림월드 디렉터 "가장 복잡하기에, 나는 인간을 사랑한다"
2026.06.17 18:04 게임메카 신재연 기자
"나는 이야기를 쓰는 사람이 아니라, 이야기를 만들어내는 시스템을 만드는 사람이다"라는 말로 자신을 정의한 림월드 디렉터가 자신의 '이데올로기'와 림월드 DLC '이데올로기'가 생긴 이유를 정의했다.
넥슨 개발자 콘퍼런스 2026(이하 NDC26) 2일 차인 17일, 경기창조혁신센터 지하 2층 국제회의장에서 '내가 만드는 시스템이 무엇을 말하고 있는가 - 림월드 이데올로기가 던지는 질문'을 주제로 대담 세션이 진행됐다. 현장에는 개발사 루데온 스튜디오의 타이넌 실베스터(Tynan Sylvester) 디렉터와 함께, 모더레이터로 게임제너레이션 이경혁 편집장이 참가했다. 두 사람은 이번 세션을 통해 디렉터 자신이 추구해 온 독창적인 시스템 디자인 철학과, 확장팩 ‘이데올로기’에 담긴 인간 사회에 대한 깊이 있는 통찰을 공유했다.
이번 대담은 타이넌 디렉터가 인터뷰를 통해 꾸준히 언급한, "나는 이야기를 쓰는 사람이 아니라 이야기를 만들어내는 시스템을 만드는 사람"이라는 이야기에 대한 질문으로 시작됐다. 이야기의 시스템을 만드는 사람은 작가인가, 그렇지 않은가에 대한 질문이었다. 타이넌 디렉터는 "한 단어를 선택해야 한다면 시스템 크래프터(System Crafter)라고 말하고 싶다. 일종의 의미론적 구분이다. 단순히 이야기를 만드는 사람이 아니라, 항상 동일한 방식으로 시작되는 이벤트로 스토리를 생성하는 시스템을 만든다. 이를 구축하는 것은 진행 과정에서 다양한 부분집합을 만들고, 플레이어의 행동에 반응해 매번 새로운 이야기를 만든다"며 이유를 보충했다.
타이넌 디렉터의 이런 시선은 게임이 만들어내는 수많은 선택지와 상황에서 나온다. "게임은 기존의 어떤 미디어보다도 100배는 더 넓은 영역을 가지고 있다. 할 수 있는 일이 너무 많아서다. 싱글, 멀티, 경쟁, 협동 등 수많은 선택지가 제공된다. 스토리를 만들고, 예술이나 상업적인 행위도 시도할 수 있다"며, 게임이 30~40년 전에는 존재하지 않았던, 완전히 새로운 장르와 가치를 발견할 수 있는 매체라고 강조했다.
대담의 핵심 화두는 단연 림월드의 정체성을 한 단계 진화시킨 확장팩 '이데올로기'다. 과거 바닐라 버전의 림월드에서는 ‘식인’이나 ‘장기 적출’ 같은 극단적인 행위에 대해 시스템 코드가 일종의 절대적인 가치 판단을 내려 모든 캐릭터에게 부정적인 페널티를 부여했었다. 그러나 타이넌 디렉터는 이러한 설계가 우주의 절대적 선악을 규정하는 오류를 범할 수 있다고 판단했고, 사람마다 가치관과 선호가 다르다는 현실 세계의 속성을 게임 내에 정교하게 모델링하기 위해 신규 확장팩 '이데올로기'를 기획했다고 설명했다.
'이데올로기'가 도입되면서, 림월드는 단순한 ‘사실의 기술’을 넘어 ‘사회적 당위성의 주장’을 하지 않는 중립적 우주가 되었다. 이 시스템 안에서는 플레이어가 설정한 사회적 체계, 즉 신념에 따라 누군가에게는 끔찍한 범죄인 식인 풍습이나 다부다처제가 다른 공동체에서는 완벽하게 정의롭고 성스러운 행위로 탈바꿈한다.
타이넌 디렉터는 이 시스템에 대해 "이념은 사람마다 가치관이 다르다는 사실을 모델로 삼았다. 현실에서는 그걸 잊기 쉽지만, 사람들이 우주에서 단지 다른 것을 원한다는 사실을 이해하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 그 중 일부는 특정 결과에 도달하는 방법에 대한 의견이 일치하지 않아서다. 하지만 대부분 사람들이 원하는 것은 모두 다르다. 식인이 옳은지 등 게임이 묘사하는 다른 문제들에 대한 논쟁을 벌일 수야 있지만, 일부는 단순이 선호에 관한 것이다"라고 말했다. 즉, 도덕과 윤리 역시 환경과 사회적 합의에 의해 구성되는 상대적인 개념이라는 사실을 게임 메커니즘에 녹여낸 것이다.
이 모더레이터가 질문한 전 세계 커뮤니티에서 농담처럼 불리는 림월드의 별명인 ‘전쟁 범죄 시뮬레이터’나 ‘제네바 협약 체크리스트’라는 어두운 밈에 대해서도 타이넌 디렉터는 긍정적인 반응을 보이며, 흥미로운 분석을 내놓았다. "나는 이 '전쟁 범죄 시뮬레이터'라는 접근이 다수의 유저가 장기적으로 시도하는 방식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시도를 통해 재미를 느끼고, 친구들에게 보여준 다음 '내 식민지에는 여덟 명의 아내가 전부 노예인 사람이 있다'는 식으로 말하고 웃지만, 그 다음에는 평범한 방식으로 다시 플레이한다"는 말을 통해 결국 유저들이 '사회가 잘 작동하는 방법'으로 향한다는 것을 짚었다.
