빅터 브랜, 2만 원에 화끈한 악마사냥 '좋지 아니한가'
2015.08.03 21:25 게임메카 김영훈 기자
▲ '트로피코' 개발사 헤미몽게임즈의 핵앤슬래시 '빅터 브랜' (사진출처: 공식홈페이지)
필자 개인적으로 올해 상반기 가장 실망스러운 게임으로 ‘디 오더: 1886’를 꼽는다. 1880년대 런던을 배경으로 한 매력적인 스팀펑크 세계관, 고정 30프레임으로 주사되는 ‘역대급’ 그래픽, 썩 나쁘지 않은 슈팅 감각까지… 분명 걸작의 자질을 지닌 ‘디 오더: 1886’를 망쳐놓은 것은 바로 정가 59.800원이 당치도 않은 한줌밖에 안 되는 콘텐츠다.
‘디 오더: 1886’은 PS4를 견인할 유망주로 기대를 모았지만 결국 많은 유저들에게 실망만을 안겼다. 그런데 만약 이 작품이 한 2만 원짜리 소소한 게임으로 소개됐다면 어땠을까? 물론 말도 안 되는 가정이지만, 확실히 평가는 달랐을 것이다. 다른 모든 제품과 마찬가지로 게임에도 ‘가성비’가 존재한다. 가격책정에 따라 게임의 평가가 오르고 내린다. 에이치투 인터렉티브가 지난 24일 한국어화 정식발매한 ‘빅터 브랜’이 그 좋은 예다.
▲ '빅터 브랜' 게임플레이 영상 (영상출처: 공식유튜브)
독재국가경영게임 ‘트로피코’로 잘 알려진 헤미몽게임즈가 이번에는 핵앤슬래시 액션RPG를 들고 나왔다. ‘빅터 브랜’은 ‘디아블로’가 확립한 핵앤슬래시의 문법을 충실히 따르면서 19세기 고딕호러 세계관으로 변주를 꾀한 작품이다. 이미 2년 전, 거의 동일한 콘셉의 ‘반 헬싱’이 나오긴 했지만 뭐 어떠랴, ‘빅터 브랜’은 무려 한국어화 정식발매작인데. 가격은 달랑 19,900원. 2개, 4개 묶음으로 사면 더욱 싸다.
▲ 난 나쁜 남자 빅터 브랜, 하지만 가격은 착하지
제대로 살린 분위기 “나는 자고라비아의 게롤…아니 빅터!”
으스스한 고성과 깎아지른 듯 높이 솟은 첨탑, 현란한 스테인드클라스, 뽀족한 지붕들, 가스등이 어슴푸레 비추는 뒷골목, 기괴한 서커스 등… 게임 속 ‘자고라비아’는 마치 고딕호러 종합전시관 같은 음산한 도시다. 여왕 ‘카타리나’의 과오로 인해 망자와 마귀가 창궐하는 이곳에 거칠고 노련한 악마사냥꾼이 당도한다. 그의 이름은 ‘빅터 브랜’.
▲ 어둠의 족속에게 속은 여왕으로 인해 도시는 초토화됐다
죽은 줄로만 알았던 절친 ‘아드리안’의 편지를 받은 ‘빅터’는 망자들을 쓸어버리며 도시를 탐험한다. 이 무자비한 악마사냥꾼은 여정 속에서 점차 이기적이고 고독한 전사에서 모두를 위해 목숨을 거는 영웅으로 변해간다. 이렇듯 전형적인 헐리우드 다크히어로적인 면모가 한편의 호러액션영화 같은 게임 분위기와 잘 어울린다.
▲ '빅터'는 여정 속에서 여러 인물들을 만나게 된다
‘더 위쳐’에서 전설적인 괴물사냥꾼 ‘게롤트’를 연기한 더크 코클은 ‘빅터’에게 한층 심오한 내공을 불어넣었다. 도입부에서 ‘빅터’의 과거를 제대로 묘사하지 않음에도 그가 숙련된 악마사냥꾼으로 느껴지는 데는 더크의 목소리가 주효했다. 그의 음성에서 끝없는 투쟁에 지쳤지만 여전히 강인한 의지를 지닌 남자를 느낄 수 있었다.
▲ 낯선 '빅터'의 독백에서 익숙한 '게롤트'의 체취가...
