멘탈 붕괴, 크앙의 서바이벌 호러 'DayZ' 기행기 (하)
2014.02.04 16:45 게임메카 류종화 기자
사람들을 괴롭히며 가학적 재미를 느껴보겠다는 마음가짐으로 겁도 없이 하드코어 RPG ‘DayZ’ 의 세계로 뛰어든 크앙. 그러나 ‘DayZ’ 는 사람들을 괴롭히기는커녕 제 한 몸 건사키도 힘든 곳이었다. 평균 생존시간 40분. 짧디 짧은 인생과 수없이 되풀이되는 죽음 속에서 크앙은 인생의 진리를 깨우쳐가는데… |
▲ 매번 죽고 죽고 죽어서 멘붕에 다다르는 크앙의 'DayZ' 기행기
세 번째 인생 – 식중독은 무서워
두 시간도 안 되는 짧은 순간에 두 명의 캐릭터를 죽인 크앙은 다시 게임을 처음부터 시작해야만 했다. 극한의 하드코어를 추구하는 게임답게 앞서 죽은 캐릭터의 정보 및 아이템은 전혀 이전되지 않았다. 아! 이 자비라곤 없는 세계!
크앙의 세 번째 캐릭터는 뭔가 건장한 체격의 히스패닉계 남성이었다. 왠지 ‘GTA’ 시리즈의 주인공 역할도 잘 해낼 것 같은 외모다. 사실 외모가 밥 먹여 주는 것은 아니지만, 일단 좀비도 쫄게 만들 것 같은 눈빛이 인상적이었다. 만약 게임 내 스킬이 있다면 <강렬한 눈빛: 적의 방어도를 30% 깎습니다> 같은 패시브가 적용되지 않을까 싶다.
▲ 섣불리 건드렸다간 친구 갱들이라도 불러올 것 같은 느낌
그러나 눈빛이 매섭건 말건 결국 하는 일은 집 뒤지기. 그리고 도시를 찾아 그저 뛰는 것 뿐이었다. 일단 제대로 된 무기를 갖추지 않으면 좀비 하나 때려잡기 어렵다는 것은 앞서 두 번의 죽음을 통해 충분히 깨달았기 때문이었다. 그렇게 20분쯤 쉼 없이 뛰어가니 이제껏 본 마을보다 조금 큰 규모의 마을을 발견했다. 규모가 크다고는 해도 도시는 아니고, 읍내 정도?
과연 이 읍내에서는 어떤 아이템을 얻을 수 있을까? 기쁜 마음에 이곳 저곳을 뒤지던 도중, 한 집에 들어가자마자 건물 안에 있는 좀비와 지근거리에서 딱 마주쳤다. 간 떨어지는 줄 알았다. 아무도 없는 집인 줄 알고 문을 벌컥 열었는데 코 앞에 좀비가 ‘곩곩곩’ 대며 서 있었으니까!
급히 좀비를 피해 밖으로 나왔으나 그 좀비는 이미 크앙을 발견한 듯 바로 따라나왔다. 시작한 지 얼마 안 돼서 마땅한 무기도 없는 상황. 싸우는 것은 자살행위이므로 어쩔 수 없이 도망칠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좀비는 계속 따라왔고, 어느새 동료들까지 불렀는지 크앙은 금새 3마리의 좀비에 쫒기는 꼴이 되었다.
▲ 하이고 깜짝이야
▲ 조금 큰 마을은 어딜 가도 좀비 투성이
순간, 도망치던 크앙의 머릿속에 놀라운 생각이 떠올랐다. ‘좀비는 결국 시체고, 그리 똑똑하지 못하니까 담을 끼고 도망치면 돌아오는 길을 몰라서 서성일 거야. 여기에 건물 안으로 들어가 문을 걸어 잠그면, 제까짓 좀비가 어떻게 문을 여는 고도의 동작을 하겠어? 실제로 아까 사다리도 못 올라왔는데?’ 라고 말이다.