즉, 플레이어들이 게임이라는 ‘보모 없는 안전한 공간’에서 사회적 금기를 위반하는 실험을 하며 독특한 감정적 강렬함과 쾌락을 느끼고, 반사회적 플레이를 친구에게 공유하는 행위 역시 내 안의 작은 악의 조각을 보여줄 정도로 당신을 신뢰한다는 고도의 사회적 유대감 형성 과정이라는 것이다. 아울러 이런 의사소통과 일탈에서 발생하는 '우연한 작동'은 게임 내 시스템으로 구체화해 '의도적인 작동'에 적용하는 것에도 도움을 준다.
타이넌 디렉터와의 대담에서는, 디렉터가 가진 인간 본성에 대한 신뢰가 가장 크게 강조됐다. 타이넌 디렉터는 실제로 많은 유저가 자극적인 범죄 플레이를 시도하며 즐거워함에도, 결국 장기적으로는 안전과 편안함, 안정을 중시하며 서로 협력하는 평범하고 건강한 공동체를 건설하는 방향으로 회귀한다는 통계적 사실을 짚었다. 림월드의 시스템이 무작위적이고 악독한 폭력보다 공동체 구성원 간의 높은 신뢰와 협력이 사회를 유지하는 데 훨씬 효과적이도록 설계되어 있는 것또한, 현실 세계의 균형을 그대로 반영한 결과물이다.
타이넌 디렉터는 이 모더레이터가 던진 "인간을 사랑하느냐"는 질문에, "나는 인간이 우주에서 가장 무섭고, 매혹적이고, 강력하고, 사랑스러운 존재라고 생각한다. 이렇듯 가장 복잡하기에 나는 인간을 사랑한다. 왜냐하면, 그것이 바로 우리이기 때문이고 그것이 우주에서 중요한 것이라고 생각해서다. 나는 우주를 떠다니는 암석에 그다지 관심이 없다"고 말했다.
이어 "물론, 인간의 내면에 많은 어둠과 폭력이 있다고 생각하고, 그럴 필요가 있다고 본다. 왜냐하면 어둠과 폭력 또한 우리가 여기까지 발전한 수단의 일부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인간에 대한 현실적 관점이나 다양한 측면을 동시에 관측하고, 이를 통합하려 노력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반드시 누군가를 사랑하거나 미워할 필요는 없다. 서로 다른 시대와 상황에 따라 사랑하기도 하고, 미워할 수도 있는 부분이라고 본다"며 인간의 다면성에 대한 관심을 표했다.
최근 화두가 되고 있는 AI와 머신러닝의 도입에 대해서는 냉철하고도 확고한 메시지를 던졌다. 타이넌 디렉터는 "게임 개발에서 큰 문제가 아니라고 말하고 싶다. 사람들이 코드를 생성하기 위해 AI를 사용하는 경우가 많아서다. 만약 유능하지 않다면 코드를 보지 못할 것이고, 품질은 자연히 떨어질 것이며, 추후에는 반드시 문제가 생길 것이다"라는 말로 서두를 열었다. 이어 "일반적으로 AI를 사용한다고 해 게임이 다른 메시지를 가지게 된다거나, 거창한 수준으로 콘텐츠에 차이가 생길 것이라 보지 않는다. 순수하게 품질의 문제일 뿐이다"라며 선을 그었다.
아울러 AI나 머신러닝을 통해 재조망하게 된 또다른 확장팩 '아노말리'와 림월드 세계관 속 초지능 '아르코텍'에 대한 이야기도 첨언했다. 여기에서 디렉터는 아르코텍이 존재하는 세계의 인간을 ‘사무실 건물 옆의 개미집’에 비유하며, 초지능이 인간과 공존할 수 있는 이유는 역설적으로 그들이 인간에게 아무런 관심이 없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게임 내부의 초지능은 강렬한 서사를 만들 수도 있지만, 지능이 그들을 존재하게 하기에 전능하며 그런 전능자는 인간의 행동을 신경쓰지 않기에 통제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대담의 끝자락에서 타이넌 디렉터는 미래의 '시스템 크래프터'를 꿈꾸는 수많은 한국의 개발자들에게 조언을 건넸다. 그는 "유저가 좋아할 것 같다나, 단순히 머릿속에서 예뻐 보이는 상상을 넘어, 내가 설계한 메커니즘이 왜 유저에게 특정한 감정적 반응을 불러일으키는지 분석할 수 있는 단단한 이론적 틀을 가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더해 "왜 그것이 자신이 만들고 싶은 것인지 분석할 수 있어야 한다. 처음부터 거창한 비전을 고집하기보다, 그래픽이 없는 회색 상자 상태로 수많은 프로토타입을 저렴하게 양산하고 끊임없이 수정해 나가는 유연한 태도가 중요하다"는 말로 림월드를 만들어 온 자신의 경험을 언급하며 좋은 게임을 만들 수 있기를 바란다고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