 호소하는 경우가 많아 HUD-UI에는 기존 디자인 일부를 차용하는 것도 고려하고 있습니다. 사운드는 원작의 감각을 남기면서 부족한 부분을 보강할 계획입니다. 레거시 사운드와 새 사운드를 어떻게 함께 쓸지는 아직 검토 중이며, 레거시/신규 모드 토글 방식이 유력하지만 확정된 건 아닙니다.
시스템과 밸런스도 원작 이용자에게는 상당 부분 익숙할 것입니다. 다만 플레이 템포와 시스템이 연결되는 방식은 달라질 수 있습니다. 제가 피하고 싶은 건 '나쁜 고증'입니다. 과거에 있었다는 이유만으로 불필요한 불편이나 진입 장벽까지 그대로 가져오고 싶지는 않습니다. 이에 밸런스 기준도 2000년대 특정 시점이나 현재 서비스 중인 특정 버전으로 정하지 않았습니다. 일랜시아 전체 역사에서 무엇을 이어가야 할지 먼저 살피고, 그 위에 새로운 시스템과 플레이 경험을 더하려 합니다. 과거를 그대로 복제한 게임도 아니고, 이름만 빌린 새로운 게임도 아닙니다.
▲ 아이콘, 버튼, 어빌리티 UI 등을 개발하고 적용 중이다 (사진제공: 데러리프)
원작의 미완성 부분 역시 새롭게 구현 예정이라는 설명인데, 그 경우 개발 방향성은 어떻게 잡고 있는가?
제가 생각하는 미구현 요소는 크게 두 가지입니다. 첫째는 공식 웹사이트 설명, NPC 대사, 게임 데이터 등 관련 자료에 '구체적인 흔적이 남은 콘텐츠'입니다. 실제로 만들 예정이었다는 근거가 있고 원래 의도도 추정하기 쉬운 만큼, 이런 요소는 우선순위를 높여 구현하려 합니다.
두번째는 명확한 예고는 없지만 기존 시스템을 따라가다 보면 '자연스럽게 필요해지는 콘텐츠'입니다. 예를 들어 상인 계열의 제작 어빌리티가 특정 단계에서 끝났다면, 그다음 제작과 성장 단계로 이어질 수 있습니다. 기록으로 확인되는 내용을 복원하는 데서 멈추지 않고, 일랜시아가 계속 발전했다면 생겼을 법한 영역까지 다루고자 합니다.
맵, 직업, 스킬, 퀘스트, 세계관 등의 보완 계획은 어떻게 되어 있는가?
먼저 맵의 경우, 원작 맵을 한 장에 펼쳐놓고 보면 중간이 뚝 끊겨 보이는 곳이 적지 않습니다. 기획이 바뀌었거나 당시 개발 범위에 한계가 있었던 것으로 보입니다. 이런 연결부는 보강하되, 원작 맵의 90~95% 이상을 유지하는 게 현재 목표입니다. 새로운 시스템이나 콘텐츠에 꼭 필요한 경우에는 일부 지역의 구조와 역할이 달라질 수 있습니다.
직업의 경우 명칭은 대부분 유지할 생각입니다. 다만 하나의 직업에 너무 많은 행동이 묶여 있다면 나눌 필요가 있는데, 대표적인 사례가 모험가입니다. 원작 모험가는 낚시부터 지하 탐색, 발굴까지 성격이 다른 어빌리티를 모두 포함하는데, 이를 벌목·채집을 맡는 가칭 '채집가'와 광물 채굴·지하 탐험을 맡는 가칭 '탐색가(또는 광부)'처럼 행동에 따라 나눌 수 있습니다. 명칭과 범위는 아직 확정되지 않았습니다. 전투 직업은 이미 명칭상 세분돼 있어 대부분 기존 이름을 유지할 예정입니다.
스킬은 원작보다 대폭 늘어날 가능성이 높고, 퀘스트도 상당수 추가할 계획입니다. 개수를 늘리는 것보다 원작에서 중간이 끊긴 성장과 플레이 흐름을 제대로 이어주는 게 우선입니다. 기존 작품의 '어빌리티'와 '스펠' 개념은 ER에서 '스킬' 탭으로 새로 정리될 예정이며, 이는 기존 액티브 어빌리티와 거의 동일한 분류 방식입니다.
세계관은 긴 설명으로 한꺼번에 풀기보다, 아이템과 NPC, 퀘스트에 흩어진 단서를 통해 조금씩 풀어내고 싶습니다. 남아 있는 공식 자료와 아카이브를 살펴보면 개발 과정에서 바뀌거나 빠진 설정들이 있는데, 이를 정리한 뒤 원작의 토대 위에서 자연스럽게 확장할 계획입니다.