그야말로 제갈공명에 버금가는 책략! 크앙은 울타리를 넘어 어느 한 가정집으로 들어간 뒤 재빨리 현관문을 닫았다. 이제 2층에 올라가서 창문으로 느긋하게 좀비들을 구경하면 된...
“꾸워억!!”
타다다닥~ (이 소리는 좀비가 울타리를 돌아 뛰어오는 소리입니다)
털컹 (이 소리는 좀비가 현관문을 열어제끼는 소리입니다)
▲ 이제 옷 오겠지?
▲ 아이고
맙소사. 좀비는 생각보다 똑똑했다. 막힌 길을 돌아오는 법도, 닫힌 문을 여는 법도 안다. 아니, 이미 죽은 지 한참 돼서 뇌의 뉴런이 썩어 문드러진 놈들이 어찌 이리 똑똑할 수가 있지?
아무튼 이대로 당할 수는 없는 노릇. 크앙은 집안으로 들어온 좀비와 육탄전을 벌인 끝에 간신히 그 집에서 탈출할 수 있었고, 한참을 도망쳐 좀비들을 모두 따돌렸다. 그러나 역시 좀비에게 물린 상처에서 피가 계속 흘렀고, 이대로 가다간 또 죽음을 맞이할 것이 뻔했다. 이번에는 태어난 지 얼마 안 돼서 주운 옷도 없는데... 순간, 내가 입고 있던 옷이 눈에 들어왔다. 즉시 티셔츠를 벗어 붕대를 만들어 상처에 감아 위기를 모면할 수 있었다. 역시 사람은 임기응변의 동물이다.
어쨌든 지금 할 수 있는 행동은 무기나 식량을 발견할 때까지 계속 뛰는 것 정도다. 그렇게 내의만 입은 채 5분 정도 뛰다 보니 언덕 위에 커다란 건물이 보였다. 얼핏 봐도 4층 이상의 빌딩 같았다. 저 정도의 건물 근처라면 아마 큰 마을이 있을 것이라는 생각에 크앙은 힘겹게 언덕을 올랐다. 역시나 그 곳에는 이십여 채의 집이 옹기종기 모여 있었다. 이미 다른 사람들이 다 털어간 건물이 대부분이었지만, 수확이 없진 않았다. 바나나 하나와, 무서운 가면, 그리고… 앞서 두 번의 인생에서 단 한 번도 발견하지 못했던 물을 발견해 겨우 갈증을 해소할 수 있었다.
이제 남은 것은 배고픔이었다. 계속 뛰었더니 배고프다는 알림 메시지가 계속해서 울려퍼지고 있었던 것. 그러나 처음에 발견한 바나나 외에는 딱히 음식을 발견하지 못했다. 바나나 하나 가지고는 간에 기별도 가지 않았다. 그렇게 계속해서 집을 뒤지던 크앙의 눈에 무엇인가가 띄었다. 우연히 들어간 빈 집의 식탁 아래에서 발견한 그 것은 테니스공 같기도 한데 크기는 꽤 컸다. 일단 집어들어 보았다.
<상한 오렌지를 획득했습니다>
▲ 테니스 공인줄 알았는데 상한 오렌지
아… 이게 오렌지였구나. 더러운 테니스공인줄 알았는데. 아무튼 배가 너무나도 고픈 상황인지라 살짝 상한 것은 큰 장애가 되지 않았다. 일단 열량이 될 수 있는 것이라 판단한 크앙은 썩은 오렌지를 입에 넣어 보았다. 그 맛은… 정말이지 주옥(珠玉) 같았다. 참고로 여기서 쓰는 ‘주옥’ 이라는 단어는 그냥 발음대로 해석하면 된다. 맛도 주옥 같은데, 심지어 배도 거의 안 찼다. 왠지 괜히 먹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게 입맛을 버린 가운데, 이번에는 상한 키위를 발견했다. 오렌지도 먹었겠다, 기왕 이렇게 된거 배라도 채우자는 마음에 키위도 한 입 베어물었다. 이번엔 맛이 더더욱 주옥 같았다. ‘주옥의 관문이 열렸다’ 는 뜻에서 열릴 개(開) 자를 붙여 개주옥(開珠玉) 같은 맛이라 이름 붙여야겠다.
