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형 게임사 그늘 속 게임 명가들이 잇따라 문 닫고 있다
2026.10.26 17:45 게임메카 김형종 기자
인수는 흔히 구원처럼 포장된다. 자금 걱정을 덜고, 더 큰 무대에서 더 큰 게임을 만들 수 있다는 약속이다. 하지만 2026년 최근의 게임 업계는 그 약속의 유통기한을 보여주고 있다. 올해 문을 닫은 스튜디오는 35곳이 넘는다. 그 가운데서도 유독 오랜 팬들을 보유한 이름들이 있다. 한때 뚜렷한 개성으로 팬을 모았다가, 모회사 아래에서 서서히 자기 색을 잃어간 개발사들이다.
30년 이름 지워진 바이오웨어
1995년에 문을 연 바이오웨어는 서양 롤플레잉 게임의 시대를 열었다. 바이오웨어가 신작을 낼 때마다 혁신이 이어졌고, 그 영향은 후대에도 이어졌다. 당장 '발더스 게이트' 시리즈, '네버윈터 나이츠', '스타워즈: 구 공화국의 기사단', '매스 이펙트'로 이어지는 탄탄한 라인업을 만들었다.
2007년 바이오웨어는 EA에 인수됐고, 이후에도 여러 타이틀을 만들며 명성을 이어갔다. 하지만 균열의 조짐은 분명했다. 인수 이후 바이오웨어가 내놓은 타이틀은 '소닉 크로니클', '드래곤 에이지 오리진', '매스 이펙트 2', '드래곤 에이지 2', '스타워즈: 구 공화국', '매스 이펙트 3'로 이어진다. 이 중 드래곤 에이지 2는 바이오웨어 답지 않은 작은 규모, 리소스 재활용, 아쉬운 스토리로 부정적인 평가를 받았다. 후에 이는 EA에서 16개월의 짧은 개발 기간을 준 것이 크게 작용한 것으로 뒤늦게 밝혀졌다.
이런 불협화음이 가장 크게 폭발한 것이 '앤썸'이다. 앤썸은 바이오웨어 특유의 개발 난항과 EA의 멀티플레이어 개발 기조가 모두 만난 대형 참사였다. 기본적으로는 오랜 기간 게임의 틀을 잡지 못했던 바이오웨어의 잘못이 더 크지만, 라이브 서비스 모델을 밀어붙인 EA의 과도 분명하다.
'매스 이펙트: 안드로메다', '앤썸', '드래곤 에이지: 베일가드'의 연속된 실패와 함께 바이오웨어는 10월 21일 문을 닫았다. 바이오웨어는 날이 갈수록 본인들이 지닌 강점인 스토리, 전략, RPG성에서는 멀어졌고, 대신 액션성에 더 몰두했다. 위 세 작품은 이에 대한 대답이었다. RPG 근본을 이해하던 핵심 경영진과 개발진의 이탈과 더불어 대중성을 좇은 EA의 흥행 압박이 맞물린 결과로 볼 수 있다.
타인의 걸작을 다듬던 손, 블루포인트 게임즈
블루포인트 게임즈는 '리메이크 장인'으로 유명했다. 처음 발매한 게임은 슈터 장르의 '블래스트 팩터'였으나, 본격적으로 이름을 알리기 시작한 것은 2009년 '갓 오브 워 콜렉션'과 2011년 '이코 & 완다와 거상 콜렉션', '메탈기어 솔리드 HD 콜렉션' 덕분이었다. 이후에도 '타이탄폴'의 Xbox 360 버전을 훌륭하게 이식하며 다시 한 번 이름값을 올렸다.
블루포인트 게임즈가 가장 높은 평가를 받은 것은 다시 한 번 리메이크 부문이었다. 2018년 걸작 '완다와 거상' 리메이크를 훌륭한 품질로 빚어내며 게이머와 평론가의 찬사를 받았고, 이는 2020년 '데몬즈 소울'까지 이어졌다. 두 타이틀 모두 리메이크를 기다렸던 팬이 상당했고, 플레이 방식이나 특징이 다름에도 이를 잘 이식한 점이 높은 평가를 받았다. 이에 2021년 '리터널'을 개발한 하우스마퀴와 같은 해에 소니에 인수됐다.