많이 궁금해하시는 여섯 번째 마을은 초기 출시 버전에는 들어 있지 않습니다. 지금 자세한 내용을 말씀드리기는 어렵지만, 처음부터 이후 콘텐츠로 확장할 수 있는 구조를 염두에 두고 준비했습니다. 우선 기존 범위에서 빠진 부분을 채운 뒤, 새로운 지역과 콘텐츠로 나아갈 생각입니다.
▲ 월드맵 구조와 동선 기획 자료 (사진제공: 데러리프)
BGM, 아트 등은 기존 것들을 그대로 쓰는가?
원작의 BGM과 아트 애셋은 거의 대부분 활용할 예정입니다. 이용자들이 기억하는 일랜시아의 분위기를 이루는 중요한 요소이기 때문에 굳이 다른 모습으로 바꿀 이유가 없다고 생각합니다. 물론 새로운 콘텐츠와 시스템에는 새 BGM과 아트가 필요할 수 있습니다. 어느 정도까지 추가할지는 아직 확정하지 않았고, 개발이 진행되는 대로 차차 공개하겠습니다.
캐릭터 외형이나 맵 등을 보면 원작의 고전풍 그래픽 느낌을 그대로 지키고 있는 듯하다. 그 방향을 선택한 이유는?
저는 2D 픽셀 아트, 흔히 말하는 도트 그래픽에는 시간을 잘 견디는 힘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사실적인 표현을 추구한 그래픽은 기술이 발전할수록 이전 결과물이 낡아 보일 수 있지만, 자기만의 스타일이 분명한 픽셀 아트는 수십 년이 지나도 감각이 크게 퇴색하지 않는 경우가 있습니다.
그래서 저는 일랜시아의 그래픽을 '고전풍이라서 보존한다'고 생각하지는 않습니다. 일랜시아의 픽셀 아트에는 다른 게임으로 대체하기 어려운 분위기와 표현 방식이 있고, 이는 과거의 흔적이 아니라 지금도 유효한 장점이자, 일랜시아라는 게임을 선택했다면 반드시 지켜가야 할 정체성이라고 생각합니다. 따라서 스타일 자체는 유지하되, 당시 기술적 한계가 드러나는 그림자와 애니메이션, 일부 화면 연출은 지금의 기술로 보강할 계획입니다.
▲ 던전 타일 애셋 세팅 개발 화면 (사진제공: 데러리프)
원작은 오래된 게임인지라 편의성 콘텐츠가 부족한 것이 사실이다. 이번 프로젝트에서는 자동사냥·자동작업과 같은 편의성 기능을 지원하는지 알고 싶다.
모든 자동화를 같은 기준으로 볼 수는 없다고 생각합니다. 예를 들어 원작에서 상인이 같은 아이템을 여러 개 만들려면, 별다른 판단이 필요하지 않은데도 약 10초마다 제작 버튼을 다시 눌러야 했습니다. 계란 프라이 100개를 만들기 위해 같은 클릭을 100번 반복하는 식인데, 이런 작업은 재미보다는 불편에 가깝습니다. 제작 수량을 정해 연속 생산하는 방식으로 바꿔도 문제가 없다고 봅니다.
다만 자동사냥은 이야기가 다릅니다. 전투와 성장뿐 아니라 게임 경제와 이용자 간 상호작용까지 바꿀 수 있어, 어떤 기능을 공식적으로 제공하느냐에 따라 자동화의 의미와 허용 범위도 달라집니다. 그래서 현 단계에서 지원 여부나 경계를 단정적으로 말씀드리긴 어렵습니다. 지금은 각 기능이 플레이 경험과 경제에 어떤 영향을 주는지 확인할 기반부터 마련하고 있습니다. 행동 기반의 탐지 가능한 지표를 만들어두고, 자세한 판정 기준은 커뮤니티 의견과 실제 콘텐츠 농도를 바탕으로 테스트 단계에서 의미있는 정책을 만들어나가고자 합니다. 한마디로, 의미 없는 반복 입력은 줄이되, 자동사냥과 자동 작업을 어디까지 지원할지는 실제 플레이를 검증한 뒤 결정할 예정입니다.
원작에서 이동 속도가 느렸던 부분을 어떤 상응하는 시스템으로 보완했는지 궁금하다. 더불어 원작에 없던 편의요소나 시스템은 어떤 것들을 기획하고 있는지 알고 싶다.