▲ 개주옥같은 맛의 상한 키위
결과적으로, 상한 과일을 먹은 것은 너무나도 잘못된 선택이었다. 키위를 먹고 나니 배가 서서히 아파오기 시작한 것이다. 배도 못 채우고 복통만 얻다니! 설사가 나오진 않아 못 볼 꼴은 보이지 않았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증세는 악화되었다. 조금 지나자 눈앞이 핑글핑글 돌기 시작했다. 배고픔에 복통까지 겹치자 정말 죽을 지경이었다. 망할 놈의 곰팡이!
그렇다고 발걸음을 멈출 수는 없었다. 이 곳엔 약이 없어 보였기에, 약이 있을만한 대도시를 향해 뛰는 것 밖에 별다른 선택지가 존재하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그렇게 크앙은 배아픔을 동반한 로드 버라이어티를 시작했다. 산 속에서 헤메다 좀비와 마주치기도 하고, 큰 배를 발견하고 들어가 봤다가 좀비와 마주치기도 하고, 공사 중인 건물에 들어갔다가 좀비와 마주치기도 하고… 아. 이 세계가 멸망한 이유를 알겠다. 어딜 가도 폐허 아니면 좀비 뿐인데 사람 살겠나?
슬슬 지쳐가던 순간, 길 끝에 뭔가 인간의 구조물들이 보이기 시작했다. 마침내 앞서 두 번의 생애에서 발견하지 못했던 도시가 눈앞에 등장한 것이다. 도시를 뒤지면 무기도 얻고, 캠핑용품도 얻고, 약도 얻고… 아무튼 모든 것이 해결될 것이라는 기대에 마지막 힘을 쥐어짜 달렸다. 그렇게 크앙은 두 번의 죽음을 딛고 일어서, 마침내 도시에 발을 들였다.
▲ 도... 도시다!
▲ 뭔가 공산주의와 자본주의의 센스가 뒤섞여 있는 광고, 멋져!
태어나서 처음 본 ‘DayZ’ 세계의 도시는 꽤나 멋졌다. 바닥도 깔끔히 포장되어 있고, 상가도 있고, 큰 거리도 있다. 군데군데 포스터도 붙어 있고, 멋진 동상도 있다. 구소련에 속해 있던 동유럽 국가. 직접 가 보지는 않았지만 딱 그 느낌이다. 이제 이 곳에서 무기 하나만 주우면 더 이상 좀비도 두렵지 않… 어라? 근데 왜 왜 시야가…
<you are dead>
뭐… 뭐지? 알고 보니 결국 아까 주워먹은 썩은 과일이 식중독으로 발전해 사망에 이르고 만 것이었다. 식중독균에 중독된 데다 배도 고파서 면역력이 없지. 계속 뛰어서 체력도 없지. 약도 안 먹었지…… 죽을 조건을 완벽하게 갖춘 셈. 유통기한이 살짝 지난 냉장고 속 음식과는 차원이 다른 상한 과일은 그렇게 죽음으로 돌아왔다.
▲ 자 이제 도시의 건물을 뒤지면......
▲ 아... 안돼!
결국 크앙의 세 번째 삶은 목표로 했던 도시에 발을 디뎌놓기가 무섭게 종지부를 찍고야 말았다. 생존 시간은… 역시나 40분이었다.
네 번째 인생 –인간을 조심해
잇따른 죽음과 캐릭터 리셋에 정신적 충격을 크게 받은 크앙은 한동안 ‘DayZ’ 에 접속을 하지 않았다. 특히나 도시를 눈 앞에 두고 죽었을 때는 다시는 이 게임을 하고 싶지 않다는 생각까지 들 정도였다. 그러나 ‘DayZ’ 의 마력은 무시무시했다. 불과 며칠 후, 크앙은 눈물을 삼키며 네 번째 캐릭터를 만들고 있었다.