물론 한편의 영화 같은 스토리가 꼭 장점만 있는 것은 아니다. ‘반 헬싱’, ‘솔로몬 케인’ 등 호러액션영화의 이미지를 대거 차용해 분위기는 제대로 살렸지만, 대신 진부하고 전형적인 전개까지 그대로 흡수했다. 냉정히 말해서 게임의 핵심 줄거리는 매우 뻔하며 극적 당위성도 떨어진다. 다만, 어차피 핵앤슬래시는 무릎을 치는 전개와 눈물 쏙 빼는 스토리를 찾는 사람들을 위한 게임이 아니다. 그런 면에서 ‘빅터 브랜’의 ‘뻔함’은 그리 거슬리지 않는다.
▲ 줄거리 자체는 이런 장르를 좋아한다면 지겹도록 봤을 전개
흠잡을 데 없는 액션, 아쉬움을 남기는 콘텐츠
핵앤슬래시의 미덕은 첫째도 액션, 둘째도 액션이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빅터 브랜’은 끝내주는 액션을 탑재했다. 몰려드는 망자들을 총으로 한방에 하나씩 날려버리는 박력하며, 주변을 불바다로 만드는 박격포의 위력까지 중세 판타지물에서는 볼 수 없는 ‘화포’ 액션이 살아있다. 적에게 강력한 일격을 적중시키면 그야말로 화면이 진동한다.
▲ 강력한 사격으로 적을 즉사시킬 때 쾌감은 최고다
▲ 큰 충격이 가해질 때 화면이 진동하며 타격감이 극대화된다
거대한 전쟁망치를 위시한 근접무기들도 상당한 타격감을 보여주긴 하지만, 웬만하면 한 손에는 총포류를 들길 강력 추천한다. 총포류에는 ‘빅터 브랜’만의 매력이 녹아들어 있는 데다 멀리서 적을 제압할 때도 유용하다. 다만, 전기총만큼은 무기 특성상 타격감이 거의 없어 지루하게 느껴질 수 있다.
▲ 총포류 쓰자, 두 번 쓰자! 물론 다른 쪽 전설급 장비가 나오면 그거 쓰자
▲ 필자가 가장 선호한 조합은 산탄총과 박격포, 다 쓸어버렷!
이 게임의 박력 넘치는 액션은 플레이어를 엔딩까지 이끄는 가장 강력한 기제다. 망자들을 베고, 쏘고, 던지고, 불태우며 진격하는 쾌감만큼은 ‘디아블로’조차 부럽지 않다. 그러나 아쉽게도 액션 외에 다른 부분에선 ‘빅터 브랜’은 대작 반열에 들지 못한다.
가장 큰 문제는 게임의 빈약한 콘텐츠다. 우선 이 게임에는 직업 개념이 없다. 직업과 유사하게 ‘빅터’의 의상을 골라 줄 수 있지만, 그저 부가 특성이 바뀌는 정도라 큰 차이를 느끼기 어렵다. 물론 의상의 효과가 뛰어나긴 하지만 다른 의상으로 플레이하기 위해 게임을 처음부터 다시 하고 싶은 마음은 전혀 들지 않는다.
▲ 직업에 해당하는 의상은 크게 다르단 느낌을 주지 못한다
▲ 중반 이후 다른 의상도 추가로 입수 가능하다
협소한 스킬 시스템도 아쉬움을 남긴다. ‘빅터 브랜’은 캐릭터가 직접 스킬을 익히는 대신 무기 종류마다 고유스킬 2개가 제공된다. 한 번에 무기 2개를 들고 장비할 수 있으므로 총 4개 스킬로 전투를 수행하는 셈인데, 당연히 턱없이 부족한 숫자다. 처음에는 무기마다 스킬이 다른 것이 참신하게 느껴질지도 모르지만 한, 두가지 무기를 돌려쓰는 후반이 되면 굉장히 지루해진다.
이외에도 무기에 부가효과를 부여하는 ‘연성’은 재료도 거의 안 나오는데다 쓰이는 효과가 한정적이고, 특수 스킬인 ‘악마의 힘’과 여러 이로운 효과를 주는 ‘운명 카드’도 가짓수가 그리 많지 않다. 장착 아이템을 통해 언제 어디서나 캐릭터를 새롭게 조정할 수 있도록 한 의도는 이해하지만, 뭘 어떻게 해놔도 조금 다르게 꾸민 ‘빅터’일 뿐이란 느낌을 지울 수 없다.