이동속도는 단순히 높인다고 끝나는 문제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특히 2D MMORPG에서는 누가 먼저 자리를 잡는지, 전투에서 상대를 따라잡거나 피할 수 있는지가 모두 게임성이자 밸런스가 됩니다. 직업별 공격력과 방어력, 이동기의 가치에도 영향을 주기 때문에, 모든 캐릭터를 일괄적으로 빠르게 만들면 이런 차이까지 함께 사라질 수 있습니다.
원작의 느리고 긴 이동을 그대로 두겠다는 뜻은 아닙니다만, 일랜시아에서는 이동 중 생기는 우연한 만남도 중요합니다. 무기를 수리하러 대장간으로 가다가 미용 중인 미용사를 보고 "머리 좀 해주세요"라고 말을 거는 식으로, 계획에 없던 관계와 경험이 시작되니까요. 모든 이동을 순간이동으로 바꾸면 이런 순간들도 함께 사라집니다.
그래서 기본 이동속도만 올리기보다, 장거리 이동의 불편을 다른 방식으로 보완하려 합니다. 대표적인 예가 퀘스트와 웨이포인트 포털을 결합하는 방식으로, 원작의 '에이본 게이트'처럼 이동 기능 자체를 세계 안의 콘텐츠로 만드는 것입니다. 웨이포인트는 도입을 전제로 세부 방식을 검토 중이며 아직 구현 전입니다. 다른 편의 기능도 함께 살펴보고 있지만, 지금 구체적으로 말씀드릴 수 있는 사례는 웨이포인트입니다. 의미 없이 같은 길을 반복하는 부담은 줄이고, 탐험과 만남의 재미는 남기는 것이 기본 방향입니다.
▲ 일랜시아 월드맵 (사진: 게임메카 촬영)
원작은 캐릭터 육성이 단방향에 가깝다. 이용자가 주도적으로 다양한 선택지를 경험할 수 있도록, 육성 시스템을 손볼 계획이 있는지 궁금하다.
원작 일랜시아에는 도끼와 검, 봉, 스태프처럼 무기 종류가 아주 많았지만, 일부를 제외하면 실제 기능은 크게 다르지 않았고 직업별 스킬도 플레이 방식을 바꿀 만큼 뚜렷하지 않았습니다. 여러 직업을 자유롭게 오갈 수 있는 게임이었으나, 무기마다 특수한 개성이 없어, 결국 스탯을 계속 쌓는 쪽이 강해지는 구조가 됐습니다. 자유로운 전직과 직업의 개성을 동시에 살리기는 어려운 방식이었던 거죠.
결국 이용자의 관심은 ‘어떤 방식으로 싸울 것인가’보다 ‘어떤 순서로 키워야 능력치를 가장 많이 얻는가’ 즉 흔히 말하는 '육성 루트'에 쏠렸습니다. 질문에서 말씀하신 단방향 육성이 이런 의미라면 개선에 동의합니다. 프로젝트 ER에서는 자유로운 직업 전환과, 하나의 통합 레벨에 묶이지 않는 어빌리티 성장은 유지하면서, 무기와 직업마다 실제 플레이 차이를 만들고자 합니다.
우선 전투 계열인 '검과 마법'에서는 직업별 액티브 스킬을 늘릴 계획입니다. 직업을 바꿨다면 생김새만 달라지는 것이 아니라 역할과 플레이 방식도 달라져야 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기존 어빌리티 성장 방식은 가능한 유지하면서, '어빌리티 포인트'를 활용한 특성화 요소를 검토하고 있습니다.
같은 무기 어빌리티라도 포인트를 어디에 쓰느냐에 따라 공격속도를 높이거나 기본 피해량, 크리티컬 확률 또는 피해량에 집중할 수 있어, 안정성을 택할지, 빠른 공격을 택할지, 낮은 확률의 큰 피해를 노릴지 등을 이용자가 결정하는 방식입니다. 어빌리티 포인트는 원작 시스템을 대체하는 새로운 레벨이 아니라, 익숙한 어빌리티를 자신의 취향에 맞게 발전시키는 장치에 가깝습니다. 자유로운 전직과 직업별 특성화를 함께 살려야 하는 만큼 여러 성장 조합을 시뮬레이션하고 있고, 현재 대부분의 수치는 플레이스홀더 상태로 개발을 진행 중이며, 구체적인 특성과 수치는 플레이 테스트 과정에서 달라질 수 있습니다.
▲ 다양한 무기가 존재했으나, 무기마다 특별한 개성은 부족했던 원작 (사진: 게임메카 촬영)
일랜시아가 겉으로는 생활형 힐링게임 같아 보이지만, 사실 PvP가 꽤 활성화되어 있는 게임이다. PvP 요소도 들어가는가?