이번에는 조금 강해 보이는 흑인 남성 캐릭터를 선택했다. 다른 때와는 달리 시작 장소에는 어둠이 짙게 깔려 있었다. 나중에 알고 보니 ‘DayZ’ 는 현실과 같은 24시의 시간 흐름을 가지고 있는데, 크앙이 접속한 서버의 시간대가 새벽 5시 반 경이었던 것.
처음으로 겪어보는 ‘DayZ’ 에서의 밤. 어둠이 주는 공포는 상상을 초월했다. 그야말로 가로등 하나 없이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상황. 그리고 새 소리인지 파도 소리인지 좀비 소리인지 구분이 안 가는 괴성이 군데군데서 들려온다. 급히 기본 소지품으로 주어진 후레쉬를 켜 보았지만, 빛이 비추는 영역이 극히 적어 오히려 더 무서웠다. 다행히 날이 차차 밝고 있었기에 크앙은 꼼짝 않고 그 자리에 엎드려 날이 밝기를 기다렸다.
▲ 네 번째 캐릭터는 좀비도 씹어먹을 수 있을 것 같은 건장한 흑인 남성
▲ 밤이라 랜턴을 켜도 이 정도밖에 보이지 않는다... 살 떨리는 공포
▲ 힘내서 건물 안으로 들어가 봤지만... 이젠 사일런트 힐 느낌까지...
그렇게 10여분을 기다리니 간신히 주변 물체를 식별할 수 있을 정도로 날이 밝았다. 주변을 살펴보니 이번 시작 지점은 두 번째 인생에서 추락사한 공장 옆의 해안가였다. 이전의 경험을 되새겨 보면, 여기서 길을 따라 20여분을 달리면 도시가 나온다. 그렇게 크앙은 무작정 도시를 향해 뛰었다. 좀비가 있건, 집이 있건 모두 무시한 채 앞을 향해 뛰었다. 도중에 좀비의 괴성이 몇 번 들렸지만, 달리기 속도가 인간보다 느린 좀비는 크앙을 따라잡지 못했다.
그렇게 달려 도착한 도시. 크앙은 즉시 이곳 저곳을 뒤지기 시작했다. 사람이 몇 다녀가지 않은 큰 도시를 뒤지니 다양한 통조림 음식(단 캔따개가 없어 먹진 못했다)과 캔음료, 그리고 물과 생쌀 등 다양한 식료품을 발견할 수 있었다. 도중에 원터치로 쉽게 열 수 있는 참치캔도 하나 주웠지만, 약간 상한 것 같은 비주얼에 입에도 대지 않고 버렸다. 두 번 다시 식중독으로 인한 사망은 싫었기에, 크앙은 별 맛도 없는 생쌀을 우적우적 씹어먹었다.
▲ 날이 서서히 밝았다
▲ 좀비가 나타나도 무서워하지 말고 전진
▲ 그렇게 앞만 보고 달려서 도시에 도착
▲ 식중독의 위험 때문에 조금 수상한 참치캔은 거들떠 보지도 않았다
그 다음은 무기를 찾아 돌아다녔다. 간신히 건 클리닝 세트와 총알 등을 발견했지만, 정작 총은 아무데도 없었다. 대신 야구방망이와 소방용 도끼를 주웠는데, 특히 소방용 도끼의 경우 ‘DayZ’ 에서 처음으로 손에 넣은 ‘무기다운’ 무기였다. 실제로 도끼는 ‘DayZ’ 에서 가장 강한 근접무기 중 하나로, 좀비를 한 방에 보내버릴 수 있는 파괴력을 자랑한다고 한다. 그러나 아이러니하게도, 이 소방용 도끼는 끝내 한 번도 사용하지 못했다. 꽤나 후반부에 손에 넣기도 했거니와, 도끼를 든 후에는 이상하리만치 좀비가 등장하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 총도 없는데 총알이 무슨 필요야!
▲ 최고의 근접 무기 '소방용 도끼'
이것만 있으면 무적일 줄 알았지... 그땐 그랬지...