그러나 편입 이후 블루포인트가 받은 과제는 점차 본래의 강점에서 멀어졌다. 블루포인트 게임즈는 2022년 '갓 오브 워 라그나로크' 개발을 지원한 후 '갓 오브 워' 멀티플레이어 스핀오프게임 프로젝트 개발을 시작했다. 당시 소니는 라이브 서비스 확장 전략을 펴고 있었고, 이것이 오리지널 타이틀을 만들고자 하는 블루포인트의 열망과 만났다.
하지만 결과적으로 블루포인트 게임즈는 장기간의 공백 끝에 문을 닫았다. 소니는 2월 19일 폐쇄를 발표했고, 약 70명이 일자리를 잃었다. 소니 대변인은 팀의 기술력을 칭찬하는 성명을 냈지만, 그 칭찬은 폐쇄 발표와 함께 나왔다. 역량에 맞지 않은 라이브 서비스 게임에 도전한 블루포인트와 이를 맡긴 소니 양측 모두에 책임이 있지만, 역량이 있는 개발사였음에도 갑작스럽게 폐쇄가 결정된 것에는 의구심이 남는다.
이머시브 심의 대표자, 아케인 스튜디오
아케인 스튜디오는 아직 확실하게 결말이 나지 않았다. 아케인 오스틴은 이미 2024년 5월, 레드폴의 부진 이후 폐쇄됐고, 프랑스 리옹의 아케인 스튜디오는 7월 Xbox 개편에서 운명이 협상 중으로 남았다. 일부 보도는 리옹 스튜디오도 온전히 유지되기 어렵다고 전망하지만, 현재로서는 확정이 아닌 '검토 중'이다.
아케인 스튜디오는 1999년 처음 만들어진 역사 깊은 개발사로 '이머시브 심' 장르의 선구자였다. 첫 게임 '악스 파탈리스'는 고전적인 이머시브 심 RPG로 대중적이지는 않았지만 많은 사랑을 받았다. 이후 2010년 베데스다 소프트웍스에 인수된 후 2012년 이들을 상징하는 이머시브 심 명작 '디스아너드'를 내놓으며 스타덤에 올랐다.
이후 디스아너드 시리즈는 호평을 받았고, 2017년 '프레이' 역시 골수 팬으로부터 호평을 받았다. 하지만 판매량이 기대에 미치지 못한 탓일지, 아니면 2020년 베데스다의 Xbox 인수 때문일지 모르겠지만, 이때부터 아케인은 더 대중적인 게임을 추구하기 시작했고, 이는 부진으로 이어졌다.
2021년작 '데스루프'는 이머시브 심을 일부 탈피했고, 평론가들의 호평을 받았다. 새로운 시도로 받아들여진 덕분이다. 하지만 2023년작 '레드폴'은 오픈월드 루트슈터라는 대중적인 장르에 도전했고, 낮은 완성도에 최적화까지 발목을 잡았다. 레드폴을 개발한 아케인 오스틴은 2024년 폐쇄됐으며, 남은 아케인 리옹도 12월 13일까지 매각 대상자를 찾아야 한다는 보도가 나와 위태로운 상황이다.
CRPG 명가 옵시디언 엔터테인먼트
옵시디언 엔터테인먼트는 폐쇄를 피했지만 완전히 다른 상황을 맞았다. 2003년 설립된 옵시디언 엔터테인먼트는 오랜 재정난을 겪다 2018년 마이크로소프트 Xbox에 인수됐다. 인수 당시에는 자금 걱정 없이 대규모 게임을 만들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를 모았다. 안정적인 환경에서 스튜디오 고유의 개발력을 뽐낼 수 있으리란 전망이 지배적이었다.