▲ '힘돌' 자체도 거의 안 나오고 쓰이는 옵션도 거기서 거기인 '연성'
▲ 탈부착 가능한 추가 스킬인 '악마의 힘'은 가짓수가 너무 적다
▲ 가장 깊이가 있었던 '운명 카드' 조합하는 재미가 쏠쏠하다
2만 원으로 후끈 달아오르는 10시간, 좋지 아니한가
요약하자면 ‘빅터 브랜’은 고딕호러 특유의 매력적인 분위기를 잘 살린 액션이 끝내주는 핵앤슬래시게임이다. 반면 어디서 본듯한 진부한 스토리, 재플레이 가치가 부족한 빈약한 콘텐츠 등 여러 단점도 지니고 있다. 그렇다면 게임의 총 분량은 어떨까? 평범한 게이머가 여유롭게 플레이했을 때 대략 10시간 내외면 엔딩에 도달할 수 있다. 그 이후에는 좋던 싫던 난이도를 조정하며 지난 콘텐츠를 반복해야 한다.
▲ 느긋하게 해도 10시간이면 엔딩에 도달할 수 있다
솔직히 말해서 필자는 ‘자고라비아’에서의 10시간을 아주 짜릿하게 보냈다. 몰려오는 망자들을 처치하고 흡혈귀들의 음모를 분쇄했을 뿐 아니라, 더 좋은 아이템을 찾아 동굴과 저택, 묘지를 탐험했다. 정말 희박한 확률로 발견되는 전설급 무기는 밸런스를 살짝 뒤흔들 만큼 강력한 위력으로 만족감을 준다. 호쾌한 망치질과 산탄총 세례, 박격포 포격은 아무리 퍼내도 마르지 않는 재미의 샘물과 같았다.
▲ 대신 전설급 무기가 너무 쌔서 일단 먹으면 싫어도 써야한다
반면 다 해봐야 40여 종 밖에 안 되는 괴물 가짓수와 그다지 흥미롭지 않은 보스전, 선형적인 게임 구성은 분명 눈에 띄는 결함이었다. 사실 말이 몬스터 40여 종이지 절반쯤은 동일한 외형에 색만 바꾼 것이다. 던전의 규모도 실제 있을 법한 동굴이나 창고, 저택 수준이라 다소 시시했다. 게임 내에 복층 던전이 손에 꼽을 정도니 더 무슨 말이 필요할까. 어차피 게임인데 좀 더 통 크게 일을 벌렸으면 좋았을 것이다.
▲ 보스전이 그다지 깊이가 없다, 졸병 불러내고 그냥 계속 공격하는 수준
▲ 대부분 그냥 쏘고 달리고, 쏘고 달리고 하면 깰 수 있다
▲ 난이도를 올려도 피통과 피해량이 커질 뿐이라 공략하는 재미는 없다
필자가 만약 ‘빅터 브랜’을 6만 원에 샀다면 10시간 내내 불만이 가득했을 것이다. 아니면 적어도 엔딩을 본 후에는 화가 치밀었을 것이다. 그리고 분노에 젖어 자판을 두드렸겠지. “이게 6만 원짜리 게임이라고?” 그러나 이 게임은 그저 2만 원이면 살 수 있다. 헝가리의 작은 개발사가 만든 소소한 게임 ‘빅터 브랜’은 스스로의 위치를 ‘쿨’하게 인정하고 중저가 라인업에 자리를 잡았다. 그런데 어떻게 그 이상을 요구하며 함부로 욕할 수 있겠는가?
▲ 액션 끝내주고 싸고... 이만하면 좋지 아니한가
미흡한 시나리오나 부족한 콘텐츠는 ‘빅터 브랜’이 애초에 소자본으로 만든 게임임을 참작해야 한다. 대신 핵앤슬래시 액션RPG의 핵심 가치이자 어쩌면 유일한 미덕인 액션을 제대로 잡았으니 그거면 된 거 아닐까? ‘빅터 브랜’은 모처럼 한국어화 정식 발매된 타이틀이며, 2만 원도 안 하는 저렴한 가격을 자랑한다. 스스로 핵앤슬래시 팬이라 자부한다면 후회 없을 10시간에 약간의 금액을 투자하길 추천한다.
▲ 모험의 도시 '자고라비아'로 오시라, 단돈 2만 원에 모신다