크앙이 도착한 도시는 상상 외로 컸다. 거대한 광장과 대성당, 큰 상가와 아파트 등이 늘어서 있어 자칫하면 길을 잃을 정도였다. 한 시간 넘게 각종 집을 뒤졌지만 도시의 반도 채 못 돈 것 같았다. 특히나 후반부에 소방용 도끼를 손에 넣기 전까진 철저히 좀비를 피해 다녀야 했는데, 인구 밀도가 높은 대도시답게 좀비 밀도도 꽤나 높아서 간혹 5마리 이상의 좀비떼에 쫒기기도 했다.
그렇게 약 두 시간 가까이 도시를 뒤지다 보니 뭔가 회의감이 느껴졌다. 수십 집을 돌았지만 나오는 아이템은 식량, 건 클리닝 세트, 총알, 장작, 옷가지, 책이나 종이 정도 뿐이고, 총이나 텐트, 비상약 등은 코빼기도 비추지 않았다. 아무래도 군사 기지나 병원 등을 털어야 할 것 같은데, 도시에는 그런 시설이 존재하지 않았다.
▲ 성당을 뒤졌지만 '성스러운 해머' 따위는 나오지 않았다
▲ 탈 것을 찾았지만 시동은 걸리지 않았다
▲ 저 거대한 아파트는 이미 누가 싹쓸이해갔는지 아무 것도 없었다
결국 크앙은 무기와 약품을 찾아 도시를 떠났다. 처음에는 높은 바위산 위에 올라가 주변을 탐색하려고 산에 올랐으나 이내 길을 잃었고, 되는 대로 가다 보니 여기가 어딘지도 감이 잡히지 않았다. 결국 크앙은 1시간 가까이 마을의 흔적을 찾아 뛰어다녔다. 산도 오르고 암벽등반도 하고.. 그러다 보니 어느 순간부터 땅이 대충 만든 것처럼 변했다. 문득 ‘여기가 세상의 끝이구나’ 라는 생각이 들었다. 일단은 알파테스트 버전이니까.
세상의 끝(?)을 본 크앙은 아무래도 도시로 다시 돌아가는 게 낫겠다는 생각에 여태껏 온 길을 되돌아갔다. 그런데, 제대로 된 길이 나 있는 것도 아니고 여기가 거기 같아 또다시 길을 잃었다. 설상가상 가져온 노타콜라, 핍시, 스파이트 등의 짝퉁 음료도 바닥이 나 목이 타기 시작했다. 사실 탄산음료를 세 캔이나 마셨지만 갈증 해소에는 효과가 미비했다. 오히려 배고픔이 가셨다. 생각해 보면 탄산음료는 당분이 많고 칼로리가 높아 갈증해소에 효과가 적지 않은가. 탄산을 막 들이킨 현실의 내 모습이 후회되기 시작했다.
▲ 군사시설이나 병원을 찾아 달리고 달려...
▲ 목이 마를 땐 노타, 핍시, 스파이트!
그렇게 길도 없고 풀과 나무, 바위만 가득한 곳을 30분째 뛰다 보니 문명이 그리워지기 시작했다. 그렇게 크앙은 두 시간 넘게 도시 주변을 뱅뱅 돌았다. 그제서야 크앙은 진리를 깨달았다. 닦여 있는 길을 벗어나면 조난을 당하기 쉽다는 너무나도 당연한 사실을… 다른 사람들의 ‘DayZ’ 여행기를 보면 막 야영도 하고 그러던데 왜 난 이모양이지?
결국 크앙은 1시간 30분여만에 도시로 복귀할 수 있었다. 갈증 해소를 위해 다시 이곳저곳을 뒤지고 있는데, 저 멀리 도로 위에 뭔가가 보였다. 도시 외곽으로 뻗는 도로인지라 그쪽까지 가 본 적은 없었는데… 일단 다가가 보기로 했다. ‘DayZ’ 의 덕목은 끊임없는 의심과 경계이건만, 오랜 시간 숲을 헤매고 다닌 터라 경계심이 많이 떨어져 버렸다.