인수 전 이들은 방대한 선택지와 서사를 지닌 롤플레잉게임 전문 스튜디오로 뚜렷한 정체성을 지녔다. '폴아웃: 뉴 베가스'를 비롯해 자신들만의 고유한 세계관을 구축한 '필라스 오브 이터니티', '티러니' 등을 연달아 출시하며 RPG 명가로 자리 잡았다. 중간 규모의 자본으로도 뚜렷한 색채와 깊이 있는 게임성을 선보인 것이 이들의 핵심 역량이었다.
하지만 인수 후 출시된 게임들은 기존의 특색과 거리가 멀어졌다. '펜티먼트'와 같은 독창적인 RPG도 간간히 이어졌다. 하지만 곤충 크기로 줄어든 아이들을 다룬 생존게임 '그라운디드' 시리즈는 분명 호평을 받았지만, 옵시디언의 롤플레잉게임과는 달랐다. 특히 야심 차게 준비한 '어바우드'는 오히려 본인들이 자랑하던 RPG 요소를 단순화시키는 등 아쉬운 평가를 받았다. 이후 출시된 ‘아우터 월드 2’는 고유의 RPG성을 살리기 위해 노력했으나, 서사나 전투의 깊이가 부족하다는 지적을 받았고 판매량도 부진했다.
스튜디오의 정체성은 모회사의 개편과 함께 더 희미해질 예정이다. Xbox 구조조정 과정에서 스튜디오는 대규모 감원과 함께 베데스다 산하로 편입됐다. 독자적인 세계관을 이어갈 예정이었던 '어바우드 2' 개발은 취소됐고, '폴아웃' 신작 개발에 투입될 예정이다. 그 방향이 과거 폴아웃 뉴베가스일지 아니면 또 다른 어바우드일지는 알 수 없다.
정체성을 잃은 충격은 나중에 온다
네 스튜디오의 이야기는 결말이 폐쇄, 매각, 보류로 제각각이다. 그러나 공통된 구조는 있다. 인수는 일시적인 안정을 주었지만, 그만큼 상부에서의 매출 압박은 거세졌다. 업계가 '더 적고, 더 큰 프로젝트'로 방향을 바꾸자 가장 먼저 흔들린 것은 중간 규모에서 뚜렷한 색을 가진 팀이었다.
돌이켜 보면 네 스튜디오가 인수된 이유는 모두 '그들만의 색' 때문이었다. 바이오웨어의 서사와 선택, 블루포인트의 다듬기, 아케인의 이머시브 심 설계, 옵시디언의 롤플레잉은 어디서도 쉽게 복제할 수 없는 자산이었다. 그러나 모회사가 이들에게 요구한 것은 이런 장르들로는 채우기 어려운 것들이었다. 때문에 시장에서 이미 검증되었다고 여겨지는 공식에 맞춰야 했고, 스튜디오를 값지게 만든 강점은 대중성과 규모 앞에서 양보해야 할 변수가 됐다. 실패한 작품의 책임을 개발사 몫으로만 돌릴 수 없는 이유다.
물론 매출에 대한 강력한 드라이브나 인수 자체가 문제의 본질은 아니다. 위 개발사들은 대부분 장기간의 개발 난항을 겪거나, 신작 부진에 시달린 경우가 많고 모회사 입장에서 매출을 요구하는 것은 이상하지 않다. 또 자금난에 시달리던 스튜디오가 인수 덕분에 숨통을 틔운 사례도 분명 있다. 문제는 인수 이후에 스튜디오가 가진 고유의 방향성을 지켜줄 수 있었느냐다.
중간 규모 팀이 만드는 개성 강한 게임은 폭발적인 수익보다 꾸준한 팬층과 신뢰를 쌓는 방식으로 가치를 만든다. 이 가치는 실적표에 잘 드러나지 않기에 구조조정의 순간 가장 먼저 잘려 나간다. 한번 흩어진 개발진과 쌓아온 노하우는 되돌릴 수 없고, 그 손실은 결국 새로운 이야기를 기다리던 게이머들에게 돌아간다. 업계가 '더 적고, 더 큰 프로젝트'를 외치는 동안, 우리가 잃고 있는 것은 단순한 스튜디오의 이름이 아니라 게임의 다양성 그 자체일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