PvP는 들어갈 예정입니다. 잘 설계된 PvP는 게임에 긴장감과 몰입, 경쟁의 재미를 더하는 중요한 콘텐츠라고 생각합니다. 다만 일랜시아 초기 버전에 있었던, 다른 사람을 일방적으로 공격하거나 괴롭히는 수단은 허용하지 않을 계획입니다. 참여자들이 합의한 조건 안에서 경쟁하고, 승부의 과정과 결과를 함께 즐기는 것이 기본 원칙입니다.
현재 구상 중인 형태는 원작처럼 제한된 공간에서 진행하는 PvP, 길드전이나 공성전처럼 규칙과 목표가 분명한 경기형 콘텐츠입니다. 결과에 따라 참여자나 승리한 집단이 일정한 보상이나 이점을 얻는 방식도 고려하고 있습니다. 다만 아직 아이디어 단계라, 세부 규칙과 제공 시점은 기획이 구체화된 뒤 공개하겠습니다.
이 게임이 타깃으로 삼는 유저 대상은 누구인가? 원작을 기억하는 팬들인지, 아니면 일랜시아를 처음 접하는 어린 세대까지도 폭넓게 아우를 예정인가?
일랜시아가 처음 발표된 뒤 거의 30년이 흘렀고, 당시 이용자들의 연령대도 그만큼 높아졌습니다. 오랫동안 새로운 콘텐츠의 공급이 제한됐기 때문에 이용자층이 다음 세대로 자연스럽게 이어지지 못한 면도 있습니다.
원작 팬은 프로젝트 초기에 가장 중요한 이용자층입니다. 하지만 해당 이용자층이 무한히 확장될 수 없는 만큼, 기존 팬만을 위한 게임을 만들 수는 없습니다. 일랜시아를 처음 접하는 더 젊고 폭넓은 이용자에게도 다가가야 합니다. 따라서 새로운 이용자를 불필요하게 밀어내는 지나치게 하드코어한 요소는 덜어낼 생각이지만, 모두를 만족시키겠다고 일랜시아의 색까지 흐리지는 않을 예정입니다.
연령으로는 여러 세대를 폭넓게 바라보고 있지만, 취향으로는 훨씬 명확합니다. 자유도와 다양한 역할, 이용자 간 상호작용이 만들어내는 스토리를 좋아하는 샌드박스형 MMORPG 이용자가 핵심 대상입니다. 다소 불편하더라도 일랜시아에서만 경험할 수 있는 유니크한 경험이라면, 그건 일랜시아의 사용자층을 위해 남겨둘 생각입니다.
스팀 출시나 다국어 채팅 스크린샷 등을 보면 글로벌 대상으로 서버를 열 것 같은데, 원활한 의사소통을 위한 자동번역 기능 등도 들어가는가?
현재 계획은 글로벌 단일 월드입니다. 이용자가 늘어나면 부하 분산을 위해 서버 자원을 확장할 수는 있지만, 한국/일본/북미처럼 지역별로 단절된 세계를 만들 생각은 없습니다. 초기 기반은 한국과 동아시아권 접속 환경을 중심으로 마련하되, 가능하면 지역과 언어에 관계없이 같은 세계에서 만날 수 있게 하고 싶습니다.
실시간 번역은 이용자가 입력한 원문과 번역문을 함께 보여주는 기능입니다. 여러 언어를 동시에 처리하는 핵심 기반은 구현했습니다. 다만 실제 화면에서 어떻게 보여줄지, 이용자가 번역 표시를 얼마나 쉽게 조절할 수 있을지 등은 더 다듬어야 합니다. 번역 속도와 비용, 문장의 자연스러움도 계속 확인하고 있습니다.
게임 UI와 퀘스트, 아이템 설명을 위한 다국어 구조도 서버에 마련했으며, 클라이언트 연결 작업은 테스트 과정에서 진행할 예정입니다. 한국어/일본어/영어/중국어를 우선 검토 중이나 정식 지원 범위는 아직 확정되지 않았습니다. 완성도가 부족한 언어는 정식 지원 대신 베타 형태로 먼저 제공할 수도 있습니다. 출시 플랫폼은 우선 스팀에 집중하고 있으며, 다른 플랫폼은 아직 구체적으로 검토하지 않았습니다.
▲ 스팀을 통해 글로벌 단일 월드로 출시 예정이다 (사진출처: 프로젝트 ER 티저 영상 갈무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