▲ 계속 길을 걸어가다 보니 갑자기 땅 표현이 흐릿해지더니
▲ 개발이 진행되지 않은 세상의 끝이 나타났다
▲ 결국 한시간 반 만에 도시로 복귀
가까이 다가가니, 그것은 한 동양인 남녀의 시체였다. 남성은 옷이 벗겨져 있었는데, 여성의 경우 의복은 제대로 갖추고 있었다. 사실 이 때 이상한 낌새를 채고 도망갔으면 되는 거였는데, 이전에 흑인 남성의 시체를 발견했을 때도 아무 일이 없었기에 이번에도 아무 일이 없겠거니 하고 시체로 다가갔다. 왠지 저 티셔츠를 벗기면 붕대라도 만들 수 있을 것 같은 느낌에 시체 곁으로 가까이 다가간 순간…
퍽!
“크허억!”
시체로부터 루팅을 하기 위해 고개를 숙인 그 순간, 어디선가 날아든 도끼가 크앙을 때렸다. 시체 옆에 숨어있던 약탈자 유저가 크앙이 시체에 한 눈을 판 것을 노려 뒤에서 급습한 것이다. 어떻게든 반항을 해 보려 도끼를 꺼내들었지만, 이미 치명상을 입은 터라 별다른 반격도 하지 못한 채 그대로 쓰러졌다.
무려 세 시간 넘게 살아남으며 기존에 없던 다양한 아이템을 손에 넣었으나, 함정에 빠져 너무나도 허무하게 죽음을 맞이한 크앙의 네 번째 인생. 최대 목표였던 도시에 도달해 최강의 근접무기라는 도끼까지 얻었건만, 제대로 휘둘러 보지도 못한 채 이대로 죽어버리고 만 것이다. 그렇게 길가의 시체는 도합 세 구가 되었고, 또 다른 초보 유저가 그 함정에 걸려들겠지.
▲ 음 이 사람도 튼실하군
▲ 저 멀리 남녀의 시체가 있길래 다가가 봤는데... 갑자기 뒤에서...
▲ 너무 순식간에 당한 죽음이라 스크린샷이 없습니다. 그거 찍을 시간에 살려고 몸부림쳤기 때문이죠
에필로그 – DayZ는 인생이다
크앙의 사례에서 볼 수 있듯 ‘DayZ’ 는 정말 무시무시한 게임이다. 처음 게임을 시작하는 사람의 평균 생존 시간은 30분 내외로, 대부분의 유저가 총의 맛도 못 보고 죽기 일쑤다. 무기가 없이는 좀비 하나 제대로 해치우기 힘들고, 물 한 병을 구하는 데도 긴 시간을 투자해야 한다.
그러나 이러한 하드코어함을 이겨내고, 좀비와 인간들을 상대로 살아남을 시 얻는 쾌감은 온실 속 RPG보다 몇십 배 이상임이 분명하다. 유저들은 삶과 죽음을 반복하며 세계에 조금씩 더 적응하는 자신의 모습을 보고 성취감을 얻으며, 애써 키워놓은 캐릭터의 삭제를 바라보며 하늘이 무너지는 것 같은 절망에 휩싸인다.
그렇다. ‘DayZ’ 는 바로 우리의 인생이다. 희노애락애오욕(喜怒哀樂愛惡慾)이 살아 숨쉬는 공간이자, 음양(陰陽)의 조화가 이루어진 정중동(靜中動)의 세계다. 세상의 진리는 이 곳에 있으며, 당신이 찾는 모든 것을 찾을 수 있을 것이다. 자신이 강한 멘탈의 소유자라고 자부하는 게이머여! 서바이벌에 자신 있는 지구인이여! 그 꿈을 ‘DayZ’ 에서 펼쳐 보지 않겠는가?
▲ 뜨거운 태양과 같은 열정을 품고 있는 당신!
▲ 도전 정신 가득한 그대여, 나와 함께 'DayZ' 의